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팀장님께 ‘닥터 차’가 왔다고만 전해주세요.
‘승연이는 오늘 어려운 모양이지? 시간이 되면 연락한다고 했는데……. 쩝! 할 수 없지.’
강영훈은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승연이는?”
“아직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오늘 힘든가 봐요.”
“그래? 어쩔 수 없지. 조심해서 다녀와.”
“예, 어머니.”
강영훈이 현관을 나가자 어머니가 따라 나와 배웅했다.
“그만 들어가세요.”
“너 가는 거 보고.”
강영훈이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멀리서 ‘부르릉’ 하는 배기음이 들려왔다.
강영훈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이처럼 육중하게 깔리는 배기음은 아무 차나 낼 수 없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골목 저편에서 외제 스포츠카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승연아!”
강영훈이 스포츠카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어머니도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스포츠카가 강영훈의 집 앞에서 멈추었고, 차승연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어머니! 영훈아!”
“승연아! 왔어?”
“아이고, 우리 승연이 왔네. 정말 반갑다.”
차승연이 어머니와 손을 잡았다.
“어머니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그래. 잘 지냈어? 이게 얼마만이야?”
“죄송해요. 자주 찾아뵀어야 했는데 너무 바빴어요.”
“얼마나 바빴기에 얼굴이 반쪽이 됐누? 밥은 제대로 챙겨먹었어?”
차승연의 얼굴을 살피고 어깨와 등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에는 친부모와 다름없는 깊은 정이 있었다.
“네. 어머니…….”
“시간 나면 언제라도 와서 밥 먹고 가. 내가 밥줌마 경력만 10년이야. 음식 하나는 끝내주게 해.”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그래. 꼭 와야 해.”
“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차승연은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고 강영훈과 함께 차에 올랐다.
부르릉!
차승연은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백미러를 응시했다.
“승연아. 괜히 나 때문에 일도 못하고 온 거 아냐?”
“아냐. 오늘 쉬는 날이야.”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로 쉬는 날은 아니었다. 원래는 중요한 레이드가 코앞에 다가와 있어 전략회의에 참석하고 장비를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빠졌던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레이드에 집중하는 게 옳겠지만 이제 그건 별로 즐겁지 않았다. 공대장과 얼굴이 마주치면 짜증이 났고, 목숨을 잃은 친구가 떠올라 괴롭기만 했다.
그러나 강영훈과 그의 어머니를 만나면 행복했다. 특히 자신을 챙겨주려는 어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녀의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느낌이었다.
차승연은 오랜만에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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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은, 초현대적 느낌이 물씬 나는 건물 앞에서 차승연의 스포츠카가 멈추었다.
차에서 내린 강영훈이 건물을 둘러보며 탄성을 터뜨렸다.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우주선의 이미지를 살려서 지어진 이 빌딩은, 강영훈으로 하여금 머나 먼 미래의 세상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히야! 정말 멋진 건물이네.”
“사람들 모두 그렇게 말해. 실제로 최신기술이 집약된 건물이기도 하고. 어서 들어가자.”
두 사람이 입구로 향하자 어느새 카메라가 장착된 작은 드론 하나가 허공에 뜬 채 소리 없이 두 사람을 따라왔다.
건물에 들어서자 안내데스크가 보였고, 그곳에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예쁜 아가씨 한 명이 왼쪽 귀에 블루투스이어폰을 착용한 채 앉아 있었다.
강영훈과 차승연이 다가오자 그녀가 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강영훈이 대답하려는 순간, 차승연이 먼저 말했다.
“전준호 계측팀장님을 만나러 왔어요.”
“계측팀장님을요? 혹시 약속은 하셨나요?”
“팀장님께 강철도끼 클랜의 ‘닥터 차’가 왔다고만 전해주세요.”
‘강철도끼’와 ‘닥터’라는 단어가 차승연의 입에서 나오자 안내사원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 알겠습니다. 저쪽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제가 바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차승연은 고개만 살짝 끄덕인 후, 아직도 멀뚱거리고 있던 강영훈의 팔을 잡고 옆쪽에 마련된 소파에 가서 다리를 꼬고 앉았다.
강영훈은 도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차승연의 모습을 힐긋거리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끔한 정장을 입은 사내와 여성들이 서류를 들고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에는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마치 인조인간을 보는 것 같았다.
말 한번 잘못 꺼냈다가는 뺨 맞을 분위기에 강영훈은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두 손을 무릎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그때, 두 명의 청년들이 로비로 들어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안내 데스크로 갔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예. 능력자 등록을 하러 왔습니다.”
“두 분 다 하실 건가요?”
“저 혼자입니다.”
“그럼 저쪽에 있는 대기실로 가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주세요.”
“친구와 함께 들어가도 되겠죠?”
“안 됩니다. 당사자만 들어가실 수 있어요.”
“쩝! 그럼 시간은 얼마나…?”
“다섯 시간가량 소요될 겁니다.”
“그, 그렇게 오래 걸려요?”
“그렇습니다.”
청년들은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더니 한 명은 대기실로, 그리고 또 한 명은 모듈게임방으로 간다며 나가버렸다.
강영훈이 조심스럽게 차승연에게 말을 붙였다.
“승연아. 등록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모양인데…, 네 시간 너무 많이 뺏는 거 아냐? 내가 대기실 들어가면 넌 그냥 가는 게 좋겠다.”
“걱정 마. 금방 끝날 테니.”
“그, 금방 끝난다고? 방금 다섯 시간은 걸린다고…….”
강영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승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비 저쪽에서 삼십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정장의 사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는데, 그는 차승연을 보자 환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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