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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에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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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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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천군2부

DUMMY

"들어오시게 하라"

황궁근위대 예니체리 대장이었던 무할라비 장군은 무스타파를 몰아내고 그 추종세력을 진압한 공을 인정 받아 터키제국의 재상이 되었다. 타르한의 연인이기도 한 무할라비가 안으로 들자 타르한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찼다.

"어서 오시오 재상."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 태후폐하 "

"요즘은 좀 뜸합니다. 재상 ? "

태후가 되기 전에는 나흘이 멀다 하고 타르한을 찾던 그가 요즘은 뜸했다. 태후라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태후폐하. 불러주지 않으시면 소인이 찾아 뵙기 민망하옵니다. 보는 눈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음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그렇겠지요. 오늘 재상을 부른 이유는 저 번에 논의한 일이 어찌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입니다. 언제쯤이면 터키제국의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있겠습니까 ?"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기술자들이 대한제국에서 들여온 증기선을 응용하여 증기기관을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의외로 간단한 원리라고 합니다. 머지않아 저희 제국도 큰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잘 된 일입니다. 지금도 그라나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교도들의 학살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저 흉악무도한 이교도들은 우리의 형제들을 괴롭히고 있다지요 ?"

"그렇습니다. 스페인의 새로운 황제인 필립4세는 그 아버지보다 더 가혹하게 알라를 믿는 형제들을 탄압하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쯤 우리 형제들을 이교도의 손아귀에서 구출할 수 있을 지…."

타르한은 터키제국을 하나로 묶는 방법으로 기독교도들에게 당한 치욕을 지방영주들에게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그라나다를 비롯한 이베리아반도와 유럽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교도들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을 빌미로 그라나다 해방을 자주 이용하고 있었다. 타르한이 오늘 재상을 부른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끝낸 타르한은 대한제국에서 수입한 물건에 생각이 이르자 작은 흥분이 일었다.

"재상.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

타르한이 자리 밑에서 꺼내 보인 것은 동그란 작은 원반 같은 것이었는데 그녀가 바람을 불어넣자 희한한 모양을 한 작은 비닐 방망이로 변했다.

"모르겠사옵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

"보면 볼수록 대한제국은 재미난 것을 만들어낸단 말입니다. 이건 남녀간 사랑을 할 때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임신에 대한 두려움을 깨끗이 잊어버릴 수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 상인들을 통해서 유럽 상류층으로 많이 퍼진 모양입니다. 한번 사용해 보시겠습니까 ?"

타르한의 노골적인 유혹에 재상이 의미 있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타르한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받아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손끝에 묻어나는 기름 같은 것이 찝찝하기는 했지만 이것만 있으면 임신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이건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옵니까 ?"

"일단 이렇게 부풀어 오는 것은 사용하지 못 한답니다. 사용법은 오늘 밤에 직접 알려드리지요. 보면 볼수록 유용한 물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황제께서는 요즘 통 소식이 없으십니다. 잘 지내고 있겠지요 ?"

"그렇습니다. 대한제국 대사관에서 매일 폐하의 근황에 대한 보고서를 우리에게 제출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자전거라는 물건을 타려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약간 다쳤다고 합니다."

"무릎을 다쳐요 ? 고귀하신 황제께서 그런 물건을 뭐 하러 탄단 말입니까 ? 크게 상하신 것은 아닙니까 ?"

무스타파 일족을 척살할 때는 냉혈한 같은 마음을 가졌던 타르한이지만, 황제가 다쳤다는 소식에 자상한 어머니로 돌아와 있었다.

"너무 심려 마시옵소서. 폐하께서 세상만물에 호기심이 동하는 나이가 아니시옵니까 ? 알라께서 보살펴주시는데 큰 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렇지요. 알라께서 하시는 일이신데. 아무튼 이번 터키제국 함대가 개편되면 그라나다를 수복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중해를 장악하면 더 이상 이교도 놈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 대한제국에서 폴란드와 전쟁을 선언하고 북쪽지방을 탈환하고 있는 지금 우리도 우리의 옛 땅을 되찾고 우리의 형제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시칠리에 있는 아라곤 왕에게 사자를 보내심이 어떻겠습니까 ?"

"페르난도가 비록 필립에게 쫓겨 왔다지만 그 역시 엄연한 이교도입니다. 그런 자가 우리와 손을 잡을 지 의문이지만 일단은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페르난도가 가지고 있는 함대를 이용할 수만 있다면 저희들도 큰 힘이 되겠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대한제국의 지중해 함대가 우리의 후방을 책임지고 방어해주기로 했으니 페르난도가 우리의 제의를 거절하고 뒤통수를 치지는 못 할 것입니다."

무할라비 재상은 타르한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육로를 통한 지원이 가능하긴 했지만 그 길은 너무 멀었다. 만약 터키함대가 그라나다를 수복하는 와중에 페르난도가 필립4세와 협약을 맺고 시칠리를 중심으로 지중해를 봉쇄하면 터키제국의 함대는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단기 3957년(1624) 가을 로마 교황청

작년에 교황으로 추대된 마패오 바르베리니 추기경은 우르바누스8세라는 이름으로 로마 교황청을 이끌면서 추기경회의로부터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가 개혁안을 들고 나서기까지는 말이다. 우르바누스8세는 교황 취임 1년을 넘기면서 기독교사회의 내부 모순과 이교도들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위해 공인된 문건들에 대한 재해석을 추진해 나갔다. 우르바누스8세의 재해석은 추기경 회의와 마찰을 빚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로마의 힘과 권위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지 깨트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서 오시오 갈릴레이. 마조니 교수는 잘 지내시오 ?"

베르니니 잔 로렌초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교황이 성 베드로 성당으로 들어서는 갈릴레이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상화를 그리던 베르니니는 교황이 움직이자 붓을 잡은 손을 내려놓고는 화구를 들었다.

"교황님. 이렇게 면담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파도바 대학을 그만 둔 후로는 만나지 못 했습니다만 가끔 편지로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마조니 교수도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베르니니가 살짝 고개를 흔들자 갈릴레오는 가볍게 답례를 하고 교황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입을 맞췄다. 자신의 오랜 친구가 교황이 된 것은 그에게 커다란 행운이 될 것 같았다.

"자네가 올린 탄원서를 읽어 보았네, 나폴리에 있는 캄파넬리를 석방시켜달라고 ?"

"그렇습니다. 그는 제 오랜 은인이며 스승이십니다. 참 지혜로운 사람이었는데 고문이 얼마나 가혹했던지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하더군요. 재정신이 아닌 사람을 차가운 감옥에서 꺼내주신다면 교황님의 인자하심을 널리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가 ? 하지만 요즘 벨라르미노 추기경과 의견 충돌이 있어서 말야 !"

교리를 책임지고 있는 벨라르미노 추기경은 로마의 모든 힘을 오로지 신교와 싸우기 위한 구교 진영의 단결에 쏟아 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교황에게 교황청의 힘을 분산시키지 않도록 종용했다. 그는 교황의 이름으로 구교들이 힘을 합쳐 신성로마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관여하길 원하기까지 했다.

"캄파넬리는 미치광이일 뿐입니다. 부디 교황청의 관대함을 보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저는 세계를 탐구하는 과학자로서 코페르니쿠스의 저서와 그 외 많은 과학자들의 성과물들이 금서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에 마음이 아픕니다. 과거에도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과학적 사실에 대한 탐구는 성스러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역행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부디 교회의 관용을 베풀어 주십시오."

"캄파넬리는 미치광이든 아니든 그가 떠들어대는 말은 지극히 불순한 것들로 가득 차 있지 않소 ? 언젠가는 성경자체를 믿지 못하겠다고 할지도 모르지. 일단은 그가 미쳤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폴리에 특사를 보내도록 하죠. 페르난도가 아라곤에서 밀려나 그곳에 와 있으니 정말 그가 미쳤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되는데 하지만 자네가 약속을 해줘야겠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

"자네도 알다시피, 공회에서는 이미 8년 전에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완벽한 오류라고 세상에 공표했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공인된 곳에서 내린 결정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 하나님의 신성한 권능을 부여 받은 교황청에서 내린 결론을 명백히 반박할 증거가 없는 한 그 어떤 것도 교황청의 권위를 넘볼 수 없단 말이야. 그런데 터키제국을 통해서 들어오는 대한제국의 수많은 책들이 다 이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듯 해. 증명 불가능한 것들로 일반 대학생들을 현혹시키고 있단 말야. 금서들로 지정해서 모두 출판과 소장을 금지하고 있지만 알게 모르게 퍼져나가고 있어. 우리 기독교세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나는 심히 우려된다네. 이교도들과 사악한 악마로부터 하나님의 종들을 지킬 막중한 의무를 지고 있는 나로서는 말야."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만."

갈릴레이는 케플러에게 들은 연주시차나 광행차에 대해 말을 하려 했지만 교황이 그의 말을 막고 나섰다.

"그래서 말야. 자네는 온 유럽이 인정한 가장 뛰어난 과학자가 아닌가? 자네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에 관한 책을 기술하고 출판하는 것을 허락하겠네. 검열관에게 내 일러두지. 하지만 두 우주체계를 공정하게 취급해야만 한다는 조건이 달려있어.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마치 있는 것처럼 논의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나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우주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 우주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 를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 어때 내 조건에 다짐할 수 있겠나 ?"

교황은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교황청의 입장을 옹호하는 저서를 저술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가 갈릴레이에게 저술을 허락한데는 전 유럽 지식인들이 인정하는 갈릴레이의 입을 빌어 두 우주체계가 실제로는 모두 불안전하며 신의 영역인 우주를 인간이 알아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주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갈릴레이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케플러가 편지에서 밝혔듯이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은 이미 증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교황님."

"내가 자네를 얼마나 신뢰하는 지를 잊지 말기 바라네"

캄파넬리의 출옥과 코페르니쿠스의 저서에 내려진 금지법령을 철회시키기 위해 로마를 방문했던 갈릴레이는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자신의 저서에 대한 출판허락을 받게 되자 교황에게 감사의 말을 수도 없이 했다. 교황 검열관이 내민 출판 조건서에 서명을 한 갈릴레이는 캄파넬리에게 희망적인 서신을 보내고 나서 서둘러 로마를 떠났다.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케플러가 보내온 열역학을 응용한 증기기관을 만드는 것을 제자에게 넘겨주고 '2개의 주된 우주체계'에 대한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열역학이라는 것에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오랜 숙원인 천체를 다루는 이 일이야말로 그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나폴리 한 교회의 지하 종교감옥

"캄파넬리 그대의 편지를 받고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답답했었는데 오늘은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쓰네. 우리의 영원한 친구이자 하나님의 충복이신 우르바누스8세 교황께서 그대의 출옥에 대해 관심을 가지셨네. 비록 사면은 아니더라도 감옥에서는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네. 하지만 출옥하더라도 당분간은 연금 상태를 감수해야 할거네."

캄파넬리는 나폴리 종교 감옥에서 갈릴레이의 편지를 다 읽고는 잘게 잘라서 입 속에 집어넣고 흐뭇한 표정으로 씹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 무렵 페르난도와 가르디는 특사들의 방문을 받고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나폴리와 시칠리를 오가며 필립에서 빼앗긴 옛 영토를 찾을 방법을 강구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던 그들로서는 두 명의 특사가 가져온 조건이 서로 방법을 달랐지만, 양쪽 다 구미가 당겼다.

"캄파넬리를 로마로 보낸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더군다나 교황께서 직접 나선 문제라면 말야. 하지만 로마가 정말로 그럴 만한 힘이 있는지 모르겠군."

페르난도는 주교들의 눈치나 보고 있는 교황청이 필립4세에게 압력을 넣는다고, 필립4세가 순순히 물러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교도인 터키제국과 연합하자니 자칫 범기도교권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터키와 연합해서 스페인과 전쟁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가르디 재상은 로마의 힘을 업고 프랑스의 힘을 빌릴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장미빛 환상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능성은 터키가 훨씬 많은데 위험부담이 있고, 로마는 안전하기는 한데 가능성이 희박하단 말야. 용병들 모집상황은 어떤가 ?"

"그것이. 지금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쪽에서 용병들을 사들이고 있어서 쉽지가 않습니다. 나폴리인들은 배를 타지 않으면 맥을 못 추는 족속들이라"

말끝을 흐리는 가르디를 못 마땅한 듯 바라보던 페르난도는 군대를 키워놓지 않은 자신이 더 한심스러워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캄파넬리를 로마로 보내고, 터키에게는 병력을 보태줄 수는 없지만 적대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선에서 밀약을 성립 시키도록 하게. 재상은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한번 프랑스를 다녀오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가르디가 총총히 물러가자, 페르난도는 아센시오를 불렀다. 비밀리에 대한제국으로부터 신무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아센시오는 아라곤의 유일한 힘인 재력을 바탕으로 수에즈에 있는 대한제국과 물밑작업을 일 년째 해오고 있었다. 아센시오가 성공만 한다면, 지금 있는 병력만으로도 바르셀로나를 탈환하고 옛 영토를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기 3957년(1624) 가을 자카르타

근대적 도시로 완벽하게 건설된 자카르타는 상주인원 십만에 유동인구 년 십만을 자랑하는 동남아 최대 항구도시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말레이반도와 자바섬, 슈마트라섬, 필리핀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상선과 여객선들이 자카르타를 드나들었다. 호주와 이집트로 향하는 거의 모든 선박들은 자카르타를 들러 보급을 받았기 때문에 항구 주변은 언제나 장사치들로 북적댔다. 대한제국을 배신한 아체국과 조호르국은 그 배신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서 왕국자체가 공중분해 되고 대한제국은 일방적으로 주변 도서를 대한제국 영토로 선언해 버린다. 그 힘의 정점에 자카르타 해군 기지가 있었다.

자카르타항 왼쪽에 자리 잡은 자카르타 해군 기지 사령부 4층 건물은 석조 건물로 지어졌고 벽면에 부채살 모양의 흰색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강렬한 햇빛을 사방으로 반사시키는 사령부 건물은 그 웅장함 이 주변 여타의 건물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지중해로 향하는 함대가 예정대로 오늘 정오에 외항에 들어옵니다."

가무라 소령이 곡명기 사령관에게 결제판을 내밀며 오늘 정오 행사를 다시 한 번 상기 시켰다. 언제나 그렇듯, 군 행사는 조용하게 치러지는 게 관례였다. 그래서 아무리 항모가 입항한다 하더라도 곡명기 사령관이 직접 나갈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가무라 소령이 사령관에게 이 일을 상기시킨 이유는 후임 지중해 함대 사령관이 탑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들어온다는 놈은 엄청난 놈이라지? 마음이 설레는 구만."

함대 사령관 곡명기 대령은 내일이면 보게 될 2101함과 그 호위함들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자카르타 해군 기지는 보유함정만으로 본다면 가장 많은 숫자를 자랑했지만 질적인 면에서 본다면 다른 함대 분함대 화력에도 못 미칠 지경이었다. 수만개의 섬으로 구성된 주변해역 특성상 곡명기 대령 휘하의 함정은, 다섯 척의 초계함과 기함인 4418번 전투함을 제외하면 500톤 안팎의 해안 순시선이 대부분이었다. 곡명기 대령의 끊임없는 순양함 배치 요구는 지중해 함대와 파나마함대의 증강 사업 때문에 항상 후순위로 밀려났다. 이번 2101 전투단 역시 노후화된 고구려 전대를 대치하기 위해 크레타기지 완성에 맞추어 지중해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해적들은 아직도 극성인가 ?"

"요즘은 좀 뜸합니다만, 원천적으로 해적행위를 근절할 만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백 여척의 해안 순시선들이 주변 해역을 순찰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지역의 항로가 위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야간에는 위험이 배가되고 있습니다. 주로 그 피해선박이 아랍상선이란 것도 문제입니다."

곡명기는 10일 전에 아랍상인 대표와 가진 면담이 떠오르자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아랍 상인들은 계속해서 상선이 해적들에게 공격을 받자 자신들도 무장을 하겠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아니면 상선대를 호위해줄 함대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전자는 대한제국정책에 반하는 것이고 후자는 사령부의 능력을 상회하는 요구였다.

"함대에 야간 작전이 가능한 함정은 몇척이나 되나 ?"

"기함까지 포함한다면 총 10척입니다."

"기함을 그런 일에 투입해야 한단 말인가 ?"

그렇다고 잠수함을 투입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아체국의 잔당들로 의심되는 해적들은 빈약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지만, 무방비 상태의 아랍 상선들은 해적선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대한제국은 영해를 운항하는 모든 선박의 무장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이를 어기면 상선의 주인은 막대한 벌금과 몇 달간의 지리한 조사를 감수해야 했다.

"제주 사령부에서는 지원해준다는 소식은 없나 ?"

이럴 때 야간전이 가능한 함정이라도 보내주면 그로서는 한결 짐을 덜 수 있었지만 제주 사령부는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감감 무소식이었다. 해적들은 대한제국의 약점을 잘 알고 있어서 달이 없는 밤에는 마치 자기 세상인 양 바다를 헤집고 다녔다.

"아직 없습니다. 자체 해결하라는 전문만 앵무새처럼 보내오고 있습니다."

"할 수 없지. 4척의 초계함에 각각 순시선을 배치해서 야간 순찰을 시행하는 수 밖에. 무엇보다도 해적들의 근거지 파악이 중요해. 전 해안을 다 뒤져. 구역을 나눠서 하나씩 하나씩 뒤지라구."

곡명기 대령은 자신이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해적을 완전히 소탕하길 바라고 있었다.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그로서는 내후년으로 다가온 장성 진급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지역에서는 또 다른 제국이라고 불리는 해적을 완전 소탕한다면 그에게 가산점이 붙게 되고 그나마 다른 경쟁자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만 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 자네는 그 말투를 아직도 못 고쳤나 ? 자신감을 가지야 큰 일을 하지. 같습니다. 같아요. 이런 애매모호한 말투 좀 쓰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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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천군2부 +4 15.05.27 4,872 124 17쪽
111 천군2부 +3 15.05.22 4,553 93 18쪽
110 천군2부 +2 15.05.21 4,800 113 14쪽
109 천군2부 +5 15.05.20 4,704 112 12쪽
108 천군2부 +3 15.05.18 4,810 118 19쪽
» 천군2부 +3 15.05.10 5,280 117 19쪽
106 천군2부 +3 15.05.09 4,877 144 18쪽
105 천군2부 +3 15.05.08 5,101 104 19쪽
104 천군2부 +4 15.05.07 5,844 12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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