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비를 맞지 않고서는 무지개를 볼 수 없다
“아이고! 힐러 아가씨. 우리 영훈이 좀 살려줘요!”
“제가 한 번 살펴볼게요.”
차승연이 강영훈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가 손을 만졌다.
‘저체온증이다. 그런데……. 정도가 좀 심해. 왜 이렇지?’
저체온증은 전형적인 힐러 각성상태다. 힐러로 각성한다는 건 축하를 받아 마땅했지만 지금 강영훈의 상태는 저체온의 정도가 너무 심했다.
“체온계 있어요?”
“여기…….”
차승연이 강영훈의 귓속 체온을 쟀다.
체온을 확인한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강영훈의 체온이 무려 30도까지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건 중증 저체온증으로 당장 심장이 멈춘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이랬죠?”
“흐이구! 어제는 열이 펄펄 끓어서 체온이 45도까지 올라갔다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이 모양이 됐어요.”
“자, 잠깐만요. 어제 체온이 45도였다고요?”
“그래요.”
차승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성의 능력자로 각성하는 과정에서 고열이 오르지만 40도 정도다. 그런데 강영훈의 어머니는 체온이 45도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의학적으로 강영훈은 이미 목숨을 잃었어야 했다.
‘어떻게 된 거지? 화성의 능력자로 각성하는 증상을 보이다가 갑자기 힐러 각성 증상이라니…….’
“힐러 아가씨. 어떻게 해요?”
“각성 증상이 분명해요. 여기에는 어떤 약도 소용이 없어요. 병원에 가더라도 손쓸 방법이 없을 거예요.”
“그, 그럼 우리 영훈이는 이대로…….”
“영훈이의 상태를 보면 어제 이미 목숨을 잃었어야 해요. 그런데도 살아 있는 건 특별한 힘이 영훈이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앞으로도 견뎌낼 거예요.”
“저, 정말 그럴까요?”
“물론이에요. 저를 믿으세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차승연도 내심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각성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자신도 직접 겪었지만 그 증상이 이처럼 심하고 특이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차승연은 수시로 체온을 재보았다. 그런데 체온계를 살펴보는 그녀의 표정은 어두워져만 갔다. 강영훈의 체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저녁이 되자 28도까지 내려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영훈의 바이털 사인은 안정적이었다. 이미 멎었어야 할 심장은 놀랍도록 규칙적으로 피를 뿜어냈고, 폐 또한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차승연은 물론 어머니 또한 지켜보는 것 외에는 강영훈을 위해서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저녁이 되자 강영인이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부터 심하게 앓기 시작한 오빠가 걱정되어서였다.
강영인은 오빠의 곁에 앉아 간호하고 있는 차승연과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전 강영인이라고 해요. 오빠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차승연은 자신에게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강영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반가워. 오빠에게 들은 것보다 훨씬 예쁘네.”
“감사합니다. 오빠는 어때요?”
“체온이 많이 떨어졌어. 하지만 심폐기능은 정상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 능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꼭 겪어야 할 일이야.”
“예…….”
강영인은 힐러인 차승연으로부터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파랗게 질린 얼굴로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오빠의 모습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오빠…….”
차승연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오빠는 내가 돌볼 테니까 너무 걱정 마.”
“네, 언니…….”
“영인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서 좀 쉬게 해드려. 어머니는 좀 주무셔야해.”
“알겠어요. 엄마, 어서 나가.”
어머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다. 내 새끼가 다 죽어 가는데 잠이 오겠냐?”
“이러다가 엄마까지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으신 분이…….”
“싫다!”
어머니가 완강히 거부하자 차승연까지 나서서 달랬다. 그러자 어머니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차승연에게 말했다.
“힐러 아가씨, 정말 아가씨가 우리 영훈이 곁에 있어 주겠어요?”
“물론이에요, 어머니.”
“하지만 집에 들어가야 하지 않아요? 다 큰 처자가 남의 집에서 밤을 새는 건…….”
“전 혼자 살아요. 그리고 고아예요.”
“아!”
“그러니 걱정 마시고 들어가세요.”
어머니는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차승연을 쳐다보더니 딸과 함께 방을 나갔다.
차승연은 두 사람이 나가고 나자 한숨을 내쉬고는 강영훈을 돌보았다.
다행히 강영훈의 체온은 자정을 기점으로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새벽이 되자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강영훈이 신음성을 흘리며 눈을 떴다.
“영훈아. 괜찮아? 어머니! 영훈이가 정신을 차렸어요!”
어머니와 강영인이 동시에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영훈아!”
“오빠!”
강영훈은 세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더니 뜻 모를 말을 했다.
“누, 누구시죠? 그리고 여긴 어디…? 헉!”
강영훈이 갑자기 헛바람을 집어삼키더니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세 사람을 향해 마구 손사래를 쳤다.
“저,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이 괴물들아!”
갑작스러운 강영훈의 반응에 어머니는 그대로 주저앉았고, 동생은 울음을 터뜨렸다.
차승연이 냉철한 눈으로 강영훈을 지켜보더니 말했다.
“이건 환각증상이에요. 그러니 어머니는 나가 계시는 게 좋겠어요. 영인아, 어서 어머니 모시고 밖으로 나가.”
“저, 정말 괜찮을까요?”
“그래. 걱정 말고 나만 믿어.”
“네.”
강영인은 서둘러 눈물을 닦고 어머니와 함께 방을 나갔다.
“괴, 괴물이다! 저리 가! 가란 말야!”
차승연은 자신을 향해 휘젓는 강영훈의 팔을 강한 힘으로 잡아 내리누른 후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씌웠다.
이불속에서 한동안 발버둥을 치던 강영훈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침내 잠잠해졌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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