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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생인의 서재

읽었던 것과 다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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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생인
작품등록일 :
2019.11.26 21:40
최근연재일 :
2022.10.23 22:16
연재수 :
132 회
조회수 :
4,739
추천수 :
85
글자수 :
529,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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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0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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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8)

DUMMY

정호기는 가젠에게, 조금 늦는다고 해서, 왕자님이 목격했던 것처럼, 끔찍한 꼴이 나지는 않겠지요? 하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답을 들을 수도 없거니와, 가젠에게도 공연히 말의 무게를 전가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호기는 대신 깊게 숨을 내뱉었다.


*


정호기는 용병 길드 본부 구석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가젠의 표정은 평소 그대로였지만, 가젠과 대화를 나누는 루올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진중했기 때문에, 정호기는 건물 내부를 훑어보면서도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감회가 새로운데.’


정호기는 건물 구석구석을 눈으로 살피며 생각했다. 길드 내부는 사람이 참 많았다. 무엇을 접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접수원 앞으로 줄을 선 용병들이 열댓 명은 되어 보였고, 루올과 가젠처럼 무언가를 속닥거리는 용병들도 있었으며, 단 아래 출구 근처에 자리 잡은 게시판을 기웃대는 용병들도 있었다.


‘.....’


정호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장통, 아니. 행정복지센터, 아니... 인력 사무소?’


정호기는 길드 내부의 북적거림이 묘하게 낯이 익다고 생각하며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장소를 몇 떠올려 보았다.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인력 사무소에 한없이 가깝기는 한데, 다르기도 하고.’


정호기가 신기한 기분으로 계속해 사람들과 건물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 덥썩


”....헉!“


정호기는 갑작스레 어깨에 얹히는 무게감에 소스라치게 놀라 숨을 들이켰다.


‘뭐지? 뭐야?’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정호기는 주먹을 그러쥐고 가젠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외력에 의해 돌려세워지는 게 빨랐다.


”라야?“


”....“


정호기는 놀란 얼굴로 자신을 돌려세운 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루올 만큼이나 젊은 여성이었다. 붉은 기가 조금 섞인 갈색 머리카락을 짧게 치고 주근깨 박힌 얼굴로 웃어 보이는 여성은 결코 나쁜 인상만은 아니었기에 정호기는 움츠린 어깨를 조금 폈다.

하지만 이 동네가 어떤 동네였던가. 정호기는 조금 경계하는 태도로 물었다.


”저를 아시나요?“


”라야?“


그녀가 눈을 크게 뜨자 담홍빛 눈동자가 온전히 드러났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 날... 몰라?“


‘라야를 아는 사람인가?’


정호기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자 그녀는 정호기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날 믿는다고 했잖아!“


”......“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정호기는 골치 아픈 얼굴로 고민했다. 눈앞의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하나, 둘 이쪽을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정호기는 잠시 고민하다, 가젠에게 뜻을 전했다.


[[가젠. 라야를 아는 사람이 나타난 것 같아요. 여기서 대화 나누고 계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아니,]]


정호기는 잠깐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이래저래 혼자 나갔다 오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멀리 나갈 것도 아니고, 위험해지면 바로 가젠에게 말씀드릴게요.

가젠에겐 마력석도 있잖아요. 그렇죠?]]


정호기는 살짝 뒤돌아 가젠과 눈을 마주쳤다. 말없이 정호기를 보던 가젠이 대답했다.


[[정호기의 뜻대로.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시면 저를 부르십시오.]]


[[든든하네요. 감사합니다.]]


정호기는 눈앞의 여성에게 작게 속삭였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깐 밖으로 나가시겠어요?“


그는 조금 당황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순순히 정호기가 이끄는 대로 바깥으로 따라나섰다.


‘일단 바깥으로 나오긴 했는데...’


정호기는 근처에서 대화를 나눌 조용한 장소를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정호기는 마땅한 장소를 떠올리지 못했다. 공작령엔 어제야 도착했고, 공작령은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어딜 가도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할 말이라는 건 뭐야?“


”조금은 숨겨야 할 이야기라서, 마땅한 장소를 찾고 있는데...“


”아하.“


그녀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 거라면, 저기서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었겠네. 그럼, 어디로 갈까?“


”저어.. 혹시 이 근처에 조용하게 이야기할 만한 괜찮은 장소를 알고 계시나요?“


그녀는 말없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정호기를 바라보았다. 정호기는 뜨끔한 얼굴로 숨을 멈췄다.


‘실수했나?’


”...물가로 갈까? 거기서도 못할 이야기야?“


”아뇨. 그 정도는요. 거기로 가요. 그럼.“


”그래.“


그녀를 따라가는 길은 몹시 조용했다. 정호기는 그녀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다물었고, 그녀 처음의 쾌활한 모습과는 다르게 생각에 잠긴 듯 입을 굳게 다물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흘끔거리며 살피던 정호기는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가젠에게 급히 뜻을 전했다.


[[가젠.]]


[[말씀하십시오.]]


[[아직도 루올과 이야기하고 계세요?]]


[[그렇습니다.]]


[[루올에게 혹시 저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던 사람을 알고 계시냐고, 지나가듯이 여쭈어 주실 수 있어요?]]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답이 전해졌다.


[[그는 정호기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던 사실을 몰랐던 모양입니다. 당황한 얼굴로 정호기를 찾기에, 적당히 둘러대었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아직도 제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일단은 제가 알아서 해 볼게요.]]


[[정호기의 뜻대로.]]


‘루올에게,’


정호기는 여성을 티 나지 않게 살피며 생각했다.


‘이 사람이 정말로 라야를 아는 사람인지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되겠고...

다시 돌아갈까? 돌아가서 합류할까?

이 선택이 정말로 옳은 선택인가? 라야를 만났으면 좋겠는데, 지금 당장 꿈을 꿀 수도 없고....’


[[가젠.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가젠은 아까 저와 함께 있었던 여성을 목격하셨던 것 맞죠? 루올에게, 라야에게 혹시 그런 인상착의의 동료가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여쭈어 주세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만난 기간이 길지 않아 전 계약자의 주변 관계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없어요. 고맙습니다.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정호기의 뜻대로.]]


”....“


이제는 숫제 주문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어쨌든... 이대로 밀고 나가야겠어. 이 여성의 신원을 누구에게도 확인받을 수 없으니...’


두 사람은 아주 조용하게 물가에 도착했다. 정호기는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건 여성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둘은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침묵을 깬 건 그녀였다. 그녀는 불쑥 바닥에서 얇고 둥근 돌을 하나 주워 들더니 물 위로 던졌다. 물 위로 두세 번 통통 튀어 오르던 돌은 힘을 잃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정호기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를 알고 계시나요?“


”나를... 몰라?“


그녀는 울지 않았지만 울 것처럼 입술을 물었다. 정호기는 곤란한 얼굴로 서 있다, 결국 시인했다.


”네. 제가 지금 기억이 온전하지 않아서요.“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니?“


그녀는 샅샅이 정호기를 살폈지만,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하고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그녀가 바짝 붙어서서 소근거렸다.


”혹시, 네 능력 때문에...“


”네?!“


정호기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라야의 능력을 아세요?“


”‘라야의’ 능력이라고?“


”아.“


정호기는 조심스레 거짓말했다. 눈앞의 사람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사실, 깨어났을 때 제 이름조차도 몰랐었거든요. 동료가 알려줘서 겨우 알아냈었고. 그래서 제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요...“


”세상에, 나비가 네 기억을 송두리째 앗아 간 거야?“


‘나비!’


정호기는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부릅뜨고 여성을 바라보았다.


‘라야의 능력이 나비임을 정확히 알고 있어! 그럼, 이 사람은 정말로 라야가 비밀을 공유할 만큼 가까운 사람인가?’


”모르겠어요. 그냥 깨어나 보니 그랬고...“


”그럼 깨어난 이후에, 나비를 본 적은 없는 거야? 푸른색이든, 붉은색이든.“


정호기는 눈앞의 그녀를 믿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한 세계를 넘나드는 불확실하고 불온하고 거창한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털어놓고 다녀도 괜찮은 것일까? 그라플로의 기대에만 부응하는 것이 아닐까?

정호기는 이 문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님을 깨닫았다. 그래서 정호기는 조심스레 말을 골랐다.


”한동안은 보지 못했지만, 보게 되었어요. 푸른 나비도, 붉은 나비도.“


”...아아.“


그녀는 작게 탄식했다. 정호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부끄럽지만 기억을 모두 잃어서.“


그녀가 정호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천천히 말했다.


”마누아. 라야. 마누아라고 해.“


”마누아...“


정호기는 그녀의 이름을 소리 내어 혓바닥 위에서 굴려 보았다. 어쩐지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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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한 독자님의 의견을 반영해 전체적으로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20.04.18 88 0 -
13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8) 22.10.23 11 0 9쪽
13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7) 22.10.13 13 0 4쪽
13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6) 22.10.09 15 0 13쪽
12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5) 22.09.18 15 0 9쪽
12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4) 22.09.04 15 0 6쪽
12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3) 22.08.21 15 0 6쪽
12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2) 22.08.07 15 0 8쪽
12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1) 22.07.31 15 0 6쪽
12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0) 22.07.24 13 0 6쪽
12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9) 22.07.17 18 1 7쪽
12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8) 22.07.03 14 0 7쪽
12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7) 22.06.26 16 0 9쪽
12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7) 22.06.12 15 0 8쪽
11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6) 22.06.05 19 0 7쪽
11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5) 22.05.29 25 0 9쪽
11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4) 22.04.29 18 0 7쪽
11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3) 22.04.27 17 0 5쪽
11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2) 22.04.20 16 0 7쪽
11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1) 22.04.03 3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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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7) 22.02.27 19 0 8쪽
10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6) 22.02.20 23 0 10쪽
10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5) 22.02.06 17 0 8쪽
10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4) 22.02.01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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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2) 22.01.16 17 0 7쪽
10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1) 22.01.09 21 0 6쪽
10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0) 21.12.19 18 0 6쪽
10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9) 21.12.12 20 0 9쪽
»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8) 21.12.05 20 0 10쪽
10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7) 21.11.28 20 0 10쪽
9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6) 21.11.21 26 0 12쪽
9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5) 21.11.07 18 0 10쪽
9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4) 21.10.31 23 0 9쪽
9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3) 21.10.24 17 0 9쪽
9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2) 21.10.17 24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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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0) 21.10.03 23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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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8) 21.09.19 29 0 7쪽
9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7) 21.09.12 2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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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5) 21.08.22 19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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