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작전(2)
레이는 곧장 반대쪽 계단으로 달렸다.
복도 끝 경비 둘이 화들짝 놀란다.
두 사람은 검을 뽑았다.
가까이 다가온 레이에게 검을 찌르려는 찰나 뭔가 반짝하는 것 같더니 이마가 덜컥 뒤로 젖혀진다.
레이는 두 사람을 돌아보지도 않고 지하 1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가 지나간 이후에야 경비병 둘이 쿵하며 그대로 뒤로 넘어간다.
경기장을 둘러싼 회랑의 중앙에 위치한 집무실.
호각 소리가 나자, 안에 있던 세 사람이 벌떡 일어선다.
“여기로 온 건가? 흐흐흐!”
“나가시죠. 침입자인 것 같습니다.”
두 검사가 문을 열고 나가고, 발터가 어깨에 묵직한 메이스를 걸치고 따랐다.
두툼한 철심이 박힌 플랜지드 메이스의 헤드가 번쩍인다.
회랑을 뛰어가던 레이가 우뚝 멈춰 섰다.
집무실을 나선 검사들과 눈이 마주쳤다.
레이의 기세를 알아차린 발터와 호위가 천천히 다가섰다.
레이의 눈은 호위 둘을 넘어서 발터에게 고정되었다.
그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얼굴에 피가 몰린다.
손에서 땀이 흘러 그립이 미끄러질 것 같다.
입술을 깨물었다.
입에 피 맛이 느껴지며 정신이 돌아온다.
‘후우후우~’ 속으로 숫자를 세며 호흡을 가라앉혔다.
“드디어 만났구나. 네 놈이 그동안 소란을 피운 녀석이군. 기다리느라 지루해서 혼났다.”
발터가 껄껄대며 웃었다.
“곱게 죽이지는 않으마.”
순간 호위 둘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레이의 좌우에서 검을 찔러왔다.
그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다수와 싸우면서 잡념에 사로잡혀 있다니.’
선공을 뺏겼다.
최대한 빨리 둘을 해치우고 발터와 상대해야 한다.
레이의 손에서 표창 두 개가 양쪽으로 쏘아졌다.
이미 표창에 대해 들은 두 엑스퍼트는 검을 틀어 표창을 쳐냈다.
아주 짧은 순간 충격에 멈칫했지만, 검은 다시 원래의 궤도로 돌아와 레이를 찔렀다.
발시언 4장 ‘블레이드 월’.
두 개의 검이 오는 방향에 마나 블레이드로 검막을 만들었다.
- 쩌저저정!
오러 블레이드가 검막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가 연속으로 터졌다.
블레이드 월은 화살이나 창과 같이 날아오는 무기를 방어하는 수법이다.
하지만 넓게 펼치는 검막의 특성상 파괴력이 강한 공격에 취약했다.
한 점을 향해 집중된 오러 블레이드와 충돌하자 일부가 파괴되었다.
그 틈을 이용해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찌이익’하고 옷자락이 찢어지며 오러 블레이드가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따끔한 통증을 느끼며 두 사람을 향해 뒤로 돌아섰다.
두 호위가 레이를 지나쳤다가 되돌며 자세를 잡는다.
‘웅웅웅’하며 검사들의 몸에서 퍼져나온 기운과 공기가 공명하는 미세한 소리가 느껴진다.
슈나우더 검법의 기세다.
두 사람의 기세 한 가운데를 향해 부드러운 기운을 흘려보냈다.
양쪽의 기세가 갈라지며 사이에 레이를 위한 공간이 형성된다.
그 순간 감각에 또 하나의 기운이 등을 향해 쇄도하는 것이 잡힌다.
놀란 레이가 훌쩍 도약했다.
‘퍼엉!’하며 육중한 무기의 바람이 등을 스친다.
발터의 공격이었다.
피했는데도 무기에 실린 기운이 몸에 스며들어 감각을 약화시킨다.
세 명의 합공이 자연스럽다.
뒤에서 기습하는 것조차 잘 짜여진 합공법의 하나 같다.
기회를 잡은 두 호위가 각각 머리 쪽과 다리 쪽을 길게 베어왔다.
피할 곳을 봉쇄하는 공격이다.
상단으로 호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검을 아래로 쳐낸다.
그 탄성을 이용해 허공에서 한 번 더 몸을 띄웠다.
연계 공격을 막기 위해 표창 두 개를 양쪽으로 던졌다.
‘타다당!’ 하며 표창이 튀어 나간다.
마나를 분출해 앞으로 몸을 던졌다.
표창을 쳐낸 두 호위가 돌아섰을 때는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난 레이가 바닥에 막 착지하고 있었다.
‘힐링! 힐링!’
재빨리 옆구리와 등에 힐링 매직을 보냈다.
찌르르하며 전신에 퍼지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주도권을 잡은 채로 전투를 끝내려는 듯 이번에는 발터까지 합세하여 세 방향으로 돌진해 온다.
세 사람의 기세가 합쳐지자 회랑 전체의 공기가 묵직해진다.
몸에 힘을 빼고 무거운 기세를 부드럽게 몸 좌우로 흘렸다.
‘상황을 바꾸려면 확실히 물러나게 해야 한다.’
양손으로 마나를 모았다.
검에 마나가 흘러 들어가며 마나 블레이드가 더 뚜렷해진다.
전력을 다해 검을 횡으로 그었다.
발시언 2장.
8개의 마나 블레이드가 세 사람을 향해 표창처럼 발출되었다.
양쪽 호위에게 각각 두 개.
앞서의 표창보다 더 빠르고 형체는 희미하다.
거기에 두 개가 한꺼번에 날아온다.
두 사람은 ‘엇!’하고 헛바람을 내쉬었다.
즉각 보폭을 줄이고 급히 검을 좌우로 움직였다.
- 콰광! 쾅!
마나 블레이드가 깨지면서 폭음이 솟는다.
호위들의 면전에서 폭발한 블레이드 파편들이 전신을 강타했다.
‘퍽퍽!’거리며 박혀드는 조각들이 손과 얼굴을 찢었다.
두 호위는 벽으로 물러나 오러를 돌리며 몸을 추슬러야 했다.
공격이 쏘아져 오는데도 발터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긴 메이스의 가운데를 잡고 회전을 시켰다.
마치 검막과 같이 전면에 원형 방어막이 형성되어 마나 표창을 튕겨낸다.
레이의 앞에 다가서자, 회전하는 봉의 끝으로 손을 옮겨 잡았다.
원심력으로 튀어 나가려는 봉의 힘을 가속하여 사선으로 휘둘렀다.
- 콰과과~~
공기를 가르는 거친 소리가 석벽을 진동시킨다.
주먹 두 개는 합친 것 같은 강철 헤드가 얇은 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쇄도한다.
몸을 낮추었다.
스치기만 해도 무엇이든 박살을 낼 것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메이스가 머리 위를 지나간다.
풍압으로 머리카락이 휩쓸리고 옷자락이 펄럭였다.
- 콰앙, 콰앙~~
메이스의 헤드가 바닥과 석벽을 스치면서 움푹움푹 구멍이 패였다.
‘퍼버버벅’거리며 벽에서 돌조각이 화살처럼 튀어서 날아왔다.
벽면에 세워져 있던 장식 청동상과 도기들이 펑펑 터져나간다.
왼손으로 얼굴로 튀어오는 파편들을 막았다.
허공에서 선회한 메이스가 쉴 새 없이 날아온다.
계속 뒤로 피할 수는 없다.
‘좋아! 부딪쳐 보자.’
검에 오러를 끝까지 밀어 넣고 메이스를 받아쳤다.
- 꽈앙! 꽝! 쾅!
한 번씩 맞부딪힐 때마다 천둥과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진다.
직접 몸에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마나의 차이가 아니었다.
타고난 신력의 무게였다.
음유시인들의 이야기 속에는 가끔 그런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 태어난 엄청난 기개의 영웅들.
오러를 연공한 적도 없이 순순한 힘만으로 오러 검사들을 물리치는.
발터의 2미터에 가까운 몸에는 그런 전설 속의 인물들처럼 막대한 근력이 내재되어 있었다.
거기에 슈나우더 검법의 묘용인 기세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마치 오우거의 몽둥이와 검을 마주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팔이 굳어온다.
최대한 빗겨 막는데도 충격이 상당하다.
몸에 힘을 빼고 정면으로 검을 부딪혔다.
팔과 가슴에 묵직한 타격이 오는 순간 그 힘을 이용해 뒤로 몸을 날렸다.
“호오! 이렇게 오래 내 공격을 버티는 놈은 오랜만이군. 손맛이 제법인데. 껄껄!”
발터가 신이 난 듯 고개를 젖히고 웃는다.
한 손으로 들고 있던 메이스를 두 손으로 잡으며 상단으로 올린다.
헤드 부분에 푸른 빛 오러가 솟아오른다.
레이 또한 그립을 양손으로 쥐었다.
“경매장으로 놈들이 기습을 했다고?”
로든이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확인했다.
“네, 네 명이 급습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답니다.”
“흠. 이상하군. 검투장으로 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조무래기들이 유인하는 것은 아니냐?”
“엑스퍼트들이라고 합니다. 호위단의 검사 두 분이 간신히 막는 중이고, 지원대도 달려가고 있답니다.”
“그래? 형님, 제가 경매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루퍼슨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경매장을 치는 척하고 검투장을 습격하려는 계책이면 어쩌려고?”
입가에 늘 어려있는 로든의 미소가 짙어졌다.
“형님, 발터가 아예 검투장 집무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어떤 놈들이라도 만일 습격했다가 발터와 마주치면 살아서 돌아가기는 힘들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 흐흐. 갔다 오거라.”
로든이 방을 나가자, 그의 호위 둘이 따라붙는다.
세 사람은 정문을 나서자마자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트레비와 로잔느가 진료복을 벗어 던지고 앞으로 나왔다.
루포릭이 검을 던져주었다.
몰려드는 경비들과 전투가 벌어졌다.
트레비와 로잔느가 든 검에 오러가 깃들었다.
블레이드가 높이 솟아오르는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검신을 감싼 오러의 강도와 예리함은 일반 검날과 비교할 수 없다.
가장 선임인 듯한 경비 무사 두 사람의 검이 부딪혔다.
‘째앵!’하며 검날이 충돌하며 경비들의 검에 이가 나간다.
챙챙거리는 소리가 반복되자 결국 버티지 못한 검이 깨졌다.
망연하게 서있는 두 경비를 향해 검이 횡으로 그어진다.
“물러서!”
“피해!”
그제야 발을 뒤로 빼보지만 ‘쉬익’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복부의 옷자락이 길게 갈라진다.
피가 솟으며 “으윽~~” 하는 신음이 솟았다.
쓰러진 경비의 자리가 다른 무사로 곧장 채워진다.
루포릭 또한 과감한 공격으로 경비들을 몰아세웠다.
그의 실력을 보아왔던 경비 무사들은 지레 몸이 위축되었다.
“끄으윽!”
루포릭과 맞서던 경비가 배를 잡고 넘어진다.
경비 무사들은 희생이 커지자 주춤거리는 눈치가 보인다.
세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이야아아~~~” 하고 복도가 울리도록 기합을 내뱉으며 함께 경비들에게 달려들었다.
“무, 물러서!”
“뒤로 피해!!”
겁에 질린 경비 무사들이 우왕좌왕하며 뒤쪽으로 밀려났다.
우측에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확보되었다.
“빨리 들어가!!”
세 사람이 검을 크게 휘둘러 경비 무사들을 위협했다.
검투사들이 재빨리 통로 안으로 달려들었다.
복도 반대쪽은 상황이 달랐다.
사방에서 모여든 경비들이 검투사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 채챙, 챙!
금속음이 사방에서 울릴 때마다 비명 소리가 잇달았다.
“으윽!”
“다친 자는 뒤로 빠져라!”
“옆이다. 조심해!”
본신의 실력은 경비대가 훨씬 우위이다.
하지만 식사에 섞은 마비산으로 경비대의 동작은 평소보다 느려진 상태이다.
거기에 생사결의 경험은 검투사들이 훨씬 많았다.
노예 취급을 당하며 감옥 생활을 했던 분노가 경비 무사들에게 쏟아졌다.
“죽어라, 이놈!”
경비 무사의 검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끄으윽!”
2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젊은 검투사가 쓰러지면서 경비 무사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종아리가 횡으로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악! 이 지독한 놈!”
경비병의 몸이 한쪽으로 풀썩 기울어지며 비틀거렸다.
옆의 검투사가 내지른 검에 ‘퍽’하고 목이 꿰뚫린다.
“이, 이런··· 쿨럭···”
목에서 피를 쏟아내며 경비 무사가 쓰러졌다.
옆구리에서 피를 콸콸 쏟아내면서도 검투사는 몸을 일으켜 통로 쪽으로 발을 움직였다.
‘어떻게든 탈출해서 고향으로 돌아간다. 끄윽~’
바닥에 질질 핏자국을 끌며 비틀거리는 그의 어깨를 동료가 부축했다.
“페리, 나한테 기대라. 서두르자!”
트레비가 루포릭에게 외쳤다.
“루포릭, 뒤쪽을 도와주시오. 여기는 우리 둘이 막겠소.”
“알았네.”
루포릭이 지하 3층 계단과 2층 복도가 만나는 가장 치열한 전투 현장으로 달렸다.
“이야아아아~~”
고함을 지르며 막 검투사에게 달려들던 경비 무사의 목에 검을 휘둘렀다.
‘가가각!’하는 거슬리는 소음과 함께 경비 무사의 머리가 잘려나가 동료들의 발치로 굴렀다.
“루포릭이다!”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를 내지른다.
“쾅, 쾅!” 하는 묵직한 충돌음이 난다.
루포릭은 앞을 막는 자에게 마치 철봉을 휘두르는 것처럼 무차별적으로 검을 가격했다.
흠칫흠칫거리며 경비 무사들이 한 걸음씩 뒤로 밀린다.
검투사들과의 공간이 형성되었다.
“후우후우~~”
숨을 고르는 루포릭의 몸도 자잘한 상처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살기를 대한 경비 무사들은 검을 든 채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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