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림 최강의 생명체
그 순간 선두 대열에 있던 병사 하나가 발을 내딛는데 바닥이 와르르 허물어진다.
“어엇!”
다급한 비명을 지르던 병사의 몸이 퍼석거리는 경사지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방금까지 멀쩡하던 땅이 회전하며 모래 소용돌이로 변한다.
옆의 동료가 창을 내밀었지만. 미처 잡을 새도 없다.
“으아악~ 살려줘!”
미끄러져 내리는 병사가 창을 땅에 박아 넣었지만, 모래벽은 부스스 부서질 뿐이다.
직경이 40~50미터는 되어 보이는 소용돌이.
그 거대한 회오리의 거의 바닥 부분까지 병사가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한가운데서 회색빛 물체가 머리를 내밀었다.
몸뚱이는 모래 아래에 있고, 머리만 보이는 데도 소형 마차 한 대만한 거대한 크기였다.
쩍 벌린 입은 커다란 항아리 같았고, 주둥이 양쪽에 갈고리 모양의 이빨이 길게 뻗어 나왔다.
주둥이 안에도 날카로운 이빨들이 빙 둘러있다.
멀리서 보아도 물리는 순간 빠져나오지 못할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공간에서 표창을 꺼냈다.
마나를 부여하자마자 몬스터의 입을 향해 손목을 뿌렸다.
이제 그의 표창은 마나를 가득 품은 단검 크기의 파이어 볼이나 마찬가지였다.
‘핏’ 하며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를 내며 손에서 떨어진 표창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은 것처럼 몬스터를 향해 날아갔다.
병사의 다리가 몬스터의 입에 막 닿는 찰나였다.
먹이감에 눈이 팔린 몬스터의 목구멍에 표창이 꽂혔다.
‘퍼억’ 하고 목 속에서 응축된 마나가 폭발하는 소리가 난다.
동시에 몬스터의 뒷목이 ‘퍼엉!’ 하고 터지며 껍질과 살, 피가 사방으로 산산히 부서져 튀어 나갔다.
“구어어억!!”
괴로운 신음과 함께 몬스터가 몸을 마구 흔들어댔다.
모래 분지가 진동을 한다.
“어어어?”
“어떻게 된거야?”
안타깝게 보고 있던 병사들과 용병들이 의아해하며 눈을 크게 떴다.
목이 반쯤 사라진 몬스터가 머리를 휘저으며 발악을 했지만, 점차 소리가 줄어들고 힘도 약해졌다.
그르륵거리던 몬스터의 머리가 모래밭에 털썩 떨어진다.
모래 소용돌이가 천천히 회전을 멈췄다.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몬스터의 목에서 솟아나는 시퍼런 피가 가운데에 웅덩이를 이루며 모래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병사가 ‘으아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발로 몬스터의 송곳니를 찼다.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회오리가 그쳐 간신히 손과 발로 경사 언덕을 조금씩이나마 기어오를 수 있었다.
“살았어!”
“올라와! 빨리!”
병사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레이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알렉스, 모두 이리 모여요!”
스캔 영역을 최대한 넓혔다.
사방에서 모래 몬스터가 몰려들고 있었다.
이동이 멈추는 순간 땅속에 소용돌이가 생기며 그 영역을 넓히는 것이 느껴진다.
“뭐야? 어억~”
“아아악~”
여기저기서 모래 소용돌이가 생겨나며 빠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감각이 뛰어난 기사와 용병들은 바닥이 약해지는 순간 피할 수 있었지만 그 수는 몇 안됐다.
마법사 중 한 사람이 결국 모래를 밟고 말았다.
“허억! 살려줘!”
허우적대며 쓰지는 마법사를 향해 옆의 기사가 재빨리 손을 뻗었다.
로브 자락이 손끝에 걸렸지만, 로브가 소용돌이에 휘감기며 손을 빠져나가고 만다.
“안돼에~~”
애절한 표정으로 두 손을 뻗은 채 몸부림을 치는 마법사는 삽시간에 몬스터의 지척까지 미끄러져 내려갔다.
튀어나온 송곳니 두 개가 갈고리처럼 마법사의 옆구리를 찍는다.
“끄어억!”
두 개의 창날이 양쪽에서 옆구리를 관통한 듯 살을 저미는 고통이 찾아왔다.
갈고리는 마법사를 찍어서 입안으로 던져넣었다.
주둥이가 몇 번 위아래로 움직이자, 먹이가 잘게 찢겨지면서 붉은 피가 몬스터의 턱 아래로 흘러내렸다.
이것저것 잴 시간이 아니었다.
“저를 따라와요!!”
땅속을 스캔하며 모래 소용돌이가 시작되는 곳을 피해 옆으로 달렸다.
알렉스와 일행이 즉시 그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사방에서 생겨나는 함정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용병과 병사들.
레이가 앞장을 서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따라 뛰었다.
중앙의 기사와 마법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 인원이 선두를 따라 이동했다.
앞에서 모래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왼쪽!!”
레이는 급히 방향을 틀었다.
그를 따라 긴 줄이 급선회한다.
‘퍼버벅’ 소리와 함께 멈춘 발끝에서 모래 먼지가 날린다.
레이가 서면 모두 꼼짝않고 기다렸다.
“45도 우측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방향을 틀며 질주가 다시 시작됐다.
방향을 이리저리 틀며 달리기를 거의 30분 이상.
평원의 색깔이 조금씩 변해갔다.
흙과 돌뿐이던 땅 위에 녹색 풀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서부터는 최대한 집중하여 스캔을 해도 땅속에 더 이상 위험이 느껴지지 않았다.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레이가 풀밭에 주저앉았다.
“이제 괜찮은 거야? 안심해도 돼?”
알렉스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로잔느는 기다리지 않고 레이의 옆에 털썩 앉더니 아예 드러누워 버린다.
“몬스터는 더 이상 보이지 않네요.”
주변의 탐험단 일행도 그 말을 듣고 풀썩풀썩 앉기 시작했다.
질린 얼굴의 사드가 에르고에게 물었다.
“저게 도대체 뭡니까? 들어본 적도 없는 몬스터인데···”
“나도 본 적 없네. 예전 트레저 헌터에게 샌드 라이온이라는 모래 몬스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저놈인가 보군.”
그 역시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마법사 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병사는 15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이번에는 용병들의 희생도 컸다.
36명 중 무려 15명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되자 전력에 전혀 손실이 없는 알렉스 용병팀이 두드러졌다.
더구나 모래 소용돌이에 빠진 병사를 누군가가 살려냈는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알렉스 팀에서 손을 쓴 것으로 추측된다.
모래 지옥을 빠져나온 것도 그들 덕분이 아닌가.
아케인이 트래커 둘을 불렀다.
“중간에 희생이 크기는 했지만, 마지막에 신속히 빠져나온 것은 잘했네. 이제부터의 루트는 어떤가?”
사드가 머뭇거리며 답을 했다.
“마지막에 그곳을 빠져나온 것을 저희가 한 게 아니라 용병들 중 한 명이 이끈 것입니다.”
“용병들 중 한 명이? 그래? 용병 중에도 길잡이에 능한 자가 있나 보군.”
에르고가 침중한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주변 풍경으로 보아 방향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말씀드렸듯이 위험에 대해서는 저희가 예상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짧은 턱수염을 쓰다듬는 아케인의 표정은 좀체로 펴지지 않았다.
“알겠네. 일단 좀 쉬고 나서 생각하지.”
레이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스캔 마법을 땅속과 주변으로 퍼뜨려 살펴보았다.
전혀 이상한 것이 없었다.
감각도 완전히 평온한 느낌 그대로였다.
편한 마음으로 레이도 휴식을 취했다.
또 한 명의 동료를 잃은 마법사들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기사들이 철저히 보호하고 있었지만, 발밑이 꺼지는 함정까지 어쩔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기사들을 보는 시선은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폭염에 달궈진 모래밭을 지나 초원에 들어섰지만, 뜨거운 햇살까지 가려진 것은 아니다.
모두들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햇빛이 가려진다.
잠깐이나마 생긴 그늘이 반가우면서도 이상하다.
가장 먼저 의아함을 느끼고 하늘을 쳐다본 것은 아케인이었다.
눈을 든 순간 마주친 것은 하늘을 뒤덮은 그림자.
그리고 샛노랗게 빛나는 눈알과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여러 개의 예리한 창끝.
“이게 뭐야?”
등골이 섬찟함을 느끼며 아케인이 검을 뽑고 벌떡 일어선다.
바람을 가르는 소음 하나 없이, 울음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그림자가 쏘아져 내려왔다.
창끝 같은 발톱은 몬스터의 무서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마법사 둘의 머리를 찍고는 위로 방향을 틀었다.
내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집채만한 그림자가 소리 없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제야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쪽 날개를 편 길이가 10미터를 훌쩍 넘는 어마어마한 새였다.
날갯짓 두어 번에 하늘 끝까지 올라간 괴조는 시야 저편으로 날아서 점처럼 작아지더니 종내 사라졌다.
초원 위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새파래졌다.
“이런 미친! 이게 무슨 일이야!”
에르고가 몸을 벌벌 떨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와이번이었다.
여기 있는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내수림 최강의 생명체.
하늘 위에서는 그 누구도 대적할 자가 없다는 몬스터 중의 몬스터.
그런 끔찍한 존재가 왜 이 외수림의 초원에 나타난단 말인가.
“전투 준비! 대열을 갖추어라!”
잠시 아연실색하고 있던 아케인이 급하게 소리쳤다.
마법사들은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여전히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동료 마법사 두 사람이 괴조의 발톱에 잡혀 ‘어어’ 하는 순간 끌려갔다.
그런데도 슬픔에 빠질 시간조차 없다.
악몽을 잊으려는 듯 필로프가 머리를 한 번 흔들더니 외쳤다.
“와이번이다! 모두 공격 마법을 캐스팅하라.”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손끝이 흔들리고 입술까지 파르르 떨린다.
분명히 스캔에도 감각에도 티끌만한 이상조차 없었다.
저 거대한 괴조가 수직으로 강하하여 바로 옆에 내려꽂힐 때조차 전혀 모른 채 쉬고 있었다.
마법사 대신에 자신이 목표였다면 이미 머리가 뚫린 채 먹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대수림에 들어올 때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 끔찍했던 켈베로니안 협곡의 던전도 헤쳐나오지 않았던가.
그때보다 실력이 더 향상된 지금은 어떤 위험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감에 차 있는 지금이 바로 죽기 딱 좋은 때였던 것이다.
반항 한 번 못 해보고, 죽는 줄도 모르는 채.
심호흡을 하고 검을 뽑았다.
마나 블레이드를 최대한 끌어내고, 왼손의 표창에는 마나를 압축하여 밀어 넣었다.
일행 모두 레이를 둘러쌌다.
티탄이 방패를 하늘로 올렸다.
저 거대한 비행체가 한 번으로 사냥을 끝낼 리가 없다.
“대열을 유지하고 앞쪽 숲으로 이동한다. 전진!”
넓게 펼쳐진 초원이 끝나는 지점 저 멀리에 나무들이 보인다.
거목들이 자란 숲으로 들어가면 아무리 와이번이라도 그 속을 뚫고 들어올 수는 없다.
아케인의 지시에 따라 탐험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하늘 저편에서 사라졌던 점이 다시 생겨난다.
점은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몸체로 확대됐다.
“와이번이다! 조심해라!”
아케인이 검을 하늘로 뻗었다.
이번에는 몸을 숨기려는 생각도 없는 듯 입을 벌리고 괴성을 지른다.
“구어어어~~~~”
초원 위 하늘 전체로 허공을 찢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퍼졌다.
괴성을 듣는 순간 숨 막히는 공포가 전신을 사로잡는다.
귀를 막았다.
소용없다.
소리는 몸 전체를 휘감으며 정신을 뒤흔든다.
아케인이 오러를 가슴에 모은 후 ‘하아압~~’ 하며 와이번을 향해 기합을 내질렀다.
음파가 맞부딪치며 와이번의 음파 공격이 다소 상쇄되었다.
“온다! 정신차려라!”
아케인의 경고대로 날개를 접은 유선형의 몸체가 머리를 아래로 한 채 탐험단을 향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와이번은 사람 머리 정도 높이에서 발톱을 내밀었다.
또 마법사가 목표였다.
몸에 마나의 유동이 많은 마법사가 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발사!”
필로브의 지시에 따라 파이어 애로우와 파이어 볼이 와이번의 몸에 쏟아졌다.
아케인은 와이번에게 도약하더니 앞으로 뻗은 발톱의 바로 위 발목에 오러 블레이드를 전력으로 내리쳤다.
공격은 그뿐 아니었다.
검에 오러를 두른 기사들의 공격이 날개와 몸체를 향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와이번이 세차게 날개를 퍼덕였다.
“콰우우우우~~~”
위아래로 펄럭이는 집채만한 날개가 거센 바람을 만들어 내더니 돌풍으로 변해 휘몰아친다.
날카로운 창 같은 바람이 마법사와 기사들을 향해 꽂혔다.
놀랍게도 마법사들의 마나 공격이 돌풍에 휘말려 엉뚱한 곳으로 빗나갔다.
뒤로 밀려나는 마법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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