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냥 호텔에 놀러 왔다고 생각하세요
호그를 상대하는 예거들의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웠다. 특히 호그와 근접전을 벌이는 예거는 신화 속에서 괴물과 싸우는 헤라클레스를 연상케 했다.
차승연이 곁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그로가 제대로 먹혔네? 탱커 역할을 하는 가드가 상당히 뛰어난데?”
어그로가 먹혔다는 건 게임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인데, 괴수의 관심을 끌어 표적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호그는 거대한 다리로 가드를 깔아뭉개거나 삐죽 솟아난 엄니를 마구 휘두르기도 했다. 하지만 가드가 일반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움직임을 보이며 피해내자 결국 입으로 화염을 뿜어냈다.
가드의 몸이 화염에 뒤덮였고, 그 순간 푸르스름한 기운이 어디선가 날아와 그의 온몸을 감쌌다.
그 모습을 본 강영훈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힐링 포스!”
가드는 불길에 휩싸였지만 조금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호그의 이목을 끌었다. 그 사이 양쪽에서 원거리 공격형 어태커들이 화염 공격을 가했고, 호그는 큰 타격을 받고 비틀거렸다.
크아아앙!
호그의 포효가 TV를 통해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때, 근접 공격형 어태커로 보이는 예거가 거무스름한 빛 기운에 휩싸인 검을 들고 달려오더니 호그의 목에 치명타를 날렸다.
호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예거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호그의 사체 주위로 모이는 것을 끝으로 뉴스앵커가 화면에 나타났다.
- 오늘 사냥한 괴수는 호그라 불리는 것으로 B+등급의 상당히 강력한 괴수였습니다. 이번 사냥을 성공시킨 이카루스 클랜의 정규 공격대 대장 박철 씨의 말에 따르면…….
강영훈이 탄성을 흘리며 TV를 보다가 차승연에게 시선을 옮겼다.
“예거들의 괴수 사냥 장면은 아무리 봐도 놀랍기만 해. 승연이 너도 저렇게 사냥해?”
“훗! 예거라면 누구나 저렇게 사냥하지.”
“정말 존경스럽다…….”
“그런 눈빛으로 날 볼 필요는 없어. 너도 예거가 되면 레이드에 참가할 테니까.”
“그, 그러게…….”
강영훈은 자신이 예거가 된다고 해도 레이드에 나설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최근 괴수 사냥 전술이 아무리 발전했고, 또 장비가 좋아졌다고 해도 불을 뿜어대는 집체만 한 괴수를 향해 돌진한다는 건 보통 용기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비교적 안전한 힐러라면 모를까 가드나 어태커로 괴수 사냥에 참가하는 건 예삿일이 아니구나.’
강영훈의 머릿속에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넌 능력자가 되어도 그냥 언노운이나 해라.’
강영훈은 어머니의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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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훈의 어머니가 환자복을 입은 채 병원 후문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널찍한 휴식공간이 공원처럼 펼쳐져 있었는데,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문병객들과 함께 여기저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머니는 공원을 천천히 거닐다가 한쪽 구석에서 환자 몇 명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가장 후덕해 보이는 중년인에게 다가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기…….”
“무슨 일이십니까, 아주머니?”
“혹시…, 담배 하나만 빌려주실 수 있겠수?”
중년인이 피식 웃더니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불까지 붙여주었다.
“고, 고맙수. 흐읍! 하아!”
연기를 길게 들이마셨다가 내뿜는 어머니의 표정에는 황홀함이 가득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담배가 주는 황홀경에 빠져 있던 어머니는 자신에게 담배를 빌려준 중년인을 슬쩍 살펴보았다. 뽀얀 피부에 금테안경을 꼈고 손목에는 꽤 비싸 보이는 시계를 차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어디가 아파서 오셨수?”
“저요? 저는…, 맹장 수술을 했습니다. 그러시는 아주머니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어머니는 담배까지 얻어 피운 처지에 차마 폐암 수술을 했다고 하지는 못하고 다른 병명을 둘러댔다.
“그게……. 나, 나도 맹장 수술을 했수.”
“그러셨군요. 이거 동지를 만났네요? 허허허.”
“그러게 말이우. 요즘 맹장 수술은 수술도 아닌 모양이우.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나니까 흉터 하나 남지 않고 깨끗하게 끝났지 뭐유?”
“그렇죠? 저도 간단히 끝났습니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습니다. 허허허.”
“한데, 올해 어떻게 되슈? 난 6학년 3반이우.”
“6학년…? 아! 저는 5학년 5반입니다.”
“한창때이시구려.”
“그렇죠. 한창때죠. 아주머니도 연세에 비해서 10년은 젊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젊어 보이우? 고맙수. 한데, 무슨 일을 하슈?”
“저는…, 그냥 작은 공장 하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장이라면…, 제조업 같은 거유?”
“뭐, 비슷합니다.”
“흐이구. 힘드시겠수. 내가 밥줌마로 오만 집을 다 돌아다녔는데, 그 중에서 기업하는 양반들이 제일 힘들어 보입디다.”
“예…, 한데 밥줌마라니요?”
“밥하는 아줌마 말이우.”
“아하! 그러셨군요.”
“이래봬도 밥줌마 경력 10년이우. 청소, 빨래는 물론 애도 기똥차게 본다우.”
“아! 그러세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아저씨는 집에 밥줌마가 필요하지 않수?”
“왜요? 저희 집에서 일이라도 하시게요?”
“못할 거 있수? 몇 달 몸이 안 좋아서 집에서 쉬기만 했더니 엉덩이에 곰팡이가 필 지경이우.”
“예…….”
“꼭 아저씨 집이 아니어도 괜찮수. 아는 사람 집에 밥줌마가 필요하면 소개 좀 시켜주슈.”
중년인은 담배까지 얻어 피운 골초 아주머니가 갑자기 구직자로 돌변하자 다소 황당했지만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인연이 닿으면 그렇게 하지요.”
“고맙수.”
“한데, 이제 집에서 편히 쉬실 연세가 되셨는데, 왜 굳이 일을 하려고 하세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도 있잖수. 사지 멀쩡하고 정신 똑바로 박혔으면 무슨 일이든 해야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거유. 그래야 자식 보기도 부끄럽지 않고.”
중년인이 ‘호오!’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의 말씀이 백 번 지당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담배 한 대만 더 빌려주슈.”
“예? 아, 예. 하하하. 여기 있습니다.”
어머니가 담배에 불을 막 붙인 순간 강영훈의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어머니!”
“헉! 큰일 났다! 담배 고맙수!”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고, 젊은 청년과 예쁜 아가씨가 그녀를 쫓아가는 광경을 본 중년인은 황당함이 극에 이른 표정으로 ‘허허허’ 하고 웃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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