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군2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영국함대의 상륙에 대비해야겠군. 브레스트를 돌아 로리앙으로 들어온다면 큰일 아닌가 ? 발틱함대가 제때 도착해야 할 텐데 걱정이군. 부상자들 때문에 마지노가 공격시간을 늦춰야 할 텐데. 이런…."
마지노의 침착함 때문에 일격필살의 전술이 어긋나더니 이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영국함대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발틱 함대에 지원요청을 해놓고 있었지만 시간을 맞출지 의문이었다. 전투에서 주도권을 빼앗긴 이길주 여단장은 신성로마제국에 퍼져있는 4361여단에게 도움을 청할까 하다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도보로 움직이기에는 로리앙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크레타 지중해 함대 사령부
모스크바에서 돈강을 따라 아조프해와 흑해를 거쳐 크레타기지로 이어지는 대한제국 4군 통신망을 통해 지중해 함대에 출동대기명령이 하달되자, 크레타 기지 전체가 조용히 용트림을 시작했다. 전략기동함대와 지중해 함대가 동시에 정박하고 있는 크레타 기지는 상주 군인만 5만이 넘는 1급 해외 기지로 성장해 있었다.
"발틱함대가 꼼짝을 못 한다는군. "
때아닌 한파로 신항 주변이 두께 30센티미터 이상의 얼음으로 뒤덮여 버리자, 발틱함대는 완전히 발이 묶여 있었다. 이길주 여단장을 지원하기 위해 출항 준비를 하던 발틱함대는 출항자체가 취소되고 그 임무를 지중해 함대에 넘겨줘야 했다.
"전단장에게 서둘러 출항하라고 하게."
김성일 지중해 함대 사령관은 대한제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2101함을 주축으로 한 2101 전투 항모 전단을 로리앙으로 파견하는 명령서에 서명을 하고 비서관에 건넸다. 책상 위에 해도를 펼치고 거리 환산표를 찍어보던 사령관이 긴 숨을 내쉬었다. 크레타에서 가는 거리가 신항보다 천 킬로미터이상 멀었다. 시속 13노트로 항진하더라도 3일 이상이 더 걸릴 수 밖에 없었다.
"2101전단이 빠지면 지중해 방어가 쉽지 않겠습니다. 터키해군에게 이점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 까요 ?"
"전략기동군 함대가 있긴 하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래도 알려줘야겠지. 그건 기지 사령관에게 일임하고, 전략기동군단에 협조 공문을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크레타기지에는 전략기동군 4개 사단병력과 전략기동군 소속 함대, 그리고 지중해함대 소속 전단과 함정, 크레타방어 사령부 육군 병력 등 총 6만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전략 기동군은 천군부 직속부대로 말 그대로 전략적 행동을 위해 존재하고 있었기에 여타의 지역사령부의 명령계통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수립된 작전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기에, 김성일 소장명의로 협조공문이 크레타에 주둔중인 전략군 소속 사령부에 전달된다 하더라도 그들의 협조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예인선이 떨어져 나갑니다."
오만 톤급 2101함을 외항으로 예인 하기 위해 500마력 엔진을 장착한 예인선 여덟 척이 양 옆으로 네 척씩 바짝 붙었다 떨어졌다. 2101함이 해군기지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수로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물길을 잡아 주던 예인선이 항모 주위를 맴돌다 멀어져 갔다. 2101함이 크레타 해군항을 빠져 나오길 기다리던 3척의 순양함과 2척의 전투함이 넓게 산개하면서 2101함이 함대 중앙에 오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로리앙으로 전속 항진"
총 6척으로 구성된 전단이 지중해 물살을 가르며 속도를 높여 최고 속도로 지브랄타 해협을 행해 일직선으로 움직였다. 전단 전방에는 잠수함 3척이 주변을 초계하며 유럽함대나 터키함대의 출현을 감시하고 다녔다.
"서경120도에서 일차 변침하고, 138도에서 이차 변침합니다. 지브랄타 해협 통과 후, 반도를 원형을 그리며 이동합니다. 앞으로 200시간 후 로리앙에 도착하겠습니다."
항해장교는 함대의 진행방향을 나타내는 직선들을 죽죽 그어대며 변침 장소와 변침 방향들을 세세히 기록해 나갔다. 이윽고 투명종이에 예상 항해도가 완성되자 측면에 걸려있는 해도를 들추어 지중해 해도 위에 겹쳤다.
"3직제로 변환한다."
2101함장의 명령에 따라 출항을 위해 전원 대기상태에 있는 수병들이 3직제로 근무방식을 바꾸며, 비번인 장병들이 근무지를 벗어나 숙소로 돌아갔다. 고구려전단과 임무를 교대한 이래로 원거리 항해가 처음인 그들은 막연한 설레임마저 느꼈다.
대서양 로리앙 부근 해안
에드워드 허버트 제독은 50척의 범선으로 이루어진 함대를 이끌고 리버플 항을 출항하진 나흘만에 브레스트곶을 지나 로리앙에 도착했다. 찰스 1세의 명령을 받는 이 함대는 프랑스의 루이 13세를 도와 로리앙 지방을 평정하고 시실리섬으로 터키 함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조용하군"
주변 해역은 허버트제독의 함대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있었다. 에드몽이 함대를 가지고 있을 리 만무했고, 프랑스의 함대는 지중해 툴롱과 도버해협 맞은편에 있는 칼레에 붙박여 있었기에, 주변은 조용하기만 했다. 허버트 제독이 이끄는 영국함대에 위협을 줄만한 세력은 주변에 존재하지 않았다.
"부관. 전 함정에 전투명령을 하달하고, 상륙준비를 한다."
"붉은 깃발을 올려라. 발광신호"
허버트가 승선하고 있는 골든 브리지 호는 제임스 왕의 아들 찰스 1세의 명령에 따라 새롭게 건조된 배로 만재수량 이천톤에 함포만 80문을 장착하고 승선인원이 천명이 넘는 당대 최대의 전투함이었다. 골든 브리지호에 장착된 80문의 함포는 모두 18인치 구경에 포신이 긴 포로 포탄 장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었지만, 사거리는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개량된 이 함포에서 쏘아대는 포탄은 무려 3마일을 날아갔다. 대한제국 함대를 겨냥해서 개발된 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신형 함포는 영국 함대의 자랑이기도 했다.
50척의 범선이 기함의 명령에 따라 부산을 떠는 동안, 영국함대의 밑을 조용히 지나치고 있는 0361번 잠수함에서도 전투준비에 수병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031시리즈로 61번째 건조된 0361함은 대구어뢰 10문과 피라미 15문을 장착해야 했지만 대구어뢰를 장착하지 않고 있었다. 대구어뢰 대신에 소모품을 더 많이 적재하고 있는 0361함은 그만큼 작전일수를 늘릴 수 있었지만, 공격력은 일할도 갖추지 않고 있었다.
"먹이가 너무 많아 큰일이군"
0361 잠수함 함장은 자신의 무장에 비해 저지시켜야 할 함이 너무 많아 걱정이었다.
"상륙을 허용해야만 하는 건가! 부장. 피라미 발사 준비"
"잠망경 심도로"
영국함대 좌측 1킬로미터 지점에서 떠오른 잠수함에서 잠망경이 수면위로 불쑥 올라왔다. 수십 척의 우아한 범선이 잠망경에 가득 잡혔다. 더없이 좋은 공격 위치인 함대 좌 측방을 잡은 함장이 무장관과 연결된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1번부터 10번까지 순차 발사한다. 발사 후 급속 재장전"
"퐁퐁퐁"
10발의 피라미가 0361함을 빠져 나와 직전으로 뻗어 나갔다. 무유도 어뢰라 하더라도 어뢰가 빗나갈 염려는 없어 보였다. 적의 함대는 밀집 대형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천 톤급의 영국 범선은 피라미 한발의 명중으로는 침몰 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피라미는 이런 대형 전열함을 목표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500톤급 안팎의 범선 공격을 위해 개발되었기 때문이었다.
"재장전"
선두 어뢰군이 함대로 다가갈 무렵 2차 피라미 5발을 발사한 잠수함이 잠망경 심도에 머물면서 계속해서 영국함대를 주시했다.
"3시 방향에 이상한 물체 출현. 거대한 물고기 같은 것 십여개가 함대에 일직선으로 다가온다."
30미터 이상 올라간 마스트에서, 접근하는 적이나 위협을 탐지하던 견시병이 마스트에서 브리지와 연결된 긴 대나무 통에 입을 대고 외쳤다. 텅 빈 대나무 관을 타고 내려온 목소리가 허버트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함대 신속히 산개하라. 모든 함포는 발포 대기"
'말로만 듣던 잠수함이 근처에 있는 건가 ?'
허버트는 출항 전, 찰스 1세가 보낸 정보문건을 기억해냈다. 대한제국이 보유하고 있다던 잠수함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적혀있던 정보문건은 이럴 경우 대처할 요령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었다.
"후위함대 전속 선회하여 후진. 선두함대 전속 전진"
정보문건에 의하면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어뢰는 일부 신형어뢰를 제외하면 모두 일직선으로 움직인다 했다. 변침할 만 한 거리에서 어뢰가 발견되면 충분히 회피할 수 있었다.
"좌 현포 순차 발사"
허버트는 곧 이어 보이지 않는 바다 속 적을 향해 함포 발사를 명령했다. 함대가 양분되는 와중에서도 좌 현포 발사가 가능한 함들이 순차적으로 포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미 장전되어 있던 함포들이 각기 다른 각도로 쏘아 올려져 시시각각 다가오는 어뢰와 어딘가에 있을 대한제국 잠수함을 향해 날아갔다.
"급속 잠항. 해역을 이탈한다."
0361함 함장은 느긋하게 피라미가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갑자기 포연이 보이며 영국함대에서 함포를 발사하고 있었다. 두어 발씩 발사되는 함포탄이 점점 자신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심도 80까지 내려간다. 침로 050. 10노트"
"퐁퐁퐁"
그 와중에도 수면위로 떨어지는 포탄이 만들어낸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급격히 심도를 낮춰갔기에 잠수함이 심하게 앞으로 기울어졌다. 함장은 천정에 매달려 있는 손잡이를 의지하며 흔들거렸다. 처음으로 당하는 공격인지라, 승무원들 역시 얼굴이 굳어졌다.
"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함이 심하게 떨려왔다. 충격으로 인해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지 매달려있는 백열등이 계속해서 깜박거렸다. 지휘실이 혼란스러웠다.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고 있는지 모두들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각 부서는 피해 보고 하라"
함장 역시 처음 당하는 공격이었지만 침착해야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각 부서 보고가 들려오지 않자 함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정신차려. 피해보고 하란 말야!"
"부장. 지금 심도는 ?"
얼이 빠져있던 부장이 함장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퍼뜩 차리고 심도계로 눈을 돌렸다.
"심도 50"
"심도 고정"
"심도 고정"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잠수함의 심도를 조정하는 조정키를 잡고 있던 장교 하나가 부장의 말에 잠수함을 수평으로 만들기 위해 조정키를 급히 잡아 당겼다. 또 한 번 잠수함이 요동 치더니 수평을 유지하며 안정화 되었다. 지휘실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곧 이어 각 부서의 보고가 이어졌다.
"기관실 이상 무"
"어뢰실 이상 무"
"3번에서 8번 소리기를 잃었습니다."
"통신실 이상 무"
급 기동으로 인해 가장 바깥쪽에 있는 소리 수집기가 파괴된 피해를 입었지만 전체적으로 함에는 이상이 없었다.
"소리실. 우리가 발사한 어뢰는 어떻게 되었나 ?"
"주변이 너무 소란스러워 추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마를 심하게 찡그린 함장은 함 전체 통신망과 연결된 단추를 누르고 심호흡을 한번 했다.
"함장이다. 나는 제군들의 행동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 대한제국 해군으로서 그중 정예라는 잠수함 장병으로서 제군들이 보여준 행태는 일찍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대한제국민의 안위를 책임진 제군들이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잠시나마 이성을 상실한 행동을 보였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물론 제군들이 처음으로 적의 공격으로 인해 당황스러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내가 느끼는 실망감과 당혹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제군들의 잘못은 곧 이 함을 책임지고 있는 나의 잘못임을 통감하며, 이 시간부로 나는 0361함이 잠수함이길 포기한다. 기지로 귀환 할 때까지 함을 부상시켜 초계임무를 수행한다."
모든 장교들을 비롯한 지휘실 요원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부상"
"부상"
"부장이 함 지휘권을 받는다."
"차렷. 부장이 지휘권을 인수 받습니다."
착찹한 심정으로 자신의 방에 들어온 함장은 불과 10분전의 상황을 곰곰이 뜯어보았다. 어뢰를 발사하자 마자, 저쪽에서 대응 포격이 있었고, 자신의 함은 해역을 이탈해야만 했다. 영국 함대에게 자신이 노출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울러 영국함대는 대한제국 잠수함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잠망경에 보인 함대의 움직임은 어뢰를 회피하기 위한 최선의 기동으로 느껴졌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노출된 건가 ? 아니지, 잠수함을 본적이 없는 놈들이 잠망경을 알아볼 리 없잖아 ?'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불가사의 한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냥 무조건 발포한 건가 ?. 고폭탄이 수중에서 터졌다는 건 영국이 고성능 화약을 개발했다는 것인데. 흑색화약으로 수중 폭파가 가능할까 ?….'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던 함장이 마침내 있는 그대로의 전투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해군에 입대한 이후 맞는 첫 전투였지만 부끄럽기 짝이 없는 보고서를 쓰려 하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고진영은 센 강 하류에서 최우석 일행을 기다리던 0342 잠수함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연락을 해 옴에 따라 최종적으로 최우석 일행의 실종을 확인했다. 고양이와 연락이 끊긴 지 만 이틀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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