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든의 반격(2)
또 한 번 상대가 뒤로 피하면서 경기가 끝에 다다랐다.
허초였다.
갈기 머리는 검을 베는 척하고는 곧장 검을 회수했다.
양손으로 그립을 잡고 상대의 목을 향해 검을 찔렀다.
키 작은 사내의 동공이 확대되면서 떨리는 것이 보인다.
목 앞까지 검이 다가온 순간 사내는 눈을 꽉 감았다.
잠시 경기장 주위가 조용해진다.
사내가 눈을 살짝 뜨니 상대의 검이 목젖에 닿을락 말락한 거리에서 멈춰있다.
자신도 모르게 휴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와아!! 갈기 머리! 갈기 머리!”
로잔느가 방방 뛴다.
“봤냐? 모두 봤어? 먹었다. 나의 예감은 역시 대단해!”
티탄이 모처럼 껄껄대며 크게 웃는다.
로잔느가 트레비의 어깨를 쳤다.
“트레비, 이제 눈썰미를 키우는 법을 나에게 배워! 하하하!”
알렉스와 트레비가 큭큭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검투 대회는 해가 진 이후까지 계속되었다.
횃불을 켜고 진행된 대회는 7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알렉스 일행은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성내로 들어온 김에 고기 요리를 잘하는 곳에 들렀다.
경기가 끝날 때쯤 결국 빈털터리가 된 로잔느.
그녀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웃고 있을 때였다.
옆 식탁에 있던 사람들 중 눈이 작은 사내가 곁눈질을 했다.
그는 곧 슬그머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사내는 전력을 달려서 다른 식당에 있던 눈썹이 짙고 눈빛이 날카로운 사내에게 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에게 급하게 몇 마디를 했다.
얘기를 들은 사내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같이 있던 남자들에게 지시했다.
“제리프, 지금 즉시 남문 밖으로 나가 길이 갈라지는 곳에 대기한다. 나머지는 그 뒤로 이어지는 길의 갈림길에서 마찬가지로 대기한다. 목표물의 이동 방향이 확인되면 즉시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신호를 날리도록. 출발!”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 5명이 달려 나갔다.
“준비 다 됐나?”
“네. 여기 있습니다.”
최상급 마정석이 고가에 팔리는 바람에 총 경매 매출이 300골드에 달했다.
로든은 200개의 골드가 담긴 작은 가방을 받아 허리에 찼다.
나머지 실버는 대형 가방에 나누어서 대원들이 등에 멨다.
“칼란, 가는 길목에 수하들 확실하게 배치해 두었겠지?”
“네. 10여 명씩 총 100명이 숨어 있습니다.”
“빈센, 자금을 옮긴다는 정보는 은밀히 다 퍼뜨린 것도 확실하고? 특히 라뮤즈 상단 쪽에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해.”
“걱정마십시오. 상단주에게 들어가는 정보 라인에 이미 흘려두었습니다.”
경매장 사업을 좌초시키려면 이번 자금을 노릴 것이 틀림없다.
자신과 함께 호위 둘에 별도의 엑스퍼트 둘.
소드 유저 최상급의 대원들만 15명.
거기에 용병을 포함한 대원 100명이 대기 중이다.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놈들을 처리할 것이다.
만일을 대비해서 경매장에는 루퍼슨이 직접 지키고 있다.
“출발한다.”
칼란과 수하 둘이 앞섰다.
로든과 짐을 든 경비대원들이 뒤를 이었고, 빈센과 두 명이 가장 뒤에서 경계하며 무리를 따라갔다.
로든이 섬뜩한 눈빛을 뿜으며 중얼거린다.
‘아예 살점을 발라내 주마. 어서 나타나거라.’
로든이 자금 운반을 위해 길을 나서고 얼마 후였다.
마레의 날개 지부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그놈들을 찾았다고?”
루퍼슨이 수하의 보고에 놀라며 일어선다.
“네. 검투 대회 구경을 하고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답니다. 지금쯤 성 밖으로 나갔을 거라고 하는데 정보원들이 뒤를 추적 중이랍니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검투 대회로 유동 인구가 많아 성문이 늦게 닫히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어둠 속에서 놈들의 종적을 놓치면 곤란하다.
루퍼슨은 수하에게 지시했다.
“지금 즉시 대기 중인 경비 대원들 전부를 집합시켜라. 놈들을 잡는다.”
“저, 일부는 밥을 먹으러 밖에 나간 상태라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합니다.”
“이런! 두어 명을 보내서 빨리 복귀시켜!”
“네, 알겠습니다.”
수하는 집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탈레슨은 루퍼슨 상단에서 일할 때 조장이었던 네블렌과 저녁을 먹고 있었다.
“새로 검투장 관리를 맡은 책임자가 그렇게 사람이 좋다고? 말이 되나? 이쪽 계통에 있는 자들이야 다 험악한 환경에서 굴러가며 큰 인물일 텐데··· 포악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네블렌이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스튜를 한 숟가락 입에 떠넣었다.
“아니라니까요. 루퍼슨 상단은 관리가 주먹구구식이었는데, 여기는 계약서도 명확하고 쓰레기 같은 짓도 시키지 않아요. 그리고 귀 좀 빌려줘요.”
“뭔데 그래?”
“저희 어머니, 낙상으로 거의 돌아가실 뻔했었어요. 도와달라고 했더니, 최상급 치료사를 보내 즉시 치료해 주더라고요.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는데, 그날로 병석에서 일어나 돌아다니시는 걸 직접 봤어야 해요. 거기하고는 전혀 분위기가 달라요. 무엇 때문에 남아있으려고 해요?”
탈레슨은 천장을 쳐다보며 그 순간을 회상했다.
치료사가 다녀갔다는 말에, 네블렌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달려간 날.
침대에서 눈을 뜨지 못하고 계시던 어머니가 멀쩡히 걸어 나와 자신을 맞았다.
두 사람은 서로 한참을 끌어안고 울었다.
여전히 꿈같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탈레슨이 말을 이었다.
“제가 인사 담당자에게 얘기해 놓을 테니 얼른 이쪽으로 옮기세요. 조장님 정도 실력이면 금방 중간 간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네블렌은 여전히 망설였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끌어가고는 목적이 달성되면 홀대하는 것을 흔히 봐왔기 때문이다.
“알았다. 밥이나 먹자. 네 얘기는 충분히 들었으니 생각해 보마.”
하지만 그는 식사를 이어갈 수 없었다.
식당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자 때문이었다.
“네블렌 조장님! 여기 계셨군요. 잠깐 이쪽으로!”
갑자기 들어온 사내는 네블렌을 구석으로 끌고 가더니 급히 몇 마디를 건네고 다시 달려 나갔다.
네블렌은 외투를 챙겼다.
“급한 일이 생겨서 식사는 다음에 다시 해야겠구나.”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탈레슨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검투장을 습격했던 자들을 발견한 모양이야. 성밖으로 추적을 나간다고 급히 들어오라네.”
그는 손을 흔들며 식당 문을 나섰다.
루퍼슨은 무장을 갖추고 나와 대원들을 도열시켰다.
약 20분 후 밖으로 나갔던 대원까지 모두 집합하자 루퍼슨은 이들을 이끌고 성문 밖으로 향했다.
탈레슨은 네블렌이 떠나자 잠시 고민했다.
‘이런 일도 은인께서 부탁한 특별한 일이 아닐까? 밥을 먹다 말고 소집에 응하는 걸 보면 상당히 급하게 일이 돌아가는 것이 틀림없어.’
그는 먹던 음식을 그대로 둔 채 식당을 나서 레이의 집으로 달렸다.
레이는 경매장으로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나하드의 정보에 의하면 지금쯤 자금 이송을 위해 상당수 인력이 경매장을 떠났을 것이다.
골목 저쪽에서 누군가가 황급히 달려온다.
실루엣을 보니 탈레슨이다.
“헉헉, 마침 계셨군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숨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얘기하세요. 어떤 일이길래 이리 뛰어온 겁니까?”
“하아, 하아! 저도 이게 중요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혹시나 필요한 일일까 해서요. 후우! 제가 네블렌이라고, 같이 일하던 조장을 만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하가 부르더군요. 들어보니, 검투장을 습격했던 자들의 종적을 찾았답니다. 막 성 밖으로 추적하려는 참이라고요.”
레이의 등골이 섬찟했다.
‘성 밖이라면 알렉스 일행이다. 허스틴과 비올라 일행은 성안에서 대기 중이다.’
레이는 일단 탈레슨을 보냈다.
“고맙소!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정보요. 들어가 보세요. 저는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또 뵙겠습니다.”
탈레슨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레이는 고민에 빠졌다.
지금이 경매장에 경비가 가장 허술한 때이다.
자금 이송과 성 밖 추적에 인력이 많이 빠져나갔다.
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알렉스와 파티원들이 위험에 빠지면 어떡하지? 나를 돕겠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아니, 알렉스와 트레비, 거기에 티탄. 쉽게 당할 동료들이 아니잖아?’
길 가운데에 서서 양쪽을 쳐다보았다.
남쪽은 성문 방향, 북쪽은 경매장 방향.
마음을 정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느지막이 성문을 나선 알렉스 일행은 달빛에 의존해 길을 따라갔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밤에 움직이지 않겠지만 전원이 엑스퍼트 내지는 그에 가까운 검사들이다.
별 두려움 없이 저녁때 했던 이야기들을 계속하며 거처로 향했다.
성문에서 10분 정도를 걸으면 길이 양쪽으로 갈라진다.
그 너머 숲 안에서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 멀리서 한 사람이 엎드린 채 성문 쪽을 지켜보고 있다.
달빛 아래 희미한 그림자들이 다가온다.
네 개의 그림자.
목표가 맞다.
행여 눈치를 챌까 두려워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숨을 죽였다.
목표물들은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길을 택했다.
그들이 한참을 걸어간 후 성쪽으로 손가락만 한 신호탄을 쏘았다.
식당에서 여러 명을 성밖으로 보낸 남자가 신호탄을 보았다.
‘붉은색!’
좌측이다.
지도를 펼쳐 좌측길을 본다.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켈드 마을. 여기를 지나치면 레인힐 타운, 벤슨 타운, 밀레 타운으로 갈라진다.’
그가 옆에 서 있는 사내를 쳐다본다.
“이쪽 지역에 나가 있는 정보원은 누가 있지?”
“벤슨 타운에 하비가 나가 있습니다.”
“즉시 벤슨 타운 지부에 전서구를 날려서 하비에게 여기 길목에 은신하고 있으라 해.”
“네, 알겠습니다!”
루퍼슨이 남문 밖을 달려 갈림길에 이르자 숲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마레에서 왔습니다. 목표물은 좌측길로 약 30분 전쯤 지나갔습니다. 여기서 20분쯤 가시면 켈드 마을이 나타납니다. 거기에 아무도 기다리는 자가 없으면 계속 가십시오. 다음 갈림길에서 안내자가 나타날 겁니다. 그럼 이만!”
사내는 다시 숲으로 사라졌다.
루퍼슨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좌측 길이다. 출발!”
50명에 이르는 사내들이 발걸음이 밤길에 울려 퍼졌다.
경매장 앞길 골목 안.
레이는 경매장을 쳐다보며 팔찌의 좌표들을 불렀다.
희미한 빛과 함께, 경매장에 마정석을 맡기면서 저장한 공간 좌표들이 떠오른다.
스캔으로 경매장을 체크하면서, 정문부터 좌표들을 계산했다.
저장된 수십 개의 좌표들과 비교하며 좌표가 가리키는 곳을 떠올린다.
‘이 좌표는 지하 1층 복도쯤 되겠군. 이것은 아마 굽어지는 곳인 것 같고.’
회랑 천장 부근 들보들의 좌표로 보이는 숫자들도 십여 개가 보인다.
점차 원하던 곳에 가까워간다.
‘찾았다! 여기가 맞는 것 같다. 금고 위 공간 좌표’
레이는 즉시 팔찌의 텔레포트 매직을 활성화시켰다.
- 스스스!
그의 모습이 투명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레이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경매장 지하 2층 금고 위였다.
천장과 약 50~60센티미터 정도 간격의 좁은 공간.
거기에 엎드려 밀실 안을 둘러보았다.
이미 본 대로 2인 1조 두 팀이 철문 근처와 밀실 중간쯤에서 바깥쪽을 보며 경계하고 있다.
나머지 2명은 금고 옆에 서 있다.
“야, 지금쯤 밖에서는 난리가 났겠지?”
“그렇겠지. 자금을 이송 중인 부단주나 성 밖으로 놈들을 추적하는 단주를 따라간 녀석들은 아마 오늘 한 판 크게 붙을걸?”
“제길! 우리 조직 이렇게 쪼그라들고도 버틸 수 있을까?”
“아, 씨발! 제국 백작이라는 자가 단주와 부단주 체포하러 오면 끝나는 것 아냐?”
다행히 불평들을 늘어놓느라 아직 레이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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