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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생인의 서재

읽었던 것과 다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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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생인
작품등록일 :
2019.11.26 21:40
최근연재일 :
2022.10.23 22:16
연재수 :
132 회
조회수 :
4,707
추천수 :
85
글자수 :
529,736

작성
22.01.16 23:31
조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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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7쪽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2)

DUMMY

라야가 입술을 물었다 놓았다.


정호기는 라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앞의 라야가 낯설어 보였다. 그러나 묘한 익숙함이 느껴졌다. 정호기는 기시감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느낌, 익숙한데...’


정호기는 어렵지 않게 기억 속에서 이 감각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지금 라야의 모습은 묘하게도 가면이 벗겨진 가젠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라야도 가젠처럼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건가.’


”정호기.“


라야가 시선을 들어 정호기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부탁드립니다.“


”...뭘요?“


”비겁한 부탁인 줄 알아요. 하지만, 당신밖에는 호소할 이가, 없었어요.“


라야가 정호기의 손을 잡았다. 정호기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몸을 좀 물렸으나, 라야가 몸을 들이밀어 두 사람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제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게 막아주세요.“


정호기는 뻣뻣한 얼굴로 얼어붙었다.


”그럼요.“


정호기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떼어내며 대답했다.


”라야가 말씀하기 전부터, 저희의 목적은 반쯤은 그거였거든요.“


라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정호기는 머리를 조금 긁적이더니 입을 열었다.


”라야가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으니 저도 솔직하게 이야기할게요.

저는 라야가 계약하셨던, 이방인 가젠과, 가젠의 전 계약자인 그라플로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었어요.“


라야는 조용히 정호기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책을 다 읽자 가젠이 나타나 제게 계약할 것을 권했고, 저는 기쁘게 계약을 받아들였어요. 저는 다른 세계로 건너가 여행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고, 가젠은 제게 라야가 있는 이 세계를 추천해 줬어요.“


”저는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두 사람에게 마음을 뺏기고 말았거든요.“


”제게 마음 주신 것처럼요.“


”네. 그렇죠.“


정호기는 작게 웃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 세계로 건너왔어요. 그런데 .... 모든 게 예상과 달랐어요.“


”어떤 점에서요?“


”그냥, 모든 게 다요.“


정호기는 고개를 저었다.


”책과는 모든 게 그냥 달랐어요. 라야도 알고 계시죠? 이 세계가 점점 라야의 꿈처럼 변하고 있다는 걸.

가장 큰 목적은 그라플로를 만나는 거였지만, 목적을 잊은 채 그냥 살아남기 바빴어요. 여긴 이상하고 끔찍한 것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괴물, 광신도, 마법, 마약, 나비가 보여주는 뜻 모를 장면들...“


”.....물 흐르는 대로 이리저리 떠밀려 왔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그라플로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어요.“


정호기는 쓸쓸한 눈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저희가 알던 것과는 달라졌더군요. 무척이나 말이에요.

그런 그라플로의 모습에, 가젠은 책임감을 느끼는 모양이었어요. 그 뒤로 항상 자신의 책임이니,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했거든요.“


”그러셨군요.“


”저도 그를 막고 싶었어요.“


라야는 대답하는 대신 조용히 시선을 맞춰 주었다. 정호기는 조금 웃었다.


”저는 그라플로도, 가젠도. 라야도, 루올도 모두 좋아하니까요.“


라야가 그늘진 얼굴로 물었다.


”정호기.“


”네.“


”혹시,“


”말씀하세요.“


 ”제 악몽은 혹시 정호기께서 말씀하시는, 그라플로라는 인물에 의해 비롯되었나요?“


”....맞아요.“


정호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든 정호기는 라야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라야의 푸른 눈동자가, 손대면 얼어붙어 부서질 것처럼, 시리고 날카롭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엇 때문에요?“


정호기는 허둥대며 대답했다.


”제가 변한 그라플로를 직접 만나본 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짐작만 할 뿐이지만,

가젠을 붙잡아둘 수 없었기 때문이겠죠. 아마...“


라야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도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그라플로에게 가젠은 ‘기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특별한 존재였으니까요...

그라플로의 세계를 지탱하는 중심축이 가젠이었다고 한다면, 그라플로가 무너져 버릴 법도 하죠. 물론, 용서받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요.“


여전히 라야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정호기의 눈에, 라야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방인님께서는, 저를 이용하신 겁니까?“


라야가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고, 정호기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가젠은 그때 그라플로가 변해버렸다는 걸 알지 못했어요. 여기 오고서야, 숱한 사건들을 겪고 저와 함께 나비가 보여주는 광경들을 목격하고 나서야, 그제야 알게 된 겁니다.“


라야는 다시 차분한 얼굴로 돌아왔다. 라야가 물었다.


”그라플로라는 분을, 아직 만나보지 못하셨다고요.“


”맞아요.“


정호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야 뭘 하든, 하다못해 이야기라도 해 보겠는데 말이에요. 자신을 만나러 오라면서도, 뜬구름 잡는 단서만 던져줘서요.“


정호기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 중 굵직한 뼈대만 골라 추려 이야기해 주었다.


”그랬군요. 그래서 지금은 공작령에 계신다고요.“


”맞아요. 가젠의 신원을 확실시하기 위해서 여기로 온 거에요. 그리고 여기에서 마누아를 만나게 된 거고요.“


”정말로 감사해요. 저를 믿고, 이렇게 이야기해 주셔서.“


”라야도 숨길 수 있는 이야기를 제게 해 주셨잖아요.“


”그건....“


라야가 고개를 저었다.


”정호기께서는 저를 왜 이렇게 좋아해 주시나요?“


라야가 몸을 일으켜 서서 정호기를 내려다보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있나요, 그냥. 마음이 갔어요.

어디서 들었는데, 맞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않은 것을 좋아한다는데, 라야가 제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져서 그런가 봐요.“


”루올 님께서 말씀하실 법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아, 그래요? 제가 생각해봐도 좀 그런 것 같기는 해요.“


라야의 웃음이 다시 나무에 돋아난 하이얀 꽃들처럼 하얘졌다.


”지금으로서는 도와드릴 수 없어 보이지만,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부족하지만 당신을 위해 예비해 둔 것들이 있으니까요.

제가 가진 것들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사용하세요. 모두 당신을 위해 예비해 둔 것입니다.“


라야의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정호기는 라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이 공간에 오는 게 편안하시다면, 언제든 와서 쉬어 가세요. 가끔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말씀만 해 주신다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게요.“


정호기는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


”반드시 그라플로를 만나서, 그를 막을게요. 라야의 꿈을 잠시 스쳐 지나갔던 악몽으로 만들게요.“


”그렇게 된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그렇지만, 그는 눈앞에 서서 수줍은 얼굴로 웃는 라야가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작가의말

사실 라야의 이름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 ‘라’ 에서 비롯되었기는 하지만

Liar(거짓말쟁이)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관해서 이야기가 좀 더 있는데 그 이야기는 등장할지 아닐지 모르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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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한 독자님의 의견을 반영해 전체적으로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20.04.18 87 0 -
13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8) 22.10.23 10 0 9쪽
13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7) 22.10.13 12 0 4쪽
13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6) 22.10.09 15 0 13쪽
12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5) 22.09.18 14 0 9쪽
12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4) 22.09.04 14 0 6쪽
12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3) 22.08.21 14 0 6쪽
12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2) 22.08.07 14 0 8쪽
12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1) 22.07.31 14 0 6쪽
12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0) 22.07.24 12 0 6쪽
12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9) 22.07.17 18 1 7쪽
12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8) 22.07.03 14 0 7쪽
12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7) 22.06.26 16 0 9쪽
12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7) 22.06.12 15 0 8쪽
11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6) 22.06.05 18 0 7쪽
11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5) 22.05.29 24 0 9쪽
11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4) 22.04.29 17 0 7쪽
11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3) 22.04.27 17 0 5쪽
11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2) 22.04.20 15 0 7쪽
11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1) 22.04.03 29 0 10쪽
11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0) 22.04.02 31 0 12쪽
11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9) 22.03.13 21 0 5쪽
11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8) 22.03.06 19 0 7쪽
11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7) 22.02.27 18 0 8쪽
10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6) 22.02.20 22 0 10쪽
10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5) 22.02.06 16 0 8쪽
10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4) 22.02.01 18 0 11쪽
10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3) 22.01.23 18 0 6쪽
»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2) 22.01.16 17 0 7쪽
10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1) 22.01.09 20 0 6쪽
10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0) 21.12.19 17 0 6쪽
10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9) 21.12.12 19 0 9쪽
10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8) 21.12.05 19 0 10쪽
10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7) 21.11.28 19 0 10쪽
9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6) 21.11.21 25 0 12쪽
9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5) 21.11.07 17 0 10쪽
9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4) 21.10.31 23 0 9쪽
9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3) 21.10.24 16 0 9쪽
9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2) 21.10.17 24 1 8쪽
9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1) 21.10.11 30 0 7쪽
9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0) 21.10.03 23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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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8) 21.09.19 29 0 7쪽
9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7) 21.09.12 24 1 9쪽
8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6) 21.09.05 31 1 8쪽
8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5) 21.08.22 18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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