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수술 날짜가 잡혔어
대학에 진학했지만 그녀는 친구 한 명 없이 철저히 고립되어 홀로 생활하다가 우울증에 빠졌다.
그런 그녀에게 힐러로의 각성은 하늘이 준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때 힐러로 각성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몰랐다.
차승연은 대학을 그만두고 아버지와의 인연도 끊어버린 채 예거가 되었다. 때마침 힐러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던 그녀에게 슈퍼3 중 하나인 강철도끼에서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그 손을 잡았다.
다행히 그곳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이자 동료가 생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나중에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정을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그처럼 가까웠던 친구가 레이드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세상은 다시 무너졌고, 그녀의 삶은 사막처럼 황폐하게 변해버렸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사막으로 변한 세상을 헤매던 그녀에게 한 모금의 청량음료가 되어준 건 강영훈,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가족들이었다.
반지하방에 월세로 사는 강영훈의 가족들은 겉보기에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폐암말기의 중환자였고 강영훈은 실질적으로 백수였으며, 여동생은 고3이다. 암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상황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가족들이 힘들고 무거운 짐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강영훈이 능력자로 각성했을 때,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것도 보았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지만 기쁨은 커진다는 속담의 진정한 의미를 그녀는 거기서 발견했다.
차승연은 강영훈과 그의 가족들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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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는 치유능력자로, 그들이 발휘하는 힐링 포스는 내외상을 순식간에 치유해버리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착각을 한다. 힐러가 있으니 세상에서 아픈 사람은 완전히 사라져야 하지 않느냐고.
이건 틀렸다.
힐링 포스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상처는 치료하지만 질병을 낫게 해주지는 못한다.
힐링 포스는 일종의 원상회복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 그건 교통사고로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을 순식간에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켜줄 수 있지만 감기를 치료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도 힐링 포스가 현대의학에 큰 도움을 주는 건 사실이다. 특히 수술을 할 때 힐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힐러가 있으면 의사는 상처를 절개하고 환부를 거침없이 도려낼 수 있다. 출혈이나 부가적인 데미지로 인한 수술실패를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수술이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높아질 뿐 아니라 환자의 회복 또한 빨라진다.
그런데 암환자의 경우, 수술은 상당히 까다롭다. 암 덩어리가 힐링 포스에 노출되면 항암치료로 반쯤 죽여 놓았던 암세포가 되살아난다. 힐링 포스는 정상 세포와 암세포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힐러는 집도의가 지시하는 위치에 정확히 힐링 포스를 주입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료분야에 근무하기 위해서는 힐러들도 힐링 포스를 세밀하게 다루는 훈련과 의학에 대한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힐러들을 메디컬 힐러라고 지칭한다.
메디컬 힐러는 무척 귀하신 몸이다.
수술해야 할 환자들은 널리고 널렸지만 그들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 수술비 또한 엄청나게 비싸서 서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다. 설사 수술비를 마련했다고 해도 예약을 한 후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대여섯 달은 기본적으로 기다려야 한다. 때문에 날짜를 잡아놓고도 수술을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환자가 부지기수다.
차승연이 슈퍼3에 속하는 강철도끼 클랜의 정규 힐러가 아니었다면, 불과 일주일 만에 집도의와 메디컬 힐러를 구하고 또 수술날짜까지 받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녀가 지닌 사회적인 위치나 파워가 상상 이상으로 높고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을 고려한다면 강영훈은 차승연에게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강영훈도 이런 사정들을 잘 알고 있고, 따라서 차승연에게 느끼는 고마움은 정말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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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뽀삐뽀.
사이렌 소리와 함께 서울에서 가장 크고 권위 있는 한국메디컬센터에 응급차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람보르기니 스포츠카 한 대가 뒤따랐다.
잠시 후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강영훈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차승연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강영훈의 어머니를 모셨고, 강영훈과 일행들은 그들을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을 둘러본 강영훈과 가족들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기가 병원이야, 호텔이야? 힐러 아가씨. 여기 정말 병원 맞아요?”
“어머니도 참. 또 그러신다. 그냥 편하게 부르기로 하셨잖아요.”
“응? 그, 그래. 그런데 정말 여기 병원이긴 한 거야?”
“병원 맞아요. 일인실은 원래 다 이래요.”
“입원비가 많이 나올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어머니는 빨리 병이 나아서 나갈 생각만 하세요.”
어머니가 차승연의 손을 잡았다.
“정말 고맙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으마. 우리 영훈이가 이자까지 쳐서 다 갚을 거야.”
차승연이 ‘풋!’ 하고 웃었고, 강영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강영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넌 학교 가야지. 내 걱정 말고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해라.”
“괜찮아. 오늘 하루쯤은. 선생님께 다 말하고 왔어.”
“그럼 오늘 하루만 있어라.”
“알았어.”
어머니가 병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중점을 둔 곳은 화장실과 창문, 그리고 환풍기였다.
강영훈이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실눈을 떴다.
“어머니! 혹시…….”
“혹시 뭐?”
“담배 피울 장소 찾으시는 거 아니에요?”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담배라니! 내가 그놈의 담배 때문에 몹쓸 병을 얻었는데 다시 필 것 같으냐?”
“네.”
“이눔의 자식이…….”
“저 몰래 집에서도 한 대씩 피우셨잖아요! 제가 모를 줄 알았……. 흡!”
어머니가 갑자기 손으로 강영훈의 입을 틀어막고는 차승연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힐러 아가…, 아니. 우리 승연이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 승연아. 못 들은 걸로 해라. 이놈이 뭔가 착각을 해서 잘못 말한 거야.”
차승연이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아, 알았어요. 풋!”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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