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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에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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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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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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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천군2부

DUMMY

곡명기는 가무라 소령의 말하는 모양새를 보며 우유부단하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지적하곤 했다. 일본부에서 태어난 가무라로서는 출신에 대한 막연한 자격지심이 작용하고 있었는지, 곡명기가 느끼기에 그는 매사에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는 듯 보였다.

"고치려고 하는데도 잘 안 됩니다."

뒤통수를 긁적이는 가무라 소령에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던 곡명기 사령관은 그를 현장에 투입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초계함에 승선해서 진정한 뱃사람을 한 번 느껴 보는 게 어떤가 ?"

"네. 사령관님"

"그만 가지"

곡대령이 작은 지휘봉을 들고 모자를 집어 들어 머리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모자챙을 약간 앞으로 수그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무라 소령이 전화기를 들고 자동차를 대기시키라는 전화 소리를 뒤로 하고 방문을 나서자 가무라 소령이 전화기를 서둘러 끊고 뒤따라 왔다.


수송선을 포함하여 총 15척으로 구성된 대선단이 자카르타 외항에 차례로 들어와 정박지를 잡고 닻을 내리기 시작했다. 자카르타항은 평균 수심이 10미터였기에 오만톤급 항공모함인 2101함은 부두에 정박할 수가 없었다. 기함을 중심에 두고 주변에 흩어진 순양함들이 사방을 방어했고, 수송선들은 부두에 접안을 시작했다.

"충성. 자카르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제독님"

"고생이 많네."

곡대령과 지중해 함대 후임 사령관 김성일 소장은 간단히 상견례를 하고 2102함 옆에 접안한 통선으로 옮겨 탔다. 김성일 소장이 통선에 오르자 별 두개가 그려진 깃발이 꽂히고 바람에 나부꼈다. 고속으로 달린 통선은 10분만에 내항으로 진입해 통선 전용 부두로 다가갔다.

"오시는데 불미스런 일은 없었습니까 ?"

행여 간덩이가 부은 해적들이 전단을 스쳐가지나 않았나 싶어 곡대령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김성일 소장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대답이 없었다.

"태풍을 피한 것 말고는 별일 없었네."

김소장 대신 같이 따라온 참모장이 대답을 했다. 곡대령은 부두에 올라 대기하고 있는 자동차로 다가갔다. 해군전용 부두라서 그런지 주변에는 일반인들의 접근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어,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군인들 이었다.

"오늘 점심은 뭔가 ?"

"네. 개고기 훈제입니다. 바티비아에 거주했던 유럽인들이 개발한 요리라고들 합니다. 입맛에 맞을 지 모르겠습니다."

"난 가마솥에 한나절 푹 끓인 탕이 좋던데. 훈제는 처음이군. 이런 더운 지방에서 생활하려면 고단백 식품이 제격이지. 이집트도 만만치 않다는데. 그나저나 오늘 날씨는 화창해서 좋구만"

김성일 장군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하늘이 갑자기 시컴해지더니 먹구름이 주변을 확 뒤덮었다. 이네 굵은 빗방울이 차 지붕을 두들기더니 운전병이 자동차 속도를 급속히 줄였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소나기가 퍼 붇기 시작했다. 오른팔을 차창에서 얼른 내려놓은 김성일 장군은 서둘러 유리창을 올리고는 무안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허참 !"

"우기가 가까워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한 시간 정도 쏟아지다가 그칩니다. 종종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쏟아져서 주변이 삽시간에 물바다로 변합니다만, 비만 그치면 언제 거짓말처럼 화창하고 물도 금방 빠집니다."

김성일은 곡대령의 설명을 들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차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후덕지근한 공기 때문에 겨드랑이에 맺히고 있는 땀방울들이 물줄기를 이뤄 밑으로 흘러내렸다. 창 밖으로 내밀었다 축축해진 오른손 소매가 영 찝찝한지 김성일은 자꾸 소매 아래를 잡고 연신 흔들어댔다.


단기 3958년(1625) 봄 서울

경복궁 복원으로 서울의 중심부에 사람들의 왕래가 부쩍 늘어났다. 금강천황의 간곡한 부탁에 의해 국무회의에 상정된 경복궁 복원안은 소실전과 똑같은 규모로 복원하자는 측과 축소 복원 하자는 측간의 팽팽한 신경전 끝에 두 안을 절충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게 된다. 실제로 사용되어지는 건물과 그렇지 않은 건물을 분리하여 이미 그 존재 가치가 없는 건물들 이를 테면 교태전이나 후궁들이 사용했던 집희당, 벽하당 같은 수많은 당우(堂宇)들은 일차 복원에서 제외하고, 적절한 시기에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광화문을 지나 조정에 들어선 황궁부 직원들이 근정전 복원이 한창인 공사현장을 둘러보며, 건설부에서 나온 공사 책임자를 찾고 있었다. 금강천황의 뜻을 받들어 시작한 경복궁 복원은 벌써 이년을 넘기고 있었는데도 기초공사만 이루어진 상태였다. 시간 날 때마다 진척 상황을 살펴보곤 했던 이자명은 공사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어서 여기 올 때마다 짜증이 났다.

"이 보게 ! 여기 박과장은 어디 갔나 ?"

이자명은 끝내 책임자를 찾지 못하자, 주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인부인 듯 한 사람을 붙잡고 화난 목소리로 물어 보고 있었다. 황궁부 직원들은 고위직을 빼고는 전주 이씨들이 많았다. 효령대군파의 몇 대손이라는 이자명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 그의 몸짓과 목소리에는 은연중 황족이라는 자부심이 배어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교육을 받지 못한 일반 백성들 역시 그런 것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저기 근정문에 계실 텐데 못 보셨습니까 ?"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을 하는 인부는 고개를 똑바로 들지도 못하고 이자명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래 ?"

이자명은 그 어슬렁거렸던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근정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들어올 때는 듣지 못했는데 근정문에 이르니 박과장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여기 이거 설계도하고 10센티미터정도 차이나잖아. 싹 허물고 처음부터 다시 해. 도대체 몇 번을 해야 제대로 하는 거야 ? 이래 가지고 자네들 이름을 여기 석판에 올릴 수 있겠어 ?"

뭐가 잘못되었는지 박과장이란 사람은 인부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어이. 수고가 많네 박과장 ! 오늘은 좀 진척이 되어가는가 ?"

"진척은 무슨 진척입니까 ? 근정문을 죄다 헐고 다시 지어야 할 판입니다."

"또 허물어 ?"

이자명은 대충 모양을 잡아가는 근정문을 헐어버린다는 말에 아연실색했다. 벌써 두 번째 근정문을 다시 만들고 있었다.

"인부들이 꼼꼼히 일을 하지 않아요. 대충대충 만들어 놓고는 광화문 광장에다 자기 이름 하나 올리려고 하니 제 목구멍이 남아 나질 않습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십니까 ?"

대한제국은 모든 건축물 앞에 그 건축물을 지을 때 관여한 모든 사람의 이름을 적어놓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을 관행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광화문 한 곁에는 공사인부와 책임자들의 이름을 적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그 이름들은 조정 석판에 빼곡히 각인 될 예정이었다. 나중에 그 건축물에 하자가 발견되면, 그 원인 여부에 따라 관여된 인물들은 조사를 면하기 힘들었다.


멀쩡한 옷들을 먼지라도 묻은 것처럼 탈탈 털어대며 황궁부에서 나온 이자명이라는 자를 바라보았다. 이자명은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눈치였다. 원칙대로 하겠다는데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이러다 10년이 걸려도 못 하겠구나 ? 이것들이 일부러 천천히 하는 거 아냐 ?' 마음 속으로 박과장을 비롯한 천인단 전체를 싸잡아 욕하고 있었지만, 밖으로 들어낼 수는 없었다.

"조선 최고의 기술쟁이들이 그럴 리가 있나 ? 다 감독쟁이들이 못나서 그런 것이겠지 ?"

계속해서 하대도 아니고 존대도 아닌 이상한 말투를 섞어 가며 말하는 꼬락서니가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황궁부 관리들과는 되도록이면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박과장은 대꾸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박과장이 입을 다물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이자명은 말이 너무 심했나 싶어 슬며시 말을 돌렸다.

"황제폐하께서 자꾸만 진척 상황을 하문하시니 오늘도 내가 이렇게 왔네. 어떤가 ?"

"잘 되고 있습니다. 그리 아시고 걸리적 거리니 구경하실 요량이며 좀 멀리 떨어져서 하십시오. 진척상황은 정기적으로 보고서가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박과장은 이자명에게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근정전으로 발길을 돌리려 했다.

"아니. 이건 뭔가 ? 이게 왜 언문으로 쓰인 건가 ?"

걸리적거린다는 말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던 이자명은 근정문 현판이 큰 한글에 괄호 안에 작은 한자로 쓰인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럼요 ?"

하지만 박과장은 당연하다는 듯 이자명을 바라보았다.

"이게. 언문이라니 ! 가당치 않아. 한자를 써야지 ? 이게 뭔가 ? 한자는 작고 언문은 큰 글씨라니 ? 보다보다 이런 괴이한 일은 처음이구만."

"한자도 좋고 언문도 좋은데. 도대체 왜 한자로만 써야 하지는 그 이유를 말해 보시오. 내가 납득이 되면 한자로 쓰는 것을 고려해 보죠. 그리고 이건 한글이라는 엄연한 좋은 이름이 있습니다. 언문보다는 한글이 좋지 않습니까 ? "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 박과장은 이자명을 째려보았다. 이자명은 왜 한자만 써야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했지만 좋은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그건 당연한 것이지 사고해야 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당위성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부모가 왜 자식들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과 같았다.

"그건. 그건."

우물쭈물하던 이자명을 뒤로 하고 박과장은 근정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멍하니 서있던 이자명은 어느 봄날 우연히 던져진 화두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미 한자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어서, 조선에서는 한자로 만들어진 책은 더 이상 구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천자문을 공부하지 않았고 한자로 된 사서삼경 같은 책은 창경궁터에 지어진 황립 도서관 지하실이나 박물관에 가야 만나볼 수 있었다.


2대 천인단장인 정현우의 임기가 올해 말로 끝남에 따라 서울의 주요 공직자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으레 제 3대 천인단장 선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것은 천군부에서 일하는 관리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신기철 2대 천군부 장관도 이번 선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천군부를 맡은 지 삼년째인 신기철은 새로운 천인단장이 업무를 인수하는 내년까지 폴란드 진공을 미루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신기철이 천군부 장관으로 취임했을 때, 정현우는 천군부를 천인단의 조직으로 흡수하려는 시도를 두어 번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천군부 장성들의 강력한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고 신기철 또한 내심으로는 그것을 바라지 않고 있었다. 천군부와 천인단간의 알력은 대한제국을 이끄는 쌍두마차의 사이가 과거처럼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럴 때, 천인단의 강력한 후원이 필요한 대규모 점령전을 시작한다는 것은 신기철을 비롯해 천군부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저녁이라도 하자고 해볼까 ?"

신기철은 그래도 정현우가 차기 천인단장보다는 대하기에 더 편할 거라는 생각에, 전화통을 붙잡고 천인단장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번호를 돌렸다. 정현우는 벌써 퇴근을 했는지 응답이 없었다. 한참을 드륵 드륵 하는 소리를 듣다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반대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현우 입니다."

"신기철 입니다. 안녕하셨습니까 ?"

"아. 네. 방금 막 나가려다가 전화소리가 들려서요 ! 어쩐 일이십니까 ?"

정현우의 목소리에는 의외라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천군부와 천인단의 실무들은 각 위원회에서 조율해나가고 있었고, 군대를 대규모로 움직이는 일도 최근에는 없어서 둘이 업무적으로 통화할 일이 거의 없었다.

"오늘 저녁 약속 없으시면 오랜만에 약주라도 대접할까 해서요 ! 괜찮으시겠습니까 ?"

"글쎄요 ?"

정현우는 약간 뜸을 들였다. 딱히 약속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오늘은 피하고 싶었다.

"바쁘시면 다음에 할까요 ?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그럽니다. 시간 좀 내주시지요. 안되겠습니까 ?"

대충 핑계를 대고 신기철과의 만남을 피하려 했던 정현우는 저쪽에서 간곡히 나오자 어쩔 수 없었다.

"뭐 특별히 바쁜 일은 없습니다만, 시내에서 만나는 것은 좀 그러니, 제 집으로 오시겠습니까 ? 네. 그럼 7시까지 오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혼자 오시는 것이지요 ? 네. 그럼 그렇게 준비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정현우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았다. 대충 두 시간은 남았으니 집사람이 서둘러 준비하면 그런대로 될 것 같았다. 집으로 전화를 건 정현우는 손님이 갈 테니 저녁 준비하라고 이르고 의자에 도로 앉았다.


신기철은 생선에 나물, 김치, 고기산적등 골고루 차려진 주안상 겸 밥상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이 자리를 잡자 다시 앉았다. 음식이 입맛에 맞는다는 둥 집사람을 보내서 요리솜씨 좀 배워오라고 해야겠다는 둥 입에 발린 칭찬을 하던 신기철은 안주인이 방 한쪽에 앉아 있다 방문을 닫고 나가자 입을 다물었다.

"반주로 한잔 해야죠 ?"

숟가락과 젓가락을 열심히 놀리던 정현우가 밥공기를 반쯤 비우더니 일어나 벽장을 열었다. 정현우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 벽장에는 과실주며 인삼주 등이 가득했다. 술을 즐기는 사람은 집에 술이 있는 꼴을 보지 못하고 마셔버리는 버릇이 있다. 신기철 눈에 정현우의 벽장이 보물창고처럼 보였다. 그의 집에는 기껏해야 작년가을에 남은 포도주 몇 병이 전부였는데 부인이 술을 담근다 싶으면 어느새 바닥이 보이곤 했다.

"좋죠. 저기 저쪽 걸로 한잔 합시다."

투박하지만 안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 좋은 술이라 생각한 신기철이 손가락을 들어 한 병을 지목하자, 정현우가 웃으면서 그 병과 다른 병을 꺼내왔다.

"술꾼은 병만 봐도 아시나 보죠 ? 이건 15년 된 뱀 술입니다. 맛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전 매실주나 한잔 하겠습니다."

"병안에 뱀이 있습니까 ?"

"물론이죠. 칠보사라는 독사 라던데 이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뚜껑 딸 때 조심해야겠는데요. 죽지 않고 있다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요 !"

신기철은 병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칠보사라는 독사가 움직이는지 느껴보려는 듯 양손바닥을 병에 바짝 밀착시켰다.

"그럴 리가요 ? 15년이나 되었는데 아직까지 살아있겠습니까 ?"

"모르시는 말씀. 한번은 10년 된 뱀도 멀쩡히 살아서 사람목숨 뺏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15년이라면 죽었을지 모르지만, 만사 불여튼튼이죠."

그러면서 신기철은 병뚜껑을 조심스럽게 열고는 망사로 얼른 입구를 막았다. 그리고는 대여섯 잔 분량의 술을 주전자에 따르고 병을 다시 조심스럽게 닫았다. 그런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던 정현우는 자신의 술잔에 매실주를 따라 놓고 신기철의 술잔이 차기를 기다렸다.

"지난 구년 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올해로 마지막이라니 섭섭하기만 합니다."

신기철이 술잔을 부딪치며 공치사를 해왔다.

"저야 초대 단장님에 비하면 반딧불에 불과하죠. 일 년만 잘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홀가분하기까지 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걱정이 태산입니다. 벌려놓은 일은 많고 수습도 해야 하는데 임기 안에 다 처리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대충 윤곽이 잡힌 것 아닙니까 ? 이제부터 진행만 시키면 되겠는데 엄살이 심하십니다."

정현우는 천군부에서 지금 유럽진공과 쥬신대륙 동안으로의 진출계획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쥬신대륙 동안은 거의 전적으로 천군부에서 진행하고 있었지만 유럽진공은 천인단에서 상당부분 협조를 하고 있었기에 대부분은 정보가 공유되고 있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저는 이번 작전 개시 전에 천인단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정립하고 나갔으면 합니다."

"아무리 제가 국무총리를 겸직하고 있다지만 실상 모든 일이야 위원회에서 처리하고 있는데 제가 무슨 힘이 될 수 있겠습니까 ?"

정현우는 자칫 구설수에 오늘수도 있는 문제에 끼여 들고 싶지 않았다. 내년에 선출되는 후임자가 전면에 나서서 처리해도 될 것이기에 자신은 한발 뒤로 물러나고 싶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가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지만, 천군부 조직이 천인단 만큼 방대하고 관할하고 있는 지역도 무시할 수 없는 시점에서 무리하게 천인단으로 흡수하려 한다면 문제점이 발생할 것은 자명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초대 천인단장과 천군부장관의 후광이 작용하고 있어서 두 부서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다음대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두 조직을 하나로 묶는 상위개념의 최고 명령권을 가지는 조직을 만들어 놓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떻습니까 ?"

"천군부가 완전히 국무회의에서 빠져나가겠다는 소리로 들리는 군요. 대한제국의 중추라 할 수 있는 두 조직이 삐걱거리면 제국자체가 사상누각이 될 수 있지요."

"조직표상에는 국무총리 아래에 천인단과 천군부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리고 지금껏 별개의 명령개통을 유지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 저는 다만 현실을 반영하자는 것입니다."

"장관님. 100년 후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된다면 천군부의 효용성이 급격히 줄어들 것입니다. 지금 이런 체제가 굳어진다면 100년 후에는 바꾸기 더 힘들어질 지도 모릅니다."

신기철도 그걸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천군부가 국민에 의해서 집권하는 행정수반에게 명령권을 이양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현우 천인단장이 말하는 것처럼 지금 당장 천군부를 천인단 안으로 집어 넣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대한제국 최고 의결기관으로서 가칭 "단군"을 만들어서 국무총리의 임무를 대신하고 천인단과 천군부 모두를 관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럼 누구에게 '단군'을 맡길 생각이십니까 ?"

"그건 ?"

신기철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양 조직에서 합의 하에 공동대표형식을 취하는 것이지만 그것 역시 불안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여서 '단군'을 만드는 명분에 악영향을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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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군2부 +3 15.05.18 4,810 118 19쪽
107 천군2부 +3 15.05.10 5,279 117 19쪽
106 천군2부 +3 15.05.09 4,877 144 18쪽
105 천군2부 +3 15.05.08 5,101 104 19쪽
104 천군2부 +4 15.05.07 5,844 12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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