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두려워 말고 싸워요. 내가 뒤에 있으니까
그들 중 둘이 그녀의 주의를 끄는 사이 또 한 명이 뒤로 몰래 돌아갔다. 그런데 그 자의 손에 자그마한 곤봉이 들려 있었다.
퍽!
뒤통수를 곤봉에 얻어맞은 미녀는 온몸을 휘청거렸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곤봉을 휘두른 사내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미녀의 주먹이 ‘윙!’ 하는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사내들이 두려운 표정으로 주춤거렸지만 이내 눈빛을 빛냈다. 주먹을 휘두른 미녀가 다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던 것이다.
“완전히 취했어! 잡을 수 있겠다.”
사내들이 입술을 혀로 핥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멀지않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영훈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저 주먹에 맞으면 헤비급 권투선수라도 다운되고 말겠다. 어떻게 저런 가녀린 몸에서 저런 펀치가…….’
강영훈은 미녀가 능력자임을 알았으니 사내들이 도망을 치리라고 생각했지만 틀렸다. 사내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녀를 품(品)자 모양으로 포위했다.
강영훈은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서 경찰에 신고를…….’
그가 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지만 배터리가 이미 방전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런!’
강영훈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미녀를 쳐다보았다.
미녀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곤봉으로 맞았을 때 다친 모양이었다.
그때, 푸른빛이 그녀의 머리에서 은은하게 일어났다가 사라졌고 피는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았다.
힐러들의 전유물인 힐링 포스였다.
그 광경을 본 사내들이 소리쳤다.
“대, 대박이다! 힐러야!”
힐러는 치유능력자다. 능력자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해 있는 가장 고귀한 자들이다. 색욕으로 번들거리던 사내들의 눈빛에 탐욕이 덧씌워졌다.
순간, 강영훈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인신매매범들!’
가끔 뉴스에 오르내리는 메뉴다. 능력자들을 납치해 팔아넘기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 때문에 경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워낙에 잘 조직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당수의 능력자들까지 포함되어 있어 일반 경찰들로서는 그들과 마주쳐도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기껏해야 일반인으로 구성된 조무래기들만 붙잡을 수 있었는데, 그들은 도마뱀의 꼬리에 불과했다.
인신매매조직이 가장 선호하는 능력자가 바로 힐러다. 뛰어난 힐러 한 명만 납치하면 조직 하나를 통째로 먹여 살릴 정도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세상에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힐러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빗자루로 쓸어다 버릴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힐러는 공격과 방어력이 능력자들 중 가장 약해 인신매매범들의 좋은 표적이 되었고, 실제로 다수의 힐러들이 납치되기도 했다.
결국 능력자협회에서 선언했다. 정부가 능력자들에 대한 납치를 계속 방치한다면 괴수 사냥을 즉시 중지하겠다고 말이다. 이건 정말 무시무시한 협박이었다.
정부는 서둘러 능력자들로 구성된 특수수사팀을 꾸렸고, 납치범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목할 만한 성과가 나타났다. 중국, 일본과 연계된 납치범 조직들이 일망타진되었고 능력자들에 대한 납치 범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납치조직을 뿌리 뽑지는 못했다. 조직은 지하 깊숙이 숨어들었고, 범죄 수법은 더욱 치밀해졌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지금 힐러를 공격하고 있는 사내들도 인신매매 조직과 어떤 방식으로든 끈이 닿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칼을 꺼내! 저 년은 아무리 쑤셔도 죽지 않아!”
“빨리 잡아서 독사 형님께 데려가자!”
사내들이 일제히 칼을 꺼내 들었는데, 그들의 눈빛은 굶주린 늑대와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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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졌던 힐러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사내들은 그녀를 포위하고 있었지만 섣불리 덤벼들지는 못했다. 아무리 힐러라 해도 일반인들에 비해서는 훨씬 강한 신체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주먹에 한 방 얻어맞기라도 하면 뼈가 부러지고 말 것이다.
힐러가 반쯤 풀린 눈으로 소리쳤다.
“이 나쁜 자식들…….”
다음 순간, 사내 하나가 그녀의 뒤에서 접근하더니 칼을 휘둘러 등을 베었다. ‘악!’ 하는 비명과 함께 옷이 갈라졌고 그 사이로 피가 흘렀다. 푸른빛이 상처에서 아른거리자 피는 금방 멎었다. 그리고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그녀의 표정도 이내 펴졌다.
힐러는 자신을 공격한 사내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녀의 주먹은 한참 빗나가 빈 공간만 갈랐을 뿐이다. 술에 워낙 취해 다리가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칼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그녀는 두 팔을 마구 휘둘렀지만 상처가 계속 생겨났다가 푸르스름한 빛과 함께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강영훈은 너무도 끔찍한 광경에 온몸이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도와주기에는 너무 겁이 났고, 도망을 치자니 무릎이 후들거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힐러는 꽤 오랫동안 버텼다. 상처는 이내 나았지만 피를 워낙 많이 흘려 온몸에 선혈이 낭자했다.
“아악!”
처절한 비명이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사내 하나가 그녀이 등 한복판에 칼 한 자루를 깊숙이 박은 후 물러났던 것이다. 힐러는 칼을 빼내기 위해 손을 등 뒤로 뻗었지만 닿지가 않았다.
“됐다!”
사내들이 희열에 찬 표정으로 땅에 한쪽 무릎을 꿇은 그녀를 지켜보았다.
힐러의 온몸에서 푸른빛이 계속 아른거렸다. 그러나 몸에 꽂힌 칼을 뽑지 않고서는 상처를 회복시킬 수 없었다.
그녀가 고통에 찬 신음성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때, 그녀의 시선이 강영훈과 마주쳤다.
탓!
힐러가 마지막으로 힘을 모아 땅을 박찼다.
그녀는 무서운 속도로 강영훈의 코앞까지 다가오더니 그와 한 덩어리가 되어 땅바닥을 뒹굴었다.
우당탕!
“크윽!”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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