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비를 맞지 않고서는 무지개를 볼 수 없다
8. 비를 맞지 않고서는 무지개를 볼 수 없다
잠에서 깨어난 강영훈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흐으으! 몸이 왜 이렇게 뜨겁지? 감기라도……. 아! 아니지. 이건 혹시 성장통…?”
강영훈은 곧바로 방을 나갔다.
동생은 이미 등교를 했고, 어머니는 방에서 누워 TV를 보고 계셨다.
“어머니!”
“이제 일어났냐? 밥 먹어야지?”
“저 성장통이 시작된 것 같아요.”
“성장통?”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능력자로 각성하기 전에 며칠 아플 거라고요.”
“아! 그럼 어떻게 하냐? 병원에라도 가봐야지?”
“병원에 가도 소용없어요. 견디는 수밖에요.”
“그럼 어서 밥이라도 든든히 먹어라. 몸이 아플수록 잘 먹어야 이겨낸다.”
어머니가 곧바로 부엌으로 가더니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강영훈은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식감은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억지로 한 그릇을 비운 강영훈은 자신의 방으로 가서 침대에 누웠다.
곧이어 어머니가 꿀물을 타서 가져왔다.
“이거라도 마셔라.”
꿀물을 단번에 비우고 자리에 드러누운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운지 어머니는 강영훈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많이 아프냐?”
“아직은 괜찮아요. 하지만 본격적인 성장통이 시작되면 꽤 아플 거예요.”
“저런! 어떻게 하누…….”
강영훈이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냐?”
“어머니가 제 병간호를 해주시는 게 참 오랜만인 것 같아서요.”
“녀석아! 네가 어렸을 때 이 어미가 병간호를 얼마나 많이 해줬는데?”
“하긴, 제가 병치레가 잦았죠. 그래도 열 살 이후에는 병원에 가본 적이 거의 없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네 아버지가 이렇게 장성한 네 모습을 보았으면 참 좋아했을 텐데…….”
“어머니…….”
강영훈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시라 이젠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하지만 가끔 단편적인 기억이라도 떠오를 때면 왠지 울적해졌다.
“음! 갑자기 잠이 쏟아지네요. 저 좀 자야겠어요.”
“그래. 알았다. 푹 자거라.”
어머니가 아들의 가슴에 손을 얹고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강영훈은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이내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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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왕십리동은 강남 지역을 잃은 후 서울의 새로운 부촌으로 떠올랐다. 고층빌딩과 고급아파트들이 건설되었거나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왕십리3동에는 사무실이나 오피스텔이 많이 있었고, 그곳에는 예거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일명 ‘예거촌’이라 불리기도 한다.
예거촌에 있는 20여 평짜리 오피스텔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차승연의 눈빛은 무척 슬펐다. 그녀는 레이드에서 잃은 친구로 인한 슬픔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위이이잉!
진동으로 맞춰놓은 핸드폰이 울리자 그녀는 화면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고민하던 차승연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핸드폰 너머로 젊고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닥터 차, 이번 레이드도 빠지겠다고?
닥터(Doctor)는 주로 의사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지만 예거들 사이에서는 힐러를 이렇게 부른다.
“죄송해요, 공대장님. 당분간 좀 쉬고 싶어서요.”
- 트라우마가 너무 오래 가는 거 아냐? 이럴 때일수록 일에 빠지는 것도 슬픔을 잊는 좋은 방법이라고.
차승연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개새끼’라고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사실 지난번 레이드에서 그녀가 친구를 잃은 건 자신이 힐링 포스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무모한 공격 명령을 내린 공대장(괴수 공격대의 리더)의 책임이 더욱 컸다.
“다음 레이드 땐 참가하도록 해볼 게요.”
- 그래. 알았어. 그럼 푹 쉬어.
통화가 끝나자마자 차승연은 핸드폰을 소파에다가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렸다.
“나쁜 새끼…….”
차승연은 무릎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위이잉! 위이잉!
핸드폰 진동음이 다시 울렸지만 차승연은 신경도 쓰지 않고 침대로 걸어가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통곡을 하듯 큰 소리로 울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차승연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났다.
큰 소리로 울고 푹 잤기 때문인지 울적하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그녀는 잠시 침대에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위이잉! 위이잉!
‘오늘따라 자주 울리네.’
그녀는 소파 위에 던져 놓았던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열었다.
[부재중 전화 7회 강영훈]
‘응? 무슨 일이지?’
차승연이 곧바로 발신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힐러 아가씨?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뜻밖에도 중년 여인의 것이었다.
‘이 목소리는……. 아!’
“여보세요. 영훈 씨 어머니죠? 안녕하세요?”
- 아이고, 힐러 아가씨! 우리 영훈이가 다 죽어가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 영훈이 말로는 성장통이라고 하는데 너무 심하게 앓아요. 병원에 데려가야 할지, 이대로 둬야 할지 모르겠네요. 힐러 아가씨가 좀 와주면 안 될까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제가 바로 달려가죠. 그리고 너무 걱정 마세요. 성장통을 앓다가 잘못된 사람은 아직 없었으니까요.”
- 고마워요. 어서 좀 와줘요.
“네, 어머니.”
차승연은 화장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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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훈의 방에 들어선 차승연은 깜짝 놀랐다.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침대에 누워 ‘따다닥’소리가 나도록 이를 마주치고 있는 강영훈 때문이었다. 강영훈의 몸 위에는 두툼한 이불이 덮여 있었고 바로 옆에는 전기난로까지 켜져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한 저체온증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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