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상무생인의 서재

읽었던 것과 다르잖아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상무생인
작품등록일 :
2019.11.26 21:40
최근연재일 :
2022.10.23 22:16
연재수 :
132 회
조회수 :
4,732
추천수 :
85
글자수 :
529,736

작성
22.08.07 22:47
조회
14
추천
0
글자
8쪽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2)

DUMMY

”형평의 구도자시여.“


그녀는 대답 없이 차게 웃었다. 보는 사람이 섬뜩해질 만큼 차게 웃은 그녀는 물었다.


”그래. 내가 나설 일이 생긴 모양이지.“


그녀와는 다르게, 온몸을 꽁꽁 싸매 눈사람처럼 보이는 자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 극명한 차이가 그녀를 더욱 비현실적인 존재로 보이게 했다.


그녀가 한 발짝, 한 발짝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치링. 치링. 그녀의 옷에 달린 장식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우리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믿음을 위해서.“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친 바람에 그녀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거칠게 나부꼈다.


”오늘은 날이 좋군.“


’이 날씨가?‘


정호기가 넋 나간 얼굴로 성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눈앞의 풍경이 점차 흐릿하게 변해갔다.


’꿈...인가?‘


정호기는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꿈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게 일부러 보여주는 거라면...

시나세타는 세계 멸망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도저히 모르겠어...‘


시야가 점차 흐려지고, 의식도 점차 흐려졌다. 정호기는 저항하지 못한 채로 눈을 감았다.


*


그녀는 무감한 얼굴로 서서 불신자들의 말로를 지켜보았다.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눈 폭풍이 몰아치는 혹독하고 을씨년스러운 밤 아래, 외따로 떨어진 창고는 얼음으로 빚어 만든 날카로운 얼음 창에 꿰뚫려 엉망진창으로 변해 있었고,


창고 앞의 불신자들 역시 빗발치는 창의 세례를 맞은 모양인지 끔찍한 몰골로 눈밭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무감한 얼굴로 자신이 행한 일을 확인했다. 그녀는 여전히 지독히도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눈 폭풍도, 불신자들의 불결한 피도. 그 어떤 것도, 그녀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


무감한 얼굴로 그녀는 손을 뻗었고, 그녀의 눈동자가 눈부시게 빛났다. 그리고, 내뻗은 그녀의 손에서 바람이 역동적으로 꿈틀대더니, 작은 불꽃이 일었고, 그 불꽃은


- 콰아아아


무서운 기세로 몸집을 불리더니 불신자들을 몽땅 집어삼켰다. 그녀는 무감한 표정으로 자신이 행한 일의 흔적을 지워 나갔다. 푸르른 빛이 얼굴에 어른거리자 그녀는 더욱 창백해 보였다.


”.....“


그녀가 뒤처리를 마치자, 그곳에 남은 것은 온통 재. 재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가볍게 주먹을 그러쥐더니 천천히 손을 펼치며 손짓했다. 그러자 그녀의 손짓에 따라 재가 하늘로 날아올라 거친 바람을 만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


그녀는 다시 손짓해 주변에 쌓인 눈을 가져다가 대충 덮었다. 재가 섞인 눈이 심상찮은 기색으로 그녀를 스치고 날아갔다. 눈 폭풍은 오늘 밤새 계속될 모양이었다. 그녀에겐 잘된 일이었다.


그녀는 빛이 사그라드는 눈동자로 눈 폭풍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무감한 표정에 금이 갔다. 그녀는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눈 폭풍을 바라보다가,


”......“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눈 폭풍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반짝거리는 하나로 땋은 머리카락과 하얀 예복이 바람에 마구 휘날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맹세는 여전하다. 언제 부서질지 모를 연약한 모래성일지라도,“


그녀는 손을 그러쥐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겠지.“


그녀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편안한가?“


그녀는 대답을 바라는 듯 물었으나, 당연하게도 대답해 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그곳에 가만히 서 있었다.



* * *



...왕자님과의 재회는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왕자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광장에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아가... 아니.“


왕자가 머뭇대자, 정호기는 잠시 고민하다 이름을 밝혔다.


”정호기입니다. 호기라고 불러주세요.“


”호기.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루시예인입니다. 성은 아실 테니, 생략하겠습니다.“


”...?“


정호기는 눈을 크게 뜨고 왕자를 바라보았다.


”루스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


정호기는 머뭇대며 물었다. 왕자는 빠르게 눈치채고 사람 좋은 얼굴로 웃어 보였다.


”은인에게 허락하지 못할 만큼 무거운 이름은 아닙니다. 편하게 불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루스 님.“


”그냥 루스라고 부르셔도 됩니다만, 그쪽이 편하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모쪼록 편한 대로 부르십시오.“


루시예인은 가젠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이방인께서는?“


”가젠이십니다.“


”멋진 이름들이군요.“


”많이 이질적인가요?“


”그렇게까지 이질적인 편은 아닙니다.“


정호기는 에드윈을 바라보았다. 에드윈은 이전과 달리 조금 더 가까이에서, 조금 더 노골적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루스 님의 동료분께는 잘 말씀드렸나요?“


”예. 제 능력껏 설명했지요.“


왕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나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나 보더군요. 그도 저처럼, 평탄한 길을 걸어오지 않았던지라.“


루시예인이 속삭였다. 의심하지 않으면 죽는 겁니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정호기는 과거의 루시예인과 에드윈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라도, 그 입장이었더라면 의심했을 거예요.“


두 사람은 잠깐 침묵했다. 잠깐 말을 고르던 정호기는 조금 목소리를 죽여 속삭였다.


”루스 님께서는 자주 광장에 오십니까.“


”그렇게 자주는 아닙니다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오는 편이지요.“


정호기는 홀가분해 보이는 루시예인을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 뵙고 싶은 분이 생기자, 더욱 이곳에 마음이 가더군요.“


”아, 하하...“


정호기는 다시 목소리를 죽여 속삭였다.


”고민해 보았는데, 역시 루스 님께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어떤 것을요?“


”.....제가 목격했던, 악몽들을 말입니다.“


루시예인은 가젠을 한 번, 정호기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죠. 요즈음, 악몽을 자주 꾸신다고 하셨었죠.“


”괜찮다면, 제 꿈 이야기를 조금 들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당신께 무례가 되지 않는다면, 기꺼이요.“


루시예인은 웃는 얼굴로 물었다.


”저를 위해 마음 써 주시는 겁니까?“


”....“


정호기는 잠깐 멍하니 서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악몽은 악몽으로만 끝나야 하니까요.“


루시예인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물었다.


”제 친구도 함께 들어도 괜찮겠습니까?“


”그야 물론입니다.“


루시예인은 잠깐 에드윈에게 눈짓했다.


‘가젠과 나는 비밀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 있지만... 왕자님과 호위기사님은 긴급 상황이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어떻게 소통하시는 걸까? 다, 방법이 있겠지?’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늘 만나던 곳으로 가 앉았다. 정호기는 미묘하게 가까워진 에드윈과의 거리를 깨닫고 작게 웃었다.


”알고 보면 귀여운 구석도 있는 친구입니다.“


”..........아. 그렇군요.“


‘왕자님 눈에만 그래 보이는 게 아닐까요?’


정호기는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고 왕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정호기는 루시예인 왕자의 웃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이 지금까지 목격했던 악몽을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갈수록 왕자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걷혔고, 왕자의 표정은 조금 흐려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읽었던 것과 다르잖아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023-01-01) 잠시 휴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22.11.16 11 0 -
공지 앞으로는 자유롭게 연재하겠습니다. 22.04.20 31 0 -
공지 수정 관련 기록 (수정 시 갱신) 21.04.12 24 0 -
공지 서재에 가끔 등장인물 그림 올립니다. +2 20.05.18 145 0 -
공지 한 독자님의 의견을 반영해 전체적으로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20.04.18 88 0 -
13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8) 22.10.23 11 0 9쪽
13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7) 22.10.13 13 0 4쪽
13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6) 22.10.09 15 0 13쪽
12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5) 22.09.18 15 0 9쪽
12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4) 22.09.04 15 0 6쪽
12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3) 22.08.21 15 0 6쪽
»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2) 22.08.07 15 0 8쪽
12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1) 22.07.31 15 0 6쪽
12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0) 22.07.24 13 0 6쪽
12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9) 22.07.17 18 1 7쪽
12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8) 22.07.03 14 0 7쪽
12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7) 22.06.26 16 0 9쪽
12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7) 22.06.12 15 0 8쪽
11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6) 22.06.05 19 0 7쪽
11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5) 22.05.29 25 0 9쪽
11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4) 22.04.29 18 0 7쪽
11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3) 22.04.27 17 0 5쪽
11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2) 22.04.20 16 0 7쪽
11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1) 22.04.03 30 0 10쪽
11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0) 22.04.02 31 0 12쪽
11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9) 22.03.13 21 0 5쪽
11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8) 22.03.06 20 0 7쪽
11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7) 22.02.27 19 0 8쪽
10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6) 22.02.20 22 0 10쪽
10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5) 22.02.06 17 0 8쪽
10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4) 22.02.01 19 0 11쪽
10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3) 22.01.23 19 0 6쪽
10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2) 22.01.16 17 0 7쪽
10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1) 22.01.09 21 0 6쪽
10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0) 21.12.19 18 0 6쪽
10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9) 21.12.12 20 0 9쪽
10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8) 21.12.05 19 0 10쪽
10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7) 21.11.28 20 0 10쪽
9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6) 21.11.21 25 0 12쪽
9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5) 21.11.07 17 0 10쪽
9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4) 21.10.31 23 0 9쪽
9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3) 21.10.24 17 0 9쪽
9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2) 21.10.17 24 1 8쪽
9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1) 21.10.11 31 0 7쪽
9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0) 21.10.03 23 0 8쪽
9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9) 21.09.26 16 0 9쪽
9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8) 21.09.19 29 0 7쪽
9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7) 21.09.12 24 1 9쪽
8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6) 21.09.05 31 1 8쪽
8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5) 21.08.22 18 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