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드와의 격돌
허스틴과 용병들은 길 건너편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허스틴이 루번에게 작은 목소리를 전한다.
“조니스가 훌륭하게 해냈군!”
“글쎄 말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잘 해낸걸요. 허허허.”
용병들의 얼굴에 어린 긴장이 조금 풀린다.
“자, 이제 저기 문밖에서 무사들이 간 곳을 멍하니 보고 있는 경비 무사부터 해치우고 계획대로 실행합시다.”
경비 무사는 대량의 무사들이 지원나가는 소동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보다가 막 돌아서려는 참이었다.
뒤통수가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눈앞이 갑자기 새하얗게 변한다.
용병들과 허스틴 일행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무관은 다시 정적을 되찾은 상태이다.
사방이 고요한 어둠뿐이다.
허스틴 일행은 담벽의 그늘에 붙어 서서 후정의 저택을 감시했다.
용병들이 연무관을 둘러싸더니 작은 기름통을 꺼내 벽에 뿌렸다.
부싯돌을 꺼내 불똥을 튕기니 금세 불이 붙는다.
목재로 골격을 세운 건물은 삽시간에 2층까지 불꽃이 번졌다.
“불이야! 불이야!”
이곳저곳의 방들에서 무사들이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삽시간에 연기가 건물 안으로 퍼지며 안개처럼 자욱하게 시야를 가린다.
현관문을 박차고 나온 무사가 허리를 굽히고 콜록대며 기침을 했다.
눈물이 가득 찬 뿌연 눈에 발이 여러 개 보인다.
누군가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려 할 때 ‘퍽’ 소리와 함께 뒤통수가 따끔해진다.
불을 피해 간신히 밖으로 나온 무사들은 한 사람씩 뒤통수를 맞고 정신을 잃었다.
대여섯 명의 무사가 쓰러지고 나서야 뒤따른 무사들이 이상함을 느꼈다.
문을 나옴과 동시에 몸을 굴려 피하면서 검을 뽑았다.
전투의 시작이었다.
“기습이다. 적이다!!!”
남은 연무관 무사의 숫자는 대략 예닐곱.
용병은 다섯.
숫자는 용병이 밀리지만 은급 용병들은 확실히 경험에서 우위에 있었다.
처음 합을 맞추는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연습이라도 한 듯 옆 사람과 공격과 방어의 합을 맞추었다.
무관원들은 숫자가 많음에도 전혀 그 우위를 살리지 못했다.
동료끼리 검이 부딪치기도 하고, 전열에서 뒤로 밀려 허둥대는 자도 있었다.
무관원 한 명의 검이 허공을 베면서 빈 옆구리에 검이 박혔다.
“끄으윽~”
무릎을 꿇으며 그 자리에 쓰러진다.
목숨까지 위험하지는 않아도 전력에서 제외였다.
무관원들이 밀리는 와중에도 전투는 단숨에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가까스로 공격을 튕겨내고 뒤로 한 발 물러난 무관원 트웰은 찜찜함이 느껴졌다.
‘이상하군. 우리 쪽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데 이놈들이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또 한 명의 무관원이 쓰러지면서 이제 일대일의 싸움이 되었다.
레이는 복면을 한 채 무관 후정 쪽의 담벽 너머에서 고개만 살짝 내밀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저택에서 사범들과 관주가 검을 들고 나온다.
‘게이드가 나왔다. 이제 사범 몇 명만 멀어지면 게이드를 잡을 기회가 온다.’
가슴이 떨려왔다.
밖으로 나온 게이드의 이마가 좁혀진다.
‘건물에 불이 나고, 갑자기 기습이라. 상단의 위험은 함정이었나···’
연무관 쪽을 보니 관원들이 밀리고 있다.
다만 상대도 대단한 실력을 가진 자들은 아닌 것같다.
“메커넌 사범. 자네가 나머지 사범들을 데리고 기습한 자들을 우선 처리하게.”
“네, 알겠습니다.”
게이드가 검을 들고 멈추자 뒤따라온 두 명의 사내가 옆으로 다가온다.
“관주님, 저희도 한몫 거들겠습니다.”
“허허. 아직은 괜찮소이다.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죠.”
사범들이 연무관 쪽으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보고 있던 허스틴이 연막탄을 쏴 올렸다.
이를 본 용병들과 루번, 모르트도 즉시 연막탄을 터뜨렸다.
연무관 앞이 희뿌연 안개로 뒤덮이면서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모두들 조심조심 주변의 인기척을 살폈다.
전투가 멈추고 간간히 ‘챙강’ 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이렇게 되자 게이드가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허허. 내가 나서야겠군요. 저대로 두면 시야가 막힌 곳에서 관원끼리 싸우게 생겼으니···”
레이의 마음이 급해졌다
게이드가 연막 속으로 합세하면 다시 난전이 벌어질 테고, 언제 게이드와 맞붙을 기회가 다시 올지 알 수 없었다.
곧장 담을 넘어 후정 연무장을 가로질러 달렸다.
검을 뽑고 안개 속으로 들어가려던 게이드는 뒤에서 급속히 가까워지는 강한 기세를 느꼈다.
휙 돌아서면서 레이를 보았다.
옆의 무사 둘도 게이드를 따라 뒤에서 달려오는 레이를 보고는 검을 뽑는다.
어둠 속에서 혼자 남아 관주 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허스틴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저놈이 레이인가? 복면을 쓰고 있어 알 수가 없군.’
게이드와의 거리가 100미터에서 90미터, 80미터로 점점 줄어들었다.
세 사람은 가운데에 게이드를 두고, 두 명의 무사가 양쪽에 선 역삼각형의 형태를 취했다.
‘저 둘이 조직원인 것 같군. 이 방해꾼들을 먼저 처리하면 좋겠는데.’
두 사람의 자세를 보니 그리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50미터, 40미터.
드디어 30미터까지 가까워지자 세 사람이 들고 있는 검에 기세가 실리기 시작했다.
아공간에서 왼손에 표창 두 개를 내려받은 후 마나를 실었다.
좌우로 퍼져있는 두 사내의 다리를 향해 표창을 쏘았다.
게이드의 눈이 번쩍 빛난다.
“위험! 표창이다!”
그의 목소리가 미처 입을 벗어나기도 전에 빛살이 이미 사내들의 다리에 도달해 있었다.
경악하며 두 사람이 검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 카캉!
검면에서 불똥이 튀며 빛살이 옆으로 튀어나간다.
무거운 바위를 막기라도 한 듯, 검신이 ‘웅웅’ 진동을 했다.
검을 쥔 손이 부르르 떨리며 경련을 한다.
‘표창 공격은 막아낼 줄 알았다.’
두 사람이 오른손을 쥐고 당황하고 있을 때 이미 레이는 우측 사내의 전면에 와 있었다.
레이가 발검하며 발시언 1장을 펼쳤다.
사내의 이마를 향해 레이의 검첨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갔다.
사내가 눈을 들었을 때는 검이 이마를 막 뚫으려 하고 있었다.
“어억!”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며 눈을 꽉 감는다.
그때 ‘쇄애액~’ 하며 강력한 기세가 폭풍처럼 몰아쳐 레이의 복부를 쳤다.
게이드의 검이 복부에 거의 닿는 찰나다.
‘아깝군!’
아쉬워하며 레이가 몸을 급회전시켜 회수한 검으로 게이드의 공격을 쳐냈다.
- 꽈아앙!
검과 검의 기세가 부딪치며 거센 회오리바람이 솟았다.
나뭇잎과 흙먼지가 바람을 따라 피어올라 시야를 가렸다.
잠시 후 먼지구름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연무장에는 레이와 게이드가 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었다.
뒤쪽에서 경계하고 있는 조직원 두 사람의 검에서 더 이상 전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표창 공격의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네놈은 누구지?”
레이의 눈을 응시하던 게이드가 의아해하며 묻는다.
저런 눈을 한 자를 본 기억이 없다.
‘주위에 이렇게 계획적으로 대규모 공격을 할 자가 없는데 이상하군.’
레이는 검에 마나를 가득 실었다.
‘속전속결이다. 허스틴이 오게 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대답 없이 오러 블레이드를 검에 씌웠다.
이를 보고, 게이드 또한 전력으로 검에 오러를 불어 넣었다.
두 사람의 검첨 위로 오러 블레이드가 성인 손 한 뼘 길이만큼씩 올라왔다.
“엑스퍼트들이다. 물러나!”
조직원 둘이 오러 블레이드를 보더니 겁을 집어먹고 멀찌감치 떨어진다.
- 고오오오오~~
게이드의 옷자락이 펄럭이며 부풀어 오른다.
미세한 먼지가 떠오르며 그의 기세가 퍼져가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전신이 확대되면서 신화 속의 거인과 상대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레이는 조시와 대결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의 위험했던 순간 때문에 슈나이더 검법서를 읽으며 대응할 길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조시의 기세와 게이드의 기세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만큼 차이가 컸다.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명검 ‘쉐도우’를 덮은 마나 블레이드의 빛이 깜빡거릴 정도였다.
레이가 슈나이더 검법을 고심하며 발시언에서 발견한 것.
그것은 거친 물살을 헤치는 돌고래의 부드러운 몸짓이었다.
대륙 곳곳을 떠도는 바드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중 널리 알려진, 집채만한 파도를 넘나든다는 돌고래의 유영.
슈나이더의 거대한 기세를 힘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움으로 가르는 것이다.
눈을 감고 온몸의 근육을 이완시켰다.
- 콰과아아아~
검이 머리로 다가온다.
수백 미터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 서 있는 느낌이다.
폭포의 물줄기를 가르며 검을 비스듬히 그어 올렸다.
- 가가각~~
‘쉐도우’에 서린 마나 블레이드가 산산조각이 난다.
빛의 파편이 어둠 속으로 튀었다.
‘이런! 실패다!’
레이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렸다.
팔을 타고 들어온 상대의 기운이 내부를 진탕한다.
‘지지직~~’ 하며 포석 위로 밀리는 뒷발을 지탱하여 몸을 세웠다.
속이 다 뒤집힌 것 같다.
마나 오브를 휘돌려 몸 안에 들어온 게이드의 기운을 밖으로 내몰았다.
검에 다시 마나를 흘려 넣으며 앞으로 도약했다.
날카로운 검끝이 낭창낭창한 갈대처럼 일렁인다.
흔들리는 검이 게이드의 기세를 거슬러 올라 얼굴로 파고들었다.
평온을 잃지 않던 게이드의 얼굴에 가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한 일검을 막아냈다고? 슈나우더를 익힌 이후 그 누구도 이 검을 막지 못했거늘!’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 찰나의 순간에 검이 눈을 찔러온다.
날카로운 검첨을 눈동자 앞에 두고도 게이드는 눈빛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누가 당기기라도 한 듯 게이드의 몸이 1미터쯤 뒤로 미끄러졌다.
멀어진 것 같았던 검이 어느새 돌아와 레이의 공격을 쳐내고 있다.
“꽈아앙!”
다시 한번 레이의 검이 튕겨졌다.
게이드는 숨조차 쉬지 않은 채 곧장 반격을 가했다.
연무장 위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채 웅웅거리며 일렁였다.
몸 주위를 둘러싼 기운을 검첨 앞으로 모으며 회전시켰다.
‘위이잉’ 거리며 바람이 돌기 시작한다.
흙먼지와 작은 돌들이 휩쓸린다.
팔목의 옷자락이 휘감긴다.
공기가 소용돌이치며 강력한 흡입력이 발생했다.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쏴아아아~~”
마나를 응집한 레이의 검이 회오리같은 게이드의 기운을 전력으로 갈라쳤다.
하지만 레이의 검도 예외가 아니었다.
게이드가 만든 회오리에 가까워지자, 검이 쓸려 들어갔다.
레이의 몸도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실패다! 아직 모자라는구나.’
철봉을 휘둘러 때려도 나비처럼 바람결에 팔랑이며 넘어가야 하는데 유연함이 모자라다.
게이드가 팔을 우측으로 뿌렸다.
중심을 잃은 검이 젖혀지고, 레이의 몸이 비틀거리며 허점을 보였다.
게이드의 왼발이 반원을 그리며 가속을 받은 후 중심을 잃은 레이의 등을 가격했다.
- 퍼억!
발이 등에 박히는 소리가 크게 났다.
“크으윽!”
3~4미터를 떴다가 바닥에 떨어진 레이의 몸이 물수제비처럼 튀더니 몇 미터를 더 굴렀다.
‘쿨럭’하는 기침 속에 핏빛이 섞여 나온다.
부상은 아니지만 제법 충격이 컸다.
바닥을 손으로 치며 몸을 솟구쳐 4~5미터를 더 물러났다.
레이가 넘어졌던 곳으로 게이드의 검이 지나간다.
‘가가각~~’ 거리는 소리가 뒤늦게 들리더니 포석들이 반으로 쩍쩍 갈라졌다.
조금만 늦었다면 레이의 머리가 포석처럼 쪼개졌을 것이다.
등골이 섬찟하다.
전형적인 중검의 무거운 기세였다.
검으로 막았다면?
아마 검신을 누르고 넘어와 얼굴을 찔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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