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사
루퍼슨과 로든이 매서운 눈빛을 쏘아냈다.
“로든, 조시와 게이드를 죽인 놈들도 표창을 잘 쓴다고 하지 않았냐?”
“네, 형님. 요즘 표창을 쓰는 놈들은 보기 힘들죠. 표창 투척술을 함께 익힌 것인가··· 그놈이 다른 자들과 접촉한 흔적은 없고?”
“네. 그간 혼자만 움직였다고 합니다.”
로든은 얼굴을 찌푸리며 루퍼슨을 돌아보았다.
“일당들이 모일 때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데, 쉽지 않겠는데요. 벌써 한 달이 넘도록 마레에서 감시를 했는데도 꼬리를 잡지 못하는군요.”
“로든, 이러다 기껏 찾아낸 꼬리조차 놓치는 것 아니냐. 일단 이놈을 잡아서 족치면 일당에 대해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손아귀에 들어온 놈을 놓치기야 하겠습니까. 다만, 더 지켜봐도 서로 어떻게 연락을 하는지 알아내기는 어려워 보이네요.”
눈을 감았다.
검지로 관자놀이를 톡톡 치며 생각에 잠긴다.
루퍼슨과 칼란은 로든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로든의 눈이 번쩍 뜨인다.
“오늘 놈을 잡는다. 칼란, 네가 호위대 4명과 오늘 밤에 놈의 숙소를 기습해라. 도망치지 못하도록 조장급에서 칼 잘 쓰는 녀석들 50명, 그리고 크로스보우 쓰는 애들 댓 명 데리고 가도록.”
칼란이 눈을 치켜떴다.
어디 거대 조직과 전쟁이라도 벌이는 규모다.
루퍼슨도 의아한 눈으로 로든을 쳐다본다.
“로든, 한 놈 잡자고 너무 많이 출동하는 것 아니냐?”
“아닙니다. 게이드 형도 당한 것을 보면 놈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날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호위대 5명에 크로스보우 쓰는 애들까지? 허!”
“이왕 잡으려고 마음먹은 바에야 아예 확실하게 하는 게 좋죠.”
저녁 식사 후 레이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말을 몰면서 수련까지 하느라 상당히 피곤한 여정이었다.
더구나 이제 루퍼슨 일당과 본격적인 전쟁을 앞두었다.
몸과 마음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어야 한다.
생각은 그랬으나, 선잠에 뒤척거리던 레이는 밤이 깊어진 이후에야 잠에 들었다.
기울어가는 달빛이 비스듬히 창을 비치는 새벽.
몸 위로 뭔가 기어가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에 눈을 떴다.
알람석은 울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신의 감각은 위험 신호를 보낸다···
건물이 밀집된 지역에서 알람석은 한계가 있다.
멀리까지 경계를 설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공간에 알람석을 집어넣고, 감각을 퍼뜨렸다.
‘이런! 벌써 첫인사인가. 사방에서 살기가!’
보호구를 장착하고, 좁은 공간에서 유용한 대거를 꺼냈다.
‘오늘 도착했는데 기습이라··· 내가 오는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다.’
- 콰앙!
문이 부서지면서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뛰어 들어와 양쪽으로 흩어진다.
“쉬이잇~”
희미한 파공음과 함께 우측에서 머리를 찔러오는 검을 대거로 쳐냈다.
“쩌어엉!”
동시에 뒤에서 검이 찔러온다.
머리를 숙이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머리 위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레이의 눈이 커졌다.
‘엑스퍼트?’
마나를 두른 대거와 부딪쳤는데도 상대의 검이 멀쩡하다.
두 그림자는 기습이 실패하자 검에 기운을 모았다.
‘우우웅!’하며 공기가 일렁이는 것 같은 미세한 소리가 났다.
두 개의 검에서 거센 기운이 터져 나와 실내를 채운다.
순간 기운에 사로잡힌 몸이 경직되어 갔다.
‘슈나우더 검법이다!’
루퍼슨 일당이 보낸 자들임이 확실했다.
‘수하들에게도 슈나우더 검법을 전수해서 엑스퍼트를 양성한다?’
물론 제대로 된 엑스퍼트는 아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오러를 쓸 수 있는 정도.
잘 쳐줘야 입문 단계이다.
그렇다 해도 보통의 경우 비전은 가족, 아니면 아주 내밀한 사이에서만 전수되는 것이 당연한 일.
루퍼슨 일당에 대한 평가를 올려야 할 모양이다.
전신을 휘감는 기세에 저항하지 않고 뒤로 흘린다.
레이의 대거에서 미풍에 흔들리는 나비의 날갯짓이 일어난다.
두 방향에서 세찬 돌풍이 나비를 덮쳤다.
나비는 때로는 위로, 때로는 아래로 팔랑이며 기운과 기운 사이 틈을 찾아 날아들었다.
접근하는 대거를 향해 우측 검이 회오리치며 레이의 상반신을 휩쓸었다.
- 그그극~~
두 개의 검날이 마주치며 서로를 밀어낸다.
옆으로 발을 옮기며 부드럽게 검을 스쳐 보냈다.
돌풍이 레이를 지나가면서 탁자에 부딪친다.
‘콰지직’ 거리며 탁자가 산산조각이 나고 파편이 레이의 전신에 덮쳤다.
대거를 회전시켜 파편들을 흡입하여 되돌리려는 찰나였다.
레이가 움직이는 방향을 예상하고 기다리던 좌측의 검이 하반신을 쓸어왔다.
- 퍼어엉!
박살난 의자가 위로 튀어 오르며 레이의 등으로 쏟아진다.
위로 몸을 솟구쳤다.
천정에 손을 짚으며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선공을 했던 검이 허리를 베어온다.
‘빠르다! 게다가 공격의 흐름을 읽고 있다.’
슈나우더 검법을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투 스타일에 맞게 응용하고 있다.
실전 경험이 많은 자들이다.
난전이지만 두 그림자는 서로 빈 곳을 메꾸며 레이의 공간을 좁혀 들어왔다.
허공에서 몸을 돌리며 대거로 허리를 갈라오는 검을 쳐냈다.
시험 삼아 표창을 소환했다.
아래에서 착지하기를 기다리는 그림자의 다리를 향해 손목을 슬쩍 휘둘렀다.
- 슈웃!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가 났다.
표창이 다리에 박히려는 순간, ‘스윽’ 하며 그림자의 몸이 뒤로 미끄러졌다.
검이 한 바퀴 휘돈다.
‘채앵!’ 하고 표창이 튀었다.
‘표창에 대해서도 이미 준비하고 있구나.’
레이는 적당한 수준으로 방어만 하며 루퍼슨의 수하들의 실력을 가늠했다.
이들을 상대로 전력을 쏟아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이정도면 수하들의 수준은 알겠군. 그만 피하자.’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곧바로 벽으로 물러났다.
레이가 있던 자리로 희미한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을 가른다.
침대가 갈라진다. 석벽이 수평으로 잘렸다
.
‘가가각~’ 거리며 잘리는 석벽에서 불똥이 튀었고, 부서진 돌부스러기가 창날처럼 날아온다.
몸을 낮추었다.
대거를 무릎 높이로 한 바퀴 돌렸다.
동시에 마나 표창이 두 그림자에게 쇄도했다.
“타당, 탕, 탕!”
표창이 검에 부딪혀 사라지는 소리를 들으며, 레이는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 와자작!
문짝과 나무 파편이 터져나가며 레이의 몸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발사!”
무언가 창으로 나오는 기척이 있자마자 ‘퉁퉁퉁!’ 하는 둔중한 소리가 터진다.
‘쐐애액~’ 하는 거칠게 공기를 째는 소리와 함께 세 개의 볼트가 레이의 몸에 쏘아진다.
창틀을 왼손으로 잡아 좌측으로 힘껏 당겼다.
무릎을 굽혀 몸을 둥글게 말았다.
바람을 탄 새처럼 레이의 몸이 옆방 창문으로 이동했다.
구부린 레이의 발 옆을 지나간 볼트가 뚫린 창을 넘어 벽에 ‘쾅쾅’ 박힌다.
창틀을 두 손으로 잡은 후 위로 몸을 띄웠다.
허리와 다리를 곧게 뻗은 레이의 몸이 물줄기를 가르고 오르는 물고기처럼 건물 옥상으로 날아올랐다.
연이어 발사된 두 개의 볼트가 창을 뚫고 지나갔다.
‘콰지직!’ 하며 방으로 들어간 볼트가 벽을 깨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4층 건물의 옥상 위에서 난간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클레어 보이언스!’
사방을 둘러보니 건물로 이어진 길마다 십여 명의 살기가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빠져나온 창으로 뒤따라온 기운이 위로 올라온다.
“저기 있다. 잡아라!”
머뭇거릴 새가 없다.
가장 거리가 가까운 남쪽 건물을 목표로 난간 위로 뛰었다.
왼손에 버클러를 소환했다.
신법에 마나를 집중하려면 방패가 있는 것이 안전하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하늘로 레이의 몸이 지나간다.
“발사!!”
아니나 다를까.
또 ‘퉁퉁’ 하는 크로스보우를 쏘는 소리가 들린다.
몸 아래로 버클러를 내린 후 월윈드를 일으켰다.
수직으로 쏘아 올린 볼트가 레이에게 가까이 오자 궤도가 휘어진다.
세 개의 볼트가 버클러의 가운데로 모였다가 ‘따다당!’ 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옆 건물로 넘어간 레이는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달리며 앞쪽을 살폈다.
평민들의 거주지로 가면서 건물 간격이 좁아진다.
상대적으로 추격하는 자들에게는 방해가 되는 구조이다.
흘끗 뒤를 보니 세 개의 검은 그림자가 쫓아오고 있다.
속도를 보아하니 떨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네 번, 다섯 번째 건물을 뛰어넘었다.
앞을 보니 외성 구역을 빙 두른 메인 로드가 나타난다.
얼핏 보아도 50미터는 되어 보인다.
“잡아라! 이제 앞에 큰길이다.”
재빨리 어쌔신의 사슬을 소환했다.
팔에 사슬을 감으며 길 건너 난간을 향해 갈고리를 던졌다.
멈추지 않고 몸을 날린다.
갈고리가 난간을 지나갈 때 잡아당기자, 돌기둥을 감으며 철컥하고 걸렸다.
허공을 날던 몸은 길 위를 반쯤 지나갈 때 가라앉기 시작한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수직으로 낙하하던 레이의 몸이 사슬에 매달려 사선으로 건물을 향해 돌진한다.
양손을 번갈아 가며 전력으로 사슬을 끌어당겼다.
팽팽해진 사슬을 타고 오르던 레이는 건물에 부딪히기 직전 석벽을 발로 차며 타고 올라갔다.
돌아보니 레이가 있던 건물의 난간에서 세 흑의인이 당황한 듯 아래를 보고, 레이를 쳐다보기를 반복하고 있다.
몸이 매우 빠른 흑의인 둘이 선두에 서서 수십 명을 이끌고 길을 건너온다.
다시 지붕 위를 질주했다.
건물 간격이 좁아지면서 따라오던 기운들이 골목골목으로 흩어지더니 점차 약해진다.
후정이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창틀을 따라 내려온 후 진법판을 펼쳤다.
안개처럼 마나가 올라오며 레이의 주변을 감싼다.
곧 레이가 있는 곳이 건물 벽으로 변했다.
두 명씩 짝을 지은 흑의인들이 사방에서 호각을 불어댔다.
“이쪽은 없다. 막다른 골목이다.”
레이의 옆을 지나친 두 명이 돌아서며 소리 지른다.
탁탁거리는 급한 발소리가 멀어져간다.
호각 소리는 새벽이 다 갈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황도에서 정보 길드를 이용한 것이 실수였나.’
세공 장인을 찾으려니 어쩔 수 없이 길드에 의뢰했는데 자신의 행적이 곧장 루퍼슨 일당에게 노출되었다.
이 정도면 마레의 날개는 루퍼슨과 거의 같은 무리라고 보아야 했다.
혹시나 해서 용모를 바꾸고 있던 것이 다행이다.
아침이 밝자 골목에 서서히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했다.
다시 디스가이즈 마법을 펼쳤다.
이번에는 은회색 머리카락에 원만한 인상의 30대 사내로 변장했다.
레이는 전날의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여관을 잡고 숨을 돌렸다.
실수를 했지만, 덕분에 베론이 놈들의 본거지임을 간접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뭐라고? 놓쳤다고?”
루퍼슨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로든에게는 너무 많은 인원을 보내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그 인원으로도 한 놈을 못 잡다니.
로든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칼란을 올려보았다.
침통한 얼굴빛으로 칼란이 고개를 푹 숙였다.
“칼란, 놈과 부딪혔던 상황, 그리고 도망친 방법을 더 상세히 말해봐라.”
“저와 크로안이 방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공격을 했는데, 이미 눈치채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검도 아니고 대거로 우리를 상대하더군요.”
“대거라? 재미있군. 슈나우더 검법의 기세가 먹히지 않았나?”
루퍼슨이 궁금한 듯 말을 끊었다.
“처음 기세를 보냈을 때는 잠시 주춤하더니, 조금 후에는 묘한 방법으로 몸을 움직이더군요. 마치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역풍을 거슬러 오르는 돛배처럼 말입니다.”
로든은 말없이 칼란의 보고를 듣기만 했다.
“그리고는 몇 번의 공방이 있었는데 좁은 공간에서 저희 두 사람을 상대하기는 부담스러웠는지 창밖으로 도망쳤습니다. 볼트를 두어 번 날렸지만, 워낙 재빨리 건물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맞추지 못했죠. 그리고는 건물에서 건물로 뛰어넘는 것을 뒤쫓았습니다. 속도로 보아서는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외성 쪽 메인 로드를 앞두고는 긴 줄을 이용해 건너편으로 넘어가더군요. 거기서 그만 놈을 놓쳤습니다.”
로든이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너희 둘과 방안에서 싸우기에는 벅찬 것 같았다라··· 넓은 곳에서 그놈과 맞붙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 거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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