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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에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최근연재일 :
2015.07.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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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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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쪽

천군2부

DUMMY

제 10 장 신들의 전쟁 - 다윗과 골리앗


북태평양 북위 30도 부근 심해

"아직도 못 찾았나 ?"

"깨끗합니다."

8천 톤급 대한제국 잠수함 041시리즈 후기 잠수함인 0419번 함이 태평양 심해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0419함 지휘실은 함장과 소리장의 목소리만 들릴 뿐, 모두들 입을 굳게 닫았다.

"2102함 위치는 ?"

"추정 위치 남서쪽 70킬로 지점입니다."

"완전히 사막에서 바늘 찾기 군"

함장은 일본 사세보 항을 출항한 이래로, 부상과 잠수를 거듭하며 목표물을 추적하고 있었다.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그는 목표물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총 15척의 자매함은 뿔뿔이 흩어져 0419함과 마찬가지로 목표를 찾느라 북태평양을 휘젓고 다녔다.

"끼이익"

"함장님 ?"

소리장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자, 급히 함장을 불렀다. 단 한번 들려온 소리에 불과했지만, 소리장은 이 소리가 조타기가 움직일 때 들리는 소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조타기 소리입니다. 추정 위치 북쪽 20킬로미터"

"좋았어. 12방향으로 전속력 항진. 항진하면서 서서히 부상한다."

해도를 집어 든 항해사는 목표 추정 위치에 마크를 하고 0419함 위치와 목표의 행동반경을 그려냈다. 일정한 항로가 없는 목표는 추정 위치에 도달하는 동안 어디로 움직일 지 몰랐다. 30분 동안 15노트로 움직이던 489함이 서서히 속도를 죽이며 수면 위로 잠망경을 내밀었다.

"뭐야 ? 아무것도 없잖아. 부상"

적잖이 실망한 함장의 명령에 함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자, 부장이 서둘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중기관총 총신과 거치대를 들고 수병들이 달려 나가 갑판에 설치된 포반에 올려놓았다. 이어 탄박스가 운반되고 탄이 연결되었지만, 목표물은 온데 간데 없었다.

"기관총 설치 완료"

"함장님 10방향에 목표물입니다."

"좋았어"

두 척의 범선이 10시 방향에서 일본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소리장의 귀에 잡혔다. 수평선 넘어 있는 범선을 발견하자 함장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갑판 철수. 추격한다."

속도의 차이 때문인지 잠수함과 범선의 거리는 20여분 안에 공격이 가능한 거리까지 접근해 들어갔다. 망원경으로 목표를 확인한 함장은 지체없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1번 2번 발사관 개방"

"발사"

단 한발만으로도 전열함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대구 중어뢰 2발이 목표를 향해 긴 항적을 그리며 다가갔다. 30노트로 움직이는 대구는 목표까지 불과 1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030 방향으로 미속 접근 3번 발사관 개방"

만일을 위해 3번 발사관을 개방한 함장이 느긋하게 잠망경을 바라보며 흐릿한 웃음을 보였다. 작은 구멍을 통해 보이는 범선은 그제야 어뢰를 발견했는지 방향을 이리저리 틀며 춤을 추고 있었다. 범선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소리장은 기분 나쁜 소리를 계속해서 들어야 했다.

"잠수. 최대각"

갑작스런 최대각 잠수 명령에 잠수키를 잡고 있던 막리상사가 잠수키를 쭉 밀었다. 최대 잠수각 45도로 함수가 쏠리며 앞으로 기울자 미쳐 대비하지 못 한 부장이 허우적 거리며 간신히 손잡이를 잡았다.

"퐁퐁퐁"

"발악을 하는 구만"

범선에서 함포를 쏘아대는 지 이내 수면 위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이어 커다란 폭음과 함께 소리장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명중"

"그래 이 맛이야. 급속 부상한다."

잠시 후 수면 위로 잠수함이 튀어 오르고 수병들이 목표물을 구경하기 위해 갑판으로 몰려들었다. 중어뢰 대구에 직격당한 범선은 하얀 가루를 뒤집어 쓴 체 모든 돛을 내리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2000톤급 범선에 0419함이 천천히 다가가자 대한제국 교육 사령부 소속 온양함 선원들이 똥 씹은 표정을 하고 거수경례를 올렸다. 기분 좋게 답례를 한 0419함 수병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어 댔다.

"사령부에서 이상한 명령만 내리지 않았어도 고래하고 놀고 있을 놈이 자랑이다."

"무슨 소리야. 이상한 명령이라니. 잡히니까 괜한 변명이야. 귀환하면 약속대로 동생하고 자리나 마련하라고."

"얼어죽을. 미화가 너 같은 놈을 좋아하기나 한데.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고 사령부 통신이나 잘 수신해. 미친놈아."

단거리 통신기기를 이용한 온양함과 0419함 함장간의 수다는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온양함을 비롯한 이번 훈련에 투입된 모든 잠수함과 수상함에게 훈련중지와 이동명령이 내려졌지만, 유독 0419함만이 그 통신을 접수하지 못하고 바닷속을 헤매고 다녔다. 0419함과 연결이 되지 않자, 훈련을 총괄하고 있던 2102함에서는 온양함에게 0419함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온양함은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느라 물속에 소리발생기를 집어넣고 한참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어뢰 공격을 받은 것이다.

"함장님 ? 작전지휘본부에서 통신입니다."

무슨 영문인지 알길 없었던 함장은 교육 본부장이 고래 고래 지르는 소리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한참이 지나, 사태를 파악한 함장은 씩 웃어보이며 온양함 함장에게 약속을 받아 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이긴 건 변하지 않았어. 약속은 약속이라고. 미화에게 매일 이 오빠의 무사귀환을 빌어달라고 전해줘라. 정화수 떠놓는 것 잊지 말라고 하고. 난 바빠서 이만 간다. 잠수"

멋쩍은 함장은 서둘러 잠수를 명하고 갑판을 내려왔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라 만나서 이야기라도 하고픈 마음에 잔뜩 몰려나와 큰소리로 떠들던 수병들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갑판에 있는 3군데 출입구로 수병들이 빨려 들어가자 삽시간에 갑판이 텅 비었다.

"이동명령이다. 자카르타로 전속 항진한다. 늦둥이라고 놀림 받겠군. 부장! 최단 거리를 잡아."

"네. 알겠습니다."

"동해함대와 041잠수함 전체가 이동하다니. 그럼 우리집은 누가 지키누 ?"

뒤늦게 명령을 접수한 0419함이 자카르타를 향진 하는 사이에도, 자카르타에는 속속 동해함대 소속 수상함과 잠수함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인도양을 통한 유럽의 항로를 막기 위해 집결하고 있는 동해 함대로 인해 자카르타는 개항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단기3959년(1626) 초여름 서울 천군부 원정군 위원회

천군부내에서 실세중의 실세로 손꼽히는 원정군 위원회 위원들이 하나 둘씩 천군부 본관 4층에 마련된 원정위원회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검은 천으로 가려진 벽면이 열리자 가로 20미터 세로 10미터의 대형 평면 지구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30센티미터 정사각형 2278개로 구성된 대형 지도에는 아프리카와 인도, 동남아 일부와 쥬신 대륙 동부 해안을 제외하고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검은 색 점선으로 표시된 통신로는 서울을 기점으로 청진을 거쳐 베링해를 지나 쥬신 대륙 서안을 타고 내려가 파나마까지 연결되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제주도와 일본을 거쳐 대만 마닐라 자카르타에서 호주로 이어졌다.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러시아부로 연결된 통신로는 천인성에서 이스탄불 그리고 수에즈로 이어지고, 모스크바에 다다른 또 다른 통신로는 스몰렌스크를 거쳐 민스크에 이어졌다. 지도상으로 보면, 전 지구가 대한제국 영향권 안에 들어올 날이 멀지 않은 듯 보였다.

"의장님이십니다."

원정군 위원회 의장이 회의실에 들어서자, 위원들이 가볍게 목례를 하며 의장을 맞이했다. 천군부 상부 조직인 위원회에서는 계급이나 상하 구분이 적용되지 않았다. 위원들은 위원으로 있는 한 계급에 상관없이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의장을 마지막으로 의원 전원이 참석한 회의실에는 특이하게도 의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중앙에 긴 타원형의 회의 탁자 둘레에 있는 대략 1미터 50센티미터 크기의 발표대 앞에 서 있었다. 발표대 위에는 오늘 회의 안건으로 보이는 문서들이 가지런히 놓여졌다.

"제192차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작전 명 '신들의 전쟁'이 최종 승인되었습니다. 앞으로 천군부는 비상체제에 돌입합니다. 이번 작전의 중추인 지상군 투입에 앞서 준비상황을 최종 점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유럽 정세 분석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있겠습니다."

천인단 외교부와 정보부서 그리고 천군부에서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정보 사령부와 각 군의 정보 부서에서 올라온 정보를 취급하는 원정군 위원회 정보 위원이 발표대를 끌고 지구도가 그려진 벽면으로 다가갔다. 지휘봉을 들어올리자, 회의실이 어두워지며 지구도에 불빛이 들어왔다.

"기억을 상키시키기위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중해 해전에서 참패한 이래 터키의 해군력이 급속도로 위축되어 서 지중해에 대한 재해권을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타라한 황후가 지중해 함대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로리앙 사태를 이유로 정중히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터키 원정군의 고전이 예상됩니다. 그리고 밀라노 공의회에서 결정된 연합군 조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찰스 1세와 프랑스의 루이 13세가 손을 잡고 이 일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다른 세력을 끌어드리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왕 중의 왕이 유럽에서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 건데 연합세력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정치.군사 조직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만 확인된 것은 아직 없습니다. 한 가지 좋은 소식은 스웨덴에서 우리의 제안을 수용하겠다는 외교문서를 전달해 왔습니다. 하지만 폴란드에서는 아직 답변이 오지 않고 있습니다. 외교부 해외 공작실에서 모종의 작전을 수행 중이어서 그 결과를 본 연후에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보 위원이 보고를 마치고 지휘봉을 탁자에 올려놓자 다시금 회의실이 밝아졌다. 잠시 뒤로 물러서 다른 위원들의 질문을 기다렸다.

"파리에서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추가 정보는 없습니까 ?."

"외교부에 협조 공문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확인 해 줄 수 없다는 답변뿐입니다."

"유럽의 최대 위기군요. 북에서는 우리가 치고 내려갈 거고, 남쪽에서는 터키와 싸우느라 여념이 없고, 프랑스는 내란으로 혼란스럽고 말입니다. 로리앙에서 특수 여단 병력을 철수시킨 것이 못 내 아쉽군요. 신항이 조금만 빨리 풀렸어도 철수시키지 않았을 텐데요 "

의장은 아직도 로리앙에서 2101전단을 철수시킨 것을 못 마땅해 하고 있었다. 지중해를 이용한 보급로 안전성을 의심하는 위원들로 인해 손쉬운 철수를 결정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가용 함대를 총 동원하는 대서양 봉쇄 작전을 시작으로 신들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1군단 병력을 계속 남진 시켜 오드리강 하구에 있는 스체친까지 진격시키는 것을 제외하면, 4군의 예상 진공로는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올해 안으로 폴란드를 접수하고 스웨덴과 폴란드를 아우르는 진격로에 40만의 병력을 집결시킵니다. 발틱해와 유틀란트반도의 운하를 이용한 보급로를 확보한 이후 유럽과 본격적인 전면전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 때를 맞추어 그림자들이 모습을 들어내 민심을 흔들어 놓게 됩니다. 상황이 무르익으면...."

계속해서 이번 작전을 입안한 위원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이미 모두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최종 점검 단계이기에 간과한 것을 우려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세세히 설명해 나갔다.

"지중해 쪽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주변에 예비 병력을 대기 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

"지금 파견된 병력만으로도 터키의 신경이 날카롭습니다. 더 증원된다면 자칫 터키제국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에 주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키예프로 이동한 신속대응군의 작전 반경에 지중해가 들어가기 때문에 지중해 전력 증강을 상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요 ? 하지만 가능하면 예비 병력을 주변으로 미리 이동 시켜 놓는 것이 만일을 위해 좋지 않겠습니까 ?"

여전히 한 위원이 작전위원의 말에 수긍할 수 없다는 듯 이견을 제시하고 나섰다.

"5군 병력과 전략 기동군 일부 병력의 이동 배치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수에즈에서 가장 가까운 기지는 말라카와 파나마밖에 없었다. 그곳도 모두 항해 거리 보름 이상이 걸리는 곳이라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었지만, 내년에 예정된 기동 훈련을 조금 일찍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무리가 없어 보였다.

"고아로 진출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

"고아항을 말입니까 ?"

"그건 완전히 새로운 작전이라."

뜻밖의 제안에 작전 위원이 말끝을 흐리며 의장을 바라보았다. 의장의 중재가 필요한 사항이기도 하거니와, 최고 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할 사안이기도 했다.


북대서양

동파마나 기지를 출항한 대형 전투함 6척은 각기 2척씩 짝을 이뤄 카리브해를 지나 북대서양으로 북북진을 계속했다. 유럽으로 향하는 모든 배를 침몰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파나마 함대는 아직 단 한 척의 전과도 올리지 못하고 북위 30도를 지나쳤다.

"이쪽이 원래 항로가 아니라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너무 조용하군"

정한성 대령은 6000톤급 2415함 함교에서 사방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4409함에서 좀더 거리를 벌리라고 하지"

정한성의 명령이 접수되었는지 수평선을 넘나드는 4000톤급 4409이 2415함과 거리를 넓혀 갔다. 레이더 사관들은 순번대로 돌아가며 24시간 주변을 감시했고, 함교와 선미에 배치된 견시병들이 수평선을 바라보며 대서양을 항해하는 배들이 나타나길 목놓아 기다렸지만, 좀처럼 전과를 올릴 기회가 오지 않았다.

"부사령관님. 한 시간 후면 발틱 함대의 작전 범위로 들어가게 됩니다."

"좀 더 올라가 보자. 최대 교차범위까지"

북위 45도선을 경계로 그 위쪽은 발틱 함대가 파나마 함대와 똑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자칫 시비에 말려들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한성은 설정된 완충지대 끝까지는 가보고 싶었다. 경계서 위아래로 30킬로미터의 상호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완충지대가 설정되어 있었다. 무리를 하면서까지 3시간을 북북진을 하고도 목표를 찾지 못한 정한성은 이내 함의 선회를 지시했다.

"선회 090. 되돌아간다. 굴 앞에서 토끼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갑갑한 마음에 무작정 대양으로 나왔던 정한성은 별 소득이 없자, 동안에 건설된 식민지 항구인 뉴 암스테르담과 버지니아 근처에서 출항하는 배를 추적할 생각이었다.

"부사령관님. 그곳은 농무가 종종 출몰하는 지역입니다. 수심도 걱정되고 말입니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심이."

함장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싫어. 함장은 좀 쉬지 그러나 ? 야간에 나랑 교대해야지"

괜한 말을 꺼냈다 본전도 못 찾은 함장이 쀼루퉁해져서 함교를 내려왔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함장은 속에서 열불이 나 궁시렁댔다.

"순양함이나 탈것이지. 나하고 무슨 철천지원수가 졌다고. 에이"

경력이나 성격으로 봐서 2415함을 탈 만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정한성 대령은 계속 2415함을 타겠다고 우기고 나섰다. 북대서양 항로가 대부분 북위 40도에서 50도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기에 다른 함에 승선했다면 작전기간 내내 조각배조차 구경하기 힘들 것 같았기에 그랬음에 틀림없었다.

"함장님 ? 함장님 ?"

눈을 감고 있던 함장은 부관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살며시 떴다.

"내가 그새 깜빡 졸았나 ? 무슨 일인가 ?"

"저녁 식사시간입니다."

"그래 ? 벌써 ?"

"네. 부사령관님께서 찾으십니다."

장교 식당에는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부사령관 혼자 자리에 앉아 있었다. 괜히 멋쩍은 함장이 눈을 내리 깔며 맞은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음이 상했나 ? 함교에 한번 올라오지 않고 말야 ?"

"아닙니다. 책을 좀 읽었습니다."

"그래 ? 자 먹지 !"

정한성은 숟가락을 들어 소고기 미역국을 입에 물었다 내놓았다. 정한성은 깍두기 썰기로 썰어 낸 안심 고깃덩어리를 꿀꺽 꿀꺽 삼켰다. 밥 한 공기를 모두 국에 말고는 김치를 얹어 그냥 삼키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식사를 마친 정한성 대령이 함장을 바라보았다. 겨우 반밖에 식사를 하지 못한 함장이 의례 그러려니 하며 천천히 숟가락을 놀려대며, 이것저것 차려진 반찬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하루에 20가지 이상의 음식물을 섭취해야 필요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 ? 천천히 많이 먹으라고"

함장의 식 습관과는 다르게 정한성은 국에 밥 말아먹은 것을 좋아했다. 입맛이 없으면 냉수에 밥을 말아먹곤 했는데, 숟가락을 들고 놓을 때까지 5분을 넘기지 않았다. 밥 빨리 먹기 선수처럼 정한성은 순식간에 식사를 마치곤 했다. 반면 함장에게 30분의 식사시간은 기본이었다. 또 다시 함장의 잔소리가 시작되자, 정한 성이 자리를 일어나려다 다시 앉았다. 아무리 부하지만 식사 도중 일어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아서 옆에 있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장강바닥 30센티미터 파내는데 성공. 15년 동안 고작 30센티야. 김대성 초원이 갈수록 넓어져 황사가 많이 줄어들 듯. 만주 고분에서 고대 가람 문자와 상형 문자가 나란히 출토. 고고학자와 언어학자의 비상한 관심을 끌다. 뭐야 이번 작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잖아 ?"

대한제국 일보를 한 장씩 넘기던 정한 성이 기사 머리들만 대충 읽고는 신문을 접었다. 동떨어진 세상의 이야기들로 가득찬 대한제국일보는 언제 보아도 재미가 없었다. 정한성 대령이 군 생활을 시작할 무렵에 발행된 신문지면은 반절 이상이 천군의 활약상에 대한 것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군대 이야기는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지면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 아니고도 지면을 채울 소식은 넘쳐 나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천군부에서는 신문사에 보도자료를 보내지 않고 있었다.

"삐익 삐익 삐익"

"뭔가 ?"

"레이더에 이상한 물체가 잡혔습니다."

"거리는 ?"

" 북쪽 10킬로미터입니다.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래. 추격해. 이상 물체의 진로는 ?"

"북북동진하고 있습니다."

"알았다. 바로 올라가지."

함교와 연결된 수화기를 내려놓은 정한성을 함장이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숟가락이 들려있었다. 아직 밥그릇을 다 비우지 못하고 있었다.

"함장은 다 먹고 천천히 올라와. 먼저 가네"

정한 성이 서둘러 자리를 일어나 식당 문을 열고 나가자, 마음이 급해진 함장이 밥그릇을 박박 긁어 한꺼번에 입에 몰아넣었다. 함교에 올라서는 동안에도 함장의 입이 연신 오물거렸다. 그런 모습을 힐끔 쳐다보던 정한성은 이내 눈길을 바다로 향했다.

"항해등 소등. 전속 전진. 4409함은 미속으로 따라오라고 해"

주위는 이미 깜깜해져 있었다.


뉴암스텔담항을 출발해 암스텔담항으로 가고 있는 2200톤급 무장 상선 게르에르호가 순풍에 돛을 달고 북북동으로 항로를 잡았다. 잉글랜드 출신 이사애 훌 선장은 선창 가득 싣고 간 화물을 팔아 챙긴 이익의 반을 운임으로 받았다. 그리고 부수입도 짭짤해서 이번 귀항은 어느 때보다 이익이 많이 남았다. 암스텔담에 모여든 이민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자들이어서 뱃삯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그런 자들은 뉴암스텔담 부근 농장주들에게 10년 무임금 노동을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배를 얻어 탈 수 있었고, 농장주는 선주나 선장에게 수수료를 지불했다.

"10명이나 죽어 버려서 10파운드만 날아갔네. 다음 부터는 죽지 않을 만큼이라도 음식을 주던가 해야지. 흐흐흐."

누가 들어도 소름이 돋을 만큼 한밤에 흘리는 훌의 웃음소리는 기괴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훌은 무임 승선자들에게 음식물 제공을 극도로 제한했고, 때론 선창 청소를 강제로 시키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10명이 시름시름 알다가 죽어버렸지만, 그는 시체를 바다에 던져버리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작은 나무 궤짝에 가득 찬 은하와 금화를 바라보던 선장이 후다닥 궤짝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선장님 ? 뒤쪽에서 뭔가 쫓아오고 있습니다."

"뭐가 쫓아온다는 거야 ? 잘 못 본 것 아냐 ?"

"아닙니다. 꼭 생긴 것이 유령선 같습니다. 돛도 없는 것이 점점 가까이 다가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대한제국 함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등 항해사의 말에 의아함을 느낀 훌 선장이 선실을 나와 일등 항해사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뭔가가 있는 것 같았지만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자세히 보면 배 같기도 하고 해무가 만들어 낸 기이한 모양 같기도 했다. 이곳을 항해할 때면 나타나는 해무는 가끔 이상한 형상을 만들어 선원들을 놀라게하곤 했었다.

"심술쟁이 포세이돈의 장난이라고. 이런 거 한두 번 겪나 ?"

"분명히 뭔가 따라왔었습니다. 아무렴 제가"

"알았네. 난 그만 들어가겠네."

일등 항해사는 선수를 다시금 바라보았지만 농무가 덮쳐 와 사방이 뿌옇게 흐려져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수십 번도 더 경험한 농무지만 왠지 뭔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아 항해사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절로 그의 손이 목에 건 십자가에 올라갔다.


"젠장"

정한성은 레이더 사관이 목표를 놓쳤다는 보고에 주먹을 탁 쳤다. 거의 다 잡은 사냥감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예상 항로를 산출해서 앞서 나아간다. 4409함을 호출해"

"통신이 되지 않습니다."

"뭐라고 ? 통신기도 먹통이야 ?"

"네. 그렇습니다."

"자랑이다. 일단 항로를 북동으로 유지하고 속도를 반으로 줄인다. 선미 항해등을 켜고 후미에서 따라오는 4409함을 계속 호출하도록. 바람이라도 불어야 할 것 아냐 ?"

육지와 가까워지는 것을 우려한 정한성은 함의 진행로를 동쪽으로 치우쳐 잡고 추격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 성격답게 그는 이번 사냥감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45도를 넘을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칫 발틱 함대와 조우하게 되면 오인 사격이."

"거 재수 없는 소리 그만하게. 생길 때처럼 사라지는 것도 순식간이야"

정한성은 농무가 순식간에 왔다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날 밤 농무는 새벽이 되어도 거치지 않았다. 밤을 꼬박 세운 수병들이 지쳐갈 무렵, 어쩔 수 없다는 듯 정한 성이 다시 한번 진로 변경을 명령했다.

"젠장. 꼭 저 놈의 안개가 우리를 쫓아오는 것 같군. 3시 방향으로 전속 이탈한다."


남태평양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

자카르타를 출항한 2102 항공모함과 6척의 대형 순양함이 폭풍의 언덕이라 불리는 희망봉 부근에 정박한 체 인도양에서 대서양으로 넘어가려는 모든 선박들을 나포하거나 침몰시키는 무기한의 작전에 돌입했다. 사방 100킬로미터를 커버하는 희망봉 봉쇄 작전에 투입된 수상함만 순양함 10척이 넘었고, 추가로 항공모함 1척 보급함 5척 그리고 잠수함 10척이 투입되었다.

"이제 한고비 넘겼군"

가끔 나타난다는 정체 불명의 바다 괴물에 의해 고아항을 출항하는 상선들에게 인도양은 죽음의 바다와도 같았다. 그 인도양의 끝자락인 아프리카 남단에 진입해 들어가자, 카보 데 호르노스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포르투갈 왕국 상선 단을 이끌고 있는 호르노스는 휘하의 상선 20척에 인도 향료와 물품을 가득 싣고 리스본으로 가고 있었다. 1488년 디아스가 이곳을 처음 지나간이래 줄곧 인도양을 오가는 상선들을 바라보던 희망봉이 얼마남지 않았다.

"신부님 ! 하나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려주십시오. 이번에도 무사히 인도양을 넘어왔습니다. 대한제국에게는 저주를, 포르투갈과 스페인엔 영광을"

대형 상선에 타고 있는 예수회 소속 신부님이 호르노스에게 다가가 십자가를 손에 들고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성스러운 성령을 보내 주시어 우리의 앞길을 열어 주신 우리 주 하나님에게 감사 드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앞으로도 기나긴 항해가 남아 있습니다.."

주저리주저리 신부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올리자 에스페란샤호에 탄 모든 선원들이 무릎을 끓고 하나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들였다. 기도가 끝나자, 호르노스는 술통을 갑판에 가져와 선원들에게 살아났음에 감사하는 술잔을 들게 했다.

10여년전 대규모의 해전이래 인도양에 대한 재해권을 상실한 유럽인들은 대한제국의 잠수함 공격으로 인해 침몰하는 상선들이 늘어나자, 궁여지책으로 대규모 상선들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그 이후로는 대한제국의 공격이 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유럽 상선들은 이곳 아프리카 최남단 아글라스를 지날 때면 으레 하나님에게 감사의 기도와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는 것이 상례화 되어 있었다.

"대규모 선단이 막 남단을 지나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2102전단을 지휘하고 있는 함대 사령관인 오중구 소장은 통신 장교의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목표물이 점점 쳐 놓은 그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모든 순양함들에게 포위를 지시하고, 제비들을 날릴 준비를 마쳐 놓게. 슬슬 움직여 볼까 ?"

5만톤급 항공모함을 움직이는 두개의 스쿠루가 동축에서 실려 오는 힘을 받아 물보라를 일으키며 세차게 돌아갔다. 물이 뒤로 밀려나면서 발생한 힘이 항공모함을 앞으로 밀어냈다. 이내 좌우에 배치된 순양함이 간격을 벌리며 다가오는 호르노스 선단을 향해 나갔다.

"저게 뭐지 ?"

5307 함교 꼭대기에 달려 있는 안테나가 수평선을 서서히 넘어오며 햇빛을 반사했다. 파도의 울렁임에 보였다 사라졌다 하던 모습이 점점 작은 물체를 만들며 호르노스 선단으로 다가갔다. 반사되는 햇빛을 주시하던 한 선원이 점점 커지고 있는 이상한 것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중앙 돛 위쪽에서 사방을 주시하던 파수꾼은 눈을 감고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겨우 서너 잔 마셨는데, 눈에 헛것이 보이나 ?"

다시 눈을 떠 앞을 바라보았지만, 신기루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러는 사이 5307함의 함교가 수평선을 넘어왔다. 곧 이어 함수와 함께 갑판에 장착된 함포의 모양이 망원경에 잡혔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대한제국의 전함과 모양이 비슷했다. 정신을 바짝 차린 파수꾼이 갑판과 연결된 줄을 잡아당기자 선장실에 걸려 있는 종이 요란하게 울려 댔다. 파수꾼은 일차 경고를 한 후 줄을 타고 갑판으로 내려와 술판을 벌이고 있는 선원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배가 나타났다. 배가 나타났다. 대한제국의 철선이다. 전투준비. 전투준비"

파수꾼의 외침 소리에 술에 취한 선원들이 허둥대는 와중에도 상갑판과 하갑판의 대포가 끌려 나오기 시작했고, 각자의 무기를 점검하며 잿빛 선체를 가지고 있는 5307함을 바라보았다. 바다의 갈매기 색깔을 하고 있는 5307함은 127미리 함포 3문을 전방으로 향하고 물개처럼 파도를 헤치며 당당히 다가왔다. 단 한 척이었지만, 호르노스가 받은 중압감은 너무도 컸다. 이제는 안전지대라고 생각한 호르노스는 오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선단에게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호르노스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단 한 척뿐이라 맞서 싸워 볼까 했지만,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연속 3발 포격"

블라지보스톡에서 일차로 건조된 순양함 10척 중 하나인 5703함은 80킬로미터를 수색할 수 있는 수색 레이더, 127미리 자동 함포 3문, 45미리 기관포 2문, 200미리 어뢰 발사관 그리고 사거리 30킬로의 대함미사일 해룡을 장착하고 있었다. 순양함이란 말에 걸맞게 50일간의 작전 수행 능력을 가진 대한제국 대양 해군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었다. 5703함장인 이영수 중령은 상선 단이 흩어지려 하자 진로를 방해하고 도망치려는 의지를 꺾기 위해 포격을 명령했다.

"꽈광 꽈광 꽈광"

연이어 일제 포격이 이어지며 아홉 개의 물기둥을 만들어 댔다. 고폭탄이 터지면서 만들어진 물결로 인해 물기둥 주변의 범선들이 크게 출렁거렸다. 어느새 하늘에는 제비들이 떠다니며 호르노스 상선 단을 감시하고 있었다.

"뒤쪽에도 철선이 나타났다."

"전방에 또 다른 철선이 나타났다."

호르노스는 계속해서 대한제국 함정이 나타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먹이를 찾는 독수리처럼 머리 위를 맴돌았다.

"펑펑펑 꽈광"

"불을 꺼라. 돛을 내려. 도망가긴 틀렸다. 적과 맞서 싸워라."

5703함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카라카스호가 불벼락을 뒤집어썼다. 한껏 부풀어 있는 돛에 불이 옮아 붙어 번져 갔다. 카라카스호 함장은 이탈하는 것을 포기하고 해류에 배를 맞긴 채 5703함과 거리가 가까워지길 기다렸지만, 대한제국군 함정은 1킬로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발포. 발포"

"펑펑펑"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던 선장의 명령에 우현포 20문이 일제히 발포를 시작하자, 카라카스호는 일순간 연기에 휩싸여 모습을 감추었다. 사거리 3킬로미터를 자랑하는 함포는 1킬로미터 측방에서 기동하는 5703함을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단 한발도 5703함을 가격하지 못하고 작은 물기둥만을 만들어 냈다.

"쿠쿠쿠쿵 퍼퍼펑, 드드드드"

위협을 느낀 5703함에서 127미리 함포와 45미리 기관포가 일시에 불을 뿜었다. 5703함에서 발사된 포탄이 카라카스호 측면을 연속적으로 때렸다. 불기둥이 일면서 사방으로 불꽃이 튀기더니 이내 함포에 노출된 측면이 너덜너덜해지며 바닷물이 거침없이 카라카스호 내부로 밀려들었다. 몇 차례의 포격을 받은 카라카스호는 급격히 기울더니 침몰하기 시작했다. 카라카스호를 시작으로 호르노스가 이끌던 20척의 대상선단은 한 척씩 차례로 공격을 받고 침몰하거나 멈춰 섰다. 20분간의 일방적인 공격이 계속되자, 호르노스는 모든 것을 포기한 체 돛대에 백색 깃발을 높이 달았다.

"항복하려는 모양입니다."

오중구 소장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포격 연습이나 다름없는 해전을 감상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전력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신중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혹시 모르니, 적의 속임수에 대비하라고 하게. 종선을 먼저 내려 접근시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방심하지 말라고 하고"

호르노스의 상선단에서 붙잡힌 유럽인들이나 노예들은 희망봉 근처 "희망"이라는 해안가에 버려졌다. 전혀 기반 시설이 없던 이곳에 버려진 2000여명의 포로들은 대한제국의 느슨한 감시를 받으며 마을을 형성해 갔다.


단기3959년(1626) 초여름 민스크 부근 유럽 원정군 지휘부

폴란드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병합하라는 명령을 받은 4군 사령관 김상태 대장은, 겨우내 묵혀 두었던 기기들의 정비가 끝나는 시점을 기해, 전 군에 진격명령을 하달했다. 발틱 함대의 지원을 받으며 기계화 사단 4111 사단이 리가 항을 출발하면서 시작된 폴란드 점령전은, 포병대대의 엄호를 받으며 4군 1군단 기병 사단이 빌뉴스로 이동을 시작하고, 민스크에 있는 5군단 병력을 주축으로 한 본대가 브레스트로 움직이면서 본격화되었다.

"버섯 요리도 먹음직했어 안 그런가. 참모장 ?"

지휘 차량에 올라타던 김상태 대장이 겨우내 먹었던 버섯 요리를 생각하며 농담을 던졌다. 한동안 보급로가 폭설로 단절되면서, 5군단 병력은 버섯을 질리도록 먹여야 했다. 5월까지 아침이면 서리가 내리는 곳이라 대지는 항상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버섯 전골은 먹을 만 했습니다. 그래도 쌀이 동나기 전에 보급로가 뚫려서 다행이었습니다. 빵 쪼가리에 버섯 크림을 먹을 뻔했습니다. 아슬아슬 했습니다."

"그랬지. 올해는 사정이 좀 좋아지겠지. 철도가 스몰렌스크까지 연결되면 한결 수월해질 거야. 그만 가지. 한달 안에 브레스트에 도착해야지 ? 4군단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쉽군."

"우크라이나가 아직 안정이 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폴란드 원정에 참가하고 싶은 모양입니다만 그들을 보내 달라고 할까요 ?"

"당한 만큼 복수하고 싶은 모양이겠지. 나야 좋지만, 천군부에서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야.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이 필요 할 수도. 4군단이 임시 훈련소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일 거고"

지휘 차량이 부르릉거리며 겨울을 보낸 임시 막사를 떠나가자, 4700 전차 여단 소속 3 대대가 원정군 사령부를 엄호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미 본대의 주력인 5군단 병력 4만 5천명은 앞서 출발한지 오래고, 6군단과 2군단 보병 사단이 후방을 엄호하며 지휘부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원정군 지휘부가 이동을 시작하자 뒤에 남은 두개의 보병 사단은 보급로와 통신로를 개척하며 본대를 뒤따라갔다.

폴란드 대부분의 병력은 바르샤바 부근에 집결되어 있었기에 최소한 며칠간은 그들을 막아 설 적이 없었다. 여타의 대한제국에 적의를 가지고 있는 지방 영주들이 성문을 굳게 닫고 농민들을 모아 결사 항전을 외쳐 댔지만, 5군단의 화력과 병력을 단 한시간도 막지 못했다. 한 개 연대급이나 대대급이 저항군을 분쇄하는 사이에도 다른 부대들은 계속해서 바르샤바를 향해 움직였다.

"4121사단에서 전문입니다. 빌뉴스가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천군부에서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원정분 본대가 민스크를 떠난 지 하루만에 승전보가 들어왔다. 시작부터 매끄럽게 일이 진행되는 것 같으면서도 김상태 대장은 빌뉴스가 항복했다는 것이 어째 이상했다. 항복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들었다.

"그래 ?"

"네. 소영주가 내민 조건을 외교부가 수락함으로써 무혈 입성하게 되었답니다."

"식충인줄 알았더니 외교부도 일을 하긴 하는 구만."

김상태 대장은 외교부에서 폴란드 북부에 대한 외교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민스크 다음으로 큰 도시가 저항 없이 대한제국의 손아귀에 들어오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빌뉴스 영주를 비롯한 북부 지방 영주가 바르샤바에서 무참히 죽임을 당하고, 새롭게 영주 회의가 구성되었지만, 영주 회의는 이전과는 정 반대로 지그문트의 하수인으로 전략하고 있었다. 특히 북부 영주들은 회의에 참석하기도 쉽지 않을 만큼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빌뉴스의 새로운 영주가 내건 조건이란 게 뭔지 궁금하군 ?"

"영주로서의 지휘 보장과 바르샤바 공격에 참가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후문입니다."

승전보와 함께 날아든 천군부 전문에는 외교부가 지금도 폴란드 북부에서 활동을 하고 있기에 공격에 신중을 기하라는 명령이 쓰여져 있었다. 사령관은 전문들을 참모장에게 건 내 주며 어쩐지 이번 일은 싱겁게 끝이 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쩐지 재미없게 끝이 날 것 같은데. 귀족들의 안위를 보장한다면, 다 항복할 것 같단 말야. 그런데 점령지 전략이 바뀐 건가 ? 이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보참모를 바라보았지만, 그 역시 예상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로서도 뜻밖입니다. 예전 같으면 귀족이란 귀족은 다 잡아들여서 시베리아나 쥬신 대륙으로 보내 버렸을 텐데. 의외입니다."

"그럼 바라노도 무혈 입성하겠군. 5군단에 미리 통지를 넣도록 하게. 그리고 비서관 ? 모스크바에서 연락 온 것 없나 ?"

"정화 사령부로 모든 자료가 넘어갔다는 특수부의 보고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정보가 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일까지 정화 사령부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이 이상합니다만, 일단 그 쪽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보 통제가 강력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모스크바 쪽에서도 손을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알겠네"

김상태는 입을 다물고 흔들리는 차량에 몸을 맡긴 체 눈을 감았다. 지휘 차량은 시속 40킬로미터의 속도로 꾸준히 움직여 앞서간 5군단을 따라갔다. 5군단의 선봉을 맡고 있는 4521 기병 사단 병력이 바라노 부근에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령부 통신대대가 부산해지며, 상황 보고를 받느라 시끌벅적 해졌다.

"예상대로 입니다. 4521사단이 바라노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성문은 활짝 열려 있고, 백기가 성곽에 내걸려 있다는 보고입니다."

"선두에게 진격 속도를 반으로 줄이라고 하게. 1군단 병력에게도. 바라노에서 잠시 머물다 간다."

후속 부대와 연결이 끊어질 것을 우려한 사령관은 원정군의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기병 사단은 하루에 100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었던 반면 보병 사단은 40킬로미터도 이동하기 버거웠다. 아울러 우측에서 기동하고 있는 1군단이 너무 뒤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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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천군2부 +2 15.07.17 3,847 82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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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천군2부 +2 15.07.14 3,329 72 19쪽
144 천군2부 +4 15.07.13 3,520 83 20쪽
143 천군2부 +6 15.07.11 3,673 97 21쪽
142 천군2부 +2 15.07.10 3,524 91 24쪽
141 천군2부 +2 15.07.09 3,626 100 24쪽
140 천군2부 +5 15.07.08 3,612 101 31쪽
139 천군2부 +1 15.07.07 3,457 93 25쪽
138 천군2부 +2 15.07.07 3,820 85 31쪽
137 천군2부 +2 15.07.06 3,554 80 20쪽
» 천군2부 +3 15.07.02 4,060 92 37쪽
135 천군2부 +2 15.07.01 3,580 92 15쪽
134 천군2부 +2 15.07.01 6,113 87 16쪽
133 천군2부 +2 15.06.23 3,655 97 16쪽
132 천군2부 +3 15.06.22 3,828 86 16쪽
131 천군2부 +2 15.06.19 3,648 108 15쪽
130 천군2부 +2 15.06.18 3,646 9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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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천군2부 +3 15.06.17 3,686 76 13쪽
127 천군2부 +6 15.06.10 4,275 8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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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천군2부 +1 15.06.06 3,520 7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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