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막이 아름다운 건 우물이 있기 때문이야
곧이어 청룡과 화룡의 싸움이 하늘에서 벌어졌다.
청룡은 화룡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움직임이 빠르고 기민했다.
화룡이 화염덩어리를 토해 내면 청룡은 푸르스름한 입김을 뿜어냈는데, 화염덩어리가 거기에 닿는 순간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수증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며 소멸했다.
화룡과 청룡의 싸움은 한참동안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커다란 화염덩어리 하나가 강영훈의 근처에 떨어져 폭발을 일으켰다. 강영훈이 화염에 휩싸이기 직전 푸르스름한 입김이 강영훈의 주변을 감쌌다.
강영훈은 지독한 냉기와 열기를 동시에 느끼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런데 화염덩어리가 떨어진 지점에서 흙더미가 갑자기 솟구치더니 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거인 골렘이 나타났다. 뿐만 아니다. 청색 입김이 서린 곳에서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반지의 제왕’ 속의 나무 요정 앤트와 흡사한 모습이 되었다.
골렘과 나무거인은 서로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강영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늘에서는 화룡과 청룡이, 땅위에서는 골렘과 나무거인이 격전을 벌이는 바람에 자신은 그 사이에 끼어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다.
화룡과 청룡의 싸움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지만 골렘과 나무거인의 싸움은 그렇지 않았다. 나무거인이 커다란 주먹으로 골렘을 마구 후려치자 흙으로 이루어진 골렘의 몸이 푹푹 파여 나갔던 것이다.
골렘도 삽처럼 생긴 커다란 손으로 나무거인을 때렸지만 나무거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골렘의 팔 하나가 나무거인의 주먹에 얻어맞아 땅에 떨어졌다.
우워어!
골렘이 천둥 같은 울음을 토하며 주춤거렸다. 그런데 골렘의 팔이 떨어진 땅이 들썩이더니 새로운 괴물이 나타났다. 강철로 만들어진 황금색 거인이었다.
강철거인은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육중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강영훈을 향해 다가갔다.
강영훈은 두려움에 질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때, 나무거인과 골렘이 동시에 강철거인을 덮쳤다.
강철거인이 즉시 주먹을 휘두르며 반격을 했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거인이 뒤로 튕겨났고, 골렘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채 쓰러졌다.
강철거인이 다시 강영훈에게 다가갔다. 그때 허공에서 화염덩어리 하나가 날아와 강철거인의 등을 때렸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강철거인의 온몸에 불길에 휩싸였다.
키이이잉!
나무거인과 골렘을 한 주먹으로 제압해버린 강철거인이었지만 화염공격에 한 방에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강철거인이 주춤거리는 사이 나무거인과 골렘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팔이 떨어져나가고 가슴에 구멍이 났던 골렘은 어느새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제 난전이 벌어졌다.
두 마리의 용과 세 거인들이 서로 뒤엉켜 상대를 제압하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강영훈은 그 광경을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건 신화에서나 있을 법한 웅장한 광경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괴물들의 싸움은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화룡의 화염공격에 강철거인은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녹아내렸다. 하지만 화룡도 청룡의 입김에 몸통 곳곳이 얼어붙어 부서졌다.
골렘은 나무괴물의 주먹에 무너져 내렸고, 나무괴물은 강철거인의 주먹에 사지가 떨어져 나갔다. 청룡도 무사하지 못했다. 골렘의 팔에 잡혀 온몸이 으깨져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괴물들의 싸움은 서로가 서로를 부수고 짓밟으며 끝이 났다.
초원에 널브러진 다섯 괴물들이 갑자기 빛을 뿜어내더니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구슬 하나씩을 남기고 사라졌다.
강영훈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구슬들을 주웠다. 크기는 비슷했지만 색깔은 달랐다. 화룡이 남긴 건 붉은색, 청룡은 푸른색, 그리고 골렘은 황갈색, 나무괴물은 초록색이었다. 마지막으로 강철거인은 황금색 구슬을 남겼다.
강영훈이 구슬을 품에 안는 순간 다섯 가지 영롱한 빛이 그의 온몸을 감쌌다.
순간 엄청난 고통이 밀려와 강영훈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5. 사막이 아름다운 건 우물이 있기 때문이야
비명소리와 함께 강영훈이 꿈에서 깨어났다.
“헉헉헉!”
가쁜 숨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중년여인이 들어왔다.
“영훈아!”
그녀는 암 투병 중인 강영훈의 어머니였다.
짧은 파마머리에 많은 풍상을 겪은 듯 피부가 다소 거칠었지만 젊었을 때에는 제법 미인 소리를 들었을 법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폐암 말기의 환자였지만 혈색이 좋고 살도 빠지지 않아 병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양쪽 눈 밑에 거무스름한 다크써클이 있어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풍겼다.
강영훈의 어머니는 아들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다가왔다.
“여, 영훈아! 이게 무슨 소리야?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냐?”
“아, 아니에요. 악몽을 꿨나 봐요.”
“악몽이라고? 도대체 어떤 악몽을 꿨기에…….”
“정말 생생한……. 아, 아니에요. 전 괜찮으니까 그만 들어가세요.”
“정말 괜찮으냐?”
“네.”
“쯧쯧쯧. 얼마나 술을 퍼마셨기에……. 어서 샤워하고 밥이나 먹어라. 해장국 끓여 놨다.”
“술 마신 거 어떻게 아셨어요?”
“어제 늦게 들어왔잖아! 적당히 마시라고 그렇게 얘기해도 듣지도 않고…….”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깨셨나 보네요.”
“너도 내 나이 돼봐라. 귓구멍이 커져서 쥐새끼 걸어 다니는 것까지 다 들린다.”
“예…….”
어머니는 평생 모진 고생만 하고 사셨기에 자연히 말투가 거칠었다. 그리고 강영훈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항상 보아 왔기에 험한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음에 계속...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