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의 전략
비올라와 애드먼은 수련을 하며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밖에 없어 발언권이 약했거니와 허스틴 팀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조심해야 했기 때문이다.
레이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우리 일행들이 회복하면 곧 루퍼슨 일당과 결전을 할 예정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참여하시겠어요?”
애드먼의 얼굴이 경직된다.
정면 대결이라면 비올라도 당연히 엑스퍼트 간의 대결에 휘말릴 것이다.
“저, 저희에게 시간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올라가 대답을 했다.
“당연히 참여할 거예요. 자세한 얘기를 해주세요.”
깜짝 놀란 애드먼이 손을 내젓는다.
“자, 잠깐만요. 이건 그렇게 급히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비올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위험을 피하면 보상도 피해간다.
“결정은 제가 해요. 얘기 계속해 주세요.”
레이는 루퍼슨의 저택에서 정면으로 공격한다는 간단한 계획을 전했다.
“아마,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위험은 각오해야 합니다. 또한 허스틴 쪽과 마주칠 가능성이 큽니다. 괜찮겠습니까?”
“각오는 되어있어요. 그리고 허스틴 일행과 부딪칠 생각은 없어요. 조심해서 행동할 테니 걱정말아요.”
비올라의 뜻은 분명했다.
자작가와 얽힌 가문에 대한 복수는 뒤로 미룬 모양이다.
하긴 허스틴 일행이야 그란델 자작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분풀이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비올라에게도 정확한 일시를 다시 알리겠다고 잠시만 더 기다리도록 요청했다.
레이가 떠나자 애드먼이 그녀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만류했다.
“아가씨, 검투장 습격에서는 우리가 지원 역할이었으니 상관없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엑스퍼트 간의 난전이 있을 겁니다. 너무 위험해요. 외곽에서 지켜보다가 물건만 회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애드먼,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결전인데, 참여하지 않고 물건을 회수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 게다가 실력으로 타국에서 성공하여 원수를 갚겠다고 하고서 이런 전투조차 피한다면 언제 실력이 늘겠어?”
“나중에 실전을 경험할 기회는 또 있을 겁니다. 이번은 일단 피하셔야 합니다.”
“엑스퍼트들과 실전을 할 기회가 또 있다고? 애드먼,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엑스퍼트를 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전투를 할 상황이 있을 리가 있나. 너하고 목검 대련만 하다가는 영영 수련 검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거야.”
그녀는 가슴을 탕탕 쳤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도 나를 지켜주는 이게 있잖아.”
비올라는 더 이상 얘기를 끌지 않고 일어서서 방으로 돌아갔다.
‘생전의 후작께서 막내딸의 안전을 위해 내려준 가보를 입고 있다고 하나 그래봐야 상반신을 막아 줄 뿐이다.’
애드먼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싸맸다.
나하드의 숙소로 돌아갔다.
남은 시간 동안 동료들과 함께 지내며 수련하기로 했다.
검투장에서 탈취해 온 5대의 크로스 보우 중 하나와 볼트 몇 개를 꺼냈다.
연무장에서 볼트를 장착하고 표적을 쏴보았다.
활을 당기는 데 힘이 들기는 하지만 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콰앙!’하며 표적의 바깥쪽을 맞힌 볼트가 나무를 뚫고 반대쪽으로 튀어 나간다.
“파괴력이 보통이 아니군. 가죽옷 정도는 쉽게 뚫겠어.”
“나도 한번 쏴 보자.”
알렉스가 크로스 보우를 들고 볼트를 걸었다.
그러자 트레비와 티탄이 나섰고, 아직 다 회복되지 못한 로잔느까지 쏴본다고 난리다.
모두들 크로스 보우의 속도와 파괴력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루퍼슨의 부하들이 크로스 보우를 반드시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레이는 크로스 보우를 어깨에 장착하고 한 명씩 연무장 가운데에 서게 했다.
“자, 지금부터 볼트를 피하는 연습을 하죠. 볼트는 위험하니 대신에 제가 표창을 날릴 거예요. 볼트라 생각하고 피해보세요.”
알렉스가 1번이었다.
처음에는 표창의 속도를 느리게 했지만, 반복될수록 속도를 높였다.
수련이 계속되자 파티원들은 이 훈련이 단순히 볼트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순발력과 유연성, 민첩성 등을 상승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 대련 시간을 줄이고 레이의 공격을 피하는데 시간을 투입했다.
경매장이 매물로 나왔다.
나하드와 상의하여 대리인을 세운 후 매수를 협의하는 중이었다.
“네? 저택도 매물로 나왔다고요?”
루퍼슨이 거주하고 있는 저택도 내놓았다는 것이다.
“아마, 여기를 뜰 모양이야. 하긴 사업을 모두 접게 되었으니 여기 있은들 무얼 하겠나?”
레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루퍼슨 일당이 갑자기 도망이라도 가게 되면 낭패다.
이들에게 감시를 붙여야겠다.
“일단 저택도 인수하는 방향으로 협의해 주시죠. 저택까지 없어지고 나면 놈들은 말 그대로 근거를 모두 잃게 되는군요.”
“그렇게 하지.”
용병 길드에 들러 몸이 날렵하고 발이 빠른 자들을 요청했다.
“등급은 어느 정도를 원하십니까?”
“적어도 은패 이상이 좋겠습니다. 입이 무겁고, 징계를 받은 적이 없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곧 연락드리죠.”
이틀 후 길드는 6명의 용병을 소개했다.
레이는 이들을 루퍼슨의 저택 부근과 가까운 남쪽 성문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교대로 배치했다.
오직 단 두 사람.
루퍼슨과 로든의 움직임만을 추적하는 의뢰였다.
경매장과 루퍼슨 저택의 매각 협상은 오래 끌지 않았다.
현재 베론에서 이를 매입하여 활용할 곳은 라뮤즈 상단밖에 없었다.
로든 또한 금액을 높이는 것보다는 빨리 정리하는 것에 집중했다.
양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전격적으로 거래가 체결되었다.
3일 후 오전 잔금을 지불하면 거래는 종료된다.
이는 또한 그날이 결전의 날임을 은연중에 알려주는 사실이기도 했다.
루퍼슨과 레이는 서로 말 한 번 나눈 적이 없으면서도, 마치 암묵적으로 합의한 듯 이를 알아챘다.
거래 종료 전날 밤.
세 팀이 모두 나하드 상단의 회의실에 모였다.
“무슨 소리야, 나도 회의에 참석할 거야.”
“로잔느, 어차피 이번 공격에는 그 몸으로는 가지도 못해.”
“알아. 공격을 같이 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는 알아야지.”
알렉스의 말에도 로잔느는 기어이 방을 나섰다.
작은 회의실은 열 명이 넘는 인원이 모이자 꽉 찬 느낌이다.
허스틴 일행은 복면을 쓰고 있는 비올라와 호위 기사 애드먼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철저히 보안을 지켜야 하는 회의인데 얼굴을 가린 자들이 있다니.
허스틴 일행의 표정을 읽은 레이가 얼른 설명을 했다.
“저들은 제가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몸담고 있는 조직의 특성상 얼굴을 보일 수가 없는 점을 양해 바랍니다.”
‘쯧!’하고 혀를 차며 허스틴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수긍하자 기사 루번이나 종자들도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가장 먼저 레이가 그간 나하드에게 들은 정보를 전달했다.
“루퍼슨은 남아있는 조직원들에게 거액의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우리와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남아있는 부하들에게 금전을 지급하겠다는 거죠. 그 덕분인지 조직원 20여 명은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허스틴이 팔짱을 낀 채 레이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인원은 이전에 얘기한 상황에서 변한 것이 없고. 놈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라던가?”
“일단 알렉스의 말을 들어보죠. 직접 루퍼슨을 상대했으니까요.”
알렉스가 겸연쩍은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음음. 부끄럽지만 루퍼슨과 상대했을 때 내내 수세에 처해있었습니다. 몇 번 반격을 시도했는데 전혀 흔들리지 않더군요. 실력뿐 아니라 경험도 보통이 아닌 자입니다. 내 추측으로는 엑스퍼트 중급은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중급을 살짝 넘어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과 싸운 경험이 있는 알렉스 파티원 이외에는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엑스퍼트 중급 이상? 그게 말이 되는가? 일개 폭력 조직을 이끄는 자가 거의 상급 수준이라니?”
허스틴의 뒤에 있던 모르트가 나섰다.
레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말을 조심하세요. 알렉스 레만티온 경입니다. 엘바어넌 왕국의 기사 작위를 받은 지도 이미 한참 전입니다. 또한 전통적인 기사 가문의 전승 검법을 익히고 계시기 때문에 상대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니에요.”
허스틴 일행이 찔끔했다.
알렉스가 미니 용병단을 이끌고 있어서 내심 무시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사 루번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로든이라는 놈도 루퍼슨 정도의 실력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군요. 결국 엑스퍼트 중급에서 상급 사이의 검사가 무려 두 명이라는 이야기인데. 허! 예상보다 난감한 상황 아닌가···”
레이가 먼저 의견을 냈다.
“루퍼슨은 제가 맡겠습니다.”
허스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레이가 나선다면 루퍼슨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 루번과 협공을 했음에도 레이의 상대가 되지 않았었다.
“문제는 로든인데, 이 자는 우리 중에서 엑스퍼트 중급 2명 정도가 함께 상대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엑스퍼트 중급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은 허스틴 정도였다.
기사 루번과 비올라의 호위 기사 애드먼은 확실한 중급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중급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 정확했다.
알렉스는 이제 초급에 도달한 상태.
로든을 상대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다.
비올라의 호위 기사 애드먼이 입을 열었다.
“나머지 루퍼슨과 로든의 호위 기사라는 자들은 실력이 어느 정돕니까? 정확한 숫자가 확인되었나요?”
“부상자를 제외하면, 6명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대체로 엑스퍼트에 막 입문한 상태입니다.”
비올라가 엑스퍼트 초급이다.
나머지 허스틴의 종자 둘과, 트레비와 티탄은 오러를 검에 불어넣을 수는 있지만 아직 의지대로 운용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엑스퍼트에 완전히 입문했다고 보기에는 미숙하다.
레이가 제안을 했다.
“제가 잠시 육체적 능력을 올리는 마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레벨 반 정도는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올 겁니다. 회수 제한이 있어서 여기 계신 분들에게 사용한다면 딱 한 번 정도 가능하겠군요.”
허스틴이 눈을 치켜떴다.
“응? 신체 역량을 올린다고? 그런 아티팩트가 있단 말인가?”
나머지 사람들도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모두 의아해하는 눈으로 레이를 쳐다보았다.
“회수의 한계 때문에 지금 확인시켜 드리지는 못합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작동시키겠습니다. 단, 길어야 30분 정도 유지된다는 점만 잊지 마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이군. 부작용은 없는가?”
“30분 정도가 지나면 평소보다 빨리 힘이 빠질 것입니다. 하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닙니다.”
말대로라면 부작용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알렉스 파티원은 그간 레이의 알 수 없는 능력을 보아왔기에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허스틴 일행과 비올라 일행은 여전히 놀란 표정 그대로다.
“그말이 사실이라면 로든은 나와 루번이 상대하겠네. 다른 사람과 합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으니 그게 낫겠군.”
허스틴의 결정에 레이가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해주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나머지 분들이 놈들의 호위를 하나씩 맡아주시면 일단 밀리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허스틴과 비올라가 떠난 후 알렉스는 레이를 불렀다.
“지난 번 썼던 파이어 볼 스크롤이 남아있니?”
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이번에는 쓰기 힘들 거예요. 수십 명이 섞여서 혼전이 벌어질 텐데요.”
알렉스가 ‘아하’하며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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