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
9.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
강영훈이 안정되자 차승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에는 환각증세라니……. 설만 다섯 가지 특성의 각성과정을 모두 겪는 건가? 그렇다면 중독증상과 마비증상까지 나타나겠구나.’
차승연의 짐작대로였다. 다음 날 새벽까지 이불속에서 간간히 발버둥을 치던 강영훈은 다음 날 아침이 되자 회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강영훈의 안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하더니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목성의 능력자로 각성하는 과정에서 겪는 전형적인 중독증상이었다.
중독증상은 무난히(?)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혈색이 돌아왔고 정신도 멀쩡하게 차렸으니 말이다.
“스, 승연아! 네가 어떻게…….”
강영훈은 차승연이 나흘 밤낮동안 자신의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제 괜찮아?”
“그래……. 어머니는?”
“큰방에 계셔. 네가 환각증세를 보였을 때부터 방에 들어오지 못하시도록 했어.”
“환각증세라고?”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모양이네?”
“열이 심하게 나는 걸 느끼고 잠든 것밖에…….”
“지난 나흘 동안 넌 열병과 저체온증, 그리고 환각증세에다가 중독증상까지 겪었어.”
“뭐, 뭐라고?”
“네 가지 특성의 능력자들이 겪는 각성과정을 모두 겪은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사실이야. 그리고 내 예상에는 아직 한 가지가 더 남았어.”
“설마 다섯 가지를 다 겪는다는 거야?”
“지금까지 네가 겪어온 증상들을 보면 그래.”
“도, 도대체 내가 뭐가 되려고 이러는 거지?”
“나도 모르겠어. 이건 유례가 없는 일이야.”
강영훈이 몸을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유례가 없는 증상이라는 말에 두려움이 몰려왔던 것이다.
그때, 차승연이 그의 손을 잡았다.
“성장통으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마.”
“하지만 난…….”
“괜찮을 거야. 성장통으로 죽을 거였으면 넌 벌써 목숨을 잃었어. 그만큼 증상이 심각했으니까.”
“일단 몸을 좀…….”
강영훈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드러누웠다.
“스, 승연아! 허리가 굽혀지지 않아.”
차승연이 즉시 강영훈의 팔 관절을 이리저리 꺾어보았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강영훈의 팔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내 짐작대로야. 금성의 능력자로 각성하는 과정인 마비증상이야. 그냥 가만히 누워 있어. 아마 조금 후에는 말조차 하기 어려울 거야.”
“이, 이대로 죽는 건 아니겠지?”
“물론이지. 절대 죽지는 않아.”
강영훈이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두려움을 가득 품고 있었다.
“여기 계속 있을 거지?”
“그래. 네가 무사히 성장통을 끝낼 때까지 옆에 있을게.”
“고마워…….”
“고맙긴. 넌 내 목숨도 구해줬잖아.”
차승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불을 덮어 주었다.
시간이 흐르자 강영훈의 몸은 점차 뻣뻣하게 변했고, 차승연의 예상처럼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인간 통나무가 된 채 하루를 보내야 했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마침내 마비증상이 풀리기 시작했다.
“휴우!”
강영훈이 긴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난 닷새 동안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못한 강영훈의 모습은 피골이 상접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마지막에 겪었던 마비증상은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이 누워 있는 건 두 번 다시 겪기 싫은 일이었다.
“축하해. 이제 성장통은 끝났어.”
강영훈은 다소 피로해 보이는 차승연의 모습을 보자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고마움을 함께 느꼈다.
@
이 세상에서 능력자란 어떤 존재일까?
능력자가 되면 일단 일반인보다 신체적인 능력이 크게 향상된다. 초인적인 반사 신경과 힘, 그리고 스피드를 얻을 뿐 아니라 골격이 단단해지고 피부도 강하고 질기게 변한다.
뛰어난 능력자들은 늑대처럼 달리고 물속에서는 돌고래처럼 헤엄치며, 트럭 같은 힘을 낸다. 또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화염이나 파괴적인 기운을 외부로 뿜어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학자들은 우주방사능에 의한 단순한 생물학적 돌연변이로 분류하지만 또 어떤 학자들은 기존의 인간, 즉 호모 사피언스(Homo sapiens)와 전혀 다른 새로운 종(種)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떤 주장이 옳은 것인지 지금의 시점에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이들과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그리고 그 스토리의 대부분은 화합과 공존이 아니라 반목과 대립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괴수의 시대다.
인간과 능력자들이 힘을 합쳐도 대적하기 힘든 강력한 공동의 적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반목과 대립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 그건 공멸을 뜻할 테니까.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만약 괴수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능력자와 인간은 갈등과 대립을 반복하다가 결국 끔찍한 전쟁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전쟁은 괴수의 시대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욱 참혹한 미래를 안겨주었으리라.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괴수라는 존재를 단순히 인류의 ‘적’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괴수는 능력자들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지 않고 인간 사회에 협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접착제이며, 인간과 능력자 사이에 반목과 대립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공존으로 이끄는 평화의 전도사이다.
다음에 계속...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