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게 예지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강영훈은 가슴팍이 으스러지는 것 같은 고통에 신음성을 흘렸다. 마치 미식축구 선수에게 태클을 당한 것 같았다.
“도, 도와주세요.”
강영훈이 퍼뜩 정신을 차리자 힐러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힐러와 강영훈이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구는 것을 본 사내들이 곧바로 달려왔다.
“저 새끼는 또 뭐야!”
“담가버려!”
강영훈은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위기감에 온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그는 힐러를 번쩍 안아들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쳤는지, 강영훈의 움직임은 상당히 빨랐다. 품속에 안겨 있던 힐러가 뭐라고 계속 말했지만 강영훈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았다.
사내들이 악을 쓰며 쫓아왔다.
평소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강영훈이었지만 어른 한 명을 안고 달리는 건 무리가 있었다. 결국 그는 얼마 가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흐흐흐, 네놈이 뛰어봐야 벼룩이지.”
사내들이 히죽거리며 강영훈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 어서 칼부터…….”
품에 안겨 있던 힐러의 목소리가 그때서야 귀에 들렸다.
“아!”
강영훈은 재빨리 그녀의 등 뒤에 꽂힌 칼을 뽑아냈다.
“악!”
힐러가 다시 비명을 질렀고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지만, 푸른빛과 함께 상처는 거짓말처럼 아물어버렸다.
“휴우! 이제 됐어요.”
등 한가운데 칼이 꽂혔던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멀쩡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녀의 안색은 눈에 띠게 창백했다. 워낙 피를 많이 흘린 탓이었다.
“나를 업어요.”
“예…?”
“나를 업고 싸워요.”
“그, 그게…….”
“그러지 않으면 죽어요.”
죽는다는 말에 강영훈은 얼음물에 빠진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영훈이 일어나자 사내들이 곧바로 들이닥치며 칼을 휘둘렀다.
“이 새끼!”
“죽어!”
힐러가 재빨리 뒤로 돌아가더니 강영훈의 등에 뛰어올랐다.
순간, 가슴과 배에 화끈한 통증이 엄습했다.
강영훈은 입을 쩍 벌렸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서슬 푸른 칼날이 생살을 저미는 고통은 강영훈이 일찍이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을 정도로 통렬했다.
다리가 풀린 강영훈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기이한 기운이 강영훈의 등을 통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기운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 나갔고, 아파서 기절할 것만 같았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강영훈은 온몸에서 활력이 넘치는 것을 느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으로 가슴과 배를 더듬자 셔츠가 칼날에 베여 너덜거렸고 피에 젖어 있었지만, 피부는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하기만 했다.
‘이, 이게 바로 힐링 포스…….’
“두려워하지 말고 싸워요.”
강영훈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굳이 그녀가 지시하지 않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칼을 맞을 수는 없었으니까.
사내들은 함부로 강영훈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그의 등에 업혀 있는 힐러가 두려웠던 것이다. 아무리 힘이 빠졌다고는 해도 맹수의 이빨과 발톱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강영훈은 온몸의 솜털까지 모조리 곤두서는 긴장감을 느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무슨 상황인지조차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건 오직 살아야겠다는 본능뿐이었다.
세 사내들의 얼굴에 초조함이 드러났다. 인적이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없는 건 아니었고, 지금쯤이면 싸움이 벌어진 걸 누군가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을 지도 몰랐다.
“젠장! 뭘 하고 있어! 어서 놈을 해치워!”
강영훈의 정면에 서 있던 사내가 소리치자 좌우에 있던 자들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4. 이게 예지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강영훈은 본능적으로 팔을 휘둘러 칼을 막았다.
촤악!
그의 양팔에 긴 자상 두 개가 생겼고, 동맥이 절단되었는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주변에 뿌려졌다. 그 순간, 등에서 힐링 포스가 몸속으로 스며들자 상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아물어버렸다.
강영훈은 자신의 두 팔을 내려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힐러가 한 팔로 강영훈의 목을 단단히 감은 채 귓속말을 했다.
“칼은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그러니 놈들에게 접근해요.”
“하, 하지만…….”
“접근하기만 하면 내가 처리할 수 있어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강영훈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칼에 베여도 멀쩡하게 회복된다는 사실은 확실했지만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에게 먼저 접근하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강영훈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교차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멈췄다. 중요한 사실 하나가 그의 정신을 일깨웠던 것이다.
‘아! 어머니……. 이 여자는 힐러다. 그렇다면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고 어머니의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다면…….’
대가를 바라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강영훈은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없던 용기가 솟구쳤다.
강영훈은 굳은 표정으로 정면에 있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유일하게 칼을 들고 있지 않은 사내였고 때마침 등 뒤에서 힐링 포스가 몸속으로 밀려들었다.
힐링 포스가 자신을 수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강영훈은 정면에 있던 사내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와락 달려들었다.
사내는 설마 강영훈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 줄 몰랐는지 깜짝 놀라 옆으로 피했다.
그 순간 양쪽에 있던 사내 둘이 동시에 칼을 휘둘렀다.
강영훈은 오른쪽 옆구리와 왼쪽 어깨가 화끈하는 걸 느꼈지만 힐링 포스의 수호를 받고 있어서인지 별다른 고통은 없었다.
그의 왼팔에 정면에 있던 사내가 걸려들었고, 강영훈은 그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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