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휴우! 정말 끔찍한 고통이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줄 알았네.”
지독한 악몽을 사흘 연속으로 꿨지만 강영훈의 표정은 밝았다. 자신이 꾼 꿈이 각성을 위한 예지몽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후후후, 능력자만 될 수 있다면 이런 꿈은 일 년 내내 꾸겠다.”
강변에서 활극을 벌인 후 사흘이 지났지만 아직 힐러 차승연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러나 크게 섭섭하지도 않았다. 능력자만 될 수 있다면 자신의 힘으로 어머니를 치료해드릴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힐러나 예거가 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부처님. 하나님. 알라님. 제발 부탁합니다. 힐러가 아니라면 예거라도 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어머니를 따라 절에 몇 번 가본 게 전부인 강영훈은 두 손을 모아 모든 신들에게 합동으로 기도를 올렸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강영혼은 각성담을 모아 놓은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지…? 아!”
강영훈은 발신자가 차승연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강영훈 씨. 저 차승연이에요.
“아, 예! 안녕하세요. 몸은 좀 어떠세요?”
- 며칠 병원에서 푹 쉬었더니 좋아졌어요. 영훈 씨는 어때요?
“저야 뭐 애초에 다치지도 않았던 걸요? 승연 씨의 힐링 포스 덕분입니다.”
- 다행이에요. 다름이 아니라…, 오늘 점심 때 혹시 시간 나세요? 식사라도 했으면 하는데요.
“아, 예. 별 일 없습니다.”
- 그럼 제가 직접 모시러 가겠어요. 계시는 곳 주소를 좀 찍어주시겠어요?
“제가 찾아 가겠습니다. 굳이 오실 필요는…….”
- 아니에요. 제가 꼭 모시고 싶어요.
“그럼…, 알겠습니다. 주소 찍어드리겠습니다.”
- 12시까지 갈게요.
“예. 나중에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강영훈은 주먹을 꽉 거머쥐며 ‘오 예!’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너무 기뻐서 폴짝폴짝 뛰면서 막춤을 췄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어머니가 들어왔다.
“이 녀석아! 다 큰 놈이 무슨 오두방정이냐? 동네 시끄럽게!”
“어머니!”
강영훈이 어머니를 와락 껴안더니 억지로 탱고 스텝을 밟으며 춤을 췄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며 소리쳤다.
“이, 이놈이 미쳤나! 당장 놓지 못해!”
“어머니! 이제 됐어요! 됐다고요! 쨘쨘쨔라! 짜라라라라! 쨘쨘쨔라! 짜라라라라! 앗싸! 한 바퀴 도시고!”
탱고에서 갑자기 지루박으로 바뀌는 순간,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뿌리치더니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찰싹!
“아얏!”
“이 녀석! 아직 정신 안 차릴래? 한 대 더 맞아라!”
“아야야! 그만 때리세요. 아들 엉덩이에 불나요!”
강영훈이 어머니의 손바닥을 피하느라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엉덩이 대신 기필코 등판에 손자국 하나를 낸 후 팔을 내렸다.
“우씨! 아파 죽겠네.”
“이놈이…, 다 죽어가는 어미 앞에서 죽는다는 소리가 나와?”
“어머니 손때가 너무 매워서 그렇죠. 그리고 다 죽어 간다는 분이 무슨 힘이 그렇게 세요?”
“뭐라고? 이 녀석이 어디서 엄살을…….”
다시 팔을 들어 올리는 어머니를 강영훈이 급히 말렸다.
“아, 아닙니다. 괜찮아요. 이제 하나도 안 아픕니다. 안 아파요! 헤헤헤.”
“방정맞은 것도 지 애비 닮아서……. 쯧쯧쯧.”
혀를 차는 어머니를 본 강영훈은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못난 꼴을 보일 때마다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지 애비 닮아서’라는 말 때문이다. 어머니의 말씀대로라면 돌아가신 아버지는 생전에 찌질의 극치를 달리는 분이셨으리라.
하지만 강영훈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결코 그런 분이 아니셨다. 말썽꾸러기였던 자신에게 손찌검 한 번 하지 않았을 정도로 따뜻하고 자상하며 성실한 분이셨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의 성격은 유별나지 않았다. 홀로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모진 세상의 풍파를 몸으로 견디느라 억척으로 변하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 난리냐? 로또에 당첨되기라도 했냐?”
“일전에 말씀드렸던 친구가 드디어 힐러를 소개해 준답니다.”
어머니가 흠칫 하더니 이내 손사래를 쳤다.
“에이, 설마! 병든 어미 놀리면 천벌 받는다.”
“정말이에요. 12시에 만나기로 했어요.”
강영훈이 약속시간까지 말하자 어머니의 눈이 커졌다.
“그, 그래? 그럼 정말이야?”
“그럼요. 이 아들이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보셨어요?”
“그런데…, 그 힐러가 정말 도와줄까?”
“분명히 도와 줄 거예요.”
“대가를 바라겠지?”
“…….”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솔직히 말해봐. 너 어떻게 해주기로 한 거야?”
“아, 아직 그런 거 없어요.”
어머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영훈아. 이 어미가 분명히 말하는데 엉뚱한 짓을 저질렀다가는 이 어미가…….”
“혀를 콱 깨물고 돌아가시겠다고요?”
“그래!”
“걱정 마세요. 어머니가 혀를 깨물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이 아들을 한 번 믿어보세요.”
강영훈이 이렇게까지 말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풀지 않았다.
6.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샤워와 면도를 깨끗이 한 후 머리까지 단정히 빗어 넘겼다. 뿐만 아니라 겨드랑이에 향수를 뿌리고 스킨로션을 얼굴에 발랐다.
마지막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 본 후, 강영훈은 미소를 씩 짓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짜식! 아주 잘 생겼다.”
자신의 양쪽 볼을 소리가 나도록 찰싹 때린 후 욕실을 나오자 어머니가 서 있었다.
“도대체 욕실에서 뭘 하고 자빠졌다가 이제야……. 응? 너 여자 만나러 가냐?”
“아뇨. 힐러 만나러 가는데요?”
“그럼, 힐러가 여자냐?”
“예…….”
“그럼 그렇지……. 젊고 예쁜가 보구나.”
“그럴…, 걸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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