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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생인의 서재

읽었던 것과 다르잖아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상무생인
작품등록일 :
2019.11.26 21:40
최근연재일 :
2022.10.23 22:16
연재수 :
132 회
조회수 :
4,721
추천수 :
85
글자수 :
529,736

작성
21.09.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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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9)

DUMMY

가젠은 벌벌 떠는 정호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벌벌 떠는 정호기의 모습은 그랍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던 그 때와 몹시 닮아있었다.

감히. 어떻게. 도막도막 끊기긴 했지만 뜻을 전하기엔 충분한 그 두 단어는 무정하게 스스로를 도구 취급하는 가젠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가젠은 그늘진 눈으로 정호기를 바라보았다. 가젠은 한참을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정호기를 바라보았지만, 결국 말을 걸지는 않았다.



* * *



영지를 나오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너무나 쉽게 영지를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어서 떠나라고 소극적인 태도로 부추길 뿐.


”.....“


정호기는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그랬다. 세 사람은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아이우드를 벗어나기 전 설탕의 간식거리를 챙기며 설탕에게 어디로 가야 하겠느냐 물었지만 설탕은 새침한 태도로 침묵을 고수했고,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 일단 인근 영지로 가 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자작령에 도착했지만, 설탕은 이곳도 아니라는 허탈한 답변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답해줄 생각이 없어? 저기도 아니라며.“


”스스로 알아내야 해!“


”아니, 단서도 제대로 안 줘놓곤... 그럼 조선시대에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사람처럼 이 나라의 모든 장소를 다 방문해야 한단 말이야?“


점점 더 사람 같아지는 설탕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정호기와 설탕을 바라보던 루올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행이 몹시, 어-엄-처-엉 길어지겠다며.


”얼마나 걸릴 줄 알고?“


”단서를 줬잖아.“


”제대로 된 단서가 아니었잖아?“


”용사라면 역경을 견디고 기적을 이뤄내야 마땅해.“


”그건 창조자의 의견이야?“


”맞아.“


‘그라플로는 가젠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정호기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꿰뚫어보듯 설탕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godsend... 지어 준 이름부터 그렇긴 했지만 그라플로는 가젠을 경외하는 구석이 있었지.

...가젠을 너무 과대평가한 거 아니야?’


[[가젠.]]


[[왜 그러십니까.]]


[[어디로 가야 할지 아시겠어요?]]


[[아니요. 결단을 내리기엔 아직 가진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렇죠? 그라플로는 가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요. 물론 가젠은 대단한 사람이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이거에요.]]


정호기는 꿍얼거렸다.


[[도대체 그라플로는 가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도 모르겠어요.]]


”이거 줄게. 어?“


정호기는 부스럭거리며 꺼낸 하나 남은 괴물의 심장을 주며 설탕을 얼렀지만 설탕은 붉은 보석만 날름 삼키고는 삑삑 즐거운 듯 울기만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이라도 알려줘.“


- 피이.


설탕이 낭랑하게 울었다. 기분이 좋은 듯 지저귀는 설탕의 목소리는 듣기 좋았지만 정호기가 원하던 답은 아니었기 때문에 정호기는 조금 얼굴을 구겼다.


”평소엔 인간처럼 굴면서 불리할 때만 새인 척하네.“


”...그러게요.“


”새와 인간을 두고 생각한다면, 한없이 인간 쪽으로 기울어진 생명체인 주제에.“


”후우...“


”왜 그래?“


”설탕이 좀 덜 귀여워 보여서요.“


”왜?“


”사람을 과대평가하잖아요. ‘용사’라는 걸 무슨 신의 자식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게 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용사는 원래 그런 거잖아? 인간의 정점에 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인간답지 않은 인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용사나 영웅도 처음부터 그토록 위대하고 찬란한 존재는 아니었잖아요. 그들이 정점으로 서기 전에 수많은 모험이 있었고 경험이 있었으며 조력자가 있었고 대적자가 있었던 거잖아요?“


”무슨 소리야?“


”우리에게도 친절한 조력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리에요.“


”뇌물이라도 좀 먹이면 친절해질지도 모르지.“


”심장은 다 떨어졌는데요?“


”그럼 열쇠조각... 아.“


루올이 말을 흐렸다.


”다른 조력자를 구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디서요?“


”아이우드의 주인이 준 선물, 더는 없었어?“


”네. 그것뿐이었어요.“


”...심장이라도 더 구해봐야 하나?“


정호기와 루올은 흐려진 얼굴로 설탕을 들여다보았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가젠은 건조한 목소리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까지 다다르기는 힘들 것 같으니 오늘 밤 보낼 장소를 찾아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가젠의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밤을 보낼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


”....으음...“


희끄무레한 새벽녘, 세 사람이 마련한 안식처에는 갑자기 어디서 날아온 지 모를, 흰 나비 한 마리가 반짝거리는 빛을 흩뿌리며 팔랑팔랑 날갯짓했다.


- 팔랑.


나비는 등 돌리고 앉아 입구 근처에 드리운 모포 너머로 무언가를 응시하는 가젠에게도, 모포로 몸을 둘둘 말고 얼굴을 구긴 채 뒤척이는 루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고, 오로지 모포로 몸을 둘둘 감고 돌아누운 정호기만 보이는 것처럼 정호기를 향해 곧장 날아갔다.


- 팔랑...


찬란한 빛을 뿌리며 날아간 나비는 정호기의 어깨 위에 앉았다. 나비가 앉자 정호기는 작게 앓는 듯 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앉은 채로 날개를 두어 번 펴고 접던 나비는 소리 없이 수많은 조그마한 빛 먼지로 분열하더니 스르륵 정호기에게로 스며들어갔다.


”.....음....“


곤히 자던 정호기가 작게 신음했다.


*


”....꿈인가?“


정호기는 까만 공간 안에 홀로 서 있었다. 잠시 어리둥절하게 서서 주위를 둘러보던 정호기는 고쳐 말했다.


”라야의 꿈인가?“


정호기는 들뜬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이 광경은 분명 라야의 꿈속으로 들어갔을 때 본 광경이 맞는데.

근데 이상하네... 어렴풋이 보였던 그 밝은 공간이 안 보여. 온통 까맣기만 하잖아.“


정호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통 까만, 혹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계속해서 걸어갔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온통 까맣기만 할 뿐.

자신만이 오롯이 존재하는 공간을 계속해서 걷다 보니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여기는 어디인지. 이것은 꿈인지 아닌지.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는지 아닌지.


- 팔랑.


그 때였다. 흰 나비가 나타난 것은.


”어!“


정호기는 반짝거리는 빛을 흘리며 눈앞에서 부드럽게 춤추는 나비를 바라보고 손을 뻗었다. 나비는 정호기의 손등 위에 조심히 앉았다.


”라야의 새로운 능력인가? 도대체 이건 뭐지?“


정호기가 홀린 듯 보석처럼 황홀하게 반짝거리는 나비를 들여다 볼 때였다. 그 때처럼, 낯선 장면들이 깜빡거리며 눈앞에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 찰칵.


맥락 없이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은 정호기를 당혹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몇 장면이 지나가고 난 후에야 정신을 차린 정호기는 스쳐지나가는 장면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찰칵.


스쳐 지나가는 누군지 모를 사람들의 얼굴들. 얼굴 하나하나를 온전히 뜯어볼 새도 없이 다음 장면으로 지나가 버리는 탓에 정호기는 하나하나를 살피는 대신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단편적으로 집어냈다.


”전부 옷이 고급스러워... 귀족...들... 인가? 나한테 왜 이런 걸...“


- 찰칵.


”...눈이 붉네? 이 동네 사람들은 다 눈이 붉은가?“


무심코 중얼거린 정호기는 흠칫 놀랐다.


”눈이 붉다고?“


정호기는 눈을 부릅떴다. 정호기는 다른 곳은 제쳐두고 사람들의 눈동자를 집중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 찰칵. 찰칵.


”온통....“


정호기는 불쑥 그랍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랍을 먹고 나면, 어느 순간 눈동자가 붉게 변한다.


”귀족들 중엔 빨간 눈이 많은가? 아니. 아니잖아. 그러면, 전부, 그랍을 먹은 사람들인가?“


정호기는 장부를 떠올렸다.


‘그랍을 먹는 사람이 무척 많긴 했지... 귀족들도 많이 먹는가보군.’


정호기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왜? 내게 이런 걸 보여주는 거지?’


정호기의 의문에 대답하듯, 찰칵거리고 지나가던 장면은 뚝 끊겼다. 정호기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까만 공간에 홀로 남았다.


‘뭐지? 꿈인가? 그냥 내 꿈?’


정호기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였다. 온통 까맣던 공간이 점차 어둠이 걷히고 새벽이 찾아오듯 일렁이며 밝아지고 있었다.


‘꿈이라면 갑자기 이런 꿈은 왜 꾸는 거지? 어, 그러고 보니 꿈이라면... 꿈에서 꿈이라고 자각할 수 있던가? 이건 자각몽(自覺夢)인가?’


정호기는 속절없이 일렁거리며 밝아 오는 공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말

  음... 지금까지 얼마나 진행되었나 곰곰히 계산해보니 100%중 한... 35%정도는 진행되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완결.. 언제 날까요? 죄송합니다 ㅠㅠ


   군것질을 참 좋아하는 편인데, 예전에는 신제품 말고 익숙한 거, 평 좋은 것만 고르고 모험하길 꺼렸는데 이제는 신제품에 도전해보는 것에 재미를 붙였어요.


   밀크티와 초콜릿 좋아하세요? 가x 밀x티라고 밀크티맛 초콜릿이 있기에 도전해봤더니 아주 흡족하더군요. 여러분도 새로운 메뉴, 새로운 제품에 한번쯤 도전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인생에 톡톡 튀는 소소한 재미를 주고, 취향의 영역을 넓혀 주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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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한 독자님의 의견을 반영해 전체적으로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20.04.18 88 0 -
13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8) 22.10.23 10 0 9쪽
13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7) 22.10.13 12 0 4쪽
13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6) 22.10.09 15 0 13쪽
12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5) 22.09.18 15 0 9쪽
12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4) 22.09.04 14 0 6쪽
12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3) 22.08.21 15 0 6쪽
12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2) 22.08.07 14 0 8쪽
12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1) 22.07.31 15 0 6쪽
12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0) 22.07.24 12 0 6쪽
12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9) 22.07.17 18 1 7쪽
12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8) 22.07.03 14 0 7쪽
12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7) 22.06.26 16 0 9쪽
12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7) 22.06.12 15 0 8쪽
11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6) 22.06.05 19 0 7쪽
11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5) 22.05.29 25 0 9쪽
11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4) 22.04.29 18 0 7쪽
11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3) 22.04.27 17 0 5쪽
11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2) 22.04.20 16 0 7쪽
11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1) 22.04.03 30 0 10쪽
11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0) 22.04.02 31 0 12쪽
11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9) 22.03.13 21 0 5쪽
11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8) 22.03.06 19 0 7쪽
11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7) 22.02.27 19 0 8쪽
10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6) 22.02.20 22 0 10쪽
10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5) 22.02.06 16 0 8쪽
10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4) 22.02.01 18 0 11쪽
10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3) 22.01.23 19 0 6쪽
10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2) 22.01.16 17 0 7쪽
10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1) 22.01.09 21 0 6쪽
10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0) 21.12.19 17 0 6쪽
10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9) 21.12.12 20 0 9쪽
10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8) 21.12.05 19 0 10쪽
10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7) 21.11.28 20 0 10쪽
9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6) 21.11.21 25 0 12쪽
9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5) 21.11.07 17 0 10쪽
9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4) 21.10.31 23 0 9쪽
9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3) 21.10.24 16 0 9쪽
9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2) 21.10.17 24 1 8쪽
9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1) 21.10.11 30 0 7쪽
9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0) 21.10.03 23 0 8쪽
»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9) 21.09.26 16 0 9쪽
9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8) 21.09.19 29 0 7쪽
9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7) 21.09.12 24 1 9쪽
8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6) 21.09.05 31 1 8쪽
8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5) 21.08.22 18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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