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에구에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최근연재일 :
2015.07.22 20:59
연재수 :
153 회
조회수 :
1,182,849
추천수 :
28,361
글자수 :
1,225,279

작성
15.07.09 17:11
조회
3,626
추천
100
글자
24쪽

천군2부

DUMMY

"재상 ?"

"그대는 어서 지그문트 대왕을 호위하시오 ! "

힘겹게 말을 끝낸 재상이 고개를 떨구자, 근위대장은 두 눈에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며 지그문트를 뒤쫓아갔다.


달이 떠오르자, 비로소 기관총의 제압사격이 제대로 먹혀 들기 시작했다. 줄기차게 총탄만 낭비했던 기관총 사수들은 적들의 숫자가 많음에 놀라고 있었다. 온 대지를 가득 메운 폴란드 병사들이 조준, 제압사격에 우수수 쓰러졌다. 하지만 너무 숫자가 많았다.

"4531사단에서 더 이상 막기 힘들다는 전문입니다."

계속해서 제파 공격을 당하고 기병대 공격까지 당하자, 4531사단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방어망이 뚫리고 있었다. 2연대 병력은 백병전에 들어가 있었고, 다른 연대 역시 백병전을 준비했다. 진영 깊숙이까지 들어온 폴란드 기병대는 4531사단을 지원하는 천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참모들이 고수석 중장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월등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는 군대가 백병전을 할 이유가 없었다.

"2여단과 3여단을 진격시키고, 그 자리를 4561 여단에게 넘기도록. 그리고"

내키지는 않았지만 고수석 역시 이번만큼은 지휘부를 뒤로 물려야 할 것 같았다.

"4531 사단을 뒤로 물려. 지휘부도 뒤로 물러난다. 원정군 사령부에 연락을 넣도록. 4521사단에게 공격방향을 바꿔서 적 후위를 물고 늘어지도록 하고. 적들의 진격 속도를 늦추라고 해. 바지 가랭이라도 붙들어서."

5군단에 속한 병력은 보병사단 2개와 기병사단, 기계화 사단이 각각 1개 거기에 포병여단과 특수여단이 각각 1개씩 이다. 5군단 특수여단인 4561 여단까지 전투에 투입 시킴으로써 고수석은 이제 더 이상 커낼 카드가 없었다.

"지독한 놈들. 포병여단을 분산시킨 게 실수로군. 지금이라도 포병여단을 한곳으로 모아 세력을 형성하라고 해."

전투에 참가한 10만 명의 폴란드 군은 전혀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이쯤 되면 항복하던가 후퇴 할 만도 한데, 죽음의 공포를 상실한 그들은 오직 앞으로만 내달렸다. 바로 옆에 있던 동료의 머리가 총탄에 맞아 터져나가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전우들의 피를 흠뻑 머금은 넝마가 빨간색으로 물들어갔고, 하천은 핏빛으로 변해갔다.

"너희들의 아들 딸들이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공격. 공격하라."

지그문트가 악에 받친 소리를 질러대며 전장을 돌아다녔다. 그를 둘러쌓고 있던 기병 숫자도 많이 줄어 있었다. 대한제국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고 있었고, 폴란드군은 그 뒤를 쫓아가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 내내 평원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10킬로미터를 전진했지만, 만신창이된 폴란드 군은 대한제국군의 포위망에 갇혀버리는 꼴이 되어 버렸다. 전방에 배치된 4561여단이 후퇴와 방어를 적절히 구사하면서 폴란드군을 깊숙이 끌어들이고, 적 후방을 유린한 4521기병사단이 다시 하천을 넘어 폴란드 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좌측에 남아있던 기계화사단 2여단과 3여관이 본격적으로 포위망 형성에 들어갔다. 천포여단이 우측으로 세력을 형성하자, 동서남북으로 포위당한 폴란드군은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병사들도 많이 지쳐있고,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총상을 입고 동여맨 천에서 아직도 피가 흘러나왔다. 토마시 보병군단장은 항복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폴란드군은 날이 밝아오면서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4531사단이 부대를 재정비하고 4561여단과 합세해 전방 방어선을 확고히 하자, 더 이상 폴란드군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후회 없이 싸우지 않았습니까 ? 미친 듯이 말입니다."

"그렇지 !"

지그문트 역시 토마시 마음을 읽어나갔다. 그의 주변에는 아직 이만명여명의 부하들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돌격명령을 기다리며 장전을 마친 병사들이 자신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을 대한제국군을 진영을 바라보았다. 폴란드군과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후퇴를 하고 있던 대한제국군의 진영에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그래도 항복할 수는 없네. 내가 항복하면 폴란드는 끝이야. 만일 내가 사로잡히게 될 것 같으면 자네가 나를 죽여주게 알겠나 ? 토마시 ?"

"총사령관님 ?"

"다시 한번 돌격을 준비하게.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군."

동쪽 하늘이 훤히 밝아 있었다. 폴란드 기병대는 전멸했는지 주변에는 주인 잃은 말조차 돌아다니질 않았다.


"4550 여단이 사거리 안으로 들어왔다는 보고입니다. 그리고 4631사단이 원정군 사령부를 방금 지나쳤다는 보고입니다."

원정군 후미에서 따라오던 6군단 보병사단이 자신을 지원하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흩어져 있던 포병여단이 이제 겨우 세력을 형성하고 포격을 할 수 있는 거리에 다다라 있었다.

"포병여단의 포격이 있은 직후 돌격에 들어간다. 각 예하 부대에 명령을 내려놓도록. 이곳에서 전투를 끝낸다. 아마도 저 속에는 지그문트 폴란드 왕이 있을 것이다. 특수여단에게 체포조를 편성해서 침투시키도록"

힘겨운 싸움이었다. 5군단 전체 병력에 비하면 10만명은 그리 많은 적이 아니었지만, 불을 보며 달려드는 불나방 때문에 자칫 불이 꺼질 뻔한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전세가 완전히 5군단에게로 넘어 온지 오래 였다. 밝아오는 여명과 함께 드러난 폴란드군은 거대한 원형 포위망에 놓여 있었다. 그들에게는 항복 아니면 죽음밖에 없었다.

"펑펑펑"

"공격."

"폴란드에 영광을"

지그문트가 칼을 높이 쳐들었다. 평평한 땅의 나라 폴란드의 마지막 저항은 5군단 포병여단이 일제 포격을 시작하면서 점점 사그러들었다. 10분간 계속된 포격에 이은 사방에서의 돌격을 감행한 대한제국 유럽 원정군 5군단 병력은 저항하는 폴란드를 평원에 잠재우고 지그문트가 설정한 방어선을 넘어갔다. 5군단이 피해를 수습하고 6군단과 병력 교체를 위해 잠시 진군을 멈춘 사이, 빌뉴스 영주와 함께 4121기병사단이 비아위스토크를 거쳐 바르샤바 외곽에 도착했지만, 바르샤바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터키 이스탄불

"그래서 이번에도 거절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

"거절하는 것이 아니오라 본국에서 아직 훈령을 받지 못했사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곧 좋은 소식이 올 것 입니다."

"그것이 그 뜻 아니오 ? 내가 대한제국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데 아직까지 훈령을 기다리고 있다니 그 말씀을 믿으란 말이오 ?대한제국이 이렇듯 신의를 저버린다면 저희도 생각이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 대사 ? "

타라한은 계속해서 주 터키대사 김영일은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그 말씀은 "

김영일의 말을 끊은 황태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린 이쯤해서 이교도 놈들과 협상을 벌일 용의도 있음을 알아주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제국과 터키제국과의 관계도 소원해질 수 있겠지요. 어제 토머스경이 다녀갔었지요 ! 알고 계시지요 ?"

토마스라는 사람은 영국 공사로 인도 공사를 거쳐 터키에 부임해 온 사람으로 영국 외교계에서는 동양 통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한제국과 터키가 밀월관계를 유지할 때는 황궁 근처에도 올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황태후를 만나고 갔다는 것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토마스 경이 런던에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만, 황태후 마마를 뵈었다는 것은 금시초문 입니다."

김영일이 정색을 하며 짐짓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김영일의 놀란 표정을 바라보던 황태후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비쳤다 사라졌다.

"그러셨군요. 아무튼 저는 대한제국에서 우리가 보여준 만큼만이라도 성의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황태후 폐하. 저희 대한제국은 조약에 의거 상호 호혜의 원칙 하에 양국간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번 전쟁에도 무상 원조로 얼마나 많은 총포탄이 전달되었는가를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움직이려면 엄청난 비용이 지출되게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크레타 기지에 있는 군대는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본국에서는 아마도 그것을 우려하고 있기에 훈령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국에서도 무슨 복안을 마련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부디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김영일 대사가 받은 훈령은 어떠한 형태의 파병도 불가하니 터키제국을 잘 설득시키라는 것이었지만, 황태후가 영국에 딴 마음을 품고 있다면 무작정 설득만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라나다 원정군이 곤혹을 치르고 있습니다. 새로운 함대가 출항하기 전에 귀국의 확답을 들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비용문제라면 저희 쪽에서 어느 정도는 부담할 용의가 있습니다. 이점을 귀국에 꼭 양지 시켜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황태후 폐하의 하해와 같은 말씀에 감복할 뿐이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을 벌었다 싶은 김영일이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새롭게 신설되고 있는 함대가 출항을 하려면 아직도 2달은 족히 남아있었다. 그 전에 폴란드 전선이 안정화되고 4군에서 여유가 생긴다면 한번쯤은 터키를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이스탄불에 비누공장을 세웠으면 합니다. 대한제국에서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비누 공장을 말씀입니까 ?"

김영일은 뜻밖의 제안에 그 숨은 뜻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했다. '뜬금없이 비누 공장이라니'

"그렇습니다. 일전에 써보니 새하얀 비누라는 것이 참 좋습디다. 향기도 좋고 모양도 이쁘고"

"아 ! 네. 알겠습니다."

별로 큰일도 아닌 일을 자신의 확답을 들으려 하는 황태후의 의도가 궁금했다. 그런 것이라면 참사관에게 연통을 넣어도 될 일이었다. 김영일은 황궁을 나와 대사관저로 돌아오는 길 내내 비누 공장이 가지는 의미를 유추해 내려 했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보다는 토마스가 더 걱정이군.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

토마스경이 황태후를 만나고 갔다면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실체가 파악되지 않은 유럽 내에서 일고 있는 이상한 기류가 이번 일에 개입된 것 같았다. 김영일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불길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제 11 장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


단기 3959(1626)년 가을 파리

루브르 궁 가로수 잎사귀들이 하루가 다르게 파릇함을 잃어갔다. 나무 기동을 스치고, 왕궁 모서리를 돌아 나가는 바람에 실려, 루이 13세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끊어졌다 이어지던 목소리가 모퉁이를 돌아 나오며 또렷해졌다. 잔뜩 움츠려 있는 말소리가 끝나자 이내 노기가 가득 든 소리와 함께 루이 13세가 모습을 나타냈다. 리슐리외와 마자랭이 총총 걸음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

"일단은 에드몽을 인정하고 그를 연합 세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지금 급한 것은 에드몽이 아니라 터키와 대한제국의 공격입니다. 총체적인 위협에 직면해 있는 지금, 내전을 벌이는 것은 대한제국을 도와주는 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에드몽이 한때 대한제국과 손을 잡긴 했지만, 그 역시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임을 부인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럽 연합과 프랑스간의 업무 연락관을 맡고 있는 마자랭이 루이 13세를 설득하고 있었지만, 루이 13세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루이 13세가 머뭇거리는 기미를 알아 챈 리슐리외가 마자랭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다.

"안됩니다. 에드몽이 우리와 손을 잡을 것 같지도 않거니와 설사 손을 잡는다 해도 큰 도움이 되긴 힘들 거라는 판단입니다. 농민 무지렁이들로 구성된 군대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그렇게 허약한 적에게 영불 연합군이 전멸당했습니까 ?"

"그건 대한제국놈들 때문에"

루이 13세가 리슐리외경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그건 리슐리외경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왕국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그걸 진압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핀잔이기도 했다.

"마자랭 ?"

"말씀하시옵소서"

"그대는 정말로 에드몽이 유럽 연합에 가입할 것으로 보시오 ?"

"그렇습니다. 리슐리외경께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에드몽이 대한제국의 음모에 놀아난 것이 확실합니다. 로리앙 백작의 갑작스런 죽음에 석연찮은 점이 있습니다. 그 점을 부각시키면 에드몽을 끌어드리기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낭트 칙령에 버금가는 칙령을 발표하셔야 합니다."

"구교도에서 그걸 가만히 보고 있지 만은 않을 텐데 ?"

"그건 필요하다면 교황청의 힘을 이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유럽 연합에서는 조만간 그라나다를 공격하고자 합니다. 그전에 로리앙 지방에 대한 결정이 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에드몽을 끌어드리기만 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대한제국의 기술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구미가 당기긴 했다. 루이 13세가 리슐리외를 바라보았다.

"가능하다면 나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로리앙 지방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배신한 대가를 꼭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재상도 동의한 듯 하니, 우선 특사를 로리앙에 보내도록 하지. 그리고 위그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준다는 칙령 초안을 마련해 보게. 일단 운을 띄워놓고 포츠담에서 확실한 쐐기를 박으면 되겠지."

십만에 가까운 병력이 전멸하면서 폴란드가 대한제국에게 맥없이 무너지자, 유럽 연합은 급속도로 뭉치기 시작했다. 거기에 영국에서 불어온 무기의 개량화가 신성로마제국을 거쳐 프랑스로 유입되면서 유럽 연합군의 전력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 런던 유럽연합군 총지휘부

유럽연합의 창설과 동시에 창설된 유럽 연합군 총사령관은 창설 초기에는 유명무실한 존재였다. 하지만 대한제국군의 위협이 현실화 되고, 유럽연합의 결속이 가속화 되자, 사령관에게 유럽 내 모든 군사력, 육군과 해군에 대한 지휘권이 주어졌다. 각국 최고 통치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유럽 연합군은 우선적으로 지방의 중소 영주들에게 소속된 병력을 하나로 묶고 해적들을 포함한 모든 상선단과 해군을 통합하여 유럽사상 전례가 없는 대규모 병력을 휘하에 두고 있었다. 몇몇 영주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유럽 연합군은 무력 진압과 설득을 적절히 병행으로써 꾸준히 세력을 키워나갔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에서 징집된 병력 각각 십만, 총 30만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유럽 연합군은 신성로마제국이 가세하면서 50만을 훌쩍 넘어섰다.


"발렌슈타인이 죽은 것은 하나도 아쉽지 않지만, 케플러까지 죽어 버리다니 월터 데버루에게 미리 알려줬어야 했는데"

세계지도가 걸려있는 방에서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긴 등받이 의자에 온몸을 푹 파묻고 있던 유럽 연합군 총 사령관은 신성로마제국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덮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월터 데버루가 이끄는 병력이 필젠을 떠나 에게르로 이동하는 발렌슈타인을 추격하여 그 일행을 참살했다는 보고서가 그에게 올라와 있었다. 보고서 맨 마지막에 위치한 사망자 명단에는 발렌슈타인을 비롯하여 트로츠카, 일로 등 발렌슈타인을 지지했던 장군들이 예상대로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케플러가 그 명단에 들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갈릴레이와 더불어 유럽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케플러는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에서 유학까지 하고 온 석학이었다. 신무기 개발에 깊숙이 참여해 많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던 그가 자신의 실수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똑똑똑"

"들어와"

총사령관은 누군가 문을 두드리자 자세를 고쳐 잡았다. 오랜 시간 죽은 듯이 앉아있던 자세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려니 허리가 뻐근했다. 저절로 손이 허리에 갔다.

"총사령관님. 전략, 전술실에서 올라온 보고서 입니다."

"음. 그래 ? 놓고 가게. 그리고 리즈 백작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나 ?"

"리버플에서 개발된 신무기를 실험 중에 있습니다."

"런던으로 오시라고 하게. 조만간 총사령부를 대륙으로 옮긴다."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부관의 얼굴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각 항구에 나가 있는 장교들에게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나 ? 그리고 코펜하겐에서는 ?"

"아직 이렇다 할 보고는 없습니다."

"알았네. 그만 나가보게"

경례를 하고 부관이 돌아 나갔다. 제임스 왕의 명령에 따라 그 동안 꾸준히 대한제국군을 연구하고 그들의 무기와 편제를 연구해 온 그였지만, 이번 전쟁에서 대한제국을 이길 수 있을 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다행히 동쪽에서 온 사람으로 인해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폴란드를 간단히 제압해버린 대한제국군의 힘과 비교하면 달빛과 반딧불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대한제국군은 벌써 오드리 강까지 진출해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이상하단 말야 ?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대한제국은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 틀림없어. 폴란드나 크레타기지가 수천마일이나 떨어져있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야."

최근 몇 달 동안 신대륙이나 인도에서 오던 배들이 점점 숫자가 줄어들더니 이제는 단 한 척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매달 최소한 10여척의 배들이 신대륙이나 인도로 출항을 했지만, 돌아오는 배가 없었다. 처음에는 오던 중 태풍을 만났거나, 별일 아니려니 생각했던 각국의 선주들은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아예 신대륙으로의 출항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일이 이쯤되자, 연합군 해군사령부에서는 각 항구에 조사원을 파견하고 신대륙과 인도에 조사선을 파견했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었다. 대한제국이 모종의 술수를 부리고 있다는 심정이 다분했지만 확인할 만한 증거가 없었다.

"또 그렇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답답하군. 그 놈이 빨리 만들어져야 할 텐데."

부관이 나가고도 총사령관의 중얼거림은 계속되었다. 자문 자답을 하며 다시금 의자에 몸을 맡긴 사령관은 눈을 감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터키 이스탄불 황궁

"휴"

성스러운 지혜 사원을 돌아 바브 휴마유 문 앞에 선 김영일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사라이 제디데이 아미레 궁전이 오늘 따라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5미터는 됨직한 성벽으로 둘러 쌓인 궁전 앞에는 커다란 대포가 궁전을 지키는 상징물로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궁전을 톱카프 궁전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를 태운 마차가 정문을 지나 정원을 돌아나갔다. 유목민족이여서 그런지 터키의 궁전은 유럽과는 그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22만평의 대지에 넓게 자리 잡은 궁전 안에는 크고 작은 정원이 많았다. 상주인원만 오천명이 넘는 이 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큰 궁전이라 할 수 있었다.

"평안하셨습니까 ? 황태후 폐하 그리고 황제 폐하 ?"

"그렇습니다. 대사께서도 잘 지내셨습니까 ?"

짧은 인사가 오가고 나자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재건된 터키 함대가 마르마라해에서 출항을 서둘렀기에, 기다리다 못한 황태후가 대한제국 대사를 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녀가 정한 기한이 거의 다 차고 있었지만 대한제국에서는 아직까지 확답을 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사를 부른 연유를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

"잘 알고 있습니다. 본국에서 훈령을 기다리느라 좀 더 일찍 찾아뵙지 못 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 본국에서 훈령이 오긴 온 거요 ?"

"그렇습니다."

"그래요 ? 어디 한번 들어봅시다."

황태후는 미덥지 않은 표정이었다.

"본국에서는 바닷길을 여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향을 전해왔습니다. 그 이상은 본국으로서도 힘에 부친다며 황태후 폐하의 양해를 부탁하셨습니다. 잘 아시리라 사료되옵니다만, 본국도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본국의 힘을 폴란드에 집결시키기에도 벅찬 실정이온지라 이곳에서 또 다른 전선을 형성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김영일의 말은 황태후를 만족시키기에는 한 참 모자란 수준에 머물렀다. 황태후는 지중해 함대를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고 크레타 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전략 기동군이 움직이길 희망하고 있었다. 그들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고토회복이 훨씬 쉬워질 뿐 아니라, 터키 턱밑에서 웅크리고 있는 독사 같은 존재를 멀리 보낼 수 있는 일거 양득의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터키의 목 젓을 노리고 있는 전략 기동군을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일전에 영국 대사가 왔다 갔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었지요. 그 애기도 본국에 전했습니까 ?"

황태후는 여차하면 자신이 유럽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는 협박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김영일도 그 일을 염두에 두어 본국에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다. 하지만 천인단이나 천군부에서는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듯 했다. 훈령을 받고 재차 재고를 요청했지만 외교부에서는 오히려 자신을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서를 보내왔다.

"그렇습니다. 황태후 폐하."

"그래요 ?"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황태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곧 이어 김영일의 폭탄과도 같은 말이 이어지자 이내 그녀의 얼굴에 노기가 띄었다.

"그리고 저는 이번에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서를 받았습니다. 저보다 더 유능한 대사가 부임해 올 듯 합니다. 그분이라면 터키제국과 본국간의 우호를 더욱더 증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샤료됩니다."

대사를 교체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지금 같은 중대한 시기에 대사를 교체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대한제국이 터키제국에게 뭔가 불만이 있다는 표시이거나 아님 양국간의 관계가 소원해 질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아니, 터키제국을 그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다는 것이오 ? 이건 필시 귀국에서 딴 마음을 먹고 있는 것 아니오 ?"

"천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사실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습니다. 보통 한곳에서 5년 이상을 근무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만 저는 예외적으로 지금껏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시옵소서."

"우연의 일치란 말씀이시오 ?"

"그렇습니다. 황태후 폐하 !"

"아무튼 그럼 언제 떠나게 되는 것 입니까 ?"

묵묵히 대화를 듣고만 있던 황제가 모처럼 말문을 열었다. 20대를 바라보는 청년답게 황제의 몸은 장성해 있었지만 어쩐지 그의 어깨는 축 늘어진 듯 보였다.

"열흘 후에 본국으로 가는 배를 탈 생각입니다."

"그래요 ? 가시기 전에 저에게 한번 들렀다 가시구려. 그 동안 터키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고생이 많으셨는데 내가 그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망극하옵니다."

간 다는 사람을 잡을 수는 없었다. 황태후는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었다. 바닷길을 열어서 지중해 재해권을 다시 확보한다면 지원물자와 추가 병력을 그라나다로 실어 나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전투에서 유럽 연합군을 이길 수 있을까 ? 황태후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전에 부탁 드린 공장 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공사가 끝나는 것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훌륭한 공장을 만들어 보일 것입니다."

"그건 잘 되었군요. 듣자니 터키제국의 기술자들이 만든 증기기관을 설치한다는 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

"그렇습니다. 나중에 고장이 나더라도 고치기가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 그래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어쨓든 정이 많이 들었는데 섭섭합니다. 대사 ?"

"망극하옵니다. 그럼 평안하시옵소서"

황태후는 공장이 터키제국의 기술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는지 얼굴이 조금 펴졌다. 김영일은 황제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는 것을 느꼈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절하면서도 뭔가를 갈구하는 듯한 눈빛이 김영일의 가슴을 아프게 찔러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3 천군2부 +45 15.07.22 7,505 103 15쪽
152 천군2부 +4 15.07.22 4,829 72 22쪽
151 천군2부 +3 15.07.20 3,894 74 14쪽
150 천군2부 +1 15.07.20 3,588 76 28쪽
149 천군2부 +2 15.07.17 3,848 82 26쪽
148 천군2부 +2 15.07.16 3,525 83 34쪽
147 천군2부 +2 15.07.16 3,334 89 20쪽
146 천군2부 +3 15.07.14 3,287 73 19쪽
145 천군2부 +2 15.07.14 3,330 72 19쪽
144 천군2부 +4 15.07.13 3,521 83 20쪽
143 천군2부 +6 15.07.11 3,673 97 21쪽
142 천군2부 +2 15.07.10 3,525 91 24쪽
» 천군2부 +2 15.07.09 3,627 100 24쪽
140 천군2부 +5 15.07.08 3,612 101 31쪽
139 천군2부 +1 15.07.07 3,457 93 25쪽
138 천군2부 +2 15.07.07 3,821 85 31쪽
137 천군2부 +2 15.07.06 3,555 80 20쪽
136 천군2부 +3 15.07.02 4,060 92 37쪽
135 천군2부 +2 15.07.01 3,581 92 15쪽
134 천군2부 +2 15.07.01 6,113 87 16쪽
133 천군2부 +2 15.06.23 3,655 97 16쪽
132 천군2부 +3 15.06.22 3,829 86 16쪽
131 천군2부 +2 15.06.19 3,648 108 15쪽
130 천군2부 +2 15.06.18 3,646 90 16쪽
129 천군2부 +8 15.06.17 3,450 102 14쪽
128 천군2부 +3 15.06.17 3,687 76 13쪽
127 천군2부 +6 15.06.10 4,276 81 16쪽
126 천군2부 +2 15.06.10 3,242 79 16쪽
125 천군2부 +2 15.06.10 3,502 80 16쪽
124 천군2부 +3 15.06.09 3,712 111 17쪽
123 천군2부 +3 15.06.08 3,901 98 16쪽
122 천군2부 +2 15.06.07 4,020 82 17쪽
121 천군2부 +1 15.06.06 3,521 79 17쪽
120 천군2부 +4 15.06.05 3,551 84 16쪽
119 천군2부 +2 15.06.04 4,257 82 16쪽
118 천군2부 +3 15.06.03 3,708 103 18쪽
117 천군2부 +4 15.06.02 4,242 99 17쪽
116 천군2부 +3 15.06.01 4,199 105 17쪽
115 천군2부 +4 15.05.29 4,301 98 17쪽
114 천군2부 +2 15.05.29 4,167 100 18쪽
113 천군2부 +5 15.05.28 4,633 131 17쪽
112 천군2부 +4 15.05.27 4,872 124 17쪽
111 천군2부 +3 15.05.22 4,553 93 18쪽
110 천군2부 +2 15.05.21 4,800 113 14쪽
109 천군2부 +5 15.05.20 4,705 112 12쪽
108 천군2부 +3 15.05.18 4,810 118 19쪽
107 천군2부 +3 15.05.10 5,280 117 19쪽
106 천군2부 +3 15.05.09 4,877 144 18쪽
105 천군2부 +3 15.05.08 5,102 104 19쪽
104 천군2부 +4 15.05.07 5,844 12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