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팀장님께 ‘닥터 차’가 왔다고만 전해주세요.
“어이구, 이게 누구야? 닥터 차 아냐?”
“오랜만이에요, 전 팀장님.”
“사무실로 그냥 올라오지 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자자, 어서 올라가자고.”
“아니에요. 오늘 등록할 친구가 있어서 같이 왔어요.”
“등록할 친구?”
강영훈이 나서서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강영훈이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반가워요.”
그가 차승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 둘이…….”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차승연의 말에 전 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명의 은인이라고? 오늘 등록하러 왔다면 아직 예거도 아닐 텐데…….”
“그럴 사정이 있었어요. 어쨌든 팀장님이 편의를 좀 봐주세요. 제가 바빠서요.”
“아, 그래? 알았어. 강영훈 군이라고 했나? 따라오게.”
“예…….”
강영훈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차승연과 함께 그를 따라갔다.
@
강영훈이 전 팀장을 따라 들어간 곳은 위층에 있는 하얀 방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 몇이 있었고 신체검사를 위한 여러 가지 기구들과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장치들이 그곳에 놓여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전 팀장을 향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팀장님 오셨습니까?”
“전 팀장님!”
“어, 그래. 여기 있는 이 친구 신체검사하고 능력특성 및 ESP 계측 좀 해봐. 오늘 등록할 거니까.”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 중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강영훈에게 다가왔다.
“이쪽으로 오시죠.”
강영훈은 우선 탈의실로 가서 헐렁한 반바지에 목욕가운과 비슷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설문지 형식의 서류를 작성했다. 서류에는 자신의 DNA를 연구용으로 제공하는데 동의하겠다는 문구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강영훈은 다소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규정상의 절차라는 말을 듣고 서둘러 작성을 마쳤다.
그 후에는 본격적인 신체검사가 시작되었다. 신장과 체중을 재고 혈압, 혈액검사 등이 이어졌고, 그 과정을 모두 마치자 본격적인 ESP계측에 들어갔다.
가영훈은 가운을 벗고 반바지만 입었다. 가까운 곳에 차승연이 있어 다소 부끄러웠지만 병원에 왔다 생각하고 참았다.
가슴과 명치, 그리고 손과 다리에 선이 연결된 센서를 부착한 채 MRI기계와 비슷한 장치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자, 시작합니다.”
강영훈은 눈을 질끈 감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높은 능력치가 나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위이이잉!
은은한 기계음이 들리더니 알록달록한 빛이 일어났다.
강영훈은 온몸에 부착된 센서로부터 저릿한 기운이 일어나는 것과 거기에 반응해 자신의 몸에서 어떤 힘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소리가 잦아들었고 알록달록한 빛도 사라졌다.
“끝났습니다. 그만 나오세요.”
강영훈은 지시에 따라 기계장치에서 몸을 빼냈다.
“수고하셨습니다. 결과치는 곧 나올 겁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내가 강영훈을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데려갔다. 전 팀장은 물론 차승연도 그의 곁으로 다가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강영훈은 자신의 능력을 검사한 결과치가 곧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상당히 긴장했다.
삑! 삐비빅!
규칙적인 신호음이 몇 차례 울리더니 모니터 화면이 밝아졌다.
ESP : 303
Stability : Low
Fluidity Score : 32
Property Color : ERROR... ERROR... ERROR...
강영훈의 표정에 씁쓸함이 스쳤다. 다른 용어들은 알 수 없었지만 ESP가 303에 불과하다는 건 언노운이 확실할 뿐 아니라 능력수치도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 팀장과 미간을 찌푸렸다.. 모든 지표가 강영훈이 언노운임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한 가지 항목에서 에러가 뜬 것이다.
“속성컬러에 왜 에러가 나? 정 실장. 어떻게 된 건가? 장비 고장 난 거 아냐?”
정 실장이라 불린 하얀 가운의 사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글쎄요. 조금 전까지 아무 이상 없이 작동하고 있었는데…….”
그가 키보드를 두드리며 잠시 상태를 점검하더니 말했다.
“계측기는 이상 없습니다. 에러가 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게 말이 돼? 이유를 모르다니! 다시 체크해봐.”
전 팀장이 차승연의 눈치를 보며 역정을 냈다.
정 실장을 비롯해 흰 가운을 입은 직원들이 기기들을 바쁘게 점검하기 시작했다.
전 팀장이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차승연에게 말했다.
“닥터 차. 이거 미안해. 갑자기 에러가 나다니 말이야. 이런 적은 거의 없었는데…….”
“얼마나 더 걸리겠어요?”
“일단 한 번만 더 계측해보자.”
강영훈은 다시 계측장치로 들어가 테스트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결과는 동일했다.
“이것 참…….”
전 팀장은 물론 계측을 담당한 직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5. 아마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켰겠지
난감해하고 있던 전 팀장에게 차승연이 말했다.
“속성컬러만 제외하고 등록하면 안 될까요? 어차피 그건 이 상황에서 의미가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ESP만 봐도 언노운이 확실하니까 속성컬러는 블랙으로 나올 게 분명해. 다만 유동지수가 지나치게 낮은 게 좀 걸리는데…….”
“ESP가 아직 고정되지 않아서겠죠. 후에 수치가 조금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것도 별 의미는 없을 거예요.”
전 팀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대로 등록하지 뭐. 속성컬러는 수동으로 블랙이라고 기표하면 되니까.”
강영훈은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은 후 전 팀장, 차승연과 함께 계측실을 나왔다.
“사무실에 가서 차라도 한 잔 하지? 등록증을 발부하려면 30분 정도 걸릴 거야.”
“아니에요. 여기서 기다리겠어요.”
“그러지 말고 들어가자. 내가 커피 하나는 끝내주게……. 휴! 알았어.”
전 팀장은 차승연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다음에 계속...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