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펜트 떼
앞의 뗏목에서는 씨 서펜트가 사라졌는데도 용병들과 병사들이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경계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아무도 더 이상 노를 저으려 하지 않았다.
아케인이 뒤쪽에서 소리를 질렀다.
“무얼 하느냐? 빨리 노를 저어라!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
“알렉스, 우리가 노를 젓죠. 저 상태로 병사들이 노를 잡은들 힘을 낼 수 있겠어요. 몬스터가 오면 곧장 경고를 할게요.”
“좋아. 우리 동생이 하는 말이면 불 속에라도 뛰어들어야지.”
당당하게 어깨를 편 로잔느가 가장 먼저 노를 잡는다.
뒤에서 이를 보는 알렉스와 일행들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 나온다.
알렉스 일행이 노를 잡으면서 속도는 더 빨라졌다.
용병들은 위험을 자청하는 알렉스 일행을 의아한 눈으로 보면서도 뗏목 가운데에 바짝 몸을 낮추고 움직이지 않았다.
레이가 마른 입술을 축였다.
‘이 넓은 호수에 써펜트가 한 마리뿐일 리가 없다. 어디서 다가올지 모른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진다.
‘뒷쪽이다.’
노를 놓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뒷쪽에서 온다. 가운데로 가요.”
“크아아아~~~”
물 위로 뛰어오른 써펜트가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덮쳐왔다.
티탄이 방패에 오러를 불어넣으면서 전력으로 밀어 쳤다.
옆으로 한 발 비킨 레이가 써펜트의 옆머리를 아래에서 위로 가격했다.
‘콰앙!’ 하는 폭발음과 함께 티탄이 뒤로 밀린다.
하지만 레이의 검이 써펜트의 눈 뒤를 강타하면서 돌진하는 방향이 뗏목 가장자리로 틀어졌다.
알렉스와 팀원들의 검이 몸통 위로 쏟아졌다.
물로 떨어지는 써펜트의 꼬리가 바람 소리를 내며 뗏목 위를 휩쓴다.
티탄이 단단하게 자세를 잡고 방패를 위쪽으로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
방패를 치고 위로 튕긴 꼬리가 다시 내려오면서 병사의 머리를 휘감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옆을 조심해요!”
흔들리던 티탄의 방패가 옆으로 돌았다.
모두 앞을 보고 있는 동안 다가온 또 한 마리의 써펜트가 머리를 들어 뗏목 가운데로 아가리를 처박는다.
레이가 뛰어오르며 써펜트의 머리를 정확히 내려쳤다.
이번에는 소리가 달랐다.
- 쩌저정!
금속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마나 블레이드가 서펜트의 머리 비늘을 깨고 안으로 파고든 것이다.
용병 하나를 물고 들어 올리던 서펜트가 머리를 흔들며 몸부림을 쳤다.
“끼애애액~~”
옆구리를 송곳니로 관통당한 용병이 하늘로 던져졌다가 물로 떨어진다.
뒤로 물러선 써펜트는 재빨리 물로 들어갔다.
물속에서 물보라가 올라오며 물결이 요동치더니 서서히 가라앉는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도망갔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뗏목의 아래쪽에 ‘쿠웅!’ 하는 충격이 온다.
뗏목의 한쪽이 1미터 이상 솟아올라 반대쪽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으악!”
미끄러져 내려가던 병사가 튀어나온 나무둥치에 매달려 발버둥을 친다.
‘철썩~~’ 하는 수면을 치는 소리와 함께 뗏목이 다시 수평으로 돌아온다.
병사가 허겁지겁 기어서 가운데로 자리를 잡았다.
“쿠우웅!”
이번에는 뗏목의 반대쪽이 치솟았다.
하지만 이제 모두 단단히 버팀목들을 잡고 있어 누구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분노한 씨 써펜트의 눈에 바로 옆의 뗏목이 들어왔다.
물속을 유영해 뒤쪽으로 건너간 써펜트가 공중으로 솟아올라 뗏목을 덮쳤다.
뗏목 사방에 솟은 화염이 거세진다.
극한의 열기를 품은 마법 화염이 써펜트의 몸을 휘감았다.
‘지지직!’ 거리며 비늘과 껍질이 타오른다.
“끼아아아악~~”
전신에 화염을 두른 써펜트가 몸을 뒤틀다 균형을 잃고 뗏목 위로 떨어졌다.
마법사와 기사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이놈, 기다리고 있었다.”
필모어의 고함과 함께 마법사들이 준비하고 있던 파이어 볼들이 쇄도했다.
그렇지 않아도 파이어 월의 화염에 입은 상처에 불덩이가 파고든 후 폭발했다.
기사들의 오러가 그 위로 또 한번 작렬했다.
‘펑! 펑!’ 거리는 폭발음이 연이어졌다.
발광하던 써펜트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된 채 물속으로 도망갔다.
“놈! 죽어라!”
마지막으로 아케인의 검이 허공에 선을 그었다.
물속으로 들어가던 써펜트의 꼬리가 잘리며 피가 솟구친다.
수면은 희생자들의 피와 써펜트의 피가 퍼져나가면서 붉고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피 냄새는 살랑이는 물결을 따라 호수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다.
“정신 차리고 다시 노를 잡아라!!”
아케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써펜트들이 물러났지만, 레이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알렉스가 노를 잡으며 일행을 격려했다.
“노를 잡자. 어서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어.”
뗏목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다시 고요해진 물안개 속은 이제 몬스터의 아가리에 들어온 것 같이 음침하게 느껴진다.
갑자기 멀리서 괴성이 들려오며 물보라가 하늘로 마구 치솟는다.
“끼애애액~~”
“구워어어~~”
괴성들이 마구 얽히며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뒤엉켜 있는 써펜트들의 몸체가 보인다.
트레비의 얼굴이 환해졌다.
“써펜트끼리 싸우고 있다. 아마 부상당한 놈을 잡아먹는 모양이다. 지금이야. 전속력으로 벗어나자.”
알렉스 팀이 전력을 다해 노를 저었다.
뗏목의 속도가 빨라지자, 뒤에 따라오는 뗏목과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병사를 재촉했지만, 거리는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늘어났다.
“왜 이리 느려빠진 것이냐? 앞쪽은 저리 빠른데!”
필모어가 화를 터뜨렸지만, 겁에 질린 병사들의 어깨는 딱딱하게 굳어만 갔다.
서펜트들의 싸움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하늘로 치솟던 물줄기들이 잦아들더니 먹이감을 찾아 써펜트들이 이리저리 퍼져나갔다.
물결 한줄기가 마법사들의 뗏목을 향해 가까워졌다.
“써펜트 하나가 지휘부 뗏목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돌아보지도 않고 트레비가 즉각 말을 받는다.
“거기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충분히 써펜트를 상대할 수 있다. 우리는 그새 빠져나가야 해. 힘내!”
“알았어요.”
대답한 레이가 속으로 ‘스트렝쓰’ 마법을 불러왔다.
먼저 옆에 있는 트레비에게 펼치고, 차례로 팀원들에게도 부여했다.
“어? 갑자기 힘이 솟는 것 같은 느낌이야.”
로잔느가 신이 나서 노를 힘차게 젓는다.
“로잔느, 너도 그래? 이상하네.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팀원들은 몸에 힘이 솟자 노 젓는 속도를 빨리했다.
지휘부 뗏목은 다가오는 물결을 감지하고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물결이 가까워지더니 이전처럼 사라진다.
기사들이 사방을 경계하던 중 옆쪽에서 ‘콰과과과~~’ 하며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곧이어 물기둥 가운데서 써펜트의 머리가 나타나더니 뗏목의 병사들에게 쇄도한다.
하지만 벽처럼 둘러친 화염에 닿자마자 이글거리는 불꽃에 머리 가죽이 타들어갔다.
“끼아악!”
아까와 달리 이번 몬스터는 판단이 훨씬 빨랐다.
즉시 몸을 빼서 물속으로 도피한다.
마법사들이 준비하고 있던 공격 마법을 미처 쓸 새도 없었다.
물속 깊은 곳에서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던 써펜트는 통증이 가라앉자, 뗏목 밑에서 머리로 들이받는 것으로 화를 분출했다.
‘콰아앙~~’ 하며 마치 파이어 볼이 터진 듯한 폭발음이 나고 뗏목 한쪽이 거의 2미터 가까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곳에 서 있던 기사는 공중으로 튕겨 나갔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어억!’ 하고 숨을 내쉬는 기사의 얼굴에 식은땀이 주르르 흐른다.
중앙에 몰려있던 마법사들은 뗏목이 기울어지자 버팀목을 잡고 안간힘을 썼다.
뗏목 반대쪽은 거꾸로 물속으로 풍덩 가라앉았다.
“타앗!”
아케인은 바닥이 꺼지자 오러를 분출하며 뛰어올랐다.
기울어져 물속에 들어갔던 뗏목의 반이 다시 올라오며 뗏목 안으로 물을 쏟아붓는다.
필모어가 버팀목에 매달려 불안한 눈으로 구석을 쳐다보았다.
가장자리에 장착된 두 개의 마도구가 물에 잠겼다가 올라오면서 빛이 약해진다.
물과 상극인 불의 마도구가 가진 취약점이었다.
2미터에 이르던 파이어 월의 불꽃이 흔들리더니 높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낭패다. 파이어 월이 사라지면 써펜트가 더 활개를 칠 텐데.’
써펜트는 뗏목을 마구 쳐올리며 흔들어댔다.
마도구들이 몇 번이나 물에 잠겼다.
파이어 월은 이제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기사들은 요동치는 속에서도 비교적 냉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마법사들은 물에 흠뻑 젖은 채 버팀목에 매달려 마법을 펼칠 상황이 아니었다.
필모어의 불안이 현실화되었다.
자신을 괴롭혔던 불꽃이 사라진 걸 써펜트가 눈치챈 것이다.
갑자기 뗏목이 잠잠해졌다.
“모두 준비해라. 써펜트의 공격이 온다!”
아케인의 고함으로 기사들이 바짝 긴장을 했다.
‘크아아아아!!’ 하는 괴성을 지르며 물속에서 솟아오른 써펜트가 마법사들에게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좌우측의 기사들이 검을 휘둘렀지만 ‘채챙’ 거리며 아무런 상처를 주지 못하고 튕겨 나온다.
“바펜, 화상자국을 노린다!”
아케인이 바펜에게 외치며 써펜트에게 달려들었다.
입을 벌린 채 아케인에게 쏘아오는 써펜트의 목 옆에 붉게 타오른 화상자국이 보인다.
아케인의 팔이 좌측 허공을 치며 반작용을 이용해 우측으로 몸을 틀었다.
서펜트의 송곳니가 옆으로 지나간다.
화상자국이 크게 확대되었다.
하늘로 뻗은 검이 좌측 아래로 사선을 그으며 화상 자국을 깊숙히 베어냈다.
‘정확히 베었다! 이 정도면 꽤 타격을 받을 것이다.’
아케인의 몸이 빙글 돌며 바닥으로 착지한다.
바펜 또한 오러 블레이드를 최대한 뽑아내며 몸을 낮추어 서펜트의 밑으로 뛰어들었다.
목 아래 부분에 얼룩덜룩한 자국이 보인다.
화상 자국이 아니더라도 취약한 부위가 틀림없다.
전력으로 검을 올려 찔러 넣었다.
‘푸욱’ 소리가 나며 검이 깊게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써펜트의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진다.
“끼아아아아~~”
힘을 잃고 ‘쾅’ 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써펜트는 경련하며 몸을 굴려 뗏목 밖으로 벗어났다.
아케인의 후속타가 서펜트의 몸체를 옆으로 길게 갈랐지만, 상처가 깊은 것 같지는 않다.
써펜트는 마지막까지 곱게 피하지는 않았다.
물로 떨어지는 찰나, 뗏목 밖에 있던 꼬리 부분을 휘감아 뗏목 바닥을 강하게 때렸다.
버팀목을 붙들고 있던 운 없는 마법사와 병사 하나가 꼬리의 타격궤도에 들어왔다.
‘빠각!’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두 사람의 몸이 물수제비처럼 뗏목 밖으로 튕겨 나갔다.
손 쓸 틈조차 없었다.
안타까운 눈으로 마법사와 기사들이 수면을 바라보았다.
서펜트는 목 주변에서 푸른 피를 펑펑 쏟으며 물 위로 치솟았다가 물로 뛰어들며 몸부림을 쳤다.
거기에 휘말리면 아무리 뗏목이 튼튼해도 버틸 것 같지가 않다.
아케인이 기사들에게 노를 잡으라 명령했다.
“전력으로 노를 저어 이 자리를 피한다. 실시!”
써펜트를 뒤로 하고 뗏목이 쭉쭉 나아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병사들이 노를 저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다.
멀리 흩어졌던 써펜트의 물결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써펜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호수를 진동시켰다.
상처입은 써펜트가 발악을 했지만, 대여섯 마리의 공격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몸뚱이가 피투성이가 되더니 얼마 안 가 여기저기 뼈가 드러나면서 숨을 멈춘다.
한 점의 고기라도 더 뜯어먹으려는 써펜트 간의 경쟁으로 호수가 요동을 쳤다.
아케인의 등에 땀이 주르르 흘렀다.
‘저것들이 죽은 놈을 다 먹어 치우기 전에 바위섬에 도착해야 한다!’
노를 젓는 기사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모두 힘내라. 바위섬이 멀지 않았다!”
기사들이 오러까지 사용하며 노에 힘을 다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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