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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에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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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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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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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쪽

천군2부

DUMMY

만주 평야

송화강과 요하강이 가로지르는 광활한 만주 평야에는 대한제국이 직접 운영하는 대규모 농장들이 산재해 있다. 대명부 광동성 주변에 조성된 농장과 함께 국영 2대 농장 지대로 손꼽히는 만주 농장은 병역 대상자였으나, 징집되지 못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경작되었다. 벼 2모작이 가능한 화남 농장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만주 농장 역시 연간 벼 생산량과 옥수수 생산량이 일본부 전체에서 생산하는 양과 비슷할 만큼 규모면에서 대규모를 자랑했다..

매년 천붕들이 날아다니며 거름을 뿌리는 것으로 시작된 농사가 한 고비를 넘기며 조생종 벼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벼 꽃들이 들판을 온 통 하얗게 만들어 놓았다. 맑게 겐 여름 하늘에 나타난 천붕이 장춘 방향으로 날아갔다.

"공군과 농사꾼의 경계가 사라지는 곳이 이곳 심양 공군기지에 배속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 왔지만 정말 이럴 줄 몰랐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위치나 확인해. 이것도 훈련의 연속이야."

심양에서 이륙한 천붕이 복합비료가 희석된 물 비료를 가득 싣고 송화강 상류로 이동하고 있었다. 부조종사인 윤형식 중위는 심양 공군기지에 배속된 이후 단 한차례의 군사용 비행을 한 기억이 없었다. 오늘도 윤형식 중위는 아침 일찍 일어나 폭탄 창에 비료를 가득 싣고 심양 비행장을 이륙해 장춘 부근에 있는 옥수수 농장 상공에 도착해 목표 지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 왔습니다. 지상에서 신호가 올라옵니다."

농장 군데 군데에 널려져 있는 마을에서 신호탄에 올라왔다. 1킬로 평방미터를 흥건히 적셔줄 비료를 가득 실은 폭탄 창이 열리더니 긴 대롱 10개가 기체 밖으로 삐져 나왔다.

"윤중위 열어"

선임 조종사의 명령 아닌 명령에 윤중위가 부조종사 왼편에 있는 빨간 단추 10개를 차례로 눌렀다. 이어 오른쪽에 있는 녹색 단추를 누르자, 대롱에서 비료가 쏟아져 내렸다.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는 천붕에서 뿌져진 비료들이 넓게 흩어지며 어린 옥수수들을 살 찌웠다. 몇 십분 만에 비료 주기를 마친 천붕이 고도를 올리며 하얀 뭉게구름을 너머로 사라져 갔다.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서는 비료주기가 끝나자, 하나 둘씩 밖으로 나와 농장으로 향했다. 아무리 정밀하게 비료를 뿌려대도 꼭 빠트린 부분이 있기 마련이여서, 그런 곳을 찾아 농민들이 손수 비료를 뿌렸다.

"다음 농장은 어딘지 한 번 볼까 ?"

윤중위가 하루에 3번을 기본으로 짜여 진 비행표를 들어 장춘130이라 표시된 칸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뒤로 한 장 넘겼다. 다음 달까지 빡빡하게 짜여 진 비행표는 그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이번 달은 비료, 다음 달은 농약 그리고 다다음달은"

중얼거리는 윤중위를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던 이용만 소령이 통신 주파수를 만지작 거리며 주파수를 고정했다. 이내 지지직 거리는 잡음이 섞인 관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중위는 비행표를 바닥에 내려놓고 서둘러 송수신기를 머리에 썼다.

"천붕050호는 고도 3000미터를 유지하고 032 방향으로 접근하라."

"알겠다. 천붕 050. 고도 3000, 032"

"모든 천붕에게 알린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도와 속도 방향을 유지하라. 주변에 동료기가 몰려있으니, 항로를 이탈하지 말라."

"무슨 일이지 ? 여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늘 같은 일은 이만용 소령이 이곳에서 근무하는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특이한 상황이었다. 멀리 비행장 활주로가 눈에 들어왔지만, 관제사는 계속해서 선회하라는 명령만 내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신형 천붕들이 연신 착륙하며 활주로를 차지하고 있어서, 이소령 기체에게는 착륙 명령이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우와. 신형 천붕입니다. 매끈하게 생겼네요. 나도 저런 걸 타야 되는데. 얼마나 좋을 까. 비행기 타는 맛이 새록새록 나겠다. 내 차례는 언제나 올려나 ?"

주기장에 천붕 050을 집어넣고 조종실에서 내린 윤중위는 사령부 건물까지 가는 동안 연신 고개를 돌려 대며 중얼거렸다. 자꾸 발걸음이 흐트러지자, 이소령은 윤중위와 보폭을 맞추는 것을 포기하고 주먹을 들어 올렸다.

"탁"

이소령이 신형 천붕에서 내린 조종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윤중위 머리를 쥐어박으며 저만치 걸어갔다. 머리를 감싸 안으며 자리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던 윤중위가 머리를 문지르며 이소령에게로 달려갔다.


"충성. 소령 이만용외 1명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했기에 보고 드립니다."

"충성. 수고했네. 쉬었다가 11시에 조종사 회의실로 모이게."

연대장은 보고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서둘러 손을 저었다. 그만 나가보라는 연대장의 손짓에 이 소령이 몸을 돌리다 말고 질문을 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

"회의실에서 다 들을 이야기야. 공군성에서 이동 명령이 내렸네. 심양기지 전체가 옮겨갈 모양이더군 한시적이긴 하지만"

"어디로 말입니까 ?"

"모스크바. 그만 나가봐"

"충성."

연대장실을 나온 이소령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모스크바로 전출된다는 소식에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윤중위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천붕 050 같은 구형 기체까지 이전 명령이 내려졌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신형 천붕이 이동하는 것으로 유추하면 모스크바에서는 폭격 임무를 맡을 공산이 컸다. 농작물을 키우던 자신이 이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머리 위에 폭탄을 쏟아 부어야만 했다. 공부에 떨어트렸던 폭탄보다 더 잔인한 폭탄을 자신이 손수 떨어트려야 할지도 몰랐다.

"전역 신청을 해야겠어"

이만용은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를 중얼거리며 자신의 사물함 앞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울한 표정의 거꾸로 된 이만용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단기3959년(1626) 여름 발틱해 단치히 항

카르파티아에서 발원하여 1068킬로미터를 쉼 없이 달려와 발틱해로 흘러드는 비스와 강. 평평한 나라에 흐르는 모든 물을 하나로 모으는 강이기에 그 하구에 거대한 삼각주가 만들어져 있고, 내륙으로 3킬로미터를 거슬러 올라가 발틱 최대의 무역항 단치히가 자리 잡고 있다.

12세기이래 한자 동맹의 비호 아래 발전을 거듭하던 단치히는 대한제국 러시아부와의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더욱 번창했다. 폴란드를 거처, 단치히로 운송된 수많은 물품들이 단치히 항에서 배에 실려 영국이나 프랑스로 운송되었기에, 단치히는 발틱해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항구였다. 그런 단치히 항구가 대한제국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급격히 침체되기 시작했다.

"전쟁이 빨리 끝나야지. 이거야 원. 이렇게 계속 되다가는 신대륙으로 이민을 가야 할지 모르겠어 ?"

단치히에서 하역 인부로 일하고 있는 오스카는 일거리가 갑자기 줄어들자 입에 풀칠하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바로 옆에서 전쟁을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지금 당장 닥친 내일 끼니 걱정이 더 큰 시름으로 다가왔다.

"지금 그런 거 걱정할 때가 아냐 ?"

"그럼 뭘 걱정해야 되나 ? 이렇게 일거리가 줄어들면 결국은 새끼들 먹이기도 힘들어질 텐데. 먹고사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나 ?"

"이곳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몰려오고 있다는 거야. 단치히를 공격할 지도 모른다고 ?"

"에이 설마 하니. 이번 전쟁은 폴란드가 러시아 땅을 차지하고 내놓지 않아서 일어난 건데. 아무 상관없는 이곳을 공격 하겠나 ? 이곳은 자유 도시이긴 하지만 엄연히 신성로마제국의 비호를 받고 있는 곳이라고. 한자 동맹이 유명무실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을 걸 ? 아직 한자 동맹 맹주 님도 건재하고 말야. 이빨 빠진 호랑이 라지만 호랑이는 호랑이잖아. 스웨덴 왕국이 대한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뤼베크 영주님이 스웨덴과 친하긴 하지만 단치히가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진 않겠지. 지난날 대한제국 때문에 당한 수모도 있고. "

오스카가 하역 일을 하면서 주어들은 이야기를 주섬주섬 이야기하며 동료 얀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얀은 딴 생각을 하는지 대꾸가 없었다.

"얀 ? 그렇지 ?"

"응 ? 뭐가 ? 신대륙으로 이민 가는 거 ?"

오스카가 어깨를 툭 치자, 얀이 되물었다. 오스카는 이야기를 다시 하려다 그만 두었다. 자기가 이야기를 해 놓고도 다시 똑같이 하려니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더구나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여기 저기서 주어들은 이야기들을 이해하기에는 오스카가 지식이 따라 주지 않았다.

"그냥 해 본 소리지. 이민은 무슨. 죽으나 사나 이곳에서 살아야지. 전쟁이 끝나면 다시 배들이 들어오고 그러면 한결 살기가 쉬워지겠지."

"난. 차라리 대한제국이 이곳을 점령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 최소한 먹을 거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구. 일전에 러시아에서 온 상인을 만났던 적이 있었는데, 대한제국이 다스리는 나라는 천국이라더군."

얀은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스레 속마음을 오스카에게 보였다.

"다 똑같지 무슨 얼어 죽을 천국은 대한제국도 귀족이 있을 거 아닌가 ? 귀족 놈들은 그저 놀고먹다가 심심하면 우리 같은 놈들 두들겨 패는 걸 낙으로 삼는 놈들인데, 대한제국 귀족이라고 다르겠어. 다 지어낸 이야기라고. 신부님이 그러시는데 모스크바에는 길게 늘어진 괴물이 있다더군. 동그랗게 생긴 다리를 수십 개나 가지고 있고, 한번 에 수백 명씩 사람들을 잡아먹고는 먼 동쪽 나라로 갔다는데 잡혀 먹는 사람들이 찍소리 못하고 제 발로 걸어서 뱃속으로 걸어간다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그런 괴물을 군인들이 밤낮으로 지키고 숭배한다는데 무시무시해."

오스카는 몸 사래를 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무렴 그러기야. 아무튼 오늘도 들어오는 배가 없나 보네. 그만 일어 나 세나 ?"

"땡 땡 땡"

"벌써 저녁이 다 되었나 ?"

아침, 저녁으로 울리던 종소리가 벌써 울리고 있었다. 부두에서 넘실대는 파도 너머 돛단배가 나타나길 기다리던 오스카와 얀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손을 놓은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서 이대로 집에 가려니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땡땡땡"

"오늘 종소리가 좀 이상하네. 종치기가 힘이 넘쳐 나네"

은은하게 울려 퍼지던 종소리는 이내 숨 가쁜 소리를 전달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울리는 종소리에 오스카가 교회 종탑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건물 벽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고개가 언덕 쪽으로 저절로 돌아갔다.

"그러게. 오스카 ! 이건 비상종 소리야. 뛰어 ?"

얀이 소리치며 달려가자, 오스카도 종소리의 의미를 뒤늦게 알아채고는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침 먹은 것이 부실한 오스카는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아서인지 갈수록 뒤쳐졌다. 얀이 도시 중앙에 자리 잡은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자유 시민들은 들으십시오. 대한제국 함대가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모두들 무기를 들고 지정된 곳으로 신속히 모이기 바랍니다. 위대한 단치히의 단결된 힘을 보여주어 저들이 경거망동을 하지 못 하도록 해야 합니다. 더불어 노동자들에게도 알린다. 그대들의 삶의 터전을 누구에게 맡길 참인가 ? 자신의 가족들은 스스로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서둘러라. "

단치히 수비 대장이 광장에 모인 자유 시민권 자들과 그 아래 계급인 노동자들에게 소리치며 다가오는 위험에 맞서 싸우길 호소하고 있었다. 설마 하며 사태를 주시하던 시민권 자들이 수비 대장과 논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집으로 달려갔다.

"헉헉. 큰일이야. 큰일"

오스카가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얀 옆에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부두에 나올 건가 ?"

"그래야지. 일단 가족부터 피신시키고"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

오스카의 물음에 얀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물어 본 오스카나 얀은 부두에 나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자신이 배신자라고 낙인찍힐 것을 우려한 얀은 자신의 친구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고 오스카도 그러했다. 중앙 광장을 빠져 나와 단치히 시 외곽 끝자락에 있는 집에 들어간 얀은 부인과 애들을 불러 모았다.

"전쟁이 났어. 대한제국 함대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이야. 우선 우린 이곳을 떠나야 하니 짐을 싸도록 해. 시간이 없어 ! "

세간이라야 몇 개의 수저와 냄비가 전부지만, 얀의 부인은 이불이며 옷가지들을 챙기며 작은 보따리들을 만들어 냈다. 꽁꽁 칭여 맨 보따리 서너 개가 만들어질 무렵 귀에 낯익은 소리와 낯선 소리가 교차되며 들려왔다.

"펑. 펑. 펑."

"꽈광. 꽈꽈광"

수비군에서 대포를 쏘는지, 공격을 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미 교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포성은 단치히를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대한 제국 발틱 함대에서 발사된 포탄들이 단치히 시내 곳곳에서 떨어지며 시커먼 연기와 빨간 화염을 뿜어냈다. 붉은 혀를 낼름거리며 주변을 태워 버리는 화염 속을 사람들이 용케 피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만 가자. 서둘러"

"이것만 챙기고요"

얀의 부인은 마지막으로 보리 빵 몇 개를 보따리에 쑤셔 넣고 갓난아이를 들춰 멨다. 얀은 사내아이를 가슴에 안고 뒤를 한번 바라보았다. 썰렁한 집안이 어지럽혀지자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오스카 그 친구는 빠져 나갔으려나 ?'

'강을 건널 수 있을 까 ?'

비스와 강을 건널 수 있을지 생각하던 얀은 이내 강을 건너는 것을 포기하고, 반대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강을 건넌다면 갈 곳이라고는 기껏해야 그디니아 아니면 슈체친 뿐이었지만, 그곳에 가더라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럴 바에는 차리리 대한제국이 점령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 괴물에 대한 소문이 사실은 아니겠지'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한 얀은 부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바짝 마른 얼굴에 핏기라곤 없었지만 그에게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부인이었다.

"난 북쪽으로 갈 생각이오. 괜찮겠소 ?"

"네"

"그럼 갑시다. 무조건 앞만 보고 갑시다."

얀은 창문을 열고 주위를 살폈다. 도망치는 중에 수비대나 기병대라도 만나면 낭패를 당할 수 있었다. 한 떼의 기병들과 사람들이 우르르 광장을 향해 달려가더니, 이내 거리는 한산해 졌다. 아직까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지 못 한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14시 해안 포 발견. 거리 1000"

"14시 1000"

발틱 안쪽에 있는 신항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일천 톤급 초계함 6503함 갑판은 어수선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포격 제원이 포술장에게 전달되었고 그에 맞춰 포탄이 발사되었다. 6503함 갑판에 장착된 75미리 함포 3문이 순차적으로 사격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해안가에 배치된 해안포를 차근차근 파괴시키며 비스와 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는 6503함 전면에는 100톤급 소형 함이 중 기관포를 양안으로 집중시키며 이동하고 있었다.

"기함 주포를 좀 더 뒤로 밀어 달라고 요청해 주십시오"

포술장이 함교와 연결된 수화기를 들고 화력 지원 요청을 하느라 잠시 갑판으로 나온 사이 포탄 하나가 날아와 강물 위로 떨어졌다.

"펑. 철썩."

"이런 개새끼들. 발포."

14시 방향에서 날아온 포탄이 6503함 근처에 떨어지며 물보라를 일으켜 갑판으로 강물을 밀어 올렸다. 바닷물이 섞인 짭짤한 물에 흠뻑 젖어 버린 포술장이 소리를 버럭 질러 댔다. 아주 약간만 정확했어도 포술장은 부상을 면치 못 할 뻔했다. 가슴속 두려움을 고함소리와 함께 질러 버리자 다소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다시금 포술장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피우웅"

발틱 함대 기함인 2418함에서 발사된 127미리 함포탄이 하늘을 가르며 단치히 시내로 날아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죽음의 탄을 가득 품고 날아가는 포탄은 언제 보아도 포술장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저런 포탄을 날려 보면 소원이 없겠다.'

잠깐 동안 상념에 잠겼던 포술장은 앞서 나간 소형 함에게서 새로운 재원이 들어오자 즉시 함포각을 산출하며 발포 명령을 내렸다. 거의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함포사격에 저항하는 해안포는 차례차례 침묵했고, 6503함은 느리지만 꾸준히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내 단치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자, 포술장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3킬로미터를 거슬러 오는 사이 위험한 지근탄이 여럿 있었지만, 단 한 발도 맞지 않고 단치히를 공격할 수 있는 거리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못 내 자랑스러웠다.

"함장이다. 접안 시설을 제외한 모든 구조물을 파괴하라"

"네. 함장님"

함교에서 새로운 명령을 하달 받은 포술장이 각 포반장과 연결된 수화기를 집어 들고 소리쳤다. 중 기관포와 6503함의 부포가 쉴새 없이 포격을 해대고 있어서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포반장은 들어라. 지금부터 할당 구역을 정해 준다. 포반장 재량 것 사거리 내 모든 목표물을 파괴하도록. 이상"

포탄에 직격당한 목조 건물들이 화염에 휩싸이며 불타 올랐지만, 석조 건물이 대다수인 단치히는 발틱 함대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크게 망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안포를 잠재우고 더 이상 거리낄 것 없는 6503함의 함포 공격에 사거리 내에 있는 모든 건물들이 차례차례 무너지고 있었다.


"해병대를 보내 부두를 장악하도록"

안사엽 대령은 후미에 쳐져 있던 해병대 투입을 명령했다. 선발대 병력 300명이 탑승한 고무보트 50대가 일제히 소리를 내며 6503함을 앞질러 나아갔다. 해병대 병력이 나타나자 소형 함들이 고무보트 전대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엄호 사격을 시작했다.

"두드드드드"

해병 대대를 이끌고 있는 안종순 중령은 고무보트가 부두가로 접근하면서 몸을 더욱 숙였다. 소형 함에서 기관포로 부두 안쪽을 과도하게 휩쓸고 있었지만 모를 일이었다. 지독한 포화를 피해 단 한 방을 노리고 있는 놈이 있을 지도 몰랐다.

"몸을 밀착시켜라. 총구는 전방. 움직이는 것은 무조건 사격하라"

만사불여튼튼 이라는 믿음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안종순 중령이 모자를 눌러썼다. 검은 보트 위로 두 눈만 반짝이던 해병 대원들이 긴장하고 있었다. 보트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부두 밑으로 다가간 대원들이 부두를 올려다봤다. 굵은 나무와 판자로 만들어진 부두는 수면 위에서 대략 1.5미터 올라가 있었다.

"올라가"

출렁이는 보트 위에서 대원들이 저마다 쇠꼬챙이가 달려 있는 밧줄을 던졌다. 순식간에 부두에 올라간 대원은 범선을 묶어 놓았을 나무 기둥에 그물 사다리를 걸었다. 대략 3미터 간격으로 박아져 있는 기둥을 연결하고 그물 사다리를 걸치자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이 부두 위로 올라왔다.

"가자. 돌격 앞으로. 신속하게 안전지대를 확보한다."

대한 제국 교범에 의거 핵심 안전지대 반경 3킬로미터를 확보하기 위해 일차 상륙군 300명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부두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무방비 상태의 부두를 장악한 일차 상륙군은 2차 상륙군이 올 때를 기다리며 서둘러 지휘소를 만들어 갔다. 주변에 널려 있는 쓰레기들로 대충 사방에 담을 둘러친 지휘소에 통신 장비가 설치되고 조악하게 만들어진 탁자 위에 단치히 주변 지도가 놓여지자, 훌륭한 야전 지휘소가 만들어졌다.

"지휘소에서 통제하겠다. 3중대는 현지점에서 300미터 더 진격하여 교두보를 확보하고 보고하라."

안종순 중령은 1차로 상륙한 3중대 병력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이 본부 중대 병력을 동원해 부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대 병력이 속속 부두로 들어와 단치히 시내로 스며들어갔다.

"대대장님. 공병대가 출발했습니다."

"그래. 예정보다 빠르군"

안종순 중령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5시를 향해 초침과 분침이 작은 원을 그리며 돌아갔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공병대가 도착해서 부두 시설을 점검하고 보완 수리를 마치면 6503함이 접안을 시도하고, 소형 함들의 엄호를 받으며 유류와 탄약 보급함이 거슬러 오게 되어 있었다.

"2중대 수색대 적과 조우. 다수의 기병과 보병 혼합 부대가 부두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함포 지원 요청. 좌표 120 / 890"

안종순 중령은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좌표를 지도에서 찾아내고 가장 가까운 부대의 위치를 찾았다. 마침 2중대 수색대와 근거리에서 이동 중인 소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함포가 날아가기 대략 이분 정도가 필요했다.

"3중대 3소대에게 수색대 후퇴를 엄호하게 하고, 각 부대의 전진을 멈추게 해. 수색대가 조우한 적을 포위 섬멸하도록. 그리고 저기, 저 건물 옥상에 기관총 거치 하고. 야간 전투에 대비하도록. 강 반대편으로도 병력을 배치하고."

안종순 중령은 수색대가 조우했다는 적에 대해서는 별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는 오늘밤을 무사히 보내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수색대가 후퇴하면서 사격을 하는지 간헐적으로 총성이 들려왔다.

"오늘밤만 넘기면 한 시름 놓는 건가 ?"

그가 받은 명령은 간단했지만 중요했다. 단치히 항구를 접수하고 내려오고 있는 기계화 사단을 위한 유류 보급 기지를 건설, 방어하기만 하면 되었다. 리가를 출발한 기계화 사단은 늦어도 이틀 안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정군에서 가장 많은 기름을 소모하고 있는 기계화 사단을 위해 4군에 배속된 해병 여단 전체가 항구 점령 전에 투입되어 있었다.

"피우웅"

기함과 6503함에서 발사된 포탄들이 귀성을 지르며 하늘을 갈랐다. 포탄들이 연이어 날아가 건물 넘어 사라졌다.

"헉헉헉"

오스카는 가족들을 피신시키는 와중에 경비대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창을 들고 광장을 가로 질러갔다. 기병대는 이미 앞서 나아갔고, 그 뒤를 오스카 같은 반 강제 지원병들이 허겁지겁 따라갔지만 말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뒤에서 감시하는 수비대만 아니면 금방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잘못하면 수비대에게 죽임을 당할 것 같았다. 허기진 배 때문인지 유난히 발걸음이 무거운 오스카는 대열 최후미에서 헐떡거리며 간신히 본대를 따라갔다.

"펑펑"

"꽈광"

"피하라, 포탄이 떨어진다."

광장에서 부두로 뻗어 있는 길 위로 눈 먼 포탄들이 날아와 터졌다. 주변 건물이 포탄에 맞아 생긴 돌 파편들이 지원병들을 휩쓸어 갔다. 기병대 꽁무니를 잡기 위해 무작정 달려가던 지원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했다. 삽시간에 부상병들의 절규와 시체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계속 움직여라. 겁먹지 마라"

알프레도가 간신히 말을 진정하고 지원병들을 향해 소리쳤지만, 도시 빈민층이 태반인 지원병들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얼굴에는 죽음의 공포가 짙게 드리워져 있어서 모두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탕탕탕 타타타탕"

몇 분이 흘러도 꼼짝 않던 지원병들은 새롭게 울려 대는 총포소리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후퇴하라. 후퇴하라"

앞서 나아갔던 수비 대장이 황급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뒤를 수십 기의 기병이 따라왔다. 알프레도는 자신에게로 오는 수비 대장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 보려 했지만, 수비 대장은 말을 멈추지도 않고 그의 곁을 지나쳤다.

"알프레도, 당장 병력을 수습하여 후퇴하라"

"탕타 타. 탕"

골목을 돌아 나오던 대한제국군이 이쪽을 발견하고 사격을 해댔다.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대한제국군은 상호 엄호를 받으며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었다.

"후퇴. 모두들 영주 성으로 후퇴. 도망가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 후퇴하라"

적이 침공했다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 후 줄곧 달리기만 했던 지원병들이 이번에는 살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장 뒤쳐져 있던 오스카는 숨을 고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동료들은 부상자들을 남긴 체 저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어떻게 한다. 지금 나아갔다 간 영락없이 당할 텐데'

낙오된 오스카는 살 방도를 찾아야 했다. 따뜻한 수프 한 접시 마음대로 먹이지 못 할 지언정, 그에게는 그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가족들이 있었다. 한 참을 꼼짝 않고 숨어 있던 오스카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가까워지자 등골이 오싹해지며 마음속으로 신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통했는지 생소한 말소리가 이내 멀어져 갔다. 대한제국군이 뒤로 물러난 후에도 오스카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모두들 갔겠지. 그럴 거야. 아니야 어디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릴지도 몰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고민하던 오스카는 팔 다리에서 전해 오는 통증에 신경이 쓰였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총알이 스치고 지나간 팔, 다리의 통증을 느끼지 못 하고 있었는데 긴장이 풀리면서 점점 고통이 심해졌다. 다행히 피는 흘리고 있었지만, 심각한 부상은 아닌 듯 했다. 실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 번 거리던 오스카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뭔가 쫓아오는 것 같은 생각에 뒤를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불길처럼 일었지만 무작정 앞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달리길 한참. 눈앞에 자신의 집이 보이자 얼굴에 생기가 감돌았다.


단기3959년(1626) 여름 발틱해 단치히 항 북쪽 100킬미터 지점

4군 1군단 예하 기계화 사단인 4111사단 모든 병력이 장갑차와 트럭을 이용해 이동하고 있었다. 기동로가 확보되면 하루에 200킬로미터도 전진할 수 있는 기동성을 가지고 있는 4111 기계화 사단은 장갑차 여단 2개, 포병연대, 보병연대를 주축으로 통신대대, 공병대대, 수색대대, 수송대대를 예하부대로 두고 있었다. 천마-1로 무장한 1 여단과 천마-3으로 무장한 2여단, 천포를 주축으로 한 포병연대 그리고 각종 장비를 가지고 있는 사단답게 하루에 소모하는 기름양이 엄청났다.

"새로운 둥지를 마련했다는 전문입니다. 주변 정리가 미흡해서 진입시 유의하라는 첨언이 있습니다."

"그런 놈들 신경 쓸 것 있겠나 ? 두더지들이야 밟고 지나가면 되는 거고, 외곽을 맡고 있는 부대에게 불필요한 인명피해를 줄이라고 하게. 싸움을 걸어오는 놈들이야 인정 사정 둘 필요 없지만, 왠만하면 접근만 막으라고 말야."

"네. 알겠습니다."

천포를 개량해 만든 지휘 차량 천마-2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4111이라는 번호가 쓰여 있었다. 바로 옆에는 통신대대가 운용하는 통신차량이 지휘 차량과 나란히 기동하고 있었고, 그 후미에 보병연대가 탑승한 수송차가 줄지어 달려왔다. 부대 전체 이동속도는 시속 20킬로미터를 넘지 않았지만 꾸준히 이동하고 있었기에 단치히까지는 앞으로 5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기 움직이는 것들은 뭐야 ?"

망원경으로 사방을 둘러보던 사단장이 들판을 지나가는 사람의 형체를 쫓고 있었다. 움직이는 모습이 흡사 피난민처럼 힘겨워 보였다. 등에는 짐인지 아이인지 모를 것을 짊어지고 있었다.

"피난민으로 추측됩니다. 붙잡아서 조사 할까요 ?"

"그래. 수색대대에게 명령을 내리게. 단순한 피난민이면, 먹을 것이나 던져주고 오라고 하고"

사단장의 명령을 접수한 장갑차 하나가 속력을 높여 대열을 이탈하며 목표물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목표물과 장갑차와의 거리는 갈수록 좁아져 금세 따라 잡혔다. 장갑차 후문이 열리고 분대병력이 우르르 내려와 겁을 잔뜩 먹고 있는 목표물을 둘러쌓다. 장갑차장 박춘수 하사는 기관총을 돌려 그들을 겨누고 수색대대 본부와 통신을 시도했다.

"단순한 피난민으로 보여집니다. 어린아이 둘에 그의 부모로 보이는 남녀 도합 4명입니다."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 ?"

"단치히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이랍니다."

"단치히 ? 언제 ?"

"이틀 전이랍니다."

"이틀 ? 이틀에 100킬로를 달려왔단 말야 ?"

"그래서 그런지 행색이 말이 아닙니다. 어떻게 할지 알려 주십시오 ?"

군인도 아닌 일반인이 하루에 50킬로를 이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어쩐지 미덥지 않았다. 대대장은 그들을 좀 더 심문할 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던 대대장은 박춘수 하사를 호출했다.

"물과 먹을 것을 건네주고 귀환하게."

박춘수 하사는 대대장의 명령에 자신의 과장된 얼굴 표정을 폈다. 자칫 이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면 그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춘수 하사가 통역병에게 그대로 이야기를 전달했다. 통역병의 말을 전해들은 피난민 가족은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지만 그들의 눈빛에서는 의심이 빛이 가시지는 않았다.

"야. 초병장. 물통하고 먹을 것 좀 걷어서 줘라. 그리고 내 모포하고 신발 가져와. 아니 신발은 그냥 둬"

행색은 초라해도 허우대는 커서 자신의 신발이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초병장이 비상식량으로 지급된 말린 가래떡과 부식인 건빵 그리고 눈깔사탕 몇 봉지를 모포에 돌돌 말아 박하사에게 건냈다. 초병장에게 건네 받은 모포꾸러미를 피난민에게 던진 박하사가 이동명령을 내렸다.

"그만 가자. 이러다 낙오병 되겠다."


얀과 그의 부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녹색 괴물 덩어리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 했다.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던 사내아이가 뒤늦은 울음을 터트렸다. 숨막일 듯 한 긴장감이 한순간 무너지며 얀은 안고 있던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아내에게 아이를 넘겨주고 모포를 끌어당겼다.

"저들은 이런 걸 먹는 건가 ?"

투명한 비닐 주머니 속에 얇게 썰어진 가래떡이 가득 들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을 만지던 얀은 미끌 미끌한 감촉이 내키진 않았지만, 입에 대고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포장 비닐이 쭈우욱 밀려나더니 찢어지면서 안에 있던 하얀 가래떡이 우수수 쏟아졌다. 입 속에 든 것을 우적 우적 씹던 얀은 이내 가래떡과는 느낌이 사뭇 다른 비닐을 뱉어내고 가래떡만을 씹어댔다. 딱딱하게 굳은 가래떡이 서너 조각으로 부서지며 침과 섞이자 말랑말랑 해졌다. 한참을 씹던 얀은 가래떡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다시 땅에 떨어진 떡을 입에 집어 넣었다.

"그런대로 먹을 만 한데. 이거 먹어 보라구 !"

봉지를 그대로 밀어 주자 얀의 아내는 두어 개를 집어 입에 넣었다. 단치히를 탈출한 이후 줄곧 보리빵 한 개밖에 먹지 못했던 얀의 가족은 모처럼 곡기가 배속에 들어가자 평안함이 밀려왔다. 이미 대한제국 군인이 지나갔다면 앞으로는 별 어려움이 없을 듯 보였다.

"이제 천천히 가도 되겠소. 그만 갑시다."

대한제국군이 준 떡봉지는 3개가 더 있었다. 그거면 하루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고, 아껴 먹으면 이틀이나 삼일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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