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질문을 하자.
당신은 아직도 괴수를 멸종시켜야만 할 해충이자 ‘절대악’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 어떤 상황도 흑백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히스 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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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큰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었다. 괴수의 사체와 코어가 거기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보하고 발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절박함 또한 큰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인류는 많은 혜택을 누렸지만, 가장 큰 진보를 이룬 부분은 괴수 사냥법이다.
그 중에서 예거들이 사용하는 괴수 공격용 무기와 방어구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고(무지하게 비싸기는 하지만), 덕분에 강력한 괴수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얻은 괴수의 사체와 코어는 인류를 더욱 풍족하게 만드는 선순환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괴수는 이제 인류의 적이라기보다 ‘자원’이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자원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능력자들이다. 특히 능력자들 중에서도 상위 30%에 해당하는 괴수 사냥꾼, 즉 예거는 경외의 대상일 뿐 아니라 그 나라의 경제력이나 국력을 상징하는 지표가 된다.
예거의 중요성이 이처럼 크다 보니 그들에 대한 정부의 관리는 철저할 수밖에 없다. 예거들은 정부의 허가가 없으면 자국을 벗어나지 못한다.
특별한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나가야 할 경우 복잡하고 철저한 법적 절차를 받아야 하며, 해외에 나가서도 항상 감시의 눈이 따라붙는다. 이 때문에 예거들은 지나친 사생활 침입이라고 정부에 맞서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반면 언노운에 대한 정부의 관리는 다소 느슨한 편이다. 언노운의 전반적인 관리는 정부가 아닌 능력자협회에서 주관하며, 정부는 협회와 협의하고 대화하는 방식으로 언노운을 간접적으로 관리한다.
강영훈은 예지몽을 꾸었고 성장통을 겪었다. 각성의 과정을 모두 거쳤으니,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어엿한 능력자가 된다. 이건 성장통이 끝나 능력자로 각성한 강영훈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험험!”
강영훈이 어색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가족들을 둘러보았다.
“왜 그렇게들 보는 거야? 부담스럽게.”
“오빠, 어때? 각성한 느낌이?”
“그냥…… 그렇지 뭐.”
“힘이 막 솟구친다든가, 아니면 나가서 막 뛰어다니고 싶다든가 그렇지 않아?”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쳇! 시시해. 오빠, 정말 각성한 거 맞아?”
강영훈은 순간 당황했다. 사실 그는 성장통에서 벗어난 후 자신이 각성을 했는지 스스로도 의심스러웠다. 이전과 달라진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영훈이 난처한 표정으로 차승연을 쳐다보았다.
차승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막 성장통을 끝낸 능력자에게 뭔가 보여 달라는 건 무리야. 아직은 별 느낌이 없을 테니까.”
“그럼 아직 능력자가 되지 못한 거예요, 언니?”
“그렇진 않아. 영훈이는 이미 능력자야. 다만 힘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을 뿐이야.”
“아! 그럼 힘은 언제쯤 채워져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일주일 정도면 힘을 느낄 수 있을 테고 모두 채워지는 건 한 달쯤 걸려.”
“그렇게 오래 걸려요?”
“그래. 일단 힘이 모두 채워지면 능력자협회에 등록을 하게 될 거야. 협회에 가면 능력 특성을 파악하고 수치를 측정하는 장치가 있어. 그 장치를 통해 영훈이가 어떤 능력을 지닌 능력자인지 확실히 판가름이 나.”
“아! 그렇군요.”
그때, 어머니가 나섰다.
“협회고 뭐고 간에, 그동안 성장통을 겪느라고 우리 아들 피골이 상접했다. 그리고 힐러 아가씨도 간호하느라 얼굴이 반쪽이 됐어.”
“아! 정말 그러네?”
“일단 뭘 좀 먹여야겠다. 상 차려야 하니까 영인이 너도 좀 도와라.”
“응, 엄마.”
어머니와 강영인이 부엌으로 갔다.
두 사람이 나가고 나자 강영훈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휴우! 능력자가 된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아.”
“너처럼 그렇게 성장통을 요란하게 치르는 능력자는 처음 봤어.”
그녀의 말에 강영훈은 성장통의 고통이 떠올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그런 고통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 너무 힘들었어.”
“그런데 능력 특성이 무엇일지 정말 궁금해. 다섯 가지 특성의 각성자가 겪는 성장통을 모두 겪었으니까. 아마 이걸 능력자연구소에 보고하면 널 모르모트로 만들어버릴걸?”
“끔찍한 소린 하지도 마. 그보다 나도 힐러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어.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예거라도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확인된 건 아니지만 성장통이 고통스러울수록 높은 능력자로 각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 그러니 넌 예거가 될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힐러는 70%가 여성이야. 남성들은 주로 화성이나 목성, 그리고 금성의 능력자로 각성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강영훈은 예지몽에 나타났던 청룡을 떠올렸다. 작은 몸집으로 거대한 화룡에게 밀리지 않고 싸우던 그 청룡은 분명히 수성의 괴수였다. 그리고 수성은 힐러의 특성이 아닌가.
차승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보름 정도가 지나면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거야. 어떤 능력특성을 지녔는지 말이야. 만약 그때까지 감이 오지 않으면…….”
“언노운으로 남겠지.”
풀 죽은 강영훈의 목소리에 차승연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걱정 마. 내가 보기에 넌 분명히 예거가 될 거야.”
10. 수술 날짜가 잡혔어
강영훈이 변화를 느낀 건 성장통이 끝난 지 사흘 만이었다.
“이게 바로 기운이 모여드는 징조이겠군.”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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