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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에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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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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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천군2부

DUMMY

"전 지협입니다."

주인은 이름 석자를 말함으로써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미륵불이 따로 없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평온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그렇습니까 ? 미륵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도 미륵이 보입니까 ?"

허삼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차갑게 식어버린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마신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내 앞에 앉아계신 분이 미륵이 아니십니까 ?"

"눈에 뭐가 끼었나 봅니다. 헛것을 보고 계시는 군요."

전지협이란 주인의 말속에는 손님에 대한 예우나 한 톨의 친밀감 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미륵이 이미 하강하여 극락세계를 세우고 있는데 힘을 보태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극락세계를 지구 전체로 퍼트리기 위해 험난한 고행을 하고 있습니다."

"한족이 3성에서 흘린 피가 아직도 마르지 않고 있습니다."

"민족이란 건 또 무엇입니까 ? 당신들 한족이라 불리는 자들이 오랑캐라 부르는 변방 민족에게 어떻게 했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대한제국에게는 민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한제국민이 있을 뿐입니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이제 그만 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해서 입니다. 최소한 굶어죽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민중구원을 외치는 교리와도 상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글쎄요 ?"

전지협은 여전히 퉁명스럽게 말을 아꼈다. 그는 허삼수가 하는 말에 가장 효과적인 몇 마디만을 툭 던지고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나승민은 강릉을 나와 상해로 가는 길에 전지협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못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

"내가 한때 잡으려고 줄기차게 쫓아 다녔던 사람이야. 그 사람 때문에 대명부 전체를 돌아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네. 아니 그럼 야귀란 말입니까 ?"

허삼수와 야귀와의 숨바꼭질은 대명부 경찰에서는 모두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허삼수는 야귀를 잡으려고 내란이 종결된 이후에도 몇 년을 허비했다. 그러다 대명부에서 그에 대한 수배를 해제하자, 보란듯이 야귀는 이곳 강릉에 터를 잡고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호남성 출생. 내란 전 백련교 외당주. 야귀라는 이름난 도둑으로 한때 만력제의 술잔을 보유하고, 후명 건국에 협조하였으나 백련교 교주 왕명과의 세력싸움에서 밀려남. 내란 후 백련교의 새로운 교주가 됨. 이게 전지협이란 자의 과거인가 ! 아무튼 그들은 영혼의 일부를 상처 받았으니 언제인가는 복수하려 들 거야. 영혼이 다치면 쉽사리 치유가 안 되거든. 자네가 해야 될 일은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거지 그 상처를 들추는 일이 아님을 명심하고록 하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내란에 대한 천군부나 천인단의 정책은 잘못된 정책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군. 안타까운 일이야. 내가 북쥬신 대륙으로 가는 것도 그 때문이고."

"희생이 컸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까 ? 살길을 열어 줬는데도 죽는 길을 택한 저들의 잘못이 더 크겠죠. 그러지 마시고 아예 잡아들이시지 그러십니까 ? 명분도 충분한데"

내란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사람이라면 대부분 대명부에서 추방당했다. 학자들은 예외 없이 추방당했고, 전직 관료나 상인들 중 태반이 대명부를 떠나야만 했다. 화북 3성 주민들도 살아남기 위해 각지로 흩어졌다. 그런 와중에 전지협이란 사람이 강릉에 터를 잡고 버젓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지협은 밖으로 삐져나온 뿌리야. 그걸 없애면 다시 뿌리를 찾기 위해서 땅을 파야 하거든.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야 하겠지만…"

허삼수는 총경시절 대명부 총리가 천인단에 보내는 보고서를 어깨너머로 본적이 있었다. "한족멸살"이라는 충격적인 단어를 사용한 보고서는 내란이 다시 한번 일어나면 한족 전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멸살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었다. 허삼수는 그래서 대명부를 떠나기 전 전지협에게 경고를 해주고 싶었다. 수년 동안 자신과의 숨바꼭질을 해온 적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다.

"어쨌든 자네가 잘 하리라 믿네. 질긴 사람들이니 자네는 더 질겨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참 순박하던데 이곳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가 봅니다."

나승민은 일본부에서 거의 할 일이 없을 만큼 평화로운 근무를 했었다.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대한제국민임을 반기고 있었고 대한제국에 빠르게 동화되어 갔다. 그렇기에 정착단계에 있는 지금은 내란이라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았다.


전지협은 손님들을 내보내고 마시다만 찻잔을 들어올렸다. 차가움에 더해 전해오는 씁쓰름한 입맛이 입 안 가득 차 오르자 차를 내뱉었다.

"기다리면 때가 오려나 ?"

한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많은 지사들이 후명건국에 힘을 보탰지만 후명국은 본래의 취지인 순교를 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한족의 정기를 부러뜨렸다. 식량을 무기로 민중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는 대한제국은 징병제와 관 교육 제도를 확대시켜 젊은이와 어린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있었고, 그렇게 세뇌당한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언제부터인가 신흥 한족 식자층들은 한족들의 사상인 사해동포주의로 포장된 대한제국민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주인과 지구인이라"

전지협은 생각을 정리하던 중 새롭게 등장한 요즘 유행하고 있는 우주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대한일보에는 거의 매일 우주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고, 자신이 보기에 허무맹랑하기 까지 한 소식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우주인이 대한제국의 어느 도시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어제 신문기사가 아닐까 싶었다.

"소동아 소동아 ?"

"네. 사부님"

"차가 식었다. 다시 데워 오너라"

"네. 사부님"

전지협은 소동이 다시 내온 찻잔을 들어 올렸다. 다기를 타고 손끝으로 전해오는 열기가 심장까지 파고 들었다.

'식은 차를 데우기는 쉬운 일이지만, 한번 꺾인 정기는 다시 일으키려면 고통과 피와 오랜 인내심이 필요하다. 피를 흘리라면 얼마든지 흘릴 수 있지만 오랜 인내심은 쉽지 않다. 단 하루의 세월이라도 사람의 정신을 바뀌어버릴 만한 충분한 힘이 있다. 하물며 15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 적들은 고통이 아니라 달콤한 꿀을 나눠주고 있는 지금, 온전히 과거를 돌이킬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 정신을 잃으면 그 민족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적들은 광대한 영토도 모자라 우주를 개척할 생각인가 본데, 우리는 언제 그 발끝이라도 따라간단 말인가 ?"

전지협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대한제국의 그림자에 파묻혀 버린 것 같아,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단기 3957년(1624) 여름 신시

북쥬신대륙 중앙 평원을 경계로 동쪽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부족들의 수장들이 신시에 모여 자신들만의 근대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모임을 하고 있었다. 근 2년간 대륙을 떠돌며 부족간의 규합을 노력한 은하이족을 주축으로 4개의 대부족, 아파치, 스콰미쉬, 아라파호등과 그 밖의 수십개의 소 부족이 참여하여 탄생한 이로쿼이 연맹은 신임 사령관 김경환 대장과 을지문 초자연 연구소 소장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대한제국의 정치제도를 모방한 정치제도를 구축하고 자신들의 행정수도를 결정하기 위해 신시에 모였다.

"아무래도 대한제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극동 주변에 행정도시를 새로이 건설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만,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

은하이는 대한제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로쿼이는 대한제국에게 배울 것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자면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좋았지만 아파치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물론 그것도 좋습니다만, 저는 이곳 신시 주변에 건설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극동 주변은 대한제국민들이 너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진정한 우리의 도시를 건설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곳에 행정 도시를 만들면 크고 작은 마찰이 생길 것이 분명합니다."

"이곳은 극동과 15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입니다. 중간에 있는 큰 산과 사막을 돌아간다면 실질적으로는 족히 2천 킬로미터는 떨어진 곳 입니다. 말을 타고 밤낯으로 달린다 해도 대략 십일이나 걸린단 말입니다. 너무 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그리고 이곳 신시는 대한제국의 성지와도 같은 곳입니다. 그런 곳에 우리들의 도시가 들어선다는 것을 반길지 의문입니다."

회의실 탁자에는 쥬신대륙 전도가 펼쳐져 있었다. 대한제국이 개설한 도로는 신시를 끝으로 더 이상 동쪽으로 움직이지 않았고 지금은 남쪽의 파나마와 북쪽의 앵커리지를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듯 지도에는 도로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대한제국의 힘이 미약한 이곳을 기반으로 나라를 건설해야 합니다. 자 보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을 기점으로 동쪽은 거의 평지나 다름없습니다. 서쪽에 비해 강줄기도 풍부하고 말입니다. 극동에는 연락관을 개설하면 됩니다."

말을 이용한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아파차 족은 서쪽의 산간, 고원지대보다는 동쪽의 평원지대를 선호했다. 여러모로 생활하기에는 동쪽이 편리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문제는 있었다.

"아파치 족장님께서는 수 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쪽에는 포르투갈이라는 백인족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수족들과 교류를 해왔습니다. 작은 마찰이 생기긴 했지만 서로 협조아래 잘 지내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족이나 샤이엔족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백인족은 대한제국에서 막아 줄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말입니다."

"정 그렇다면 저도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의견은 없습니까 ?"

한동안 주변을 둘러본 은하이는 결론을 내리려 했다.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은 것은 섭섭한 일이었지만 다른 부족들의 의견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우리의 행정도시는 이곳에 적당한 곳을 지정하여 건설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따라 이제부터 우리는 이로쿼이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같은 부족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묶여 있으며 모두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

은하이가 이로쿼이 연맹의 초대 맹주로 선출되고 10년의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대한제국과의 조약을 재조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해 가을 은하이와 대한제국에서 파견된 특사와 맺어진 조약은 기존의 조약을 좀 더 세분화 시켰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양국의 발전을 도모하며 서로를 존중한다.

-. 쥬신대륙은 대한제국과 이로쿼이가 평화로이 공존한다.

-. 대한제국은 향후 100년 동안 광물 취득권을 가지며, 이로쿼이는 대한제국의 기간시설을 이용할 권리를 갖는다.

-. 이로쿼이는 경찰 이상의 군대를 조직하지 않으며, 대한제국은 이로쿼이의 요구 시 군대를 파견하여 이로쿼이의 안녕을 도모한다.


이로쿼이가 만들어지고 초대 맹주가 된 은하이는 연맹 결성 후 세상이 급속도로 변할 줄 알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끊임없는 발전 추구보다는 자족하는 삶을 지향하는 그들의 속성으로 인해 은하이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면직물 공장 건설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적잖게 실망하고 있었다.

"선생님 안에 계십니까 ?"

오랜만에 을지문을 방문한 은하이가 을지문의 연구실 문을 여러 번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누구십니까 ? 소장님을 뵈러 오셨나 보군요 ?"

은하이는 약간 어눌한 말소리가 자신의 뒤에서 나자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그의 뒤에는 수수하게 차려 입은 여자가 종이 다발을 가슴에 가득 안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안에 계시지 않는 가 본데요 ?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이 걸로 문 좀 열어주세요"

여자는 은하이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열쇠를 물고 있는 입을 은하이에게 쭉 내밀었다. 은하이는 두 손가락으로 열쇠를 집고는 문을 열어 주었다. 여자는 말없이 안으로 들어가서는 종이다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긴 숨을 내쉬었다.

"휴. 종이가 엄청 무겁네. 들어오세요."

"아 네."

"전 소장님 비서입니다. 차라도 한잔 하고 가시죠. 소장님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연구하는 문박사님의 연락을 받고 급히 떠나셨습니다. 아마 서너 달은 넘게 돌아오지 못 하실 겁니다."

"그래요 ?"

은하이는 답답한 심정을 풀 길이 없어 선생님에게 조언을 얻으려 했는데 그것마저 어렵게 된 것 같아 더 마음이 가라앉았다. 비서라고 밝힌 여자가 차를 끓여 내오자 은하이는 말없이 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비서는 뭐가 바쁜지 은하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가져온 서류를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바쁘신가 봅니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선생님도 안계시니."

"어머. 죄송합니다. 손님이 오셨는데 생각 없이 제 일만 했네요 ?"

그러면서 비서는 부지런히 놀리던 손을 멈추고 은하이를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까 ?"

"네. 최근에 이곳 이로쿼이민들의 면역체계에 대한 연구자료를 정리하고 있던 중입니다. 원래는 극동의료원에서 해야 하는 일인데 소장님께서 알고 싶으시다고 해서 몇 부 가져 온 겁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

아직까지 방문자의 정체를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난 듯 비서가 물었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일단 신분상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알긴 알아야 했다.

"제 소개를 안 했군요. 전 은하이라고 합니다."

"그러시군요. 근데 이름이 굉장히 낯익군요. 어디서 들었더라 ? 저희 소장님과는 친하신가 보죠 ?"

비서는 은하이란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신시에 온지 한 달이 안 된 그녀로서는 연구소 직원들이 명찰을 달지 않으면 얼굴과 이름을 합치시키는 것도 힘들었다.

"서울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죠. 이곳에서도 그렇지만. 그런데 여기 온지 얼마 안 된 모양이죠 ?"

"네. 20일이 조금 넘었어요. 전 장미영이라고 해요. 가끔 들러 주세요. 저 혼자 있으면 심심하니까 ?"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

"그럼요. 더군다나 소장님과 친한 분이신데."

"그건 그렇고 아까 말씀하신 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뭐요 ? 아 이거요 ? 그럼요."

장미영은 들고 온 서류들을 들춰보다가 문득 은하이라는 사람이 이로쿼이 연맹의 맹주라는 것이 떠오르자 자신이 큰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은하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을 몰라본 자신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로쿼이민들의 면역체계가 대한제국민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질병원에 노출되면 쉽게 병이 걸리고 회복기간도 두 배 이상 길다는 연구 자료가 많습니다. 일례로 우리에게는 흔한 감기조차도 치명적인 질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황립의료원에서는 이점에 매우 관심이 많은 모양입니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황립 의료원 의사들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하니까요 !"

은하이는 계속되는 장미영의 설명을 들으며 극동에서 일어난 전염병 때문에 주변지역 은하이족이 피해를 본 것이 생각이 났다. 자신은 대자연의 순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한제국에서는 그 원인과 그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최고 지도자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대한제국민과 접촉해서 생긴 병들이라는 이야기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이로쿼이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다.

"개선 방안이 마련되고 있습니까 ?"

"애석하게도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습니다. 수백 수천년 동안 내려온 유전적인 작용이라 단시일안에 개선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방책을 서둘러 시행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무슨 용무가 있어서 들르신 건가요 ? 맹주님. 아까는 알아보지 못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저 선생님하구 말씀이나 나눌까 해서 왔는데요 뭐."

"아 네. 요즘 바쁘시겠네요 ?"

"전혀요. 할 일은 많은 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은하이의 지금 심정을 가장 적절히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었다. 은하이는 10년 안에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주제 넘는 참견 같지만, 하나만이라도 확실히 해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쉬울 겁니다."

"그 하나라는 것을 하기가 힘들다는 거죠."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장미영를 붙들고 이런 애기를 해야 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기까지 한 은하이는 그만 자리를 일어나고 싶었다.

"학교를 세워보세요. 가장 하기 쉽고도 가장 보람 있는 일이지요. 교육은 백년을 위한 준비라고들 하더라구요."

장미영은 멈추었던 손을 다시 움직이며 서류철을 정리하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은하이는 장미영의 말을 듣고는 쇠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은 지금껏 가장 쉬운 길을 옆에 두고 가장 먼 길을 가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기 3957년(1624) 가을 이스탄불 황궁

무라도 4세를 모스크바에 유학차 보내버린 모후 타르한은 모든 정사를 직접 챙기며 터키제국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었다. 동방무역의 독점권을 이용한 향료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있는 아랍상인들과 중계무역에 종사하고 있는 그리스와 이태리인들의 터키제국 왕래로 터키제국은 개국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전임 황제의 추종세력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데 성공한 타르한은 점점 자신감이 생기자 잃어버린 영토에 대한 미련이 스멀스멀 일어나기 시작했다.

"태후마마 무할라비 재상이 뵙기를 청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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