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아마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켰겠지
“그럼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등록증 나오는 대로 가지고 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전 팀장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고, 강영훈은 차승연과 함께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차승연이 강영훈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너무 실망하지 마.”
“아냐. 실망은 무슨! 능력자가 된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그래. 그렇게 편하게 생각해. 언노운들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서 찾아보고 있어. 그런데…, 아까 계측실에서 본 화면 좀 설명해 줄래?”
“ESP는 잘 알 테고, 안정도(Stability)와 유동지수(Fluidity Score)는 마나의 움직임을 뜻하는 거야. 예거가 되려면 안정도가 높음(High)으로, 그리고 유동지수는 최소한 70이상이 나와야 해.”
“나는 낮음(Low)과 32가 나왔지……. 그런데 속성컬러(Property Color)는 왜 에러가 뜬 거야?”
“그건 나도 모르겠어. 원래는 블랙이 떠야 하는데…….”
속성컬러는 능력자의 능력특성을 색깔로 판단하는 기준이다. 화성은 붉은색, 수성은 파랑, 목성은 초록, 그리고 금성은 노랑, 토성은 갈색으로 나타나게 된다.
“아마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켰겠지.”
“그렇겠지?”
강영훈이 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전 팀장이 사무실에서 나오더니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등록증을 내밀었다.
“여기 등록증이네.”
강영훈이 두 손으로 등록증을 받고 머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그는 자신의 등록증을 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사진과 이름, 등록번호, 그리고 속성 등이 표시된 간단한 등록증이었지만 이걸 지닌 사람과 일반인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았다. 등록증을 받았으니 이제 강영훈도 국가가 인증하는 어엿한 능력자가 된 것이다.
“축하하네.”
“축하해.”
두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강영훈은 등록증을 품속 깊이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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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측실의 정 실장은 계측장비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점검했지만 강영훈의 속성컬러에서 왜 에러가 떴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을 포함한 직원들 대부분이 능력자였기에 그들 중 세 사람을 직접 계측해 보았고, 결과는 모두 정상적으로 나왔다.
“이상하군. 정말 이상해. 기계는 정상인데…….”
직원들 중 한 명이 그에게 말했다.
“그 사람을 계측할 때 센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땐 다른 항목들도 모두 에러가 뜨지 않았나?”
“그렇긴 하지만…….”
정 실장이 굳은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속성컬러에 허용된 스펙트럼 범위는 가시광선까지지?”
“그렇습니다.”
“그걸 좀 더 확장해봐.”
“확장을요? 왜…?”
“그냥 한 번 해봐. 달리 건드릴 게 없잖아.”
“알겠습니다.”
직원은 즉시 계측기의 프로그램을 수정했다.
“됐습니다.”
“그럼 아까 그 친구의 데이터를 그대로 적용해봐.”
타다다닥!
직원이 키보드를 두드리자 모니터에 강영훈의 계측결과가 다시 나타났다.
정 실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야?”
“저, 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정 실장이 급히 계측실을 나가더니 사무실에 있던 팀장 전준호를 찾아갔다.
“팀장님!”
전 팀장이 다소 짜증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 뭐가 고장 났던 거야?”
“그게…, 고장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고장이 아니라고? 그럼 왜 에러가 떴단 말이야?”
“계측기로 직원들을 직접 테스트 해봤습니다만 모두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계측기의 속성컬러 스펙트럼을 가시광선 영역 밖으로 확대해서 그 친구의 데이터를 적용시켜 보았습니다.”
“가시광선 영역 밖으로 확대했다고? 그래서?”
“화이트가 나왔습니다.”
“뭐?”
전 팀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화이트라니! 속성컬러가 화이트로 나온 능력자는 있을 수가 없잖아.”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계측기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 친구를 다시 데려다가 계측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다시 데려온다고? 닥터 차가 생명의 은인이라면서 모셔온 사람을 귀찮게 다시 불러와? 그랬다가 닥터 차가 힐러조합에 푸념이라도 늘어놓으면 조합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분명히 장비관리문제를 걸고넘어질 거란 말야. 그렇지 않아도 이번 선거에서 힐러들이 협회장을 갈아치우겠다고 벼르고 있는 마당에, 불 난 집에 기름이라도 붇겠다는 거야 뭐야?”
“그게 아니라…, 새로운 능력특성을 발견하면 능력자연구소와 정부 부처에 공식적으로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정 실장의 말에 전 팀장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봐 정 실장. 그게 기계의 오류인지 새로운 능력특성인지 어떻게 알아?”
“확신을 못 하니까 다시 계측해보자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능력특성이 발견되었다는 보고나 연구결과가 나온 적이 있어?”
“아직…, 없습니다.”
“내 말이 그거야. 다른 능력특성이 나타났다면 미국이나 중국 같은 능력자 강대국들이 벌써 파악하고 발표를 했을 거 아냐?”
“그래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그 친구의 능력특성이 완전히 새로운 거라면 우린 중대한 발견을 한 겁니다. 그리고 그 공로는 온전히 팀장님과 우리 계측팀의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정 실장의 말에 전 팀장이 나지막한 신음성을 흘렸다. 정 실장의 말이 옳다면 그건 정말 중대하고 대단한 발견이었다. 그리고 그 공로로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을 수 있음은 물론 자신의 앞길에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전 팀장은 다소 마음이 흔들렸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친구의 새로운 계측결과를 보내봐.”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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