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에구에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최근연재일 :
2015.07.22 20:59
연재수 :
153 회
조회수 :
1,182,806
추천수 :
28,361
글자수 :
1,225,279

작성
15.07.07 17:10
조회
3,456
추천
93
글자
25쪽

천군2부

DUMMY

대한제국 서울 단군 건물

경복궁 왼편 창경궁 뒤쪽에 대한제국 최고의 의결 기관인 단군이 자리를 잡았다. 단군은 천군부와 천인단 그리고 황실을 감찰할 수 있는 부서와 국책 사업을 조정하는 부서만을 갖고 있는 작은 조직이다. 천인단과 천군부에서 파견된 인원을 제외하면 단군에 배속된 직원은 50명이 넘지 않은 소규모 조직이지만 그 잠재력은 아무도 무시하지 못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평안하셨습니까 ?"

"네. 안녕하셨습니까 ?"

백흥한과 윤치호는 정문에서 만나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둘 다 4분기마다 한번씩 열리는 정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점심을 마치고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 정례회의는 단군인 신기철과 천군부 최고 의원회 의장 윤치호 그리고 천인단장 백흥한, 이렇게 3인만 참석하는 회의로 대한제국의 중.장기 계획을 조절하기 위해 열렸다. 단군 건물 3층에 있는 회의실에서 열린 2차 회의는 신기철 천군부 장관이 단군직에 겸직함에 따라 천군부의 명령권을 물려받은 최고위원회 의장이 정례 보고를 하기위해 일어서면서 시작되었다. 각각의 자리에는 자신의 비서실과 직통으로 연결된 전화기가 놓여 있었고, 비서실에는 인원이 총동원되어 대기중이었다. 언제 무슨 자료를 요청할 지 몰랐기에 비서들은 초긴장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작전명 신들의 전쟁은 현재까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서양 봉쇄 작전이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조만간 유럽은 대양항해를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바르샤바에서 한차례 격돌이 불가피하지만, 바르샤바 함락은 큰 무리 없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공군의 이동배치도 마무리 단계입니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터키 함대가 궤멸되는 등 예상외로 고전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그로 인해 로리앙에 가해지는 압박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천군부내에서 추진하고 있는 개괄적인 보고를 마치자, 백흥한은 터키를 도와줄 것을 건의하고 나섰다. 터키제국에서 그라나다를 공격한 이래 줄기차게 협조요청을 받고 있는 천인단으로서는 천군부가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이 내심 못 마땅했기 때문이다.

"자칫 너무 많은 피해를 보게 되면 그 화살이 우리에게 올 수 있습니다. 도와달라고 하는데 도와주지 않으면 괜히 미워지는 게 사람 마음 아닙니까 ? 더구나 그라나다 원정군이 전멸이라도 당한다면 이스탄블의 힘이 많이 약화 됩니다. 그렇게 되면 속국들이 터키제국에서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윤치호 역시 백흥한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지만 신기철은 딴 마음이 있는 듯 했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디가 먼저 움직일 것 같습니까 ?"

"가장 먼저 그리스에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미 이란은 영국인의 조언을 받아 군제를 개편한 지 오래 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흑해 주변국들도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제국이 터키를 장악할 준비가 될 때까지 전쟁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신기철은 터키 원조를 주저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이 직접적인 파병을 감행하면 힘의 균형이 깨질 우려와 함께, 이베리아 반도가 터키제국의 손에 넘어가면 자칫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수 있었다. 터키는 지금 대한제국에게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이미 증기 포함 5척을 지원했고, 총포탄을 지금도 지원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대한제국 젊은이의 피를 요구한단 말입니까 ? 남의 전쟁에 피 흘릴 이유를 제시한다면 고려해 보겠지만 현재로서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폴란드 전선에 집중할 때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터키가 당장 무너질 만큼 허약하지는 않습니다. 설령 원정군이 전멸하더라도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 천인단장님 ?"

"그렇긴 합니다. 그리고 그라나다 책임자가 터키 재상의 두 아들임을 감안한다면 그곳에는 타라한 황후의 복안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조약을 근거로 저쪽에서는 저희에게 파병을 계속해서 요청하고 있고, 과거의 전례도 있어서 거절하기가 곤란한 실정입니다. 무엇보다도 터키 황실이 우리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된다면, 터키와 유럽이 가까워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조약이라는 것은 상호 방위 조약이지 않습니까 ? 그리고 이슬람과 기독교가 손을 잡는다는 것은 기름과 물이 섞이는 것 보다 어렵습니다. 괜한 기우이십니다."

백흥한과 윤치호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신기철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제 6개월 남 짓 천인단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백흥한은 더 이상 이견을 주장하지 못 하고 말문을 닫아야 했다. 사실 그 자신도 자신의 예측이 최악의 예측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인단 입장에서 터키를 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번 8호 봉화사업 실패원인은 파악되었습니까 ?"

신기철은 천인단의 현안보고가 끝나고 나서 가장 궁금한 부분을 집고 넘어갔다. 천군부에서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라면 통신위성과 제트 비행기의 실용화라 할 수 있었다. 추진체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부터 추진된 인공위성 연구인 봉화사업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거의 성공 단계에 접어들어 있었다.

"추진체 분출 제어기 이상입니다. 탑재 된 과산화수소 분출 계통에 약간의 문제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위성은 거의 완벽하게 결함 부분을 수정했으니 다음 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래요 ? 참 아쉽습니다. 이번에는."

신기철이 무척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끝을 흐렸다. 통신과 교통망을 얼마나 빨리 확충하느냐에 따라 지구를 단일권으로 묶을 수 있는 시기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점령지가 점점 확대되면서 유선을 통한 통신은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고, 점령과 통치 그리고 문화 침투를 위해서는 방송 만한 것이 없었다.


폴란드 바르샤바

대한제국군의 진군과 함께 북부 폴란드가 대한제국군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이 연일 바르샤바에 전달되었다. 그때마다 지그문트는 북부 폴란드인을 매국노라며 분을 삯이지 못해 길길이 날 뛰었지만, 브레스트 마저 대한제국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어디만큼 왔다더냐 ?"

"100마일까지 접근해 있습니다."

스체르바츠끼 역시 담담하게 지그문트에게 대답했다.

"부아디수아프는 ?"

"우치를 지나 빈으로 향하고 있다는 마지막 전갈이 왔습니다."

"100마일이라면 먼 거리는 아니군. 우리도 이제 그만 나가봐야겠군. 장군들과 연대장들은 다 모였다던가 ?"

"그렇습니다. 폐하."

전체적으로 초기 바로크식과 고딕식이 가미되고 로코코식이 첨가된 독특한 양식의 건출물인 폴란드 왕실의 주궁인 로얄성을 왕실마차가 빠져 나왔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왕실대로는 지그문트의 여름 별장인 라지엔키궁으로 이어졌다. 웅장한 대리석 건물들이 마주보며 나란히 줄지어 있는 왕실대로를 근위병의 호위를 받으며 왕이 탄 마차가 따그닥 거리며 지나갔다. 광장에 도열한 각급 지휘관들이 라지엔키궁으로 들어서는 마차를 맞이하며 눈빛으로 마차를 따라갔다. 광장 왼쪽에는 성대한 만찬이 마련되고 있었다.


"보라 ! 여기 모여 있는 귀관들의 늠름한 모습을. 폴란드의 자존심이며, 자긍심인 그대들에게 하나님과 성모 마리아님의 가호가 깃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명예로운 삶을 살다간 우리를, 우리의 자손들은 자랑스러워 할 것이며, 그대들이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우리의 땅, 우리의 형제 자매, 우리의 자식들을 살찌우는 밑거름이 되리라. 폴란드를 배신한 저 악마의 탈을 쓴 북부 영주들에게 가혹한 신의 심판이 내릴지니, 나를 따르고, 폴란드를 따르라. 거룩하신 하나님과 성모 마리아님에 의지하는 우리들 앞에 오직 승리 뿐이다. 모두들 축배를 들라. 나의 피와 살이요, 그대들 옆에 있는 동료의 피와 살이라. 이는 그대들 부모형제자매의 피와 살이니, 단숨에 마시고 나가 싸우라. 죽음을 두려워 마라. 내가 죽지 않으면 누가 죽겠는나 ? 내가 죽어 폴란드가 산다면, 난 기꺼이 골백번이라도 죽으리니. 오늘 우리가 한 날 한 시에 만나 축배를 들고 만찬을 먹음 수 있음을 감사하라. 그대들 앞에 차려진 성찬은 성모마리아께서 주신 것이니, 그대들 머리 위에 성령이 임하시리라"

지그문트의 연설은 계속되고 있었다. 지그문트의 격정에 찬 말 한마디 한마디가 도열해 있는 장교들의 피를 들끓게 하는 동안에도, 대한제국군은 3개 방향에서 시시각각 바르샤바를 옥죄어 오고 있었다. 10만에 가까운 폴란드 군은 대한제국과의 결전을 위해 바르샤바에 몰려들었고, 여기에는 남부 영주를 비롯한 대부분의 정예 기사단이 참가하고 있었다. 이윽고 지그문트가 죽음으로서 폴란드를 지킨다는 맹세를 하고 술잔을 높이 들어 마시자, 지휘관들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보드카가 가득 담겨진 술잔이 비워지자, 카르미에 대주교는 지그문트를 시작으로 일일이 지휘관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었다.


"출발"

대열 맨 앞에 선 지그문트가 마침내 대병력을 이동시키기 시작하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10만 정예병이 바르샤바를 떠나기 시작했다. 길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손을 흔들며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환호성을 질러댔다. 남편을 전장에 내보낸 한 여인이 가슴을 풀어헤치고 탐스러운 유방을 흔들어 댔다. 옆에 있던 여인은 눈물을 훔치고 치마들 들어 올렸다. 치부가 훤히 보이도록 치마를 올렸지만, 아무도 그녀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나는 당신 것이니, 죽지 말고 승리해서 돌아와요'

대한제국군이 바르샤바에 들어오면 자신의 아내나 딸들은 대한제국 군대의 성 노리개가 될 수 있다는 무언의 암시와 꼭 살아서 돌아오라는 여인의 간절한 소망이 온몸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바르샤바를 떠나 꼬박 하루를 행군한 폴란드 군은 비스와니 강 지류를 방패막으로 삼아 길다란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대한제국 군을 맞이할 채비를 갖춘 폴란드 군은 적이 나타나자 긴장감이 전선에 퍼져갔다. 강폭이 불과 30미터가 조금 넘는 작은 하천이었지만, 대한제국군의 진격을 멈추기에는 충분했다. 아니 하천 남쪽에 진을 친 지그문트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대한제국군 기병대가 나타났습니다."

깃발을 높이 쳐든 대한제국군 정찰대대병력이 하천 언덕에 나타났다. 500여기가 넘는 기병대가 하천을 따라 이동하자 폴란드 기병대가 나란히 내달렸다. 4군 5군단 기병 사단인 4521사단에 배속된 정찰대대 뒤로 자그마치 5만명의 대군이 몰려왔다. 후방 보급로를 책임지고 있는 6군단 병력을 합치면 십만이 넘는 대군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고, 폴란드군은 그들과 이곳에서 싸워야 했다.

"라도슬와프 백작에게는 소식이 있었나 ?"

"아직 없습니다. 연락병을 보냈으니 금일간 소식을 가지고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라도슬와프 백작은 빌뉴스에서 출발한 4121 기병 사단과 빌뉴스 영주가 이끄는 반군을 막기 위해 비아위스톡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지그문트가 바르샤바를 떠나기 전 대한제국군과 교전한다는 소식을 전한 이후로 후속 소식이 오지 않고 있었다.


단기3959년(1626) 폴란드 바르샤바 동북쪽 80킬로미터 지점 대한 제국 원정군 사령부

민스크를 출발한 이래 원정군 지휘부는 모처럼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기병대대가 비스와 강 지류를 건너던 중 폴란드군의 공격을 받고 후퇴했다는 보고와 5군단 진군로에 대규모 적 진지가 발견되었다는 정찰보고가 계속해서 지휘 차량으로 흘러들었다.

"봉황을 전방으로 보내 광범위한 정찰을 시도하고, 특히 하천 상류 상황을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하게. 5군단은 도하작전 및 적 방어선 돌파를 위한 작전에 만전을 기하고. 포병여단을 넓게 산개시키고. 주변 적당한 곳에 지휘소를 마련하도록.

사령관의 명령이 예하 부대에 전파됨과 동시에 지휘 차량이 속도를 줄이며 멈춰 섰다. 불과 한 시간이 넘지 않아 공병 대원들이 주변을 정리하고 원정군 야전 지휘소 설치를 끝냈다. 그리고 주변에 보조 천막과 참호을 만들기 시작했다.

"적의 규모는 얼마나 되나 ?"

만들어지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던 사령관이 지휘 차량을 나왔다.

"대략 8만에서 10만입니다. 그 중 기병은 3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작전 참모가 대답을 하며 사령관을 따라 나왔다. 통신 장비들이 지휘소로 옮겨지고, 차량들이 이동을 시작하자 주변에 흙먼지가 일었다. 멀리 동남쪽 하늘에 떠 있는 봉황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던 사령관이 소매 옷깃에 묻은 풀잎 하나를 떼어냈다. 궤도차량에 짓이겨진 잡초 이파리 하나가 바람에 날려 왔던 것 같았다.

"많군. 단단히 벼르고 있겠는데. 하천 상류쪽은 정찰이 끝났나 ?"

"네. 그렇습니다. 상류 10킬로미터 이내에는 조용합니다. 하천 흐름도 정상입니다."

"그래. 다행이군. 기병 사단과 6군단 보병 사단을 교체 투입하게. 6131사단을 5군단에 배속시키고 5121 사단을 상류로 이동시켜 자체 도하작전을 펼치도록. 5121사단의 우회기동 시간을 산출해서 5군단장에게 알려줘."

대충 지휘소가 마련되자, 사령관이 지휘 천막으로 들어갔다. 하천을 경계로 대치중인 병력도가 그려진 전장 지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대한제국군은 길게 종으로 늘어선 모양을 하고 있는 반면, 폴란드군은 하천을 따라 횡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 그 길이가 족히 5킬로미터는 넘음 직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한제국 군을 의미하는 파란색 깃발이 점점 옆으로 퍼져 나갔지만, 전 부대가 공격 명령을 수행하기 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듯 보였다.

"야간 전투는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었는데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군. 괜히 포병세력을 분산시키는 건 아닌지 몰라 ? 역공을 당하면 막아내기 쉽지 않을 텐데."

대한제국군이 가진 것은 월등한 화력이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주공인 기병 사단에 대해 가해질 압박을 줄이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인 포병여단의 분산과 전 전선에 대한 포격이었다. 그렇게 되면 대한제국의 주공을 파악하기 힘들고, 기병 사단의 공격을 받는 폴란드 군은 쉽사리 병력을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모든 작전이 대한제국군의 선공과 자신감에 기초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상태 사령관은 만에 하나 적이 먼저 선공을 걸어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적은 지금쯤이면 겁에 질려서 죽도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고 있을 것이 뻔합니다. 그런 놈들이 먼저 공격할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기계화 사단이 출동하면 문제 없습니다."

작전참모는 자신이 세운 작전에 추호도 의문점이 없었다. 완벽에 가깝다고 아니 자신있게 말하고 싶었다.

"천포의 사거리가 너무 짧아 ! 이젠 단일 합체탄이 아니라 장약과 탄두가 분리된 포 운용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아. 겨우 5킬로미터의 사거리로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적이 아니야."

"그래도 아직까지는 세계최고의 자주포 아닙니까 ? 누가 감히 천포를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

"그렇긴 하지. 아무튼 고수석 군단장에게 전해. 과감히 후퇴해도 괜찮다고 !"

사령관 또한 천포가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이미 이쪽의 무기체계가 어느 정도 적들에게 알려진 이상 그에 대응할 만한 전술이 마련되었을 지도 몰랐다. 왠지 불안한 사령관은 원정군의 실질적은 주력을 지휘하고 있는 고수석 5군단장에게 후퇴명령까지 위임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얼렁뚱땅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저녁 나절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피곤함과 몽롱함이 주변 공기 속에 섞여 떠 다녔다. 생소한 지역에서 행군에 행군을 거듭한 원정군의 피로도는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김한석 소장이 이끄는 4521 기병 사단 병력이 지휘부 오른쪽 2킬로미터 지점을 지나 본대 후위로 옮겨갔다. 하천을 넘나들며 폴란드 군과 소규모 교전을 펼치던 4521사단은 짧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갔다. 적 후방과 측방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이던 기병대가 예정 도하 지점이 가까워지자 부대 이동 속도를 늦췄다.

"조용히, 조심스럽게 도하한다. 개별 간격 5미터 소대 간격 50미터를 유지하고 사주 경계를 철저히 하라."

상류 하천은 수심이 깊은 곳 몇몇 지점을 제외하고는 말을 타고 건너기에 무리가 없었다. 선두를 맡은 3대대 1중대를 시작으로 사단 병력 팔천여기가 천천히 하천을 넘었다. 폴란드군 중군과는 15킬로미터이상 좌측과는 13킬로미터이상 떨어진 곳에서 도하를 시작한 4521 사단이 도하를 무사히 마치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연대장들은 집합"

아무런 방해 없이 사단 전체가 하천을 넘어오고 나서, 김한석 소장은 연대장들을 한자리로 불러모았다. 야간 작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김한석 소장은 각 단위 부대에게 전달 사항을 미리 알려주고자 했다. 야간에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 지 몰랐기에, 그는 여유가 있을 때 모든 것을 처리하고 싶었다.

"앞으로 3시간 후 재집결하여 이동한다. 그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야간 전투에서는 무엇보다도 위치 보고가 생명이다. 우리는 적진 깊숙이 들어가기에 자칫 아군으로부터 오인 사격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이동 중, 아군 포격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모든 지휘관들은 위치가 변동할 때마다 또는 10분마다 정기적으로 위치를 지휘실에 보고하도록. 특히 돌격 개시 전, 꼭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바란다. 그리고 가능하면 자신의 작전지역을 벗어나지 말아라. 알겠나 ? 항시 돌발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하고 휴식에 들어간다."

"네. 사단장님"

각급 연대장들은 김한석 소장이 건네주는 작전 지시서를 받아 들고 각자의 연대로 움직였다. 연대장들은 예하 대대장들에게 전달 사항을 지시하고 전 병력에게 휴식을 명령했다. 작전시간과는 아직 5시간의 여유가 남아 있었고, 하루종일 돌아다녔기에 말이나 병사에게나 휴식이 필요했다.


폴란드 중군 지휘소

해가 지면서 폴란드 군 진영에서도 횃불이 하나 둘씩 피어올랐다. 낮에 있었던 대한제국 기병대의 도하 시도를 모두 막아낸 지그문트는 밤이 되면서 적의 움직임이 둔화되자, 적잖이 안심을 하고 있었다.

"적 기병대가 후방으로 빠진 듯 합니다. 기병대를 투입해서 야습을 해보심이 어떻겠습니까 ?"

"야습이라 ?"

기병 군단을 이끌고 있는 크지노벡 야첵의 말에 지그문트가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낮에는 하늘에 떠 있는 봉황 때문에 내놓고 움직일 수 없었지만, 밤에는 적의 이목을 속이기가 쉬웠다. 지그문트 역시 야습을 생각했지만 다른 지휘관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이동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늘이 첫날밤이기에 적의 대대적인 공격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적은 먼 거리를 달려왔습니다. 오늘 밤은 아무래도 휴식을 취하지 않겠습니까 ? 여러모로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어둠이라는 든든한 후원자도 있고 말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최적입니다. "

"저도 크지노벡 아첵님의 의견에 찬성입니다. 적이 여력이 있었다면, 벌써 공격하고도 남았을 거라 사료됩니다. 공격하는 게 좋습니다. 정찰 보고에 의하면, 대한제국군은 지금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일부 병력을 제외하고는 모두 천막 안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병군단장인 클로스 토마시 역시 기병 군단장의 의견에 찬동하고 나섰지만, 지그문트는 결정을 망설였다. 그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민스크의 악몽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대한제국군의 화력과 공격력을 몸소 느낀 그로서는 자칫 사자 머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우를 범할 수도 있었기에 조심스러웠다.

"대한제국군과 맞붙는다면 우리 군대는 산산조각 납니다. 천연의 방어벽을 버리고 공격으로 나선다는 건 우리의 기본 전략과 어긋납니다. 적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소수 병력을 동원한 야습이라면 모르지만, 대규모 공격은 무리입니다. 더군다나 대한제국군이 가지고 있는 철마를 부술 만한 무기가 마땅치 않는 마당에 야습은 자살 행위입니다. 야간 전투가 우리에게 생소한 방식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도 말입니다."

유일하게 포병연대장인 제프와쿠프 미칼만이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나서자, 다른 지휘관들이 그를 못 마땅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크지노벡은 하늘이 주신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낮보다는 밤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화력 차이가 극명한 지금,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밤이야말로 적의 이점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적들에게 시간을 주면 그만큼 우리가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 시간이 갈수록 적은 강해지고 우리는 약해집니다. 일단 기회다 싶으면 공격해야...”

"경의 말씀 잘 알겠습니다."

지그문트는 결정을 내렸다는 듯 크지노벡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전군에게 공격준비 명령을 내려놓도록 하고 우선 야음을 틈타 기병대를 투입시킨 후, 상황을 보면서 보병 투입을 시도하겠습니다. 모두들 준비를 철저히 해 주십시오. 그리고 은밀히 포대를 전방으로 이동 배치하고. 아 참, 적 기병대 위치는 파악되었나 ?"

"아직 입니다. 후방으로 멀리 빼돌렸거나, 어디에서 숨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도보 정찰은 거리상 한계를 들어내고 있었다. 기병 정찰을 감행하면 좋겠지만, 그걸 눈뜨고 볼 대한제국군이 아니었다. 하천을 따라 수 마일까지 행해지고 있는 기병 정찰과는 다르게 전방 정찰은 불과 몇 백 야드가 고작이었다.

"적 기병대가 크게 우회해서 우리 후방에 나타난다면 난처해지겠습니다. 우리가 기습 공격을 생각하고 있다면 적들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지도를 살피던 재상이 중얼거리자 모두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기분이 멍해졌다. 적을 공격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던 크지노벡이 이마에 주름살을 만들어 냈다. 재상의 예상에 깜짝 놀란 지그문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빌어먹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군."

"정찰 거리를 두 배로 늘이고 적 내습에 대비할 수 있는 상비군을 중군에 대기시키시오. 포대도 따로 차출해서 배속시키고. 기동성이 뛰어난 포대로. 서두르시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소. 제장들 ! 우리는 죽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재상의 말대로 대한제국도 기습을 노리고 있다면 시간이 문제였다. 누가 먼저 적의 이목을 속이고 병력을 집중시켜 공격하느냐 ? 그것이 이번 전투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중대 변수가 될 수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모두들 떠난 막사에 홀로 남은 지그문트는 자신의 두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 그가 알기로 큰아들은 빈에서, 작은아들은 스톡홀롬에서 외로운 타향살이를 하고 있었다.

"성모마리아의 가호가 있기를. 성모 마리아님. 형제간의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폴란드 재상 스체르바츠키는 지그문트가 머무르고 있는 막사에 다시 들어가려다 멈춰 섰다. 지그문트의 기도소리가 간간이 들려 오고 있었기에 재상은 기도가 끝나길 기다리며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구경꾼처럼 수십만 개의 별들이 반짝이며 대평원을 굽어보았다. 곧 있으면 시작될 전투를 즐기는 관객들은 반짝이며 환호성을 지를 준비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휴우"

쓸데없는 상념에서 깨어나며 길게 한숨을 쉬던 재상이 지그문트에게 허리를 굽혔다. 지그문트는 소리 없이 막사를 나와 재상 옆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이 됩니까 ?"

"무슨 말씀이신지요 ?"

재상은 지그문트의 물음에 되물어 보는 것으로 대답을 했다. 지금 이 전장터에 나와 있는 재상을 비롯한 모든 병사들에게는 걱정해야 할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많았다. 생각나는 것은 온통 걱정과 두려움뿐이었다.

"아닙니다.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뜩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 결정에 수십만의 병사들이 죽어나갈 수 있습니다. 살릴 수 있는 목숨을 말입니다."

지그문트 폴란드 왕의 이야기를 들으며 재상이 몸 둘 바를 몰라 머리를 조아렸지만, 한 편으로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알기로 지그문트는 아랫사람까지 배려할 만한 자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폭군에 가까운 왕으로 지금껏 영주를 제외한 농민이나 병사들의 생활을 생각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모두들 폐하와 폴란드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충성스러운 부하들입니다.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심은 곧 저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 입니다."

"그런가요 ?"

지그문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10만 명의 병사들이 주변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고요하기만 했다. 적막한 평지를 밝히는 모닥불들과 횃불들만이 타닥거리며 타올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3 천군2부 +45 15.07.22 7,503 103 15쪽
152 천군2부 +4 15.07.22 4,829 72 22쪽
151 천군2부 +3 15.07.20 3,893 74 14쪽
150 천군2부 +1 15.07.20 3,587 76 28쪽
149 천군2부 +2 15.07.17 3,847 82 26쪽
148 천군2부 +2 15.07.16 3,524 83 34쪽
147 천군2부 +2 15.07.16 3,334 89 20쪽
146 천군2부 +3 15.07.14 3,287 73 19쪽
145 천군2부 +2 15.07.14 3,329 72 19쪽
144 천군2부 +4 15.07.13 3,520 83 20쪽
143 천군2부 +6 15.07.11 3,673 97 21쪽
142 천군2부 +2 15.07.10 3,524 91 24쪽
141 천군2부 +2 15.07.09 3,626 100 24쪽
140 천군2부 +5 15.07.08 3,611 101 31쪽
» 천군2부 +1 15.07.07 3,457 93 25쪽
138 천군2부 +2 15.07.07 3,820 85 31쪽
137 천군2부 +2 15.07.06 3,554 80 20쪽
136 천군2부 +3 15.07.02 4,059 92 37쪽
135 천군2부 +2 15.07.01 3,580 92 15쪽
134 천군2부 +2 15.07.01 6,112 87 16쪽
133 천군2부 +2 15.06.23 3,654 97 16쪽
132 천군2부 +3 15.06.22 3,828 86 16쪽
131 천군2부 +2 15.06.19 3,647 108 15쪽
130 천군2부 +2 15.06.18 3,646 90 16쪽
129 천군2부 +8 15.06.17 3,449 102 14쪽
128 천군2부 +3 15.06.17 3,686 76 13쪽
127 천군2부 +6 15.06.10 4,275 81 16쪽
126 천군2부 +2 15.06.10 3,242 79 16쪽
125 천군2부 +2 15.06.10 3,502 80 16쪽
124 천군2부 +3 15.06.09 3,712 111 17쪽
123 천군2부 +3 15.06.08 3,901 98 16쪽
122 천군2부 +2 15.06.07 4,019 82 17쪽
121 천군2부 +1 15.06.06 3,520 79 17쪽
120 천군2부 +4 15.06.05 3,550 84 16쪽
119 천군2부 +2 15.06.04 4,256 82 16쪽
118 천군2부 +3 15.06.03 3,707 103 18쪽
117 천군2부 +4 15.06.02 4,241 99 17쪽
116 천군2부 +3 15.06.01 4,199 105 17쪽
115 천군2부 +4 15.05.29 4,300 98 17쪽
114 천군2부 +2 15.05.29 4,167 100 18쪽
113 천군2부 +5 15.05.28 4,632 131 17쪽
112 천군2부 +4 15.05.27 4,871 124 17쪽
111 천군2부 +3 15.05.22 4,553 93 18쪽
110 천군2부 +2 15.05.21 4,799 113 14쪽
109 천군2부 +5 15.05.20 4,704 112 12쪽
108 천군2부 +3 15.05.18 4,809 118 19쪽
107 천군2부 +3 15.05.10 5,279 117 19쪽
106 천군2부 +3 15.05.09 4,877 144 18쪽
105 천군2부 +3 15.05.08 5,101 104 19쪽
104 천군2부 +4 15.05.07 5,844 12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