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추억의 음식과 고기 가루
#032 추억의 음식과 고기 가루
오랜만에 집 안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
간단하게 통조림을 따서 먹는 게 아니라 제대로 팔팔 끓여 국물을 우리는, 그런 음식.
처음부터 끝까지, 현대 문명의 이기 없이 사람 손만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비둘기가 냄비 속으로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고, 나는 피식 웃었다.
전에 공원 화장실에서 잡았던 닭은 내가 손질했지만 이번에는 주희가 맡겠다고 나섰다.
아직 털도 뽑지 않았는데.
하지만 고기라고는 마트에 진열된 것밖에 모르는 그녀가 연습도 없이 손질하기는 어렵다.
의욕이 있는 건 좋지만, 일일이 털을 뽑거나, 내장이 터지지 않도록 항문 쪽에 칼집을 내는 등의 일은 초보자가 제멋대로 할 것이 못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걸 지켜보라고 권했지만, 주희는 그래도 자신이 하고 싶다고 우겼다.
그녀가 이렇게 고집을 피우는 건 드문 일이다.
어릴 때도 내 말에는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애니까.
왜 갑자기 별일 아닌 일에 고집일까 이상했지만 대단한 것도 아니다.
결국 내가 양보하고,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르치기로 했다.
결론을 말하면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 열 배 정도 시간이 걸리고, 서툴기는, 뭐, 조금 줄여서 다섯 배라고 해줄까.
털 뽑을 때는 반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냥 울면서 하고 있었다.
그냥 지켜보는 것과 직접 손을 대고 하는 건 느낌이 또 다르다.
엄청나게 끔찍했겠지.
자신이 주장한 일이기도 하고, 내 앞이라는 것도 있어서 울음소리는 억지로 참고 있었지만, 눈물이 흐르면 그건 백 퍼센트 우는 게 아닐까.
주희는 운 게 아니라 매워서 눈물이 흘렀다고 했지만, 비둘기가 파로 만든 것도 아닌데 맵기는 어디가 맵다는 거야.
그래도 끝까지 비둘기 때문에 매워서 운다고 주장하는 그녀의 억지가 조금 웃겼다.
결국 비둘기 손질이 끝난 건 해가 완전히 지고 캄캄해진 뒤였다.
배는 고팠지만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것 같다.
마늘가루와 후추, 고춧가루를 잔뜩 넣은 물이 끓고, 비둘기 고기가 점점 익기 시작해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자, 왠지 지진나기 전의 세상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비둘기탕은 한 마리로 조촐하게 만들었다.
지금 먹고 내일 아침 국물에 밥 말아 먹을 정도는 될 것 같다.
남은 두 마리는 목욕탕 주인에게 주기로 했다.
음식점 자리를 양보해 주고 이것저것 돌봐주는 일에 관한 사례다.
둘이 마주 앉아 국물을 한 숟갈 입에 대자, 주희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얼큰한 국이 한 입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리운 맛이 난다.
나는 다시 한 숟갈 국물을 입에 넣고 삼켰다.
"오빠, 어때?"
"...."
나는 잠시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입을 열었다.
"맛있어... 그런데 이거...."
"아주머니 맛이지?"
주희가 웃는다.
가지런한 이가 촛불에 비쳐 하얗게 보였다.
"어떻게?"
내가 묻자, 주희가 콧등에 주름을 잡으며 웃었다.
"나, 어릴 때부터 계속 아주머니가 해준 음식 먹었잖아. 우리 엄마는 집에 거의 없어서 요리는 하지 않았으니까."
"...."
"이사 간 뒤로는 한동안 반찬 가게에서 사다 먹었어. 하지만 그 맛을 내가 참지 못해서 결국 요리하게 된 거야."
그러니까 자신이 하는 요리는 친어머니가 아니라 내 어머니의 맛이라며 주희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웃었다.
눈동자에 얇은 습기가 스며 있는 건 아마 그녀도 내 어머니를 추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게도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길러준 양부모 같은 거니까.
"정말 맛있네. 어머니가 해준 거랑 똑같아."
내 말에 주희가 코를 약간 훌쩍였다.
"오빠한테 빨리 밥 만들어 주고 싶었어. 그렇게 말할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 뒤에는 조용히 국 뜨는 소리, 숟가락 소리만 울렸다.
굉장히 맛있고 그리운 시간이 흘러간다.
지금은 없는 부모님이 약간 떨어진 장소에 서서 보고 있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시선을 들어 어두운 공간을 보았다.
주희가 내 행동을 보고 가볍게 손등을 때렸다.
"오빠, 그러지 마. 무섭단 말이야. 안 그래도 귀신 얘기에, 촛불만 켜고 있어서 어두운데."
모처럼 추억이 감도는 좋은 분위기였는데 순식간에 그게 무산된다.
"귀신 때문이 아니라는 건 알았잖아."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거든. 아무것도 없는데 그렇게 쳐다보는 건 금지."
맞은편에 있던 주희가 의자를 끌어당겨 내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하지만 정말 그게 오빠 마법 때문이었어? 혹시 다른 가능성은 없는 거야? 진짜 귀신에 씌었다던가."
주희가 사방을 둘러보며 작게 속삭였다.
귀신이 들을까 무섭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런 게 있을 리 없는데.
만일 귀신이 이 세상에 있었다면 부모님이 나를 찾아왔을 테니 금방 알았을 거다.
"내 마법 때문이 맞는다고 생각해. 물론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식사 전에 다시 한번 그 남자의 행동을 자세히 들었지만 확신만 더해졌다.
내진 설계나 화재 예방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확인할 수 없다.
그래도 보안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 걸 보면 나머지도 제대로 정착했을 것이다.
"하아."
주희는 작게 한숨 쉬며 어두운 집 안을 한 바퀴 쳐다보더니,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어두운 곳을 본다.
귀신 생각을 털어 버리려고 하는데 잘 안되는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아까 잠시 나왔던 화제를 꺼냈다.
"그나저나 음식점은 페미컨 같은 보존 음식으로 하겠다고?"
"응.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 제대로 된 요리는 어려울 것 같아. 재료라든가 물도 모자라지만, 겨울에는 몰라도 여름에는 고기가 상할 테니까."
냉장고를 부여 마법으로 가동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 됐다.
전기 제품은 전기가 있어야 작동한다는 원리 때문인지 부여 마법이 잘 통하지 않았다.
뭐, 그게 작동해 준다 해도 내놓고 사용할 수는 없으니 음식점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건 그거고.
나는 주희를 보고 입을 열었다.
"페미컨은 좀 어려울 것 같아."
"왜?"
주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과거에 지식을 그녀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여러 가지를 조사해 말해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지만 그때는 나를 영웅처럼 대단하게 생각해 주는 주희의 우러름이 굉장히 기분 좋았다.
뭐, 지금 도움이 되는 걸 보면 인생사 앞으로 뭐가 어떻게 구를지 정말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에 따르면 페미컨은 지방 기름을 이용해 곡식가루와 고기를 반죽하고 굳혀 만든다.
"지방 기름이면...."
주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마 그녀의 머릿속에는 버터 같은 게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페미컨에 사용하는 건 내장지방이라고 해서 동물 내장을 감싸고 있는 걸 거야. 나도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한데."
페미컨은 그런 내장지방을 고기가루와 거의 일대일 비율로 섞어서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조사했을 때, 페미컨으로 만드는 동물은 들소, 사슴, 칠면조처럼 몸이 큰 짐승이었다.
잡을 게 기껏해야 들개와 새밖에 없는 지금 그런 내장지방을 만드는 건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내장지방을 만드는 방법도 모른다.
내가 그걸 조사한 건 중학생 때였고, 그때는 말 그대로 글자로 음식을 배웠으니까.
"아아아... 어떻게 하지. 완전히 그걸 할 생각 만만이었는데. 솔직히 그게 아니면 할 게 없어, 오빠. 지금 세상에 정상적인 음식은 너무 아까워. 남한테 팔 게 있으면 우리가 먹어야 한다니까."
주희가 주먹을 움켜쥐고 허공으로 불쑥 내밀었다.
"방금 같은 탕 요리를 고작 물건 몇 개에 팔아넘기다니! 내 마음속의 저울이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단 말이야. 내 요리가 백만 배는 아깝다!"
그 말은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페미컨도 사실은 마찬가지다.
고기를 가루로 내서 곡물과 섞으면 솔직히 지금 만든 음식보다 가치는 높지.
하지만 페미컨이라는 건 더럽게 맛없다고 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허공에 주먹을 쳐든 채 분개하는 주희를 보고 웃었다.
"페미컨 말고 몽골식 고기가루를 팔면 어때?"
"응?"
지금 마을에서 팔고 있는 육포와도 과정은 조금 비슷하지만, 몽골식 고기가루는 그것보다 훨씬 더 건조한 뒤에 가루로 빻은 것이다.
보르츠라고 하던가.
몽골에서는 흔한 모양이다.
전쟁할 때 자루에 넣고 다니면서 물에 조금씩 풀어 먹었다고 한다.
몽골에서는 소로 만들었다고 하던데, 뭐, 지방만 잘 발라내면 상관없지 않을까.
"오빠!"
주희의 얼굴이 조금씩 환해지더니 반짝반짝 빛난다.
"그거 멋지다.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고? 미숫가루처럼 물에 타 먹는 고기가루라니, 정말 멋지잖아. 그거야말로 내가 원하던 바로 그거야!"
마음에 든 모양이다.
"작은 주머니랑 함께 팔면 히트 상품이 될 거야. 육포는 딱딱하니까 몸이 약한 사람은 먹지 못할 텐데, 아, 그러고 보니 치과도 없네, 이제. 치과 싫어하기는 했지만 그런 데가 없어지면 이 안 좋은 사람도 많이 늘어나겠지. 그러면 정말 육포보다 이게 훨씬 잘 팔릴 거야."
굉장히 마음에 든 것 같다.
좋아하니 좋다.
"앞으로는 정말 부지런히 비둘기 잡아야겠네."
그렇게 말하고 웃자, 주희가 주먹을 다시 허공에 휘둘렀다.
"털 뽑고 손질하는 건 나한테 맡겨 둬! 오빠가 사냥해오면 나랑 민정이가 열심히 가루로 만들어서 팔게. 어쩌면 목욕탕 아주머니도 하겠다고 할지 몰라. 목욕탕은 왠지 잘 안 된다고 하니까."
뭐, 그건 그렇겠지.
지금 당장 먹을 게 급한 사람들에게 목욕은 하면 좋지만 안 해도 그만인 후순위다.
어째서 정병일과 부인이 그걸 시작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도무지 모르겠어.
처음 생각할 때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자신만만했으려나.
주희는 당장 민정이와 여주인한테 말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모양이다.
몇 번이나 빨리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며, 가끔은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공간을 쳐다보았다.
역시 그녀는 귀신이 나올까 봐 무서운 모양이다.
어려.
역시 아직도 어리던 그때 그대로다.
이것저것 다른 일과 동시에 하다 보니 아직도 집 정리는 다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주희가 쓸 방만은 가장 먼저 치워두었다.
반지하에 있는 창고에서 나무로 된 침상도 한 개 갖다 두고, 이불은 아직 모포뿐이지만 잘 수 있는 환경은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귀신이 아직 무섭다고 달라붙는, 정말 어린아이 같은 그녀를 혼자 둘 수는 없고 해서 오늘도 우리는 나란히 같은 침대에 누웠다.
물론 베개 하나 정도의 거리는 띄웠다.
아무래도 혈연관계없는 남녀 사이니까.
눈을 감고 한참 있는 동안 슬슬 잠이 오려는데, 불쑥 주희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자?"
"아니... 왜?"
"밖에서 이상한 울음소리 안 들려?"
"아... 저건 고양이 울음소리야."
"꼭 아기가 우는 것 같아."
고양이는 발정기가 되면 그런 울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발정기는 보통 봄이나 여름일 텐데.'
하지만 모두가 같은 계절에 발정기가 되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
"정말 고양이 소리야? 고양이 같지 않은데."
주희가 불안한 듯 몸을 꼼지락거린다.
"내가 백 퍼센트 확신하건대, 저건 진짜로 고양이 소리야."
"...."
주희는 잠시 조용히 있다 또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나 조금 무서운데 그쪽으로 가도 돼?"
"...."
여자로서의 자각이 너무 모자라는 게 아닐까.
오빠는 조금 걱정이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주희가 꼬물꼬물 몸을 움직였다.
"오빠, 귀신 나올 것 같아."
어쩔 수 없네.
나는 작게 한숨 쉬고 팔을 펼쳤다.
"자, 이리로 와."
주희가 한 바퀴 데구르르 굴러왔다.
그녀가 어릴 때, 밤이 되면 나와 둘이 거실을 데굴데굴 옆으로 굴러다니곤 했었다.
입으로는 태풍이라든가, 회오리바람 같은 말을 외치면서.
나는 초등학생, 그녀는 아직 서너 살이었을 때였다.
성인이 되어서인지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행동은 그때와 똑같다.
정말, 그녀는 여전히 아이구나.
내가 웃자, 주희도 작은 소리로 따라 웃는다.
"옛날 생각난다, 그치, 오빠?"
"그래."
여전히 코흘리개 아이 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말하면 화낼 것 같아.
하지만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 건 알아차린 모양이다.
주희가 내 팔을 벤 채로 이마를 옆구리에 박는다.
아파.
자유로운 손으로 이마다 싶은 곳에 살짝 꿀밤을 먹이자 윽, 소리를 낸다.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힘은 제대로 뺐으니까.
우리는 잠시 아이처럼 장난치다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자, 주희는 여전히 내 팔을 벤 채 입가에 침을 약간 흘리고 있었다.
정말, 스무 살이나 되었는데 그 나이는 다 어디로 간 거야.
알 수 없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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