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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에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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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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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1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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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2부

DUMMY

파리 몽마르뜨 언덕

언덕 위로 스퀘델리와 그의 오빠 그리고 몽블랑 살롱 일꾼 2명과 다른 지방에서 잡혀온 사형수들이 줄줄이 끌려갔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 양 옆으로 파리 시민들이 죄인들을 구경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창을 든 경비병들이 시민들을 밀쳐내고 있었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구경하려고 사람들을 밀쳐댔다. 스퀘델리는 발목에 달린 쇠구슬이 힘에 부친 지, 언덕 마루를 얼마 남기지 않고 쓰러졌다. 발목에는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렸고, 머리는 치렁치렁 흐트러져 눈앞을 가렸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스퀘델리의 휑한 눈빛이 구경꾼들을 훑고 지나갔다. 스퀘델리가 쓰러지자 행렬이 멈춰 섰다.

"마녀. 죽어라 !"

겁에 질린 사내아이 하나가 돌을 던졌다. 경비병들이 형식적으로 제지를 하자 날아드는 돌이 많아졌다. 쓰러져 있는 스퀘델리를 향해 온갖 욕설이 튀어나오고 더러는 막대기로 쿡쿡 찔러대기도 했다. 경비병 하나가 스퀘델리를 일으켜 세우자 행렬이 언덕을 향해 움직였다.

"묶어라. 정각에 화형에 처한다."

사형을 주관하는 파리 대주교의 명령에 붉은색 바탕에 하얀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옷을 입고 있는 병사들이 죄수들을 나무에 묶어 바닥에 세웠다. 나무 밑에는 장작들이 수북이 쌓였다. 횃불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횃불을 던져넣기만 하면 금새 화염이 죄수들을 집어 삼킬 준비가 다 되었다. 하늘에 떠있는 태양을 바라보던 대주교는 로트르담 대성당에서 사형집행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길 기다렸다.

"웅웅웅웅"

"무슨 소리지 ?"

대주교는 기다리던 종소리는 들리지 않고 이상한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자 소리 나는 곳으로 향했다. 멀리 남쪽에서 하늘을 날아오는 것들이 보였지만, 도통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대주교님 저것이 무엇입니까 ?"

대주교는 사제의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물체가 빠른 속도로 몽마르트 언덕으로 다가왔다. 불현듯 두려움이 밀려든 대주교는 경비병들에게 외쳤다.

"불을 질러라. 저기 다가오는 것에 총을 쏴라."

"타타타타타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몽마르뜨 언덕으로 날아온 잠자리들은 정지비행을 하며 횃불을 들고 있거나 무기를 들고 있는 자들을 저격하기 시작했다. 굉음과 함께 경비병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자, 구경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자리들이 재빨리 병력을 내려 몽블랑 식구들을 태우고 몽마르뜨 언덕을 한바퀴 돌고 남쪽으로 멀어져 갔다.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군이다. 너희들이 내가 보낸 사자를 핍박했으니 너희들 또한 그렇게 당하리라."

괴상한 물체에서 뿌려댄 전단지를 들고 읽어 나가던 대주교가 멍하니 남쪽을 바라보았다.

"땡 땡 땡"

센 강 중간에 있는 섬 시테섬에 우뚝 솟은 로트르담 대성당 종탑에서 시작된 종소리가 은은히 울리며 몽마르뜨 언덕을 타고 넘었다.

"고생이 많았습니다. 좀 더 일찍 구출을 해드리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응급처치를 하고 흐르는 피를 멈추게 했지만, 몽블랑 식구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지만 그들은 생전 처음 보는 물체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스퀘델리는 혼절해서 그나마 나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귀가 멍멍해 두 손으로 귀를 꽉 막고 질끈 감은 눈을 뜨려 하지 않았다.

"잠자리 하나, 옹달샘 나와라"

빌라봉이 가까워지자. 잠자리 조종사가 옹달샘을 불렀다.

"의료진을 대기하라. 옹달샘 응답하라."

"대장님 ? 옹달샘과 교신이 되지 않습니다."

잠자리 1호기 기장이 고진영을 보고 소리쳤다.

"3호기는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정찰을 하도록. 고도를 낮춰서 통신을 요청해봐."

"네."

"옹달샘 나와라 옹달샘 나와라"

한참이 지나서야 옹달샘에서 응답이 왔다.

"대장님. 연결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잡음이 들려옵니다."

단거리 통신에서 잡음이란 있을 수 없었다. 전파 간섭을 생각했던 고진영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이 근처에 간섭할 전파를 발생할 만한 것이 없었다. 고진영은 자리 왼쪽에 걸려 있는 송수신기를 꺼내 들고 직접 통신을 시도했다.

"나 고진영이다. 무슨 문제가 있나 ?"

"아닙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반대쪽에서 들려오는 오로치의 목소리는 평상시와 다름없었지만 규칙적인 잡음이 들려왔다. 뭔가를 두드리는 듯 한 소리는 흡사 어떤 부호와 비슷했다. 통신을 유지한 체 머리 속에 남은 잡음을 떠올리던 고진영이 그 특유의 건조한 목소리로 통신을 끝냈다.

"알았다. 알았다. 잘 알았으니 이상."

"잠자리 2.3호기는 주파수를 바꾼다. 주파수 번호 1004"

긴급 발생을 알리는 암호 1004가 고진영의 입을 통해 나오자, 1호기 기장이 고진영을 바라보며 무슨 말인가 하려 했다. 하지만 고진영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먼저 주파수를 돌리라는 시늉을 했다.

"빌라봉성이 누군가에 의해 점령당한 듯 하다. 3호기는 착륙하지 말고 비상시 수칙에 따라 행동하도록. 1호기부터 착륙한다. 모든 대원들은 만일의 공격에 대비하라. 최우선적으로 통신실을 장악해야 한다. 이상"

빌라봉성 공터에 마련된 착륙지점에 다가가자 고도를 낮춘 1호기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착륙지점 주위에는 평소에는 없었던 나무통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고, 오로치가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의료진으로 보이는 하얀 옷을 입을 사람들이 들 것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1호기가 착륙하고 2호기가 착륙을 시도했다. 고진영과 함께 대원 3명이 따라 내렸다. 1호기에 거치 된 기관총사수는 총구를 땅을 향하게 하고 있었지만 총신은 의료진들을 따라 갔다.

"정말로 무슨 일 없나 ?"

"대장님. 왜 오셨습니까 ?"

그와 동시에 공터를 둘러쌓고 있는 건물 옥상에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제국 소총을 들고 잠자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항복하라.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분명했다. 에드몽은 빌라봉 성을 장악하고 파리에서 돌아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의료 요원으로 변장한 에드몽 병력이 고진영을 둘러쌓다.

"다른 대원들은 ? 보고는 ?"

"다 죽었습니다. 너무 창졸지간에 당한 일이라 손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고진영이 느닷없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오로치를 감싸 안았다. 고진영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오로치를 껴 안고 바닥으로 뒹굴었다. 그것을 신호로 잠자리 2호가 하늘로 떠오르며 사방으로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에드몽이 고개를 바짝 숙이고 사격을 외쳐대자, 옥상에 배치된 병력의 집중 공격이 시작되었다.

"탕탕 드드드드 탕탕 펑"

착륙지점 주변에 흩어져 있던 나무통에는 잠자리용 연료가 가득 들어있는지 피탄 되면서 불꽃이 피어 올랐다. 불꽃에 휩쌓인 나무통이 굉음을 내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동시다발적인 폭음이 떠오르려던 2호기를 휘감았다. 휘청이던 2호기가 1호기를 들이받고 한참을 미끄러져 벽에 쳐 박혔다. 어수선한 틈을 탄 고진영은 오로치와 함께 건물 안으로 잽싸게 뛰어들었다. 세상이 내일 망해도 고진영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어 든 고진영이 주위를 둘러보며 왼쪽 벽을 타고 비상통로를 열 수 있는 장치를 찾아 눌렀다. 벽이 비스듬히 돌아가며, 사람 하나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살아남으면 나중에 보세"

자신의 권총을 오로치에게 주고, 비상통로로 들어간 고진영은 주머니에서 불티나를 꺼냈다. 빌라봉 성 건설 당시에 설치된 자폭장치는 벽과 벽 사이에 있었다. 손을 더듬어 도화선을 찾아낸 고진영이 불티나에 불을 붙이고, 반대쪽 벽을 더듬었다. 원래는 안쪽 벽에서 들어와 바깥쪽으로 나가야 했지만 고진영은 거꾸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벽을 더듬어도 문을 열 수 있는 장치를 찾아낼 수 없었다. 고진영이 뭔가를 깨달은 듯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원래 안쪽 벽에는 개문 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꽈광 펑펑펑펑"

연속음이 들려오며 화염이 벽과 벽이 만들어 놓은 좁은 공간을 달려 고진영을 집어 삼켰다.


"그만 가셔야 합니다."

3호기 부기장은 빌라봉 성이 주저앉는 것을 보며 기장을 재촉했다. 항속거리 500킬로미터가 약간 넘는 잠자리였기에 착륙해서 짐칸에 실려 있는 연료를 채워야 했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어디로 ?"

3호기는 갈 곳이 없었다. 한정된 연료로 대한제국이 관할하는 곳까지는 날아갈 수 없었다.

"바다로 가시죠. 그곳에는 잠수함이 있을 지 모릅니다. 작전 개시 전에 요청한 지원함대가 가까이 와 있을 것입니다."

부기장은 빌라봉 성을 지원하기 위해 대서양에는 잠수함이 항상 대기중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간다고 만난다는 보장도 없는데.'

기장은 차마 말을 꺼내질 못 했다. 3호기의 마지막 희망을 날려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잠수함들의 작전로가 변경되지 않았기만을 바라며 기장이 기수를 돌렸다.


단기3960년 오드리강 상류 브로츠와프

프라하에 모여든 유럽 연합군 10군단 병력 총 4만 명이 브로츠와프로 이동을 시작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군과 보헤미안군으로 구성된 10군단은 이례적으로 한스 장군이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한스가 10군단 사령관으로 임명된 데에는 보헤미안을 아우르는 신성로마제국의 정책이 크게 작용했다. 기병 이만에 보병 일만 포병과 기타 병과 일만으로 구성된 10군단은 브로츠와프에서 군을 재정비하고 유럽연합군 총사령관의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봄이 오기 전에 폴란드를 해방시키고 여름이 오기 전에 모스크바 공격에 나서야 하는데."

한스 장군은 각 군의 예상 진격로가 나와 있는 유럽 원정군 전략 지도를 안주머니에 꺼내 책상에 펼쳐 놓았다. 8번 접혀 있는 얇은 가죽 지도 위에는 어지럽게 선들과 점들이 그려져 있었다.

"똑똑똑"

군단장급에게만 제공된 전략 지도를 다시 곱게 접어 넣은 한스 장군이 문에 대고 소리쳤다.

"들어 오게"

"연합군 사령부에서 암호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내용은 ?"

"이번 전문은 전문 해독 권한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유럽 연합군은 부대 정비를 끝내고 중요 명령서를 암호문으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 전문은 해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지정되어 있었다. 권한이 없는 자가 암호문을 해독하려면 키워드 없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명령서의 빠르고 정확한 전달을 위해 각 제대에 전령을 따로 관리하는 소규모 부대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암호문을 건네 받은 한스는 온갖 기호들, 알파벳 그리고 숫자로 이루어진 암호문을 해독해 나갔다. 이번에 온 전문은 프랑스어로 암호화 되어 있었다.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 한 한스 장군이 숨을 참았다 길게 뱉었다.

"각 사단에 이걸 2급 암호문으로 작성해서 보내게"

"네. 사령관님"

10군단에 이동 개시 및 공격 명령이 전달 되었을 즈음, 신성로마제국군으로 구성된 유럽 연합군 제9군단 역시 오드리강 상류에 있는 크라코프를 공격하기위해 움직였다. 오드리강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유럽 연합군의 이동이 바르샤바에 사령부를 설치한 대한제국군 4군 원정군에 속속 보고되고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한 겨울에 공격을 감행하다니. 몰살되려고 작정한 모양입니다."

새롭게 발견된 유럽군의 이동로가 전황판에 표시되었다. 작전참모가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당혹함이 잔뜩 베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겨울 전투를 상정해 놓지 않은 원정군 사령부로써는 겁도 없이 움직이고 있는 적의 행태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크라코프에 병력을 증파해야 합니다."

"크라코프뿐 아니라, 브로츠와프, 오스트루프, 포즈난, 아니 전 전선에 병력을 증파해야 합니다."

크라코프에는 우크라이나 일대를 관장하고 있는 4군단 예하 기병사단 1개 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6군단 전 병력은 오드리강 주변에 산개해 있었다. 하지만 달려드는 유럽 연합군 병력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랐다. 대부분이 10배 이상의 병력차를 보이고 있었고, 크라코프는 20배가 넘었다.

"작전상 후퇴를 권고합니다. 현실적으로 증원이 불가능하고, 고립될 경우 막대한 피해가 예상됩니다. 전선을 축소해서 비스와니 강을 중심으로 방어전에 임해야 합니다. 작전 참모진에서 마련한 동면 작전은 단치히와 비드고슈치 그리고 우치, 체스토호바, 라돔, 루블린을 연결하는 반원형 방어선을 형성하고, 3군단과 우크라이나 지원병력을 리보프와 루블린에 집결시킵니다. 이렇게 하면 전선을 1000킬로미터에서 500킬로미터로 축소할 수 있습니다. 봄까지 시간을 끌면 그 다음은"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 대한제국 군인으로서 그런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습니다."

5군단장 고수석 중장이 작전 참모의 말을 끊고 나섰다. 비록 수천명의 사상자를 내긴 했지만 적병 10만을 와해시키고 바르샤바에 무혈입성하는 데 전공을 세운 5군단이기에, 그의 발언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소리에 아랑곳 않고 고수석 중장이 말을 이었다.

"40만이든 50만이든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투지만 있다면 적이 아무리 많아도 대한제국군을 당해내지 못합니다. 괜히 우리를 천군이라 부르겠습니까 ? 천군을 이길 군대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령관님. 저는 오히려 진격할 것을 건의합니다. 베를린과 빈을 공격하고 여세를 몰아 파리로 밀고 가면 이번 전쟁은 끝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건 어렵습니다. 수에즈 운하가 사고로 봉쇄되면서 흑해나 대서양을 통한 지원이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저희가 이용할 수 있는 보급로는 기껏해야 발트해를 통한 보급로와 육로를 통한 것이 전부입니다만 계절적 요인을 감안하면."

"그러길래 누가 보급품을 날려 먹으라고 했습니까 ?"

보급참모의 말에 5군단장이 또 다시 나섰다. 예하 부대들은 보유 보급품으로 그럭저럭 겨울나기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번에 당한 공격으로 원정군은 유류 보급품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었기에, 진격전에 필수적인 포병과 기계화 사단의 기동이 극히 제한되고 있었다.

"천군부에서는 별다른 명령은 없나 ?"

사령관이 착찹한 심정으로 통신 참모를 바라보았다. 통신 참모 옆에 있던 정보 참모가 사령관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정보 참모는 내년 봄에 적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원정군은 겨우내 지역 민심 확보를 위해 뿔뿔이 흩어졌지만 정보부의 예상은 한참 빗나가고 있었다.

"없습니다."

천군부에서는 일을 이 지경까지 끌고 간 4군 사령관에 대한 무언의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듯 했다. 어쩌면 4군 사령관의 재량에 맡긴다는 뜻일지 몰랐다. 지금 다가오는 40만의 병력은 원정군 병력 15만에 비하면 그렇게 위협적인 세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은 집중되어 있고, 대한 제국군은 분산되어 있었다.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고 대한제국이 갖은 화력의 우수성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적을 집중시켜 격멸 하는 것이 최선인 듯 보였다.

"봄까지 전선을 유지하면 폭격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후퇴하면 북부 영주들이 동요하게 됩니다. 폴란드 내 저항 세력들이 남부로 집결할 것이 뻔하고, 이번 전쟁을 주시하고 있는 터키나 스웨덴이 오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참은 후퇴를 반대하십니까 ?"

작전참모의 질문에 대답하는 정보참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이지요.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 내. 그럼 말을 마시던가요 ?"

고수석 중장이 정보참모를 쏘아보더니 이내 군수 참모와 작전참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후퇴할 수 있으면, 당연히 공격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 왜 병력 지원을 못 합니까 ? 5군단 병력은 어떤 악천후에서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 사령관님. 저를 보내주십시오. 이번 기회에 유럽전을 끝내겠습니다. 우리가 힘들면 적은 더 힘들지 않겠습니까 ? 후퇴는 말도 안됩니다."

후퇴하자는 의견과 맞서 싸우자는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사령관은 그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적들은 시시각각으로 오드리강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일부 부대는 꽁꽁 언 강을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보란 듯이 건너도 있었다.

"수에즈 운하는 언제 개통할 수 있다던가 ?"

"빨라야 6개월입니다. 기존 운하를 보수하는 것 보다 새롭게 파는 것이 더 빠르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완벽한 후퇴가 가능하긴 한 건가 ?"

오랜 회의시간동안에 처음으로 사령관이 후퇴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사령관은 이미 보급된 겨울나기 보급품을 고스란히 이동시킬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전부 가져갈 수 없습니다만 2/3정도는 가능합니다. 중화기를 우선적으로 이동시킨다면 3/4까지도 가능합니다."

5군단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회의 참석자들은 작전 참모부에서 올린 후퇴 건의안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김상태 사령관은 눈을 감았다. 지금껏 천군 역사에 후퇴가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의 기억 속에는 하다못해 작전상 후퇴라는 것을 한 적도 없었다.

"크라코프를 포기해야 한단 말이지 !"

유럽 최대의 소금광산이 있는 곳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키기는 더욱 어려워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슈체친은 포기 못 하겠군. 그곳은 보급 걱정을 덜 수 있으니 포위당해도 걱정 없겠지. 퇴로도 확보된 거나 마찬가지니. 4111 사단에게 슈체친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방어하라고 하고, 기병사단에게는 단치히로 후퇴하라고 해. 오드리강에서 비스와니강까지 후퇴하도록. 4511사단과 4611사단이 후퇴를 엄호하고 이 일은 고수석 중장이 김한석이와 함께 맡아주었으면 좋겠군."

"사령관님 ?"

"그렇게 해주게. 자네밖에 없어!"

김상태 사령관은 한사코 후퇴를 반대하는 고수석 중장에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원정군 후위를 맡아주길 바랬다. 사령관은 고수석 중장처럼 진격하고 싶은 속내를 가지고 있었지만 판돈이 너무 컸다. 간절한 눈빛을 떨쳐버리지 못한 고중장이 마침내 후위를 책임지겠다고 하자, 전격적인 후퇴가 결정되었다.

"그런데 민간인들에게는 후퇴사실을 알려야 합니까 ?"

"숨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동요를 막고 비밀 유지를 위해서는 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대한제국을 믿고 따라준 도의를 져버리면 나중에 믿음을 줄 수 있겠습니까 ?"

"그렇다고 후퇴한다고 광고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그건 말도 안 됩니다."

확실히 민심을 잡지 못한 원정군으로서는 후퇴도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호의적인 집단과 호전적인 집단이 혼재해 있는 폴란드는 원정군에게 거대한 복마전이 따로 없었다.

"원칙대로 하는 게 좋아. 일단 우리의 후퇴사실을 사실대로 알리도록 하게. 누구에게, 언제 알리느냐는 지역 특성에 맞게 부대장과 민정참모에게 전권을 일임하도록 하고. 그리고 후퇴도 작전임을 잊지 말게.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 비스와니 선까지 이동한다. 민스크에 새로운 보급창을 건설하도록. 이번 작전을 지급으로 천군부에 승인 요청하고 천군부에서 반대하지 않는 한 내일 정오를 기해 작전을 시작한다. 이상. 다들 나가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사령관이 의자를 돌려 창을 바라보았다. 회의에 참석한 참모진과 장성들이 회의실을 총총히 빠져나가고 회의실에 정적만이 감돌았다. 한두 송이씩 내리기 시작한 눈발이 점점 많아지더니 이내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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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천군2부 +2 15.06.10 3,242 79 16쪽
125 천군2부 +2 15.06.10 3,502 80 16쪽
124 천군2부 +3 15.06.09 3,712 111 17쪽
123 천군2부 +3 15.06.08 3,901 98 16쪽
122 천군2부 +2 15.06.07 4,020 82 17쪽
121 천군2부 +1 15.06.06 3,521 79 17쪽
120 천군2부 +4 15.06.05 3,551 84 16쪽
119 천군2부 +2 15.06.04 4,257 82 16쪽
118 천군2부 +3 15.06.03 3,708 103 18쪽
117 천군2부 +4 15.06.02 4,242 99 17쪽
116 천군2부 +3 15.06.01 4,199 105 17쪽
115 천군2부 +4 15.05.29 4,301 98 17쪽
114 천군2부 +2 15.05.29 4,167 100 18쪽
113 천군2부 +5 15.05.28 4,633 131 17쪽
112 천군2부 +4 15.05.27 4,872 124 17쪽
111 천군2부 +3 15.05.22 4,553 93 18쪽
110 천군2부 +2 15.05.21 4,800 113 14쪽
109 천군2부 +5 15.05.20 4,705 112 12쪽
108 천군2부 +3 15.05.18 4,810 118 19쪽
107 천군2부 +3 15.05.10 5,280 117 19쪽
106 천군2부 +3 15.05.09 4,877 144 18쪽
105 천군2부 +3 15.05.08 5,102 104 19쪽
104 천군2부 +4 15.05.07 5,844 12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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