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적단 부두목 데이먼?
깁스는 행낭에서 하얀색 석필 세 개를 꺼냈다.
“지금부터 인원을 세 팀으로 나누죠. 각각 하나의 동굴을 선택해 1시간을 전진하세요. 이동하면서 3~4분 간격으로 벽에 숫자를 쓰는 거예요. 팀별로 1자, 2자, 3자입니다. 시간이 됐다 싶을 때 글자를 따라 돌아오세요. 이렇게 하나씩 갈림길의 상황을 파악해 가겠습니다.”
인원을 셋으로 나누었다.
그랜트 팀, 알렉스와 티탄, 그리고 레이, 로잔느, 트레비.
세 개의 동굴로 진입했다.
로잔느가 벽에 3자를 새기며 레이의 뒤를 따랐다.
“레이가 우리 팀에 있으니 든든하네. 안 그래 트레비?”
언제나처럼 웃음 띤 얼굴로 가장 뒤에 있던 트레비가 말을 받았다.
“내가 없으면 더 좋았을 테고 말이다.”
로잔느가 놀란 척하며 눈을 크게 뜬다.
“헉. 어떻게 알았어? 그렇게 티가 많이 났나?”
길은 좁아지다가 넓어지고, 좌우로 구불구불하며 이어졌다.
레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길이 갈라지네요. 왼쪽, 오른쪽. 어디로 갈까요?”
로잔느가 “왼쪽!” 하며 외친다.
“던전에서 오른쪽은 충분히 질렸다고.”
그 말을 듣자 레이와 트레비가 격하게 공감했다.
왼쪽은 위아래가 길고 옆이 좁은 형태의 동굴이었다.
흑회색의 벽은 빛도 반사되지 않아 어둑어둑하다.
손으로 벽을 훑어보니 양옆으로 쪼개진 바위들이 칼처럼 삐죽삐죽 솟아있다.
“좌우 벽이 모두 위험하니 조심하세요.”
바닥도 울퉁불퉁하기까지 해서 발을 옮기는 것이 힘들었다.
10분 정도 지나니 사람이 지나가기 힘들 만큼 좁아졌다.
몸을 옆으로 돌려 조금 더 갈 수도 있겠지만 막다른 곳 같다.
“돌아가죠. 아무래도 막힌 곳 같습니다.”
갈림길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우측 길로 향했다.
다행히 길은 막히지 않았고 한참을 가니 다시 세 갈래 길로 나뉜다.
“아까 왼쪽이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가운데 길로 가보자.”
“시간이 다 되어가니 조금만 더 가보고 복귀하죠.”
얼마쯤 전진하자 퐁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 방울씩 천장에서 물방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물이 흥건하다.
트레비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이 위쪽으로 물길이 지나가는 모양이군. 그 습기가 모여서 아래로 떨어지고.”
조금 더 전진하자 동굴 바닥에 물이 가득 차 있다.
지나가려면 20~30미터 정도는 물속을 걸어야 할 판이다.
안 그래도 차가운 날씨에 물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기서 돌아가죠. 시간도 얼추 된 것 같고.”
그렇지 않아도 추위가 싫은 로잔느가 얼른 손을 마주친다.
“그래. 잘 생각했어. 굳이 여기를 지나갈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
출발했던 공동으로 돌아오니 모두 모여있다.
깁스는 팀별로 알아온 내용을 종이에 약도처럼 그려 넣었다.
그렇게 5번을 탐색을 하고 나니 꼼짝도 못할 만큼 지친다.
여기저기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레이가 가지고 있던 육포 몇 조각으로 버텨왔으니 배가 고픈 게 당연하다.
모두들 레이와 티탄의 방패를 쳐다보았다.
‘행낭에서 계속 식량을 꺼내면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난감하군.’
하지만 본래 용병이란 자들이 그렇게 민감한 존재들이 아니다.
레이가 적당히 재료를 꺼내 이전처럼 식사를 준비하자 코를 벌름거리며 좋아할 뿐이다.
수통에서 물을 부으려니 물이 부족했다.
거꾸로 세워 물을 털어내는데, 알렉스가 수통을 내민다.
“우리가 갔던 길에 작은 웅덩이와 샘이 있더군. 샘물이 어찌나 맑은지 담아서 마셔보았는데 달고 시원해.”
얼음을 깨 와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잘됐다.
뜨끈한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깁스는 이마를 찌푸린 채 종이에 그린 길들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여러 갈래로 길을 찾아보았는데 서로 마주친 팀이 아직 없다. 동굴의 숫자가 많고, 안이 엄청나게 넓다는 뜻이다. 빠져나갈 길이 없는 것은 아닐까···’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뒤엉킨다.
두어 시간씩 자고 일어나서 다시 길을 나섰다.
총 10번을 헤매고 돌아오니 시간상으로도 거의 이틀이 된 것 같다.
지쳐 쓰러진 사람들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조금씩 드러난다.
“깁스, 길을 찾을 수 있기는 한 건가?”
모두들 깁스의 입을 쳐다보았다.
그랜트의 말에 깁스는 머뭇거리면서 즉시 답을 하지 못한다.
“글쎄요. 며칠 더 돌아다녀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얼버무리는 그의 대답에 그랜트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트래커 가문이라고 자신했던 깁스는 민망한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이 부족한 것 같으니 제가 물을 떠오죠. 원하는 분은 수통을 주세요.”
수통 네 개를 들고 깁스가 한 동굴로 들어갔다.
얕게 물이 고인 웅덩이도 있었지만 지나쳤다.
약도를 따라가니 알렉스가 말한 대로 물이 깊고 거품이 살짝씩 솟는 샘이 보인다.
차가운 물을 떠서 한 모금을 마시니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다.
‘묘하군. 어디서 물이 흘러들어와 샘을 이루는 거지. 넘치지도 않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무릎 높이 정도에 희미한 표시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서 허리를 굽혔다.
약간 지워지기는 했지만 화살표다.
트래커들이 지금 같은 복잡한 길에서 흔히 쓰는 표시.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건 곧 출구가 있다는 의미! 살았다!’
깁스는 허겁지겁 물통을 들고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누군가가 먼저 들어온 흔적을 발견했어요. 트래커인 것 같습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일행들이 깜짝 놀라며 등을 세웠다.
“그게 정말인가? 그럼, 이제 출구를 발견할 수 있는 건가?”
그랜트가 기뻐하며 물었다.
“아마, 가능할 겁니다. 모두 샘물이 있는 곳으로 가시죠. 거기서 화살표의 진행 방향을 탐색해야겠습니다.”
샘 근처의 화살표 앞에 도착했다.
깁스가 앞서서 화살표 진행 방향을 따라 전진했다.
어느 정도 지난 후 화살표가 갈라진다.
거기서 알렉스 팀이 갈라진 방향으로 가고 나머지 인원을 계속 깁스를 따랐다.
몇십 분이 지나자 다시 화살표가 갈라진다.
이번에는 레이 팀이 그쪽을 맡았다.
화살표는 40~50미터 정도마다 나타났다.
자신들처럼 길을 찾아다닌 것이 맞는 듯하다.
갈림길이 나타나면 가운데 길을 주로 택하며 화살표를 따랐다.
30분 정도 지나가 막다른 길이다.
일행은 아쉬워하며 돌아갔다.
그후로 몇 번을 더 인원을 나누어 화살표를 따라갔다 왔는데 소득이 없다.
깁스는 화살표를 따라갔던 길들을 종이에 그렸는데 절벽 밖이거나, 벽으로 막혀 결국 빙빙 돌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돌아다닌 흔적은 있는데 들어오고 나간 자취가 없어요. 천장을 뚫고 사라졌을 리도 없는데. 이럴 수가 있나···”
잠시 희망을 가졌다가 모두들 다시 낙심했다.
레이도 답답했다.
‘흔적까지 있는 걸로 보아 누군가가 틀림없이 들어왔다. 우리처럼 화살표로 표시하면서 길을 탐색했고, 지도도 만들었을 테고. 그리고는 빠져나갔다. 길 찾기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다.’
그 순간이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길? 아니, 은신처를 찾는데 최고의 트래커라는 자가 누구였지?’
어쩐지 반드시 생각해 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뒤로 뒤로 되짚었다.
손가락을 튕겼다.
‘그자다! 햄튼 백작령에 출몰했던 마적단의 부두목 데이먼. 여객 마차에 변장하고 탔다가 나에게 잡혔지. 자기들이 켈베로니언 협곡을 출입하는 길을 발견했다던가? 그 지도를 가지고 있다며 거기 숨긴 보물을 주겠다고까지 했는데. 그때 품에서 발견한 양피지. 그걸 어디 두었지?’
아공간의 개인 물품들을 뒤졌다.
여분의 옷, 초상화를 담은 통. 펜과 종이 등 필기구. 접힌 양피지···
‘찾았다!’
레이는 양피지를 소환해 펼쳐보았다.
지도다.
화살표와 길을 보니 얼핏 보아도 이곳 동굴을 표시한 것이 틀림없다.
‘밖으로 나가는 곳이 어디지?’
화살표가 모이는 곳을 따라갔다.
샘물 쪽으로 모인다.
‘응? 여기는 샘물밖에 없는데?’
자세히 보니 ‘샘’이라고 적혀있다.
샘에서 선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더니 호수라고 적힌 곳까지 닿는다.
선 중간에 2분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샘과 호수! 샘 아래에 밖으로 나가는 물길이 있구나! 대략 2분 정도 헤엄칠 거리이고.’
샘물 속에는 X 표가 적혀있다.
‘이 X표는 뭐야? 숨겨둔 보물이 있다더니 그건가?’
지금 보물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이 지도가 맞는지 틀리는지가 문제일 뿐.
지도를 집어넣고 일어섰다.
샘물 앞으로 가서 손을 휘저어봤다.
꽤 깊다.
얼굴을 안에 집어넣었다.
미색의 바위에서 미약한 빛이 반사되어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임을 알 수 있다.
검을 풀고 심호흡을 했다.
“레이, 뭐하려는 거야?”
로잔느가 후다닥 달려오더니 레이에게 묻는다.
다른 사람들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하나둘 다가온다.
“길을 찾은 것 같아요. 제가 먼저 들어가 볼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깁스가 화들짝 놀란다.
“길을 찾았다고요? 아니 어떻게? 그 길이 샘물 속에 있다는 건가요?”
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샘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읏, 차가워!'
협곡의 냉기를 담은 물이 몸에 닿자마자 전신이 얼어붙는 듯하다.
'웜!'
열기가 몸에 도니 운신이 조금 편해진다.
'이제 천천히 살펴볼 수 있겠군.'
구멍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밑으로 4, 5미터 정도 가니 비스듬하게 구멍이 옆으로 휘어진다.
방향을 그곳으로 틀자마자 커다란 상자가 바닥에 보인다.
일단 아공간에 수납하고 물길을 따라 발을 저었다.
기분으로는 5분도 넘은 것 같지만 사실 그리 긴 거리는 아니다.
숨이 차올라 마나를 순환시켜 호흡을 대체할 수 밖에 없을 즈음 환한 빛이 위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손발을 휘저어 위로 솟구쳤다.
머리를 물 위로 내밀고 입에서 물을 내뿜었다.
“하아 하아~”
숨을 크게 쉬며 둘러보니 자그마한 호수이다.
사방으로 산이 솟은 분지 가운데에 물이 고여 있는 형태이다.
‘빠져나왔다! 지도가 정확했군.’
얕은 곳으로 나와 웜 매직을 빠르게 돌려 몸을 덥혔다.
숨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물속으로 헤엄쳐 다시 샘으로 향했다.
레이가 샘 속으로 들어가고 나서 시간이 계속 흘렀다.
2분, 3분이 지나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얼굴이 어두워진다.
“괜찮아! 레이가 누구야. 그 많은 함정들도 다 뚫고 지나온 레이가 이깟 샘물 정도 못 나가겠어.”
누구에게 들으라는 건지 로잔느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5분이 넘어가자, 로잔느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다.
깁스가 계산을 하느라 머리를 핑핑 돌렸다.
일반적인 호흡으로 물을 빠져나간다면 길어야 2분~3분.
2~3분 정도 쉬고 돌아오면 다시 2분.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그 순간 샘에서 물거품이 솟아올랐다.
사람들의 눈이 반짝 빛났다.
‘푸우’ 하고 숨을 내뱉으며 레이의 얼굴이 물 위로 솟아올랐다.
“레이!!!”
로잔느가 얼른 손을 내민다.
레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마른침들을 삼킨다.
“출구에요. 아래로 5미터, 거기서 옆으로 2분 정도 헤엄을 치면 바깥 호수로 통합니다. 물이 차가우니 단단히 각오하세요. 준비하고 모두 일렬로 들어가죠.”
“이야아~~~”
환호성이 동굴을 진동시켰다.
정말 이 무시무시하고 지긋지긋한 협곡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레이의 뒤로 알렉스 팀, 그랜트 팀 순으로 열을 지었다.
호수 밖으로 나오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적어도 은급에 엑스퍼트를 바라보는 용병들이다.
이 정도 물길을 헤엄치는 것은 가벼운 장애물이었다.
호수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흙바닥에 몸을 뉘었다.
몸은 젖었지만 바람은 차지 않다.
“따뜻해! 따뜻한 공기야!”
습기로 축축하고 몸이 떨릴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가득했던 동굴에 있다가 바깥 바람을 쐬니 천국에 온 느낌이다.
모닥불을 피워 몸을 말리고 분지를 빠져나왔다.
아직은 대수림 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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