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4)
‘성녀?’
”어.“
[[왜 그러십니까. 정호기.]]
[[가젠, 잠깐만요. 잠깐만요...]]
정호기는 루시예인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왕자님께서 분명, ‘성녀’를 언급하셨었죠.]]
[[그렇습니다.]]
[[이곳의 성녀는 혹시, 여러 명일까요? 제 경험상으로는, 보통 성녀는 한 세계관 내 유일무이한 존재이던데요.
....저희가 목격한 성녀와, 왕자님께서 언급한 성녀는 동일 인물일까요?]]
[[확신하기는 힘들지만,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교국은 이곳보다 더한 혹한의 땅이고, 그녀는 교국의 성녀라는 이야기가 되는군요.]]
정호기는 덧붙였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곳과 교국과의 관계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고요.]]
[[그렇습니다.]]
‘전쟁이라도 벌어지나? 전쟁이라도 벌어질 만큼 사이가 안 좋아 전쟁이 일어나 세계가 멸망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다면,
...아니, 아니... 전쟁을 막으라고?’
정호기는 허,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기적... 하늘이 내린 선물.]]
[[왜 그러십니까.]]
[[...그라플로는 가젠을, 대단히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정호기는 『여주인공이 소원을 들어 줌』의 내용을 떠올리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플로는 점점 가젠에게 눈이 멀수록, 가젠을 더욱 특별하고 대단하게 생각했어. 가젠의 존재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했었지...’
[[모든 일은 거기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라플로가, 가젠이 기적 자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정호기는 말을 흐렸다.
[[지금까지 극히 적은 단서만 준 것도, 가젠을 믿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습니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는데,]]
정호기는 머뭇거리다가 그만두었다. 왠지, 누군가와 이 화젯거리를 공유하는 것 만으로도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단순히 입에 올릴 뿐인 행위이지만, 실제로 입에 올린 그대로 이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
[[아니에요. 그만두죠...]]
[[두려우십니까.]]
”!“
[[...어쩌면요. 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게 정말이라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항상 당신 곁에 있습니다.]]
[[....]]
정호기는 약간 귀 끝이 발개진 채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든든하네요.
정말이요.]]
정호기는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뜻을 전했다.
[[있잖아요. 가젠. 사실 저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라야의 꿈이 진짜인지도 몰랐고, 그라플로가 그렇게 된 것도 몰랐고, 이 세계가 이렇게 엉망진창일지도 몰랐고...
단순히 제가 살던 곳을 떠나고 싶었고, 그라플로와 가젠을 좋아하게 되었고, 가젠과 그라플로를 만나보고 싶었을 뿐이고, 그라플로를 만나고자 알을 깨웠고, 설탕의 먹이를 찾았을 뿐인데...]]
가젠은 조용히 정호기의 뜻을 경청했다. 정호기는 떠듬떠듬 말했다.
[[말이 두서가 없죠. 죄송해요. 결론은 말이에요, 저는 라야의 악몽을 끝내주겠다고는 했지만, 그라플로를 만나 이야기 해 보자고 마음은 먹었지만,
전쟁을 막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렇지만,]]
[[당신에게는 제가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칼이자 방패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기적처럼 이루어 낼 수 있을까요? 희박한 가능성을 모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모릅니다.]]
[[...]]
[[하지만 그것이 정호기께서 가고자 하시는 길이라면, 저라는 창이 부서질 때까지, 길을 예비할 것입니다.]]
정호기는 넋을 놓고 가젠을 잠깐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라플로의 마음이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하고...’
[[가젠과 함께라면 지옥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십니까.]]
정호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
정호기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루시예인 왕자의 방 같았다. 정호기는 주변을 휘 돌아보았다.
지나치게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조용한 방 안에서 루시예인은 혼자서 차를 즐기고 있었다.
늘 궁지에 몰린 왕자의 모습만 봐 오던 정호기는 느슨해진 루시예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걸 왜 보여주는 거지? 시뻘겋고 끔찍한 장면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이걸 보여줄 필요가 있나?
이건 누가 내게 보여주는 무언가가 아니라, 단순한 내 꿈일까?’
정호기는 고개를 갸웃하며 차를 즐기는 루시예인을 내버려 둔 채로 방안 이곳저곳을 천천히 살폈다.
‘특별한 건, 없는데? 이건 단서든 뭐든, 아무것도 될 만한 게...’
무심코 루시예인을 바라보던 정호기는 덜컥, 멈춰서서 루시예인을 바라보았다. 루시예인의 곁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비릿하고 매캐한 냄새가 희미하게 섞인 화려하고 달콤한 향기.
”...그랍?“
정호기는 황급히 왕자에게 다가갔다.
- 작가의말
사람은 좋은 곳에 취직해야 험한 꼴을 안 봅니다.
휴일 없이 근무해본 일이 있으십니까?
저도 별로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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