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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생인의 서재

읽었던 것과 다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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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생인
작품등록일 :
2019.11.26 21:40
최근연재일 :
2022.10.23 22:16
연재수 :
132 회
조회수 :
4,719
추천수 :
85
글자수 :
529,736

작성
21.11.2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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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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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7)

DUMMY

[[어디부터 가 볼까요?]]


[[정호기의 뜻대로 하십시오.]]


[[오늘은 가젠의 뜻대로 하고 싶은데요.]]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아무 데나 짚어 주세요.]]


[[정호기가 원하신다면. 간단한 약초를 먼저 구매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좋은 생각이에요. 거기부터 가 봐요.]]


두 사람은 여관 앞을 떠나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멈춰 선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루올도 두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 이후에야 여관에 딸린 마구간 안으로 쑥 들어갔다.



* * *



- 팔랑


하얀 나비가 날아왔다. 문이건 창문이건 꼭꼭 걸어 잠근 방 안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도통 알 길이 없는 나비는 달빛처럼 하얗게 빛났다.

나비는 팔랑거리며 주변을 배회하더니 침대 위로 날아갔다. 달빛이 쏟아지는 창가 옆에 자리한 널따란 침대에는 한 사람만이 누워있었다. 나비는 침대 위에 누운 사람에게 곧바로 날아갔다.


”.....“


고통스러운 꿈이라도 꾸는 양 흐트러져 잔뜩 구겨진 얼굴로 잠든 이에게 날아간 나비는 그 사람 위를 조금 배회하더니 그이의 머리 위에 앉았고, 놀랍게도 스르르 그 사람에게 스며들었다.


”.....“


조금 후, 잠든 이는 스르르 눈을 떴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천장만 노려보다가 갑자기 픽 웃음을 흘렸다.


”마음에 드는 꿈이로군.“


- 팔랑


안에 있던 나비와 같은 나비일까. 역시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나는 하얀 나비가 창밖에서 날갯짓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묘하게도 나비는 방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한동안 공중에서 체공하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 시간이 흐르자 나비는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나 어지럽게 날아갔다.


*


여기에도 나비가 찾아들었다. 나비가 찾아든 곳은 잘 정리된 화원이었다. 꽃향내 물씬 풍기는 꽃밭 구석에는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 쌔액. 쌔액.


누운 이는, 아름다운 꽃밭에 누워있을 법한 사람답지 않게 한눈에 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했다. 숨소리는 가래가 들끓는 듯 가르랑거렸고, 열이 오르는 듯 입술이 말라붙어 하얗게 일어났고 양 뺨과 귀가 빨갰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몸집이 몹시 작고 고목처럼 깡말랐으며 피부병이 있었고, 그리고, 그리고...

...그에게서는 있는 병을 찾는 것보다, 없는 병을 찾는 게 빠를 정도였다. 여하튼, 그렇게 갖가지 질병을 복합적으로 앓는 그는 고통스러운 기색으로 몸을 뒤척였다.


- 팔랑


나비는 병든 이에게도 날아가 그의 머리 위에 앉았다. 그리고, 허물어지듯 스며들었다.

나비가 사라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병든 이가 힘겹게 눈을 떴다. 눈꺼풀이 말려 올라가고 드러난 하얗게 흐려진 한 눈과는 다르게 명징한 다른 쪽 눈동자가 강렬하게 빛나는 듯싶었으나,


”....으윽...“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익숙한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 그의 명징한 눈동자가 고통에 흐려지는 것을 지켜보던 나비는 그곳을 떠나 하늘로 날아올랐다.


- 팔랑.


그리고 어느 순간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슬며시 사라져버렸다.



* * *



”아무 일도 없었네요.“


정호기는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


콕콕. 설탕이 정호기 어깨 위에서 대답하듯 어깨를 쪼았다.

정호기의 말대로,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 산적이 나타나는 일도 없었고, 노예 상인이 나타나는 일도 없었고, 그라플로가 나타나는 일도 없었고, 괴물이 나타나는 일도 없었으며, 광신도 집단도 나오지 않았고, 꿈도 꾸지 않았고, 라야도 만나지 않았고, 라야의 능력이 발동되는 일도 없었다.

분명 좋아해야 할 일이지만, 정호기는 되려 강렬한 찝찝함을 느꼈다. 이 평화가 폭풍 전의 고요는 아닐지 계속 의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루올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정호기는 찝찝해 보이는 루올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물었고, 루올은 긍정했다.


”하도 이상한 일을 겪다 보니.“


루올은 어깨를 으쓱했다. 정호기도 덩달아 어깨를 으쓱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우리 원래 일정에서 일정이 얼마나 변동될까요? 수도를 방문하기 이전에 공작령 먼저 들렀다 가기로 했잖아요.“


”거리는 별로 문제가 안 돼.“


”그래요?“


”그보다는... 네 동료의 신원을 확실히 하는 작업 쪽이 시간을 잡아먹을걸.“


”그래요?“


”어. 용병이 되려면 뭐 이것저것 거쳐야 할 절차도 좀 있고. 그게 한 번에 되는 것도 아니라서.“


”아...“


정호기는 애매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얼마나 더 걸릴까요?“


”사람마다 편차가 있어서, 그건 정확히 말하기가 어려운데...“


루올은 주변을 경계하는 가젠을 힐끔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마법사라면 용병이 되는 건 일도 아니지만, 그러면 너무 눈에 띄어.“


”그렇죠.“


”잘은 모르지만, 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녀야 하는 거지?“


”그런 셈이죠.“


”그래. 그러면 칼잡이 쪽으로. 실력은 그 정도면. 빼어나지는 않지만 모자라지는 않지. 네 동료가 용병이 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거야.“


”그렇군요.“


정호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루올은 가젠을 힐끔 바라보더니 가젠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정호기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를 배경 삼아 설탕을 바라보았다.


”설탕.“


”왜?“


”....“


정호기는 막연한 불안감에 입을 열지 못했다.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그것이 진실이 되어 버릴 것 같다, 는 비논리적인 생각...


‘...라야.’


라야와 나눈 대화가 스치고 지나갔다. 정호기는 조심스레 물었다.


”조금 늦어진다고 해서, 왕자님이... 꿈에서 본 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


설탕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그렇겠지... 내가 널 정말 사람처럼 여기고 있기는 한가 보다.“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야.“


정호기는 설탕을 내버려 둔 채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게도 목격한 비극적인 미래를 모두 피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게 된다면?’


정호기는 오싹해졌다.


‘왕자는 크게 다치고, 세계를 구할 방법은 없게 되나?’


정호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왕자와 세계 멸망 저지는 무슨 관계지? 우린 설탕에게 열쇠 조각을 가져다 먹여 열쇠를 완성해야만 하는데...

관조자가 계속 지켜보고 있다면 이 사실도 알고 있을 텐데. 아니, 우리 사정따윈 상관없나? 아니, 그러면 우릴 택한 이유가...’


정호기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자 가젠과 대화하던 루올이 화를 냈다.


”네 머리도 아니잖아! 소중하게 다뤄!“


”...아! 죄송합니다. 이젠 안 그럴게요...“


정호기는 공연히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래?“


루올이 가젠과의 대화를 끝마쳤는지 정호기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답이 안 나오는 문제가 있어서요.“


”그렇다고 머리를 쥐어뜯어? 라야를 생각해서 아껴 써달라고.“


”꼭 그럴게요...“


”도와줄까?“


”아... 하하...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


”아니요... 그것보다는... 루올도 모르실 것 같아서요.“


”그런 문제라면.“


루올은 순순히 물러났다. 루올은 정호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 소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엄청 어려운 거였네.“


”그러게요...“


정호기는 땅을 파고 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설 남자주인공 만나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건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이런 델 택해서.“


”...여기가 아니면 안 됐거든요. 처음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여기가 아니면 안 돼요.“


루올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정호기는 조금 웃었다.


”가젠과는 무슨 이야기를 하셨어요?“


”용병 자격을 취득할 거잖아. 그거에 대해서 뭐,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얘기를 좀.“


”아하.“


”왜?“


”아니. 두 분이 단둘이서만 대화하는 모습은 거의 못 봐서요. 조금 신기해서 말이에요.“


”그건 그렇지. 그렇지만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잖아? 네 동료는 너 말고는 필요에 의해서만 최소한도로 말을 섞던데.“


”그렇기는 하죠.“


”......“


루올은 콧등을 찡그리고 입을 열 것처럼 달싹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선을 그었나?’


정호기는 루올의 생각이 조금 궁금해졌지만 캐묻는다고 루올이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잠자코 궁금증을 구깃구깃 구겨 속으로 꾹 눌러 넣었다.


”결론은 뭐. 잘 풀릴 것 같다는 이야기야. 정해진 시간을 줄일 수는 없겠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서는 최소한으로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


”아. 그렇군요. 잘됐네요.“


”그렇지?“


루올은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다. 정호기는 가젠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고개를 돌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눈을 마주하는 가젠과 눈이 마주쳤다.


”....“


”.....“


정호기는 가젠에게, 조금 늦는다고 해서, 왕자님이 목격했던 것처럼, 끔찍한 꼴이 나지는 않겠지요? 하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답을 들을 수도 없거니와, 가젠에게도 공연히 말의 무게를 전가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호기는 대신 깊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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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서재에 가끔 등장인물 그림 올립니다. +2 20.05.18 145 0 -
공지 한 독자님의 의견을 반영해 전체적으로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20.04.18 88 0 -
13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8) 22.10.23 10 0 9쪽
13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7) 22.10.13 12 0 4쪽
13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6) 22.10.09 15 0 13쪽
12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5) 22.09.18 15 0 9쪽
12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4) 22.09.04 14 0 6쪽
12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3) 22.08.21 14 0 6쪽
12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2) 22.08.07 14 0 8쪽
12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1) 22.07.31 15 0 6쪽
12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40) 22.07.24 12 0 6쪽
12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9) 22.07.17 18 1 7쪽
12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8) 22.07.03 14 0 7쪽
12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7) 22.06.26 16 0 9쪽
12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7) 22.06.12 15 0 8쪽
11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6) 22.06.05 19 0 7쪽
11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5) 22.05.29 25 0 9쪽
11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4) 22.04.29 18 0 7쪽
11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3) 22.04.27 17 0 5쪽
11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2) 22.04.20 16 0 7쪽
11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1) 22.04.03 30 0 10쪽
11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30) 22.04.02 31 0 12쪽
11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9) 22.03.13 21 0 5쪽
11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8) 22.03.06 19 0 7쪽
11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7) 22.02.27 19 0 8쪽
10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6) 22.02.20 22 0 10쪽
10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5) 22.02.06 16 0 8쪽
10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4) 22.02.01 18 0 11쪽
10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3) 22.01.23 19 0 6쪽
10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2) 22.01.16 17 0 7쪽
10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1) 22.01.09 21 0 6쪽
10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20) 21.12.19 17 0 6쪽
10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9) 21.12.12 20 0 9쪽
10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8) 21.12.05 19 0 10쪽
»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7) 21.11.28 20 0 10쪽
9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6) 21.11.21 25 0 12쪽
9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5) 21.11.07 17 0 10쪽
97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4) 21.10.31 23 0 9쪽
96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3) 21.10.24 16 0 9쪽
95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2) 21.10.17 24 1 8쪽
94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1) 21.10.11 30 0 7쪽
93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10) 21.10.03 23 0 8쪽
92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9) 21.09.26 15 0 9쪽
91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8) 21.09.19 29 0 7쪽
90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7) 21.09.12 24 1 9쪽
89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6) 21.09.05 31 1 8쪽
88 7. 수상한 새를 키우는 방법 (5) 21.08.22 18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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