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그들은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거다
#055 그들은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거다
"또 온다!"
쌍안경을 눈에 갖다 댄 채 종기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거 없이도 놈들이 오는 건 보인다.
이쪽으로 오는 건 세 마리.
종우는 길게 목을 빼고 정병일이 있는 쪽을 보았다.
아저씨는 쿵쿵쿵 바닥이 울릴 것 같은 묵직한 걸음으로 다른 좀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멀리 있는 놈은 정병일 차지다.
하지만 걷고 뛰어서 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놈들을 처치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오토바이를 탔지만,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발로 뛰는 게 더 편한 모양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게 되었다.
다른 아저씨는 바로 근처까지 온 놈을 창으로 찌르고 있었다.
무당의 창은 정말 대단해서 닿는 순간 좀비가 녹는다.
우리 사부님은 정말 대단하다.
어쨌든 멀리에서 오는 좀비를 처리할 사람이 없었다.
모두 바쁘다.
'좋아,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내가 나서야지.'
종우는 허리에 물총을 차고 사냥돌을 여러 개 한 손에 들었다.
묵직하다.
이 사냥돌은 목욕탕 아줌마가 자경대 건물에 있는 걸 가져온 것이다.
목욕탕 아줌마뿐 아니다.
민정이 누나도, 주희 누나도, 다른 여자들도, 모두 뭔가 하고 있었다.
여자들까지 모두 일하는데 남자인 그가 엉거주춤 엉덩이 빼고 서 있기만 해서야 안 될 일이지.
'나는 사부님의 애제자니까.'
종우는 흡,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주 조금 다리가 떨렸지만, 괜찮아, 여기는 언데드가 들어오지 못하니까.
위험해지면 이곳으로 뛰어오면 된다.
"형!"
동생 종기가 불안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종우는 의젓한 미소를 띠었다.
"다녀올게."
"괜찮아? 나도 갈까?"
"넌 여기에서 다른 놈이 또 나타나는지 봐야지. 쌍안경 가진 사람은 너뿐이잖아."
동생은 무서운 걸 보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린다.
처음 좀비를 만났을 때는 서경덕 아저씨가 달려라, 달려라, 무섭게 소리쳐서 어찌저찌 뛰었지만,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면 그대로 겁에 질려 제자리에 멈춰서 버릴 거다.
겁쟁이니까.
그런 녀석이 어떻게 좀비투성이 저 밖으로 나갈 수 있겠어.
사부님이 만들어준 안전한 장소에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돕는 거다.
'이 선 안으로는 정말 못 들어오니까.'
좀비는 성수를 밟으면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난다.
고통은 못 느끼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성수에 대해서만 아파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그리고 무당의 창에도.
효과가 더 좋은 건 성수인 것 같지만 무당의 창도 그에 못지않다.
'대단하지!'
종우는 자기가 한 것도 아닌데 왠지 자랑스러워 가슴을 쭉 내밀었다.
아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놈들이 가까이 오기 전에 처리해야지.
"다녀올게, 동생아."
"조심해, 형."
"걱정은."
무모한 행동을 할 생각은 없다.
뭘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 험한 세상을 동생과 함께 헤쳐가며 살아온 거야.
판단력에 자신은 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이걸로 놈들 발만 묶은 뒤에 잽싸게 튀어올 테니까."
종우는 환하게 웃으며 사냥돌을 들어 보인 뒤 멀리 다가오는 좀비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적당한 거리가 되자 종우는 빙글빙글 사냥돌을 돌리다 휙 던졌다.
사냥돌의 줄은 정확하게 좀비 발에 휘감기고, 놈은 팔로 허공을 허우적거리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좋았어!"
다른 사람이 사냥돌로 좀비를 처리하는 것도 봤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하는 건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대단해.
이런 걸 생각해낸 사부님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 사부님의 제자니까 나도 열심히 해야지.'
사부님이 자랑할 수 있는 제자가 되자.
좋아! 그렇게 결심했으면 이제 다음 놈이다.
종우는 다시 사냥돌을 던져 좀비의 발을 묶었다.
이렇게 미리 처리해두면 정병일 아저씨가 나중에 죽일 거다.
아저씨 혼자서는 힘에 부칠지 몰라도 이렇게 미리 좀비 발을 묶어두면 쉬울 테고, 우리 둘이라면 좀비 백 놈이 몰려와도 끄떡없다.
천하무적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 놈을 향해 사냥돌을 던지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돌더미 밑에서 뭔가가 불쑥 나왔다.
차가운 손이 덥석 그의 발목을 잡는다.
"끄아악!"
자기도 모르게 비명이 터졌다.
미친 듯이 발을 흔들어 빼려고 하는데 좀비의 손은 그를 꽉 움켜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돌이 부서져 쌓여있던 돌더미가 흔들흔들 움직이더니 좀비 몸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알이 없어진 좀비가 움푹 파인 구멍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반쯤 없어진 입술이 크게 벌어졌다.
물린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하늘이 시커메졌다.
고개를 들자 오토바이가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이곳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번엔 오토바이에 짓눌려 죽는다!
자기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갔다.
동시에 반짝 빛나는 창날이 그의 눈앞을 지나 밑으로 꽂혔다.
좀비가 굴비처럼 입을 크게 벌린 채 창에 찔려 굳어 있었다.
스스스, 창이 닿은 좀비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너는 어째 내가 볼 때마다 죽을 위기에 놓여 있는 거냐."
기가 막힌 듯 사부님이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어서 타."
"넵!"
종우는 크게 대답하고 얼른 사부님 뒤에 올라탔다.
바닥은 울퉁불퉁, 여기저기 돌이 삐져나오고 파이거나, 때로는 작은 돌산을 만들었지만, 오토바이는 그 모든 것을 밟고 지나쳐갔다.
정병일 아저씨조차 포기하고 발로 뛰어다니는 그 길을, 마치 고속도로 달리듯이 오토바이가 밟고 지나간다.
'우리 사부님은 정말 대단해.'
종우의 마음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그를 마을 입구에 내려다 준 사부님의 말은 준엄했다.
"그 상태에서는 성수를 썼어야지. 폼으로 들고 다니는 게 아니잖아. 그런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없다면 멀리 나가선 안 돼. 자기 몸을 지킬 수 없는데 무리하면 다른 사람이 구해줘야 하니까. 그러면 결국엔 도움이 아니라 폐가 되는 거야. 알겠니?"
"네. 죄송해요."
사부님의 말이 맞는다.
도우려고 했는데 결국 사부님이 구해줬으니까.
기가 죽었다.
사부님이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정말 잘했다. 네가 사냥돌 던지는 모습을 봤어. 연습 많이 했더구나."
"그렇죠? 저 정말 잘하죠?"
칭찬을 듣자마자 기분이 화르륵 불타듯이 치솟았다.
사부님이 기가 막힌 듯 그를 보고 웃더니 몸을 돌렸다.
다시 오토바이를 몰고 밖으로 나간다.
"사부님! 조심하세요!"
종우가 마구 손을 휘젓는데,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종기가 주먹으로 그의 등을 세게 쳤다.
"야! 아파!"
버럭 소리치며 뒤돌아보자, 동생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
"형은 바보야!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구!"
"... 미안해."
"성수는 뒀다 어디에 쓰려고 그랬어!"
"아니, 좀비한테 발이 잡힌 순간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구."
"바보! 바보 형!"
"그래... 미안해."
동생 손에는 투석구가 들려 있었다.
어쩌면 그가 위험한 걸 본 순간 그걸 들고 뛰어나오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잘못하면 동생까지 위험하게 만들 뻔했다.
종우는 마음 깊이 반성한 뒤 고개를 들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도 싸워야지."
멀리까지 나가지는 못하더라도 이 근처에서도 할 일은 많다.
종기는 다시 쌍안경을 들고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종우는 투석구를 들었다.
근처 돌을 집어 성수를 약간 묻힌 뒤 좀비의 모습을 찾는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신의 투석구를 들고 쏠 때는 적중률이 높다.
하지만 동생의 것을 들면, 똑같이 던지는 데도 이상하게 잘 맞지 않았다.
사부님이 투석구는 손에 익숙한 걸 쓰는 게 좋다고 하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것만 사용한다.
하지만 그와 동생은 같은 몸이나 마찬가지다.
언제나 물건은 네것 내것 없이 함께 사용해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투석구도 서로의 것을 가리지 않고 썼던 건데....
'정말 이상하지.'
어쨌든 적중률의 차이 때문에 지금은 서로의 것을 바꿔 쓰지 않는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종우는 멀리에서 다가오는 좀비를 발견하고 투석구를 던지기 시작했다.
사냥돌 던지기에는 거리가 조금 멀지만, 투석구라면 훨씬 멀리까지 간다.
충분히 맞출 수 있었다.
'그것도 사실 좀 이상하긴 한데.'
처음보다 실력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멀리에서 열 번 던지면 아홉 번 맞추는 게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
뭐, 그만큼 그의 실력이 좋다는 걸 거다.
종우는 더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열심히 돌을 던졌다.
근처에서 좀비와 싸우던 마을 아저씨가 땀을 흘리며 돌아왔다.
"세영 씨 덕분에 살았네. 하도 창으로 찔러댔더니 손에 쥐가 났어."
아저씨가 바닥에 주저앉자, 종기가 허둥지둥 물과 소금을 가져왔다.
목욕탕 아줌마가 갖다준 것이다.
틈틈이 먹으라고.
조금 있으면 죽도 가져다준다고 한다.
갑자기 목이 말라 종우도 물을 조금 마셨다.
문득 하늘을 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높던 태양이 약간 바닥으로 누워 있었다.
하지만 좀비는 없어졌다 싶으면 다시 나타나고, 다시 줄어들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늘어났다.
'언제까지 계속 나타나는 거지?'
아주 조금 불안해졌지만, 글쎄, 괜찮을 거다.
우리에게는 사부님이 있으니까.
어디에선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
북쪽과 서쪽 외의 방향에서도 언데드가 나타났다.
다행히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최소한 며칠은 언데드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아니, 며칠간의 문제가 아니다.
아마 숫자는 다소 줄어들더라도 언데드는 앞으로 마을 근처에 존재할 것이다.
계속해서 다른 시체가 깨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아마 세상 전체가 이런 식이 될 거다.
지금은 아니라도 머지않아.
그리고 아마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는 지구에도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 마법사가 되는 이가 생길 것이다.
저쪽 세상의 흙과 공기 그리고 마력이 이곳으로 건너와 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고, 또 언데드가 살아나고 있는 거라면, 언젠가는 우리 지구도 저쪽 세상의 모습을 닮아가겠지.
그때까지 인류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하지만 이상한 일이지.'
처음에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가만히 지켜본 바에 따르면 언데드는 소리에 반응한다.
그렇다면 마을로 오는 언데드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곳을 목표로 삼는 거지?
소리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보기에는 소리가 닿지 않는 먼 곳에서도 언데드가 오고 있었다.
다른 뭔가가 있을 텐데,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작게 한숨 쉬며 목을 조금 움직였다.
하도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며 창을 휘둘렀더니 목과 어깨가 뻐근하다.
"제가 지켜보고 있는 동안 좀 쉬세요."
옆에 서 있던 남자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을 걸었다.
그러자 약간 떨어진 곳에 있던 자경대원도 한마디 했다.
"그 말이 맞아요. 세영 씨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나는 그들의 말을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달랑 오늘 하루로 끝날 일이 아니다.
체력을 보존해야 한다.
"그러면 잠시 자겠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깨워주세요."
"그래요."
"걱정 마세요."
나는 작게 피워놓은 화톳불 앞에 앉았다.
침대 대신 어딘가의 사무실에서 가져온 인조가죽 의자가 삐그덕 소리를 냈다.
듣기싫은 소리가 캄캄한 밤하늘로 퍼졌다.
지금이 아마 열 시가량 되었을 것이다.
가로등이 사라진 하늘에 유난히 별이 반짝였다.
하늘만 보면 언데드니 몬스터니, 그런 건 전혀 없을 것처럼 아름다워졌는데,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면 현실이 시궁창이 되어 있다.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눈을 감고 얕은 잠을 자면서 마을 어딘가에 구멍은 없는지 생각을 돌려본다.
북쪽은 정병일이, 서쪽은 서경덕이 맡고 있다.
다른 골목은 언데드가 나타날 때마다 한두 명씩 가서 지키고, 내가 계속 돌아다니면서 확인하고 있었다.
확인하지 않은 곳은 없었나.
언데드가 들어올 만한 곳인데 성수가 뿌려지지 않은 곳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문득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다.
[세영아... 세영아... 보고 싶구나... 우리 아들... 행복하던 우리 집으로 가고 싶어....]
그 순간, 번개에 맞은 것처럼 눈이 떠졌다.
'아....'
그렇구나.
언데드가 마을로 몰려오는 이유를 알겠다.
'기억이... 마을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는 놈들인 거야, 그건.'
그들은 집으로 가고 싶은 거다.
비록 죽었지만, 대부분의 기억은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집이라는 걸 기억하고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심장이 묵직해지며 울컥한 것이 올라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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