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 친구에게 아주 대단한 예거가 될 거라고 대답해 줘도 될 게다
“안녕하셨어요, 마스터?”
한창 수련에 몰두해 있던 예비 예거들이 차승연을 보고 수군거리자 마스터 이형석이 호통을 내질렀다.
“이놈들! 정신 안 차려? 지금부터 러닝트랙 50바퀴 돈다. 실시!”
예비 예거들은 죽을상을 하더니 근처에 있던 러닝트랙으로 달려갔다.
마스터 이형석이 그런 예거들을 쳐다보며 혀를 차더니 차승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 요즘 레이드를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고?”
“네.”
“잘했다. 일에 몰두하는 것도 슬픔을 잊는 좋은 방법이다.”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긴. 기운을 차린 모습을 보니 기쁘구나. 그래, 무슨 일로 여기까지 내려왔느냐?”
“실은…, 여쭤볼 좀 있어서요.”
“그래? 뭐든 좋으니 물어보아라.”
“샌드백을 주먹으로 쳐서 관통하려면 어느 정도의 능력이 필요한지 알고 싶습니다.”
“주먹으로 샌드백을 관통했다고?”
“예.”
“어태커는 누구나 가능하겠지. 특히 목성형 어태커가 다크 블라스터를 발휘하면 어렵지 않게 해낼 게다.”
“어태커가 아니라면요?”
“가드나 스카웃을 이야기하는 것이냐?”
차승연이 고개를 가로젓자 마스터 이형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설마 언노운?”
“네.”
“언노운이라…….”
마스터 이형석이 손으로 자신의 턱을 만지며 잠시 생각하더니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전제조건이 붙어야겠지.”
“어떤 전제조건이에요?”
“ESP가 500에 근접하고, 무술을 최소한 20년 이상 꾸준히 수련한 고수라는 전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언노운은 일반인에 비하면 힘과 스피드가 월등히 뛰어나니까 가능할 수도…….”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샌드백을 관통하는 건 콘크리트 벽을 부수는 것보다 어렵다. 요즘 나오는 샌드백 안에는 모래 대신 직물이 촘촘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에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총알이 같은 두께의 철판은 뚫어도 책을 뚫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 그렇군요……. 그럼 어태커들 중에서는 ESP가 어느 정도나 되어야 가능할까요?”
“ESP 600이상의 어태커라면 가능할 게다.”
“예…….”
“그런데 왜 그걸 묻는 것이냐?”
“그건…, 제 친구 중에 막 성장통을 끝낸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주먹으로 샌드백을 관통했다고 하면서 자신이 예거가 될 수 있을지 물어보더라구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아주 대단한 예거가 될 거라고 대답해줘도 될 게다.”
“네. 그렇게 말해주어야겠어요. 고맙습니다, 마스터.”
“그걸 물어보려고 온 게냐?”
“예.”
“녀석! 이 마스터가 보고 싶어서라고 말하면 안 되냐?”
“훗! 사실은 그래요. 그럼 이만 가보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그래. 레이드 조심해서 다니거라.”
차승연은 마스터 이형석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그곳을 떠나며 생각했다.
‘ESP 600이상의 어태커라고? 그런데 영훈이는 어떻게 그게 가능했지?’
강영훈의 ESP나 능력특성이 완전히 새로운 것일지 모른다는 그녀의 확신은 더욱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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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도끼 클랜은 예거들에 대한 지원이 막강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레이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정규공격대는 모든 면에서 최고의 사내 복지 혜택을 누린다.
개인 사무실은 물론이고 가상현실이 적용된 VTR(Vertual Training Room : 모의훈련실)도 20여 개나 마련되어 있다.
차승연은 클랜의 정규공격대 대원일 뿐 아니라 희소성이 높은 힐러다. 따라서 그녀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상당히 크다. 힐러로서 많은 훈련이 필요치는 않지만 그녀가 원할 경우 1순위로 VTR을 이용할 권한이 주어지는 것도 그런 혜택들 중 하나다.
그녀는 VTR 사용을 신청한 후, 지원대 사무실에서 업무를 배우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던 강영훈을 데리고 그곳으로 갔다.
“여긴 도대체 어디야?”
“예거들이 레이드 모의훈련을 하는 곳이야.”
“난 예거도 아닌데 왜…?”
“네 능력을 확실히 끌어낼 수 있는 곳이니까. 어서 들어가자.”
“그, 그래.”
강영훈은 차승연을 따라 훈련실 안으로 들어갔다.
VTR은 꽤 넓었지만 내부는 단순했다. 아니, 텅 비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게다가 천장이며 바닥, 그리고 벽 모두가 하얀색으로 도배되어 있어 병실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강영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훈련실에…, 아무것도 없지?”
차승연이 벽 어딘가를 누르자 벽면이 열리더니 검은색 슈트 여러 벌이 걸린 옷장이 나타났다.
차승연이 옷장 안으로 들어가자 벽면이 닫혔다가 잠시 후에 다시 열렸다.
순간 강영훈이 눈을 부릅뜨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몸에 착 달라붙은 검은색 슈트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섹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차승연이 슈트 한 벌을 골라 강영훈에게 주었다.
“너도 들어가서 입고 나와. 속옷까지 모두 벗고 슈트만 입어야 해.”
“으응? 소, 속옷까지 모두…? 알았어.”
강영훈은 차승연이 그랬던 것처럼 옷장 속으로 들어가 슈트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런데 그는 두 손으로 자신의 중요부위를 가린 채 어기적거리며 걷고 있었다.
“이, 이거 완전히 발레복 같은데? 너무 민망해서……. TV에 나오는 예거들의 모습을 보면 슈트가 이렇게까지 밀착하지는 않던데…….”
“훈련용이라서 그래. 슈트 전체에 센서가 부착되어 있거든? 그리고 부끄러워하지 마. 네가 그러면 나까지 민망해지잖아.”
“그, 그래. 미안.”
“컴퓨터! 시작해.”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딘가에서 무미건조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제3정규공격대 힐러 차승연 님. 제7 VTR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모드를 선택해 주십시오.
차승연이 곧바로 말했다.
“10인 공격대 기준의 비무장 노멀 모드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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