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게 예지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새끼가…….”
팔을 잡힌 사내가 욕지거리를 하며 뿌리치려는 순간 힐러가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후려쳤다.
빠각!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악!”
사내는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됐어요. 이제 다른 놈을 잡아요!”
강영훈은 곧바로 등을 돌려 칼을 든 사내 들을 노려보았다.
사내들은 동료 한 명이 어깨뼈가 부서진 채 쓰러지는 것을 보고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 새끼가 죽을라고…….”
그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싸움이 일어난 것을 보고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사내들은 눈짓을 주고받더니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다가 등을 돌려 도망쳤다. 어깨가 부러진 사내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강영훈은 그들이 모두 도망치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벌렁 드러누웠다. 그러자 등에 업혀 있던 힐러가 강영훈의 몸에 깔려버렸다.
“좀…….”
“이런! 죄, 죄송합니다.”
강영훈은 쓰러진 채 몸을 한 바퀴 굴렸다.
두 사람은 차가운 땅바닥에 드러누운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긴장감이 풀리자 허탈감이 몰려왔다.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기억나지 않는 악몽을 꾼 것 같았다.
멀리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끼며 강영훈이 몸을 일으켰다.
“괜찮으십니까?”
힐러는 창백한 안색을 한 채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좀 어지럽군요.”
“가만히 계십시오. 경찰이 곧 올 겁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인 걸요.”
“당연히 하기는 힘든 일이었죠. 도망치셨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았을 거예요.”
강영훈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차승연이라고 해요.”
“저는 강영훈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강영훈 씨. 제 생명을 구해 주셔서.”
힐러 차승연의 입에서 짙은 술 냄새가 났지만, 강영훈에게는 그것마저 달콤하게 느껴졌다.
@
강영훈은 칼에 여러 차례 베이고 찔렸지만 상처는 전혀 없었기에 응급실에서 간단한 진료만 받았다. 그리고 한강변에서 있었던 싸움에 대해 경찰관에게 진술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강영훈은 베이고 핏자국이 남아 있던 옷은 서둘러 벗어서 쓰레기통에 집어넣고는 츄리닝으로 갈아입었다.
아직 한밤중이었기에 어머니와 동생은 아직 잠이 들어 있었고, 그들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조용히 침대에 누웠다.
“휴우!”
강영훈의 입에서 깊은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 크고 힘든 일을 겪었기에 피곤한 게 당연할 테지만 기이하게도 온몸은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힐링 포스…….’
강영훈은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침대에서 내려와 방바닥에서 팔굽혀펴기를 했다. 평소 20회 정도를 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30회까지 가뿐하게 해냈다.
강영훈은 자신의 팔뚝을 만져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이게 능력자가 되는 징조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그건 능력자가 되는 징조가 아니었다. 일반인이 힐링 포스에 노출되면 활력과 근력이 조금 증가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응급실의 의사가 말해주었던 것이다.
‘훗! 달밤에 체조를 한다더니…….’
강영훈이 피식 웃더니 다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눈을 감자 힐러를 등에 업고 칼을 든 인신매매 일당과 싸우던 험악한 광경이 그의 머릿속에서 고스란히 떠올랐다.
칼날에 베였을 때 느꼈던 통렬한 고통을 생각하자, 강영훈은 저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뜨거운 불덩어리가 옆구리를 헤집는 느낌이었지. 깊숙이 찔렸을 텐데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회복시키다니……. 힐링 포스라는 게 정말 대단하구나.’
강영훈은 실제로 힐링 포스의 위력을 경험하고 나자 경외감이 들었다. 더불어 그런 힘을 소유한 힐러 차승연이 너무 부러웠다.
그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눌렀다. 그리고는 최근기록에 떠 있는 차승연이라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확인한 후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 며칠 내로 연락할 테니 다시 만나요.
차승연은 다친 곳은 없었지만 피를 많이 흘려서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고, 그 전에 강영훈과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상태였다.
강영훈은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면 어머니에 대해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에서 강영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화르르르!
화염에 뒤덮인 거대한 용 한 마리가 허공에 둥둥 뜬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강영훈은 너무도 압도적인 화룡의 모습에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화룡이 갑자기 입을 쩍 벌리더니 강영훈을 향해 허공을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커다란 입으로 강영훈을 한 입에 꿀꺽 삼켜버리려던 화룡이 갑자기 몸을 뒤틀더니 허공으로 올라갔다.
크르릉!
나지막하지만 위협적인 포효가 화룡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청색 비늘로 뒤덮인 용이 강영훈의 온몸을 칭칭 감은 채 화룡을 올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크르르…….
청룡은 화룡에 비해 크기가 훨씬 작았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흘렸다.
화룡이 입을 쩍 벌리자 커다란 화염덩어리 하나가 튀어 나와 강영훈을 향해 날아왔다.
강영훈은 청룡에게 휘감긴 탓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눈만 질근 감았다.
그 순간, 푸르스름한 막이 주변에 펼쳐졌고, 화룡이 토해낸 화염덩어리가 거기에 부딪쳐 폭발했다.
펑!
크아아앙!
청룡이 분노의 포효를 터뜨리더니 강영훈의 몸을 풀어내고 허공으로 치솟았다.
다음에 계속...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