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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헤라

아포칼립스 부여마법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베르헤라
그림/삽화
주6일 연재, 월요일은 쉽니다
작품등록일 :
2022.11.27 19:03
최근연재일 :
2023.02.01 15:16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412,069
추천수 :
13,791
글자수 :
338,625

작성
22.12.2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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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021 냄비 속 개구리

DUMMY

#021 냄비 속 개구리


지진이 났을 때, 상대적으로 큰 건물이 더 피해를 많이 본 모양이다.

크다 싶은 빌딩이나 아파트는 대부분 무너져 있었다.

서울로 가까이 갈수록 그런 경향이 큰 것처럼 보였다.

내가 살던 도시보다 무너진 건물도, 땅이 뒤집힌 곳도 많았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을 만큼 도시 전체가 붕괴된 곳도 있다.

어떤 곳은 가스관이 터지면서 화재가 있었는지 한 블록 이상이 모두 불타 재가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런 곳에는 정말로 생존자가 없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지역은 대부분 도로 사정도 좋지 않다.

건물 잔해가 산처럼 쌓이거나 땅이 벌어져 있어서 도보로 이동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당연히 오토바이로는 지나갈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원래 있던 도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여러 번 우회하거나 다른 도로를 찾아 헤매야 했다.

몇 번이나 돌아 돌아 낯선 거리로 접어든 우리는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게 되었다.

지도는 가지고 있었지만, 표지판을 거의 볼 수 없는 데다 지형 자체가 변해서 무용지물이었다.

태양의 위치와 지도로 장소를 추측할 정도의 야생 감각은 현대 지구를 살았던 인간에게 없는 거야.


"하아. 내비가 없으니까 정말 불편하네."


누군가가 중얼거리며 한숨 쉬었다.

그래도 지도가 없었다면 우리의 현재 위치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이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물론 현대 지구에서만 살아왔던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는 저쪽 세계에서 중세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에 대강이라도 위치를 알 수 있는 지도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음식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거지. 길이야 다시 찾으면 되잖습니까."


서경덕이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사람들을 보았다.

음식이 가장 많을 것 같은 대형 쇼핑몰이나 마트는 대부분 무너졌다.

우리가 노릴 만한 가게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같은 곳인데, 신선식품이야 당연히 없지만 즉석밥이나 쌀도 지금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오토바이로 지나가면서 여러 번 가게에 들렀지만 쌀과 통조림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간장이나 소금, 설탕 같은 것들만 남아 있었다.

그것조차도 나중에는 구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서 나와 주희는 볼 때마다 은신처에 갖다 두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거의 챙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좀 깊은 곳까지 들어가 봅시다. 뭐라도 찾아야지."


서경덕이 약간 떨어진 주택가를 보며 말했다.

그의 말은 가정집까지 포함해서 음식을 구해보자는 것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한숨을 쉬었다.

가정집은 수확이 별로 없는 곳이다.

기껏해야 생쌀과 먹던 조미료, 밀가루, 국수 같은 게 다인데, 그나마도 한 집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거라도 찾을 수 있으면 지금 상황에서는 감지덕지다.

몇 달 된 것도 아닌데 지진 직후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갑시다."


내가 서경덕의 말에 응한 것으로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런 게 공식처럼 되어 버렸다.

서경덕이 말하고 내가 수긍하면 모두가 따르는 식으로.

어쩌면 서경덕이 그런 식으로 끌어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서경덕의 생각과 비슷하기 때문인지, 그는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내게 의견을 물었다.

그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보다 그와 나는 생각의 방식이 비슷하다.

성격은 완전히 정반대인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다.


"낯선 도시니까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아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니까."


서경덕이 한마디 하고 앞장서자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른다.

나는 제일 마지막이었다.

이상하네.

어느 순간부터 이것도 매번 똑같다.

항상 내가 마지막이야.

며칠 함께 다니면서, 마치 우리가 계속 이렇게 해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순서가 정해졌다.

처음의 나는 이 그룹에 붙어가는 타인의 포지션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슬그머니 동료가 되었다.

왠지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겉에서 볼 때는 파손이 별로 없는 것 같았지만, 역시 지진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은 곳은 없는 모양이다.

골목으로 들어가자, 가로등이 집 위로 넘어가 전선으로 뒤엉켜 있거나 건물이 무너져 길이 막힌 곳이 곳곳에서 보였다.

동네 자체도 그리 잘 사는 곳은 아닌지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 대부분이다.

이런 곳에서 뭔가 찾을 수 있을까.

열 가구 뒤져도 쌀 한 톨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왠지 희망은 옅을 것 같다.

하지만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편의점이 있었다.

온통 집과 놀이터밖에 없는 골목에 편의점이라니 의외다.

아직 거리가 많이 멀어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무너진 곳 없이 멀쩡해 보였다.


"오오!"


앞쪽에서 가던 남자가 흥분해서 엔진 소음을 높였다.

하지만 제일 앞서가던 서경덕이 주의하라는 표시로 손을 올렸다.

거의 동시에 나도 편의점 근처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오는 걸 보고 움직였는지 순식간에 서너 명이 골목에 나와 있었다.

우리가 계속 편의점으로 향하는 동안 점점 사람 수가 늘어난다.

혹시 포위되더라도 반격할 수 있도록, 나는 다른 사람보다 오토바이 속도를 약간 떨어뜨렸다.

앞사람과 거리를 늘이며 주변을 살핀다.

건물의 창문, 골목 너머, 옥상.

혹시라도 그런 곳에 누군가 있을까 주의를 기울였지만 특별히 숨어있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속도를 떨어뜨리자 앞에 있는 몇 명도 나를 따라 한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처음에는 내가 뭘 해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더니 며칠 사이에 많이 발전했다.

왠지 마음이 뿌듯하다.

편의점에 가까이 가자, 너무 말라 얼굴에 각이 진 남자들이 열댓 명 정도 모여 서 있었다.

그 뒤쪽으로는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도 두어 명 정도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 울음소리도 건물 뒤쪽에서 들려왔다.

젊은 여자들이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장소에 더 이상의 남자는 없는 것 같다.

지금 나와 있는 인원이 전부인 모양이다.

아마 있다고 해도 지금은 싸울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안녕하세요."


서경덕이 웃으며 인사하자, 제일 앞에 서 있던 남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동네는 약탈할 것도 없지만 하게 두지도 않으니 곱게 말할 때 나가요. 이 구역은 우리 거야."


슬쩍 편의점을 보자, 밖에서 안쪽이 보이지 않도록 진열대가 입구에 끌어져 나와 있었다.

편의점 밖에는 쌀이나 밀가루, 국수 포장지 같은 게 버려져 있다.

포장지가 낡고 지저분한 걸 보면 편의점에서 파는 것들은 아닐 것이다.

아마 집집마다 먹을 걸 한데 모아 조금씩 배급하는 모양이다.

구역 운운하는 걸 보면, 주인이 없는 집을 탐색해 이곳에 식량을 모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집을 수색하는 남자가 몇 명 정도 더 있으려나.

어쩌면 그런 작업은 여자나 아이들이 하는 걸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사람들은 도적이나 약탈자라고 할 수는 없겠다.


"이 편의점 주인이세요?"

"...."


서경덕이 물었지만 남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입을 다문 채 우리를 노려본다.

그냥 자기 거라고 말해도 될 텐데.

서경덕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실실 웃으며 질문을 바꿨다.


"이 동네 사시는 분들인가 봐요."


서경덕의 말에 남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내가 어릴 때부터 계속 이 동네에서 살았소."

"한동네에서 계속 사는 건 요샌 참 드물죠."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가?"

"아니요. 그냥 진짜로 드물다고 생각한 것뿐이에요."


다른 남자 몇 명이 당장 떠나라고 윽박질렀지만, 서경덕은 거기에 신경 쓰지 않고 대장 격인 남자와 몇 마디를 더 나눴다.

대장은 떠나라 떠나라 말하면서도 서경덕이 물으면 묻는 대로 대답했다.

왠지 재미있는 사람이다.

서경덕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고개를 돌려 멀찍이 있는 나를 보았다.

조금 난처한 표정이었다.

상대가 도적이거나 같은 처지였다면 싸울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음식을 구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하루하루 다른 게 피부로 느껴졌다.

우리 그룹도 오늘내일 음식을 구하지 못하면 어려운 상황이다.

딱히 이 편의점 물건을 원하지 않더라도 이 마을에서 쫓겨나는 건 곤란하다.

그래서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자기들 것도 아닌데 매정하게 우리를 쫓아내는 놈들이라면 인정사정 봐줄 것도 없다.

차라리 이놈들 걸 빼앗자고.

저쪽이 사람 수가 많다고는 해도 우리는 전원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서경덕 자신도 잘 싸우지만, 지난번 싸움에서 내가 싸우는 걸 보았으니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게다가 보아하니 이들은 싸움에 그리 능숙한 것 같지 않았다.

나조차 그렇게 느꼈으니 서경덕은 금세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동네 주민이고, 자신의 마을과 집을 지키는 거라고 알면, 아무래도 싸워서 빼앗자는 마음이 되지 않는다.

도적의 것을 빼앗는다면 양심에 꺼릴 게 없지만, 선량한 사람의 물건을 빼앗는 건 우리가 도적이 되는 거니까.

약탈은 약탈이라도 완전히 다른 거다.

이 사람들이 그저 우리를 내쫓고 싶을 뿐이라는 걸 알고, 나는 서경덕의 옆으로 오토바이를 슬슬 몰았다.

창을 든 내가 가까이 가자 남자들의 경계가 대번 강해졌다.

한 명은 오히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그 남자가 들고 있는 건 낫이었는데, 목검에 식칼 꽂아 만든 창이 무섭다니 그것도 좀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무기가 강화한 거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낫이 더 무섭지 않을까.

내가 곁으로 가자 서경덕이 눈으로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음식과 물건을 교환하면 어떨까 해서."

"아."


서경덕의 눈이 반짝였다.

금세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아저씨, 혹시 오토바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여기 들어오면서 보니까 오토바이는 없던데요."


이곳이 주택만 모여 있는 곳이라 그런지 배달용 오토바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여기 모여 있는 사람 중에도 오토바이를 탄 남자는 한 명도 없다.

반면에 우리 쪽에는 조금 처치 곤란한 오토바이가 한 대 있었다.

흑해파와 만났던 주유소에서 떠날 때, 여고생이 오토바이를 갖고 싶어 했다.

면허는 없지만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탔기 때문에 운전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로서도 손해 볼 일은 없었기 때문에 그러라고 했는데, 그녀는 운동 신경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달릴 때는 괜찮다.

그녀가 운전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제대로 가야 할 방향으로 진행해 간다.

물론 그걸 못하는 게 이상한 거지만.

다만 잠시 세울 때마다 자빠졌다.

어쩌면 운동 신경과는 상관없는가.

어쨌든 그녀는 일시 정지할 때마다 오토바이가 자빠진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슬슬 인내의 한계가 오고 있고, 아마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이 골목에 들어오기 전에 오토바이를 놔두고 다른 사람 뒤에 타고 있었다.


"오토바이?"


대장과 남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예, 스쿠터요. 다루기는 굉장히 편하기 때문에 초보자도 손만 있으면 탈 수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 경찰이 와서 잡을 것도 아니니 면허 같은 것도 필요 없고. 어떠세요? 휘발유 들어 있는 오토바이 한 대."

"...."

"오토바이가 있으면 조금 멀리 있는 곳에서 필요한 물건 가져오기도 좋아요. 수레를 뒤에 달면 엄청 편하구요."


내 수레는 길이 울퉁불퉁 힘들어지면서 은신처에 갖다 두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버렸다고 했는데, 만일 가지고 있었다면 오토바이와 함께 팔렸을 것 같다.

결국 여고생의 오토바이는 상당한 양의 쌀과 생수 세 병, 캔 음료 몇 개, 담배 반 보루에 팔렸다.

지금의 가치로 보면 오토바이보다는 음식이 더욱 비싸지만 서경덕이 말을 잘했다.

오토바이 한 대만 있으면 다른 오토바이가 있는 장소를 물색해서 여러 대로 불리고, 그렇게 하면 여러 사람이 먼 곳까지 음식 탐색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설득한 거다.

이 마을에서 음식 조달이 가능한 건 기껏해야 한 달, 음식이야 어떨지 몰라도 물만큼은 아무리 아껴 먹어도 그 이상은 불가능할 거라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들이 서경덕의 말대로 해서 살아남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이곳에 먹을 게 부족해지는 상황이 올 때쯤에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이 남자들이 낯선 장소에서 음식을 구해 돌아올 확률은 한없이 낮아진다.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계속 탐색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생산이 중지된 물건은 언젠가 끝이 나게 되어 있으니까.

언젠가는 먹을 걸 스스로 생산하거나 구해야 하는 거다.

이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건 개구리가 서서히 달궈지는 냄비 속에서 죽어가는 것과 같은 일이다.

너무 늦지 않게 깨달으면 좋겠지만.


그날 저녁은 식사 뒤에 남자들이 모두 모여 담배를 피웠다.

내가 마지막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던 건 이세계에 가기 전날이었다.

이곳에 돌아온 뒤 담배가 수중에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동안은 아무래도 피울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주희가 옆에 있어서였던 것 같다.

그녀는 어릴 때와 전혀 변하지 않은 느낌이라, 아이 앞에서 담배 피우는 걸 마음이 꺼린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모두가 담배를 피우는데 나만 하지 않는다면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나는 흰 연기를 허공에 뿜으면서 문득 웃었다.

서경덕이 담배 연기로 도넛을 만들고 있다.

뽕뽕뽕, 연달아 둥근 연기가 바로 앞의 연기를 잡아먹는 것처럼 튀어 나갔다.

다른 사람도 그걸 흉내 내면서 남자들이 모여 있는 곳의 허공에는 작은 흰 도넛이 뽈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담배 연기를 입에 모아 재빨리 훅훅 내뿜었다.

몇 번 그렇게 하자 원하던 형태가 나타난다.


"돌고래?"


약간 떨어진 곳에서 주희 목소리가 들렸다.

음? 하고 쳐다보자, 주희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손에 밥그릇으로 사용하는 코펠 그릇이 들려 있다.


"오빠, 연기로 돌고래 만든 거야?"

"...."

"처음 봤어. 연기로 그런 것도 만들 수 있구나."


그래, 진짜 같지?

눈알도 있다.

한때 멍하니 앉아서 연기로 돌고래 만드는 게 내 취미였다.

감탄하는 주희 얼굴을 보니 부끄럽다.

아이처럼 연기 도넛 따위에 대항하는 게 아니었다.

서경덕은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킬킬 웃고 있었다.


"오빠, 여기 커피."


오늘 받은 캔 커피는 여자들이 나눠 먹기로 했는데, 그녀의 몫을 조금 남겨온 모양이다.


"괜찮아. 커피는 네가 먹어. 남자들은 담배를 받았으니까."


내가 받지 않자 주희가 가까이 다가온다.

이쪽은 담배 연기가 너무 자욱하다.

내가 그녀 쪽으로 향하자, 주희가 해쭉 웃었다.


"내 몫으로 조금 많았어. 남은 거니까 오빠 먹어도 돼."


괜찮다고 해도 계속 권할 것 같다.

나는 담배를 옆으로 치운 채 커피를 한 모금 먹고 돌려줬다.

주희가 한 입 먹고 다시 내민다.

근처에서 바라보고 있던 서경덕과 남자들이 투덜거렸다.


"너무한 거 아닌가. 여기 불쌍한 독신 남자가 우글우글한데."

"결혼하고 싶다."

"애인부터 생겼으면."

"세상이 이렇게 됐는데 그래도 로맨스가 피어나는구나."

"빌어먹을."


이제는 아니라고 부정해도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에, 나는 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만 조용히 뿜었다.

주희는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내 옆에서 커피를 한 입 홀짝이고, 다시 내게 내밀었다.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 거야, 이 커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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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037 부러움과 동경 +24 23.01.14 5,549 22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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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03 만일 이 세상에 나 혼자라면 +10 22.12.11 17,395 377 14쪽
2 #002 지구가 절찬 멸망 중이었다 +31 22.12.10 20,566 413 13쪽
1 #001 이세계서 지구로 귀환했더니 +44 22.12.09 26,319 5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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