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쯧쯧쯧, 괜히 헛물켜지 마라. 젊고 예쁜 힐러가 뭐가 답답하다고 널 좋아하겠냐?”
“어머니! 제발 아들에게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말씀 좀 해주세요. 어머니 맞아요?”
“이눔아! 내 새끼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아는 년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자고로 자기 남자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인 줄 아는 여자가 최고인 게야. 과분한 여자 만났다가는 평생 기도 못 펴고 빌빌거리면서 살아야 해. 알겠냐?”
“제가 어때서요? 인물도 이만하면 됐지, 키도 크지, 성격도 착하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양복이나 입어라. 과한 부탁을 하러 가는 자리인데 격식은 갖춰야지.”
“양복까진 입을 필요 없어요!”
“이 어미 말 들어라. 그런 자리엔 양복을 입고 가야 사람이 무게가 있어 보여.”
“정말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그럼 오히려 상대가 불편해 해요.”
어머니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불편해 한다고?”
“그럼요. 친구와 힐러도 편한 복장으로 올 텐데 저만 양복을 입고 있어 봐요. 그 자리에 어울리기나 하겠어요?”
“음.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렇구나. 알겠다. 대신 최대한 점잖고 깔끔하게 입어야 한다.”
“예. 걱정 마세요.”
강영훈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곧장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어머니 말씀대로 최대한 점잖고 깔끔한 옷으로 빼입은 후 책상에 앉아 기다리자 핸드폰 메시지가 들어왔다. 차승연이었다.
- 곧 도착해요.
강영훈은 짧게 답장을 보낸 후 곧바로 방을 나섰다. 그런데 현관바깥까지 어머니가 따라 나왔다.
“그만 들어가세요.”
“너 가는 거 보고 들어갈란다. 그런데 어디서 만나기로 했냐? 돈은 있어?”
“돈은 충분해요. 그리고 지하철 타고 갈 테니까 어서 들어가 보세…….”
강영훈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육중한 배기음과 함께 외제 스포츠카가 집 앞으로 다가왔다.
부르릉!
행인들 모두 눈을 크게 뜨고는 스포츠카를 쳐다보았다. 어떤 이들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놀랍게도 스포츠카는 TV에서나 보았던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였다.
강영훈의 어머니도 그 스포츠카를 보고 탄성을 흘렸다.
“히야! 누군지 몰라도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보네. 저게 차야 비행기야?”
스포츠카가 강영훈의 집 현관 앞에서 멈추었다.
딸칵!
문이 열리더니 연예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늘씬한 미녀가 선글라스를 쓴 채 운전석에서 내렸다.
착 달라붙은 검은 가죽바지에 하이힐을 신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명품이 분명한 가죽점퍼를 입은 미녀였는데, 그녀는 바로 사흘 전 강영훈이 한강변에서 목숨을 구해주었던 힐러 차승연이었다.
강영훈이 마음속으로 ‘망했다!’를 외치며 안색을 구겼다.
“영훈 씨!”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들을 쳐다보았다.
강영훈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 하. 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한데 함께 계신 분은…?”
“어, 어머니…, 이십니다.”
“아, 그래요?”
차승연이 곧바로 선글라스를 벗더니 어머니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차승연이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요. 한데 누구…?”
“어머! 아드님에게서 말씀 못 들으셨어요? 사흘 전에 한강변에서 아드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예? 이, 이눔이 아가씨 목숨을 구해요?”
어머니가 강영훈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영훈아! 어떻게 된 거냐?”
“그, 그게……. 나중에 말씀 드릴게요. 어머니는 그만 들어가세요.”
“나중은 무슨…….”
“어, 어서 들어가시라니까요? 바깥 날씨가 춥네요. 승연 씨, 잠시만요.”
강영훈은 억지로 어머니의 등을 떠밀다시피 현간 안으로 밀어 넣었다.
현관 안으로 들어오자 어머니가 강영훈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실은…, 며칠 전에 한강 둔치에서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아가씨를 도와준 적이 있어요.”
“뭐라고? 어릴 때부터 만날 얻어 터지고 다니던 네가 사람을 구해? 그걸 나보고 믿으란 말이냐? 혹시 그 아가씨가 널 구해준 게 아니냐?”
“아니에요! 어쨌든…,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와서 해드릴게요.”
강영훈이 도망치듯 현관문을 나가려 하자 어머니가 팔을 잡더니 시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아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였다.
“헉!”
강영훈이 주춤 뒤로 물러나려 하자 어머니가 말했다.
“때리려는 게 아니다.”
“그럼…?”
“꽉 잡으라고!”
“예?”
“어떻게 된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아가씨와 인연이 닿았으니 껌딱지처럼 철썩 들러붙어!”
“어머니도 참! 아까는 과분한 여자 만나면 평생 기도 못 펴고 살 거라고 하시더니…….”
“그건 말이 그렇다는 거고!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강영훈은 어머니의 입에서 또 ‘지 애비를 닮아서’라는 말이 나올까봐 급히 작별인사를 했다.
“알았어요. 다녀올게요.”
“그래. 파이팅!”
어머니가 다시 한 번 주먹을 꽉 거머쥐어 보였다.
강영훈은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현관을 나갔다.
@
기다리고 있던 차승연에게 강영훈은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어서 타세요.”
강영훈은 고급 외제 스포츠카를 보자 행여 흠집이라도 날까 싶어 조심스럽게 올라탔다.
부르릉!
차가 출발하자 강영훈은 차승연의 옆모습을 힐긋거렸다.
‘정말 예쁘구나……. 그날 밤에 봤던 거보다 열 배는 더 예뻐. 게다가 이런 스포츠카를 몰다니, 힐러가 돈을 많이 벌기는 버는 모양이다.’
강영훈은 잔뜩 긴장한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일류 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정장을 입은 신사가 다가와 머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이쪽으로…….”
그 신사는 레스토랑의 지배인이었던 모양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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