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막이 아름다운 건 우물이 있기 때문이야
“영인이는요?”
“시간이 몇 신데……. 벌써 학교 갔다. 어서 씻기나 해라.”
“예. 어머니.”
욕조도 놓여 있지 않은 작은 욕실에서 강영훈은 샤워기를 틀어놓고 뜨거운 물을 머리로 맞으며 안색을 굳혔다. 지난밤에 꾸었던 꿈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혹시 그건 예지몽이 아니었을까?’
강영훈은 각성담을 모아둔 책을 여러 권 읽어보았다. 각성담은 가지가색이었다. 화성의 능력자는 꿈에서 태양이 자신의 품에 안기거나 집에 불이나 온몸이 불길에 휩싸이기도 했고, 목성의 능력자일 경우 울창한 밀림 속에서 길을 잃거나 자신의 몸에서 싹이 돋아나기도 했다. 그리고 수성이 능력자는 바다에 빠지거나 파도가 밀려오는 등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처럼 능력자들은 화수목금토 중 하나의 특성과 관련된 예지몽을 꾸었고, 후에 꿈과 같은 특성을 지닌 능력자로 각성했다.
‘그런데 내가 꾼 꿈은…….’
강영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꾼 꿈은 그 어떤 각성담에도 나와 있지 않는 것이었다.
‘다섯 가지 특성 모두와 관련된 예지몽이라니. 설마 개꿈이었던 건 아닐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건 그게 각성을 앞둔 예지몽이라면 앞으로 한두 차례 더 꾸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각성하는 과정에서 몸을 심하게 앓게 될 터였다.
‘각성을 위한 예지몽이었으면 정말 좋겠는데…….’
강영훈은 샤워를 마친 후, 안방으로 갔다.
안방이라고 해봐야 두 사람이 겨우 생활할 정도로 좁았고, 작은 화장대와 장롱, 그리고 방구석에 TV 한 대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어서 앉아라. 국 식겠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된장국과 간단한 반찬이 상 위에 밥과 함께 놓여 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된장국이네요. 고맙습니다, 어머니.”
“어제 얼마나 마신 거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이야기가 좀 길어져서요.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았어요.”
“그럼 된장국 괜히 끓였구나. 다시 가져가마.”
뚝배기를 들어내려는 어머니를 강영훈이 서둘러 말렸다.
“아,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도 된장국이 먹고 싶었어요. 후루룩! 아! 시원하다! 역시 어머니의 된장국 끓이는 솜씨는 일류호텔 주방장 저리 가라예요.”
어머니가 가자미눈을 하고 강영훈을 쳐다보았다.
“지 애비 닮아서 말 하나는 번지러하지…….”
“한데, 어머니는 어떠세요? 열이 나거나 하진 않으세요?”
강영훈이 어머니의 손을 잡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딱히 열이 난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머니가 강영훈의 손을 뿌리쳤다.
“나는 멀쩡하다. 돈이 얼마나 쳐 들어간 항암제인데…….”
어머니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쓴 입맛을 다셨다.
사실 그녀는 말기 암환자였지만 겉보기에는 건강한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고통도 전혀 없었고 몸을 심하게 움직이지만 않으면 피로도 느끼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최근에 개발된 고가의 항암제 덕분이며, 그 치료를 받기 위해 평생 힘들게 모은 돈으로 얻은 집을 팔아야 했다는 사실이 어머니를 항상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그깟 돈이 문제예요? 돈은 벌면 돼요. 하지만 어머니는 한 번 잃으면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잖아요.”
“자식들 앞길이나 막는 에미를 어디다 쓰려고 다시 찾아? 그냥 깨끗하게 세상 뜨는 게 너희들을 위해서 좋다.”
“어머니! 제발 그런 말씀 마세요!”
아들이 소리를 버럭 지르자 어머니는 그제서야 입을 다물었다.
강영훈이 잠시 고민하더니 수저를 놓고 어머니의 손을 다시 잡았다.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잘 될 거예요. 제게 희소식이 있거든요?”
“또 능력자 타령 하려고 그러냐?”
“그게 아니라…, 어제 만났던 친구들 중에 메디컬 센터에서 일하는 힐러를 잘 아는 녀석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힐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놔 주겠다고 했어요.”
“뭐? 그게 사실이냐? 빛 좋은 개살구 같던 네 친구들 중에 인물이 있긴 있는 모양이구나.”
“그럼요. 힐러만 구할 수 있으면 수술비는 절반도 들지 않아요.”
“흥! 그래도 7, 8천만 원은 들지 않냐? 우리 수중에 그런 돈이 어디 있다고 그래? 애초에 항암치료 따위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건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요.”
“네가 무슨 수로 그 큰돈을 마련한다는 거야? 혹시 도둑질이라도 하려는 거냐?”
“도, 도둑질이라니요! 저도 그 정도 돈은 마련할 수 있다고요!”
“영훈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 치료비 벌겠다고 엉뚱한 짓 저지르지 마라. 만약 그랬다가는 바로 혀 깨물고 콱 죽어버릴 거다. 알겠냐?”
“어휴! 어머니도 참! 아들을 어떻게 보고…….”
강영훈은 어머니를 타박했지만 가슴이 뜨끔했다.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아주 잠깐이지만 생각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어머니는 아무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합니다.”
어머니가 긴 한숨을 내쉬더니 방을 나갔다. 곧이어 밖에서 어머니의 넋두리가 들려왔다.
“내가 죽어야지……. 자식 놈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놓고 공부도 못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에휴!”
땅이 꺼져라 내쉬는 어머니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강영훈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머니 병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고쳐드릴 겁니다.’
@
“아악!”
오늘도 강영훈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같은 꿈이 벌써 세 번째였다. 꿈에 나타났던 괴물들의 모습과 싸움도 양상도 똑같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꾸었던 꿈은 앞의 두 개와 조금 달랐다.
마지막에 다섯 개의 구슬을 안았을 때, 그 구슬들이 한 덩어리가 되더니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순간 강영훈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던 것이다.
강영훈은 아직도 고통의 잔재가 가시지 않은 듯 손으로 가슴을 문질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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