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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에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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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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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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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2부

DUMMY

제 12 장 반격


단기3959년 겨울 서울

대한제국의 국가기관 중 정보를 취급하는 부서의 양대 축에는 천군부 정보위원회 산하 기구인 정보 사령부와 천인단 산하 기관인 중앙 정보부를 들 수 있다. 두 조직의 정점에는 단군이 자리 잡고 있다. 전역에 퍼져있는 군부대에서 올라오는 정보들은 각 사단, 군단 정보대를 거쳐 각 군 사령부와 서울에 있는 정보 사령부에 모여들었다.

천군부 맞은 편에 있는 정보 사령부 지하 1층 이천평의 공간에 가득 찬 온갖 통신 장비들은 세계 각지에서 오는 정보들을 쉴새 없이 토해냈다. 이곳에 모인 정보들을 분석, 분류작업을 하는데 정보 분석가 일천여명이 3교대로 투입되고 있고, 그렇게 가공된 정보들은 관련 부대나 부처에 다시 보내져 작전 수립과 진행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들어와"

문 두드리는 소리에 조국환 사령관은 읽던 신문을 접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대한제국군의 모든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치고는, 그의 외모는 왜소하다 못 해 초라하기까지 했다. 깡마른 체구에 겨우 17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키 그리고 털털한 옷 차림. 날카로운 눈빛마저 없었다면 그는 어느 평범한 촌부의 모습이라고 해도 어울렸다.

"회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간밤에 들어온 주요 정보들을 간추린 두툼한 서류철을 들고 비서가 들어왔다. 오일에 한번씩 있는 각 지대장과 지부장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참석하는 날이기도 했다. 조국환은 시계를 힐끗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국환이 손을 내밀자, 비서가 들고 있던 서류철을 건넸다.

"가지. 중앙 정보부 장관님은 ?"

"네. 10분 전에 회의실로 들어갔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대충 서류철을 훑어보며 회의실로 내려가던 조국환이 문 앞에 섰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거치기 위해서는 4중의 보안 장치를 통과해야 했다. 통로를 지키는 경비병이 사령관이 다가오자 부동자세로 경례를 했다.

"보안. 사령관님 신분증을 보여 주십시오"

조국환이 목에 걸고 있던 신분증을 건네자, 보안 요원이 신분증 철을 뒤져 원본과 동일한지 대조했다. 그리고는 손가락 지문을 찍어 등록된 지문과 일치하는 지를 다시 확인했다. 지하 1층까지 내려온 조국환은 다시 한번 확인 절차를 거치고 지하 1층 내부로 들어갔다. 방음장치를 했음에도 사방에서 타자 찍히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회의실이 있는 지하 2층은 1층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다. 2층과 연결된 복도에서 보안요원이 숫자와 한글 자모음이 찍혀있는 판을 내밀었다. 조국환이 자신만의 고유번호를 입력하자 안에서 문이 열렸다. 300명이 근무를 하고 있었음에도 지하 2층은 1층과는 다르게 조용했다.

"자. 회의를 시작하지"

"터키 해군이 크레타 기지 근처를 주기적으로 순찰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예전에는 없었던 이례적인 일입니다. 최근 들어 흑해 기지와 수에즈 운하 주변에 현지인들이 계속 목격되고 있습니다. 터키쪽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정보 책임자의 사견이 있습니다. 잠수함 전대의 보고서에 의하면 지중해에서 더 이상 유럽함대를 찾을 수 없다는 보고입니다. 터키 함대도 행동을 자제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 입니다. 그라나다에서도 군사 충돌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위그노쪽은 어떻지 ?"

지중해와 그라나다에서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져있다면 유럽 연합군이 위그노를 치기 위해 힘을 정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사령관의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대답이 들어왔다.

"프랑스 혼성 부대가 위그노 국경으로 이동 배치되었습니다. 포병과 기병대가 포함된 막강한 세력입니다. 숫자상으로만 본다면 최소 삼만 명은 넘어 보입니다. 현재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위그노에서 구원요청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 정도 병력이면 위그노가 방어하는데 무리가 따르겠군."

사령관은 대한제국에서 위그노에 제공한 무기와 위그노 방위군 상황표를 집어 들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뭐가 ?"

"충분히 위그노를 뭉갤 수 있는 병력을 집결시켜 놓고도 전면적인 공세를 자제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주로 소수의 기병대를 이용한 치고 빠지기 식의 작전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나 위그노 양측 다 경미한 피해만을 입고 있을 뿐입니다."

"겨울이라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 아님 대한제국을 두려워서 인지도 모릅니다. 저 번에 호되게 당한 경험도 있으니 말입니다."

주로 북부 유럽의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지대장이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좀 더 알아볼 필요는 있겠어. 그리고 터키쪽 움직임이 수상하다면 큰일이군. 우리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는 놈들인데"

조국환은 터키 제국 내에 있는 대한제국의 군사 기지들을 떠 올렸다. 수에즈 운하의 경비 강화를 지시할 것을 천군부 장관과 단군에게 건의할 것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조국환이 정보부장관에게 눈길을 주었다. 정보사령부 보다 더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을 텐데도 정보부 장관의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정보부 장관과 한차례 눈빛을 교환한 조국환이 새로운 안건을 들고 나섰다. 다른 안건을 처리한 후 다시 생각하겠다는 마음이 통했는지, 정보부 장관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건 그렇고 다른 사항은 ?"

"초석이 대량으로 이태리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터키 상인을 통해 움직이는 양이 벌써 이만 톤이 넘었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유럽 내부에서도 초석 물동량이 현저히 증가함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모두들 신성로마제국으로 이동한 이후에는 종적이 묘연합니다."

"이만 톤이나 ? 어디서 생산된 거지 ? 내가 알기론 유럽 내에 그만한 산지가 없는데 ?"

조국환은 대량의 초석이 움직인다는 말에 놀라워 했다. 초석은 황산이나 질산 같은 발화성 물질을 정제하는데 사용되어지는 정보사에서 감시하는 몇 안 되는 광물 중 하나였다. 초석 자체만으로는 위험하지 않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만들어지는 질산은 화약 제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프스 산맥에서 채취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정확한 지점은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는 인도에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파나마쪽에 한번 알아봐. 그 정도 양이라면 남쥬신 대륙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남쥬신 대륙에는 대규모 노천 초석광산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파나마에 주둔하고 있는 6군 사령부는 아직 태동단계에 있어서 규모도 작았고, 모든 것을 5군 사령부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그런 만큼 활동도 미비해서 파나마 남쪽으로 세력을 확대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유럽과 터키를 제외하고 다른 지역은 비교적 평온했다. 5군이 맡고 있는 쥬신 대륙은 작은 소란들이 일긴 했지만 군사행동까지 벌일 만큼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대한제국민과 이로쿼이 연맹 부족들은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동쪽으로 영역을 확대해갔다. 그런 와중에 평원족들과 부족간 싸움이 벌어지긴 했지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연맹을 이끌고 있는 은하이는 교육제도를 정착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기에 주변 부족과의 마찰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유럽과 터키에 정보력을 집중하고,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정보 중에서 유럽과 터키와 관련된 정보는 티끌만한 것이라도 철저히 조사하는 집중력을 발휘해야 될 때야. 다들 알겠지만, 앞으로 몇 달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크레타 기지에 대한 우려는 단군에 보고할 테니 좀더 자료를 보강하도록. 그리고 그럴 리가 없겠지만, 천군부내에 비선 조직이 있다는 소리가 천인단에서 흘러나오고 있어. 정화 사령부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우리 정보사도 예외가 아니란 것을 명심하게. 이상 오늘 회의를 마치겠네."

사령관이 비선 조직을 언급하자, 모두들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비선조직이 존재할 리 없었다. 사령관과 정보부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남아있는 참석자들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아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모르는 조직이 있을 리 없잖아 ? 괜히 찔러보는 것이겠지. 뜬소문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그만 일어나자고."

야간조를 맡았기에 밤을 꼬박 세운 2 지대장이 의자를 밀어 일어났다.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말을 했지만, 그 역시 걱정이 되긴 했다. 만에 하나 어떤 미친놈이 비선조직에 가담했고, 그놈이 자기 부하라면 그 불똥이 자기에게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단기3959년 겨울 영국

기병대의 호의를 받으며 리버풀 항구에 도착한 리즈 백작은 하역 되고 있는 초석들을 바라보았다. 선왕 제임스의 왕명에 의해 연금술사들을 모아 만든 마을이 리버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대한제국에서 밀수입한 총을 복제하기 위해 만든 무기창 이었지만, 지금은 영국 최대의 화학단지로 발전해 있었다.

"초석 재고량이 얼마나 되나 ?"

"오늘 아침까지 오십만 파운드였습니다."

리즈 백작은 재고가 230톤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당분간은 화약제조에만 신경을 써도 될 듯 했다. 겉보기에는 어느 항구와 다를 바 없었지만, 리버풀은 군사항에 준하는 경비를 받고 있었다. 찰스 1세가 특별히 선발한 군인들이 하역 인부로 일하고 있었고, 리버플에 사는 주민들은 외지인이 나타나면 의심의 눈초리로 외지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런던에서 훈련이 기대대는군. 수에즈와 발틱에 보낸 기사단들도. 그만 가지."

"네."

리즈 백작이 느슨하게 풀어진 외투 끈을 단단히 묶고 말머리를 돌려 항구에서 멀어져 갔다. 사방에서 그를 에워싸며 동행하는 경기병대원의 손에는 대한제국 소총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총이 들려 있었다.


영국 런던 이스턴 엔드

겨울이 찾아 들고 기온이 내려갔기에 그 세력이 반감되기는 했지만, 페스트는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이스턴 엔드 지역 주민들은 반수 이상이 사망해 버렸지만, 유독 화이트 체프 거리에서는 사망자가 많지 않았다. 최초 발병지면서 가장 먼저 페스트의 위협을 벗어난 지역이기도 한 화이트 체프 거리에서는 페스트보다 더 무서운 상대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왜 들어오는 것까지 막는 거야 ? 이러고도 너희들이 하나님의 종이란 말이냐 ?"

휴즈는 확성기를 입에 대고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런던 시장과 이스턴 엔드의 유일한 대화 창구에 나온 휴즈는 안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고 있었다. 누구라도 런던 시장이 설정한 안전선을 넘어서면 바로 총알과 화살이 날아왔다. 발병 초기에는 이스턴 엔드 지역에서 나가는 것만을 막던 경비병들이 며칠째 들어가는 것 까지 막고 있었다. 가족이 봉쇄지역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음식을 안으로 보내려 했지만 그러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빵을 보내라.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추위에 죽어가고 있다."

휴즈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곳에 나와 절규하고 있었지만, 반대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런던 시장은 이곳을 완전히 버릴 모양이었다.

"그만 가시지요. 신부님"

"안돼. 오늘 안으로 무슨 답을 들어야 돼. 자네도 알지 않나 ? 우리가 가진 걸로는 며칠 못 버티지 못해. 모두들 굶어 죽을 판이라고!"

"여기서 이렇게 해 보았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셔서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 ? 무슨 방법 ? 봉쇄를 뚫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

휴즈도 자신이 무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여길 탈출해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무사히 탈출한다는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스턴 엔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죽을 거라면 싸우고 죽을 생각인 듯싶었다.

"기병대다. 군대가 들어온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어찌된 일인지 이쪽으로는 얼굴도 돌리지 않으려던 사람들이 그것도 푸른색 제복을 입은 기병대가 또각 또각 소리를 내며 천천히 이스턴 엔드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휴즈는 어리둥절했다.

"뒤로 물러나시오. 일단은 지켜봅시다."

휴즈는 불길한 예감에 몰려있는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게 했다. 인도적인 일이라면 굳이 군대가 들어올 리 없었다. 그것도 기병대가.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머스켓보다 작지만 피스톨보다는 큰 총기를 들고 있었다.

"억. 도망치시오. 모두들 교회 부근으로"

"탕. 탕. 탕"

휴즈는 기병대원들이 총기를 들어 올려 자신들을 조준해가자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런던 시장은 이곳 주민들이 굶어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혹시나 하고 기대심을 가지고 맨 앞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피보라를 뿌리며 죽어갔다. 혼란 상태에 빠진 군중들이 재차 사격이 일어나자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군중들의 대열이 무너지고 사방으로 흩어지자, 기병대가 속도를 높였다. 휴즈는 골목길로 들어가 서둘러 천막교회가 달려갔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목덜미를 자꾸만 붙잡았지만 기병대보다 먼저 교회에 도착해야만 했다. 그곳에는 어린 찰리가 있었고, 없애야 할 것들이 있었다.

"찰리 ? 찰리 ?"

교회에 도착한 휴즈는 찰리를 부르며 천막 주변을 맴돌았지만 어디에도 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기병대가 거리에 불을 질렀는지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 올랐다.

"하나님. 저들에게 천벌을 내리소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절규하던 휴즈는 교회로 달려오는 기병대가 보이자 서둘러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깊숙한 구석에 쳐 박혀 있던 상자 열쇠고리를 도끼로 힘껏 내리쳤다. 굳게 닫혀있던 자물쇠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상자 안에 있던 심지가 달려있는 대나무 토막 서너 개와 석유 병을 꺼내든 휴즈가 사방에 석유를 뿌리고는 석유가 잔뜩 묻은 헝겊을 돌돌 말아 불을 붙였다. 대나무 토막은 여기저기에 쑤셔 박았다. 천막 밖으로 나가려던 휴즈는 천막 왼쪽에 놓여 있던 철 상자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숫자가 써진 단추가 열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휴즈가 숫자 9를 10번이상 눌러댈 무렵 밖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횃불을 들고 천막을 나서자 기병대 10여기가 천막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휴즈 신부님을 모셔오라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네 이놈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도 너희들이 지옥에 가지 않길 바라느냐 ?"

왼손에 성경을 오른손에 횃불을 들고 있는 휴즈의 모습은 무서운 전사 같았다. 그의 눈에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기병대 대장인 듯 한 사람은 휴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휴즈의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좋은 말 할 때 갑시다. 괜히 험한 꼴 당하지 말고"

"못 한다 이 놈아. 난 이곳에서 떠나지 않겠다. 맘대로 해라."

휴즈가 횃불을 들고 다시 천막으로 들어가려 기병대에게 등을 보였다. 무표정한 기병대 대장이 눈짓을 하자, 대원하나가 휴즈의 다리를 향해 활을 날렸다. 워낙 가까운 거리였기에 화살은 정확히 날아가 휴즈의 왼쪽 허벅지에 들어가 박혔다. 화살을 맞은 휴즈가 그 자리에서 앞으로 쓰러졌다. 오른손에 들려있던 횃불이 땅에 떨어졌다.

"네놈들이 감히"

허벅지에서 오는 고통과 수치심에 몸이 부들 부들 떨려왔다. 두 명의 병사가 말에서 뛰어내려 쓰러져 있는 휴즈에게 다가왔다. 휴즈는 주변에 떨어진 횃불을 들어 다가오는 기병대를 흔들더니 천막을 향해 힘껏 던졌다. 휴즈에게 다가가던 병사들이 주춤하더니 이내 미소를 머금으며 휴즈에게 다가갔다. 횃불로 저항하려던 휴즈가 횃불을 던져버리자 거리낄 것이 없었다. 휴즈는 힘겹게 일어나 절뚝거리며 천막 쪽으로 걸어갔다. 천막 안으로 던져진 횃불이 주변에 뿌려진 석유에 옮겨 붙으면서 불이 천막 전체로 번져갔다. 검은 연기가 조금씩 밖으로 새어 나왔다.

"나머지는 안으로 들어가서 불을 꺼라"

대장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이 말에서 내려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펑펑펑"

그 순간 안에서 갑자기 굉음을 동반한 폭발이 일어났다. 천막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공기들이 데워지면서 천막이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천막을 하늘 높이 솟구치게 했다. 사방으로 불똥이 튀어나가며 주변을 삽시간에 휩쓸어갔다.


단기3959년 늦겨울 덴마크 코펜하겐 부근 해협

대한제국의 폴란드 침공이후 발틱해는 대한제국 발틱함대의 안방이 된지 오래다. 덴마크 해군은 유명무실해서 대한제국 함대가 자신들의 해역을 휘젓고 다녀도 딱히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해역에 유래가 없는 범선 30여척이 나타났다.

"정말 이것이 통하겠습니까 ?"

"그럼. 당연하지."

넬슨은 파커의 의심 섞인 물음에 확신이 가득 찬 어조로 대답했다. 넬슨은 자신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만 하면 대한제국 발틱함대를 한동안 묶어 놓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자네도 잘 알지 ? 이곳 수심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입니다."

"그럼 생각해 보게. 이런 곳에서 우리가 쳐놓은 그물에 물고기가 걸리지 않고 배기겠나 ? 그리고 우린 단 한마리만 잡으면 돼. 그러면 만사 형통이지."

"그래도 걸릴까요 ?"

"물론. 그것 보다는 대한제국 놈들에게 안 걸리도록 조심하기나 하게. 지금부터는 스웨덴 국기를 내건다."

넬슨 제독의 말에 30척의 범선 마스트에 스웨덴 국기가 올려졌다. 질랜드를 돌아 나온 범선들이 롤랜드와 랭글랜드 사이를 가득 메우고 바다에 그물을 던져 넣었다. 그물이 무거운지 선원들이 힘겹게 들어올린 그물을 난간에 걸쳤다가 장대로 밀었다. 그물 중간 중간에는 나무통이 매달려 있었다. 특이하게도 그물은 쇠로 만들어진 듯 보였다.

"다음 지점으로 이동"

정체불명의 범선들은 폭 9킬로미터의 좁은 해역 구석구석에 그물을 던져넣으며 발틱 해를 빠져나갔다. 배에 가득 싣고 온 그물들을 모두 던져버린 넬슨은 범선을 한곳으로 집결시켰다.

"선원들을 옮겨. 배들을 침몰 시킨다."

그물대신 무거운 돌맹이를 가득 싣고 있는 범선에서 선원들이 종선을 타고 다른 배로 옮겨갔다. 유난히도 기동이 많이 받혀있는 범선들이 그대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수십 차례의 실험을 통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며 바닷속으로 가라앉히는 방법을 익혀왔지만, 침몰 대상선 10척 중 5척이 두 동강나며 침몰했다.

"저 정도면 충분하겠지. 함부르그로 돌아간다."

앞으로 넬슨 제독이 이끄는 함대는 이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미끼 역할을 하며 이곳 해역을 돌아다녀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부르그에서 보급을 받아야 했다. 20척이 사라진 해역을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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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천군2부 +2 15.05.29 4,167 100 18쪽
113 천군2부 +5 15.05.28 4,633 131 17쪽
112 천군2부 +4 15.05.27 4,872 124 17쪽
111 천군2부 +3 15.05.22 4,553 93 18쪽
110 천군2부 +2 15.05.21 4,800 113 14쪽
109 천군2부 +5 15.05.20 4,704 112 12쪽
108 천군2부 +3 15.05.18 4,810 118 19쪽
107 천군2부 +3 15.05.10 5,280 117 19쪽
106 천군2부 +3 15.05.09 4,877 144 18쪽
105 천군2부 +3 15.05.08 5,101 104 19쪽
104 천군2부 +4 15.05.07 5,844 12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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