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1)
로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이제 탐색은 그만할까?”
허공에 한번 검을 회전시키더니 진중하게 자세를 잡는다.
‘우우웅~‘하며 공기가 흔들리는 진동음이 가늘게 새 나왔다.
로든의 몸 주위로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무거운 기운이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운은 어느샌가 허스틴과 루번의 주위까지 덮었다.
마치 물속에 들어온 것처럼 몸이 무겁다.
방금까지 깃털처럼 가볍던 팔과 다리가 모래주머니를 채운 듯 묵직하다.
로든의 검이 움직인다고 느낀 순간.
- 콰아아~~
파도같은 기세와 함께 이미 검이 목으로 다가왔다.
목을 뒤로 젖히며 검을 휘두른다.
‘핏’하며 목에서 피가 솟았다.
‘쩌엉!’하는 금속음과 함께 허스틴의 검이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분명히 피한 것 같은데 이미 목이 살짝 베인 후다.
주변의 기운 때문에 감각이 둔해진 것이다.
속도가 느려지기는 했으나 로든의 검은 계속 전진하여 루번의 가슴을 가격했다.
가까스로 내민 검이 ‘따앙!’하며 젖혀지고 로든의 검이 보호구를 강타한다.
기운을 동반한 로든의 검은 육중한 둔기와 같았다.
“우욱!”
신음을 내뱉으며 루번이 뒤로 서너 걸음을 물러섰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레이의 충고가 떠오른다.
‘슈나우더 검법의 핵심은 기운으로 주변 공간을 장악하는데 있어요. 힘으로 이에 대항하는 것은 적의 의도에 말려드는 겁니다. 오러를 이용해 작은 틈을 만들고, 부드럽게 그 틈을 확대시키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은 몸에 힘을 뺐다.
검첨의 오러 블레이드를 좌우로 움직여 틈을 찾았다.
‘여기다!’
검에 닿는 기운이 작은 한 점이 느껴진다.
그 점에 오러를 집중한 후 틈을 넓혔다.
몸을 누르는 기운을 바깥으로 물처럼 흘렸다.
로든의 검이 다시 두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엑스퍼트들 간의 대결이 점차 치열해졌다.
서로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저택 정원의 사방으로 전투가 퍼져나갔다.
오러가 실린 검들이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로 날아다니며 휘어지고 부딪치는 광경.
담 아래에 루퍼슨의 부하들은 섣불리 접근하지도 못했다.
티탄과 알렉스는 여유가 있어 보였으나, 트레비의 전투는 팽팽하게 진행됐다.
허스틴 쪽 종자들인 모르트와 조니스의 상황이 가장 좋지 않았다.
방어를 하고는 있으나 계속 밀리는 중이다.
루퍼슨과 마주 선 레이는 비교적 침착한 상태를 유지했다.
이전에 발터나 게이드를 상대할 때 흥분하여 위험에 처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루퍼슨의 뒤에 로든이 기다린다.
허스틴 일행이 로든과 맞설 수는 있지만, 아마 죽이기는 힘들 것이다.
자신이 직접 복수를 완성해야 한다.
그립을 쥐고 도약했다.
루퍼슨의 눈에 보인 레이는 그리 대단한 것 같지 않았다.
나이는 어리고, 기운은 갈무리되어 평범하게 느껴진다.
‘실력을 숨기고 있다고? 검을 부딪쳐 보면 금방 알겠지.’
루퍼슨은 레이가 달려오는 것을 보자마자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와 레이를 둘러싼 공간 전체가 루퍼슨에게 장악된다.
하지만 레이도 이제 슈나우더 검법에 대해서는 충분히 적응한 상태이다.
발시언 1장.
검집을 빠져 나온 검이 한 점을 향해 뻗어나갔다.
- 그그극~~
어둠을 가르고 쏘아지는 빛살처럼 검이 둔중한 기운을 뚫고 들어갔다.
순식간에 검첨이 목에 다가오자, 루퍼슨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자신의 기세를 단숨에 가르는 공격은 슈나우더를 익힌 이래 처음이다.
‘로든의 경고가 과장은 아니었던가.’
우측 발을 반보 빼며 사선으로 검을 내려그었다.
검날에 푸른 빛 오러가 일렁인다.
- 까아앙!
오러가 충돌하며 불똥이 튀고, 고막을 찌르는 소음이 솟았다.
루퍼슨은 또 한 번 놀랐다.
레이의 검은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목을 향해 다가왔다.
‘헉’하며 경악한 그는 내려가던 검을 억지로 되돌렸다.
다시 반보를 뒤로 빼며 검을 쳐올렸다.
다시 한번 금속음이 들렸고, 그제야 레이의 검이 방향을 틀어 목 옆을 스쳐 지나간다.
“힘이 제법이구나.”
놀란 표정을 숨기려 한 마디를 내뱉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레이 또한 자신의 실력이 한 단계 상승했음을 여실히 느꼈다.
마나 베인까지 모든 통로가 열린 후의 변화였다.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는 있으나 루퍼슨은 동요하는 듯하다.
‘연격으로 몰아친다.’
발시언 2장.
루퍼슨이 완전히 자세를 잡기 전.
수직으로 들어 올린 검을 상단으로 내리쳤다.
- 가가각~~
마치 모래알 속을 파고드는 것처럼 검로가 팍팍하다.
전력을 다해 검신에 마나를 부어 넣었다.
검날이 루퍼슨의 머리로 다가갔다.
루퍼슨은 왼발을 살짝 뒤로 빼며 횡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공격을 빗겨낸 후 곧장 역공을 취할 생각이었다.
검과 검이 부딪치려는 순간.
레이의 검에서 열 개에 가까운 마나 블레이드가 갈라져 나와 표창처럼 루퍼슨의 몸으로 쏟아졌다.
“이런!”
화들짝 놀란 루퍼슨이 검을 사선으로 세워 레이의 검을 휘감고는 몸을 회전시켰다.
퍼져있던 기운들이 순식간에 루퍼슨의 몸 주위로 끌려와 회오리처럼 돌았다.
마나 표창은 이 회오리를 뚫지 못하고 기세에 휩쓸려 튕겨 나갔다.
훌쩍 뒤로 물러나 검을 치켜든 루퍼슨의 호흡이 거칠다.
“후우, 후우!”
예상치 못한 공격을 막기 위해 짧은 순간에 과도하게 오러를 사용한 덕분이다.
레이는 아쉬움을 느꼈다.
약간의 상처라도 입히기를 기대했는데 기묘한 방어막으로 벗어난다.
동료들에게 마법을 시전하느라 마나가 넉넉지 않은 레이로서도 전투를 길게 끌고 싶지 않다.
그러나 상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데다 최상급 검법을 익힌 자.
급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공간을 장악하는 기술은 상대가 우위이다.
‘힘과 스피드를 기본으로 하는 검술 대결로 간다.’
발시언 전반 검법.
춤을 추는 것과 같은 부드러운 검.
루퍼슨이 뻗어내고 있는 기운의 물결에도 틈은 존재했다.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의 유영처럼 레이의 검이 흔들리며 루퍼슨에게 쇄도했다.
루퍼슨의 검은 최단 경로의 직선으로 레이의 공격을 모두 쳐냈다.
- 콰앙! 콰앙!
천둥이 치는 듯한 폭발음이 두 사람의 주위에서 끝없이 터져 나왔다.
허공에 그어진 곡선과 이를 막는 직선이 많아지더니.
종래 두 사람의 모습이 번쩍이는 오러의 선 뒤로 사라진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오러의 충돌음만 고막을 찢을 듯 들려왔다.
비올라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정통 검술을 배운 그녀의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이미 그녀도 슈나이더 검법을 익힌 상태라 상대의 수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실전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을 상대는 금방 꿰뚫어 봤다.
볼에 얽은 자국이 남아있는 사내 코젠트의 입술이 비틀어진다.
생각보다 대결이 쉬워질 것 같다.
‘검법서에 적힌 검로 그대로에, 정해진 타점만 공격하는군. 수련만 주로 해온 계집이 틀림없다. 오늘 대진운이 좋구나. 흐흐!’
그는 접근전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했다.
슈나우더 검법은 강공 위주의 직선 공격이 특성인데 오히려 가볍고 짧은 공격으로 전진해 왔다.
근접 거리에서의 대결이 펼쳐진다.
검을 뻗으면 상대가 닿을 공간에서 공방이 수없이 오간다.
아차 하면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상황이라 경험이 적은 그녀의 검끝이 흔들렸다.
이를 알아챈 코젠트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힘을 모아서 검을 휘둘렀다.
비올라의 검이 막 그의 머리에 닿으려는 순간, 오러가 실린 검이 그녀의 검면을 쳐냈다.
팔이 뒤로 휙 젖혀진다.
황급히 검을 회수하며 공격을 쳐내려는데.
사내가 손바닥을 펼쳐 큰 동작으로 가슴을 가격해 왔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찔한다.
상체를 틀어 피하는 동작이 늦어졌다.
“하하하, 아직 애송이구나.”
이때를 노린 상대의 검이 그녀의 어깨를 내리친다.
애드먼은 상대보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었으나, 비올라에게 신경을 쓰느라 집중할 수가 없었다.
사내가 손으로 야비한 공격을 하자 그녀가 어설프게 대처하는 것이 보였다.
‘앗, 위험!’
재빨리 상대의 검을 쳐내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내의 검이 그녀의 어깨를 자르려 할 때 몸을 던지며 가까스로 검을 쳐냈다.
그 순간 다리 뒤쪽에서 찌르르하는 통증이 느껴진다.
‘윽! 당했군.’
비올라의 옆에 붙으면서 자신을 뒤에서 공격한 상대에게 사선으로 일검을 날렸다.
상대는 상처를 입힌 것에 만족하면서 한발 물러서서 다시 기회를 엿보았다.
애드먼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 그녀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우겨서 뛰어든 싸움이다. 애드먼의 발목을 붙잡아서는 안돼!’
비올라는 마음을 굳게 먹고 그립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본능적인 반응은 금세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코젠트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킬킬거리는 소리를 흘렸다.
“자, 또 한번 놀아볼까?”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확실히 근접전에 뛰어난 자였다.
비올라를 몰아붙이는 와중에 그의 손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그녀의 가슴과 배를 쓸어왔다.
그녀가 움찔거릴 때마다 팔과 다리에 상처가 늘어났다.
치명적인 부상은 애드먼이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며 막았지만, 두 사람의 몸은 어느새 피로 물들었다.
비올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가면 죽음뿐이다. 겨우 엑스퍼트에 입문한 자에게 놀아나다니. 창피하구나.’
이 사이에 끼인 입술이 터지면서 피가 흘렀다.
그녀의 눈에서 독기가 발산된다.
“호오, 분한 모양이지. 흐흐흐.”
코젠트는 한발 물러나 놀리듯 검을 돌리더니 그녀의 가슴을 기습적으로 찔러왔다.
이를 앙다문 비올라는 검끝을 향해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사내의 동공이 확대된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 계집이 같이 죽자는 건가?’
몸을 틀려고 하는 순간 비올라의 검끝이 사내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그녀의 가슴에도 사내의 오러 블레이드가 보호구를 가르며 박혔다.
“아가씨! 안돼요!”
애드먼이 막아보려 했지만 그녀의 행동이 워낙 빨랐다.
코젠트와 비올라의 몸이 부딪치며 그녀의 몸이 뒤로 튕겨났다.
빈손이었다.
그녀의 검은 사내의 복부를 뚫고 등 뒤로 삐죽이 솟아 나왔다.
한발, 두발 뒤로 비틀거리며 코젠트는 배를 내려보았다.
쉽게 이기는 싸움이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의아하다.
순간 전신으로 고통이 밀물처럼 퍼지며 무릎이 저절로 꺾였다.
그의 머리가 땅에 처박혔다.
비올라가 쓰러지는 것을 본 애드먼의 눈에 핏발이 섰다.
다리와 팔의 상처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아!!”
커다란 기합이 터져나오며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휘몰아쳤다.
상대의 당황한 얼굴이 다가온다.
연신 뒤로 물러나며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이런, 젠장! 저 계집을 이용할 수 있을 때 끝냈어야 했는데···’
애드먼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면 이미 끝났을지도 모르는 싸움이었다.
분노한 그의 검이 상대의 방어를 무시하고 전신에 쏟아졌다.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폭포가 떨어지는 굉음처럼 퍼진다.
- 촤아아아~~”
애드먼과 검을 부딪칠 때마다 사내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의 검이 옆으로 밀려나는 순간 번쩍하는 빛이 자신의 복부를 사선으로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사내가 눈을 꽉 감았다.
‘좌아악~’하고 옷이 갈라지면서 피가 터진다.
검이 몸 깊숙한 곳까지 갈랐다.
잠깐 배에서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더니, 금세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진다.
그의 몸이 털썩하고 뒤로 무너졌다.
“아가씨!!”
애드먼은 곧장 쓰러진 비올라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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