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대단하지만 위험하다고?
차승연은 사무실 가장 안쪽 창가로 걸어갔고, 그곳에는 넓은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년사내가 있었다.
금테 안경을 쓰고 상당히 깐깐한 인상의 사내였는데,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었지만 나이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권 팀장님.”
인사팀장 권혁이 고개를 들더니 그녀와 곁에 서 있는 강영훈을 한눈에 훑었다.
강영훈은 그의 시선이 왠지 싫었다. 마치 사람을 꿰뚫어보고 평가까지 하려는 기색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강영훈이 그에게 인사를 할 사이도 없이 인사팀장은 바로 옆에 있는 원형테이블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저쪽으로 앉지.”
차승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강영훈과 함께 원형테이블 앞에 앉았다.
차승연은 변함없이 냉랭한 표정으로 창밖으로 바라보았고, 강영훈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오직 정면의 벽만 뚫어져라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라는 말은 지금의 상황을 두고 나왔으리라. 인사팀장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아무 말도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고, 차승연은 그런 그에게 한 마디 재촉의 말도 없이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강영훈은 워낙 오랫동안 온몸을 딱딱하게 경직시킨 바람에 온몸의 근육과 관절은 모조리 다 비명을 지르기 일보직전이었다. 두 다리가 후들거리려 했고, 허리와 뒷목이 나무처럼 뻣뻣하게 경직되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던 강영훈이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차승연과 인사팀장이 일제히 강영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강영훈은 크게 당황했지만 최선을 다해 나름대로의 기지를 발휘했다.
그가 인사팀장에게 머리를 꾸뻑 숙이더니 최대한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강영훈이라고 합니다.”
인사팀장이 강영훈의 얼굴을 보고 흠칫 하는 표정을 지었다. 때마침 강영훈의 안면 근육이 경기를 일으켜 왼쪽 눈 아래가 파르르 떨렸는데, 그건 마치 ‘나 사고 치기 일보 직전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인사팀장은 헛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험험! 차승연 씨에게 얘기 들었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그가 원형 테이블로 건너와 자리에 앉더니 들고 있던 노트를 뒤적거렸다.
“며칠 전에 능력자 등록을 마쳤고 판정은…….”
차승연이 갑자기 그의 말을 잘랐다.
“팀장님, 이미 이야기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응? 그, 그렇지.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군. 차승연 씨를 구해줘서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우리 클랜은 귀중한 자원을 잃을 뻔했어.”
강영훈은 그가 강변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말한다는 것을 곧바로 깨닫고 짧게 겸양의 말을 했다. 그런데 기분은 좋지 않았다.
‘승연이가 자원이라고? 이 양반에게는 사람이 기계 부속품으로 보이는 모양이군.’
인사팀장이 노트를 뒤적거리는 척하더니 가까이 있던 직원에게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곧이어 직원이 계약서를 가져오자 그가 강영훈 앞에 내밀었다.
“이걸 작성해 주게. 그리고 등록증을 잠시 주겠나?”
강영훈은 아무 말 없이 능력자등록증을 그에게 건네주고는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인사팀장은 강영훈의 등록증을 직접 복사한 후 다시 강영훈에게 돌려주었다.
잠시 후 강영훈이 고용계약서 작성을 마치자 인사팀장이 몸을 일으키더니 손을 내밀었다.
강영훈이 얼떨결에 그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강철도끼 클랜에서 일하게 된 걸 축하하네.”
“고맙습니다.”
강영훈은 마음속에서 격동이 일어났지만 애써 짧고 굵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렇게 해서 강영훈은 슈퍼3의 하나인 강철도끼 클랜의 고용인이 되었다. 비록 비정규직이긴 해도 말이다.
18. 대단하지만 위험하다고?
“푸하!”
강영훈이 화장실에서 세안을 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에 반사된 사람은 도저히 자신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달라보였다. 안면 근육은 아직도 경직되어 부들부들 떨렸고, 억지로 웃어보려고 하자 온 얼굴에 경기가 일어났다.
‘미치겠군. 이런 표정으로 어떻게 일을 하지?’
그는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경직된 근육을 풀었다. 그리고 어깨와 허리, 무릎을 이리저리 돌리자 온몸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정도 몸을 푼 강영훈은 다시 안색은 단단히 굳힌 채 화장실을 나갔다. 복도에서 차승연이 여전히 냉랭한 표정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영훈이 그녀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승연아, 아직 여기서 할 일이 남았어?”
“그래. 날 따라와.”
강영훈은 그녀를 따라가며 최대한 입을 벌리지 않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 안면근육이 마비되기 직전이야. 이러다가 쓰러지겠어.”
“조금만 참아. 총괄지원팀장도 만나야 하고 팀원들 얼굴도 익혀야해. 그리고 그 전에…….”
“…?”
“ESP측정을 다시 한 번 해보자.”
“그건 능력자협회에서 이미 했잖아?”
“미심쩍은 게 있어서 그래.”
“뭐가…?”
“결과가 나오면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 그래.”
강영훈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녀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ESP 측정실’이라는 팻말이 달린 방이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능력자협회의 계측실과 상당히 비슷했다.
그런데 능력자협회에서 보았던 MRI기기 같은 커다란 장치들 대신 상당히 작고 간편해 보이는 장비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젊은 사내들 두 명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강영훈과 차승연이 안으로 들어오자 두 사람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둘 중 한 사람이 차승연에게 급히 다가왔다.
“제3정규공격대의 차승연 씨 아니십니까?”
차승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한 후 대답했다.
다음에 계속...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