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미친놈이다
#039 미친놈이다
식사를 대강 마친 뒤, 나는 마을을 나왔다.
지진의 여파로 마을 밖 폐허의 모습이 약간 변한 것 같다.
마을의 경우 땅이 갈라진 곳은 없었지만, 바깥을 돌아다니다 보니 몇 군데 땅이 약간 벌어지거나 어긋난 곳이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지진이 났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이번에는 약하다.
단 한 번의 지진으로 이 근처가 완전히 무너졌지만, 이번에는 그저 땅이 군데군데 갈라졌을 뿐이니까.
내 생각대로 지진은 지구와 저쪽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다음에도 지진은 약간 있을지 모르지만 여파는 적을 거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폐허를 돌아다니다 보니 붉은 까마귀가 군데군데 보였다.
나를 보자 먹잇감이라고 생각했는지 몇 마리가 달려왔다.
재빨리 돌을 여러 개 집어 투석구로 날린다.
새는 정확하게 머리를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쏘면 쏠수록 더 정확해진다.
투석구를 사용하면서 마력을 조금씩 흘리고 제대로 겨냥하는 것만으로도, 알게 모르게 마법이 부여되는 모양이다.
'완전 생활 밀착형 마법이네.'
일단 새를 잡으면 놔두고 가기는 아깝다.
이건 고블린과 달리 꽤나 맛있는 닭고기 맛이니까.
하지만 오늘의 목적은 새를 사냥하는 게 아니니까 이런 곳에 시간을 들이기는 어렵다.
나는 귀환으로 은신처에 가 비닐 노끈을 가져왔다.
그걸로 새 다리를 묶어 들고 다시 길을 가는데 또 새를 만났다.
어쩔 수 없이 또 죽인다.
이번에는 한 마리 죽이자, 나머지 세 마리는 도망쳐버렸다.
멀리에 선 채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어쨌든 죽인 놈은 다시 노끈으로 엮어 든다.
그렇게 하다 보니 순식간에 여섯 마리나 되었다.
아니, 이건 곤란한데.
한 마리에 4kg은 넘을 텐데, 이걸 들고 먼 길을 가기는 좀 힘들지.
어쩔 수 없이 일단 은신처에 두고 돌아다니다 보니, 결국에는 잡은 새가 열두 마리나 되었다.
나중에는 내 몸에서 피 냄새가 나는지 새들이 덮치지 않았다.
한참 걷는데, 멀리 땅에 엎어진 붉은 사람 형체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마을 사람인 모양이다.
얼굴과 몸이 너무 많이 파 먹혀 누군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중학생의 형은 아니다.
이 사람은 성인인 게 확실하니까.
형이라는 애는 고1이라고 들었다.
몸집도 그리 크지 않다고.
나는 남자의 옷과 특징을 기억한 뒤, 강화된 창으로 건물 잔해를 파 그 위를 돌로 덮었다.
표식이 될 것 같은 물건을 찾아 돌 위에 올려둔다.
'마을에 돌아가서 이야기하면 아는 사람이 나타나겠지.'
햇빛이 서늘해질 때까지 돌아다녔지만 중학생의 형은 찾지 못했다.
마을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의 시체를 한 구 더 찾았을 뿐이다.
나는 작게 한숨 쉬고, 커다란 나무판자를 한 개 찾아 붉은 까마귀 사체를 올렸다.
귀환으로 가급적 마을 가까이 간 뒤 판자를 질질 끌며 마을로 들어간다.
중학생이 마을 끄트머리까지 나와 있었다.
내가 형을 보지 못했다고 하자 중학생은 그야말로 눈이 빠질 것처럼 울었다.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한다.
"형 생각에 밥도 못 넘기면서, 그래도 혼자 열심히 돌아다니며 우리 심부름을 하더군. 오늘은 이제 그만 됐다고 하니까, 그 뒤에는 계속 여기에 서서 자네를 기다린 거야."
일하다 잠시 쉬던 남자가 안타까운 듯 말했다.
중학생은 계속해서 폐허를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내일 한 번 더 찾아볼까.'
계속해서 이 일에만 매달릴 수는 없지만, 하루 정도는 더.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마을을 나섰다.
지난번에 가지 않았던 길로 쭉 간다.
붉은 까마귀는 여전히 곳곳에 있었지만, 왜인지 나한테 덤빈 놈은 한 마리뿐이었다.
개장수가 시골 마을에 나타나면 개들이 일제히 조용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그것과 비슷한지도 모른다.
내 몸에서 피 냄새가 나는 건 아닌가 싶어 맡아봤지만, 뭐, 당연히 냄새는 나지.
매일 목욕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지진 때문에 그럴 겨를도 없었으니까.
피 냄새인지는 모르지만 썩은 내가 조금 났다.
그 뒤로 두어 시간 걸어 다녔던 것 같다.
한 건물에 유난히 새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얼핏 봐도 열 마리는 넘는다.
건물은 작은 가게가 옆으로 다닥다닥 길게 붙은 1층짜리 상가였는데, 새들이 모여 있는 곳은 제일 끄트머리였다.
출입구가 무너져 있다.
붉은 까마귀들이 다른 곳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 입구에만 몰려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와중에, 마치 먹이를 경쟁하는 것처럼 새 두 마리가 싸우기 시작했다.
'어쩌면....'
죽은 사람일 수도 있고, 중학생의 형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마음이 조급해져,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중3의 형님]***
나 어떻게 하면 좋아.
큰일 났다.
배는 고프고 춥고 이러다 정말 죽겠어.
아, 씨바... 정말 씨바... 씨바... 아 빌어먹을 씨바....
나도 모르게 중얼중얼 욕이 나왔다.
'아니지, 이러면 안 되지. 욕은 안 돼.'
이런 욕을 동생이 들으면 기절한다.
그 녀석은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맞아, 아빠한테 맞아, 추운 겨울에는 베란다로 쫓겨 나가, 학교에서는 샌드백 돼, 일 년 열두 달 내내 두들겨 맞고 욕먹고 하는 바람에 욕의 'ㅇ'자만 나와도 자지러지게 기겁하고 울어버렸다.
겁보 녀석.
불쌍한 놈.
찔끔 눈물이 났다.
'시바.'
나 죽으면 그놈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이제 겨우 빌어먹을 부모한테서 벗어났는데 형인 내가 죽어버리면 그 겁보 찌질이 놈은 분명 길거리 헤매다 죽어버리고 말 거다.
아니면 다시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부모한테 잡혀가서, 하라는 대로 건물 더미 헤쳐가며 먹을 거 구해 바치다 굶어 죽든가, 그것도 아니면 맞아 죽겠지.
안 돼.
그 찌질한 동생 놈을 남기고 여기에서 죽는다니, 그건 정말로 안 된다.
저따위 통닭 같은 새 대가리들 때문에 이대로 굶어 미라가 되어 죽는다고?
웃기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 준다.
'지금쯤 엄마 아빠, 그 망할 부모 놈들이 우리를 쫓고 있을 텐데.'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아, 빌어먹을.
그 녀석은 왜 구정물을 처먹어서 설사가 나고 지랄이야.
바보 같고 멍청하고 진짜 불쌍한 놈.
아니, 구정물 먹는다고 배가 부르겠냐구.
지금쯤 눈이 벌게져서 나와 동생을 찾아 헤맬 부모를 생각하니 속이 탔다.
이번에는 그 부모 놈들 먹을 걸 훔쳤기 때문에, 잡히면 진짜로 죽기 직전까지 맞을 거다.
아니, 아니지.
너무 화가 나서, 건물 더미 뒤져 먹을 거 구해오라고도 하지 않고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이제 세상이 다 망해버렸으니까.'
지금은 법도, 남의 눈도 의식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부모 놈들 마음대로.
이번에 우리가 잡히면 그들의 손모가지를 묶어 맬 브레이크가 없었다.
진짜 맞아 죽고 말 거야.
만일 내가 여기에서 죽어버리면 그 모진 매를 동생 혼자 두 배로 맞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무너진 돌 더미 사이로 밖을 살폈다.
건물 앞에는 여전히 새가 왔다 갔다, 짐작으로는 대여섯 마리 정도가 진을 치고 있었다.
보이는 게 그 정도니까 안 보이는 곳에는 몇 마리가 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수십 마리, 아니 수백, 어쩌면 수천 마리 정도 밖에서 나를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내가 직접 본 새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멀리에 있는 놈까지 다 합해서 열 마리 정도였지만, 계속해서 허공이 새를 토해내고 있었으니까, 지금쯤은 수천 마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쿵쿵 건물 벽에 머리를 박았다.
돌머리야, 돌머리야, 제발 생각을 해.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을까.
아, 그러고 보니까 나는 새들이 없어도 못 나간다.
"...."
바보.
병신.
머저리.
나는 정말 바보 천치야.
어쩌자고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건물로 도망친 거지.
아니, 생각은 있었어, 생각은.
처음 지진이 나면서 새가 허공에서 튀어나올 때, 나는 고블린 때와 같다는 걸 직감했다.
저놈들은 위험한 거라고, 딱 보는 순간 알았어.
내 직감이 제대로 일했다는 것도 금방 깨달았다.
내 앞에 툭 떨어진 새가 곧바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으니까.
그래서 일단 손이 발이 되도록 죽어라 달려 도망쳤다.
가까운 건물 안으로.
지진이 났는데 건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쯤은 돌대가리인 나도 알았지만, 고블린과 달리 새는 날개가 있잖아.
사방이 탁 트인 곳에서 날개 달린 새한테 쫓기면 도망칠 수 없다.
꼼짝없이 죽는 거야.
그래서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거였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내 선택은 아마 같을 거다.
다행히 건물에는 유리문이 있어서 새는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있기는 한데, 지진이 끝날 무렵 입구가 무너져버렸다.
출구라곤 내가 들어온 곳 하나뿐이었는데.
그래서 지금 나는 간신히 새는 피했지만 굶어 죽을 지경에 처해 있는 것이다.
어쩌지.
이미 하루를 꼬박 굶었기 때문에 뱃가죽은 등에 붙었고, 연신 꼬르륵거리며 배에서는 죽겠다고 소리 나고, 추워서 손발에는 감각도 없다.
'기왕 죽을 거였으면....'
문득 마을에서 봤던 육포와 물, 즉석밥, 담배랑 껌...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거라도 훔쳐서 먹어 보는 건데.'
동생하고 같이, 구정물 대신 밥이나 배터지게 먹고 죽을 걸 그랬다.
아니야.
'죽기 싫어.'
비록 거지 같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살고 싶다.
동생하고 나하고, 언젠가 집도 하나 마련해서 배 터지게 밥 먹고, 잠도 마음 졸이지 않은 채 마음대로 한 번 쿨쿨 자보고, 싸움도 좀 잘하게 돼서 힘들게 찾아낸 물건 빼앗기지도 않고,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
죽고 싶지 않다.
여기에서 혼자 이렇게 굶어서 얼어 죽는 건, 그건 인생이라고 할 수 없잖아.
버러지보다 못한 거잖아.
입에서 울음이 조금씩 샌다.
"... 으... 흐...."
동생 앞에서는 가급적 울지 않았지만, 여기에는 그 녀석도 없다.
울어도 괜찮아.
어차피 죽을 거고.
나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흑... 흑... 으어어어엉...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나도 한 번 폼나게 살다 죽고 싶어... 밥 먹고 싶어...."
그때였다.
밖에서 꽉, 하는 비명이 들렸다.
사람 소리는 아니었다.
'어... 설마 이거 새? 새소리야?'
나는 울면서 무너진 건물 틈새에 눈을 갖다 댔다.
'어라.'
조금 전까지 여기에 먹잇감 있다고 까악 깍 울어대던 새 한 마리가 꽁지 빠지게 도망치고 있었다.
'뭐야.'
고블린이라도 나타난 걸까.
아니면 들개?
어차피 나는 새가 도망쳐도 무너진 돌더미 때문에 못 나가지만, 꼴좋게 됐다. 까만 닭대가리들아. 다 죽어버려라!
그렇게 생각하며 훌쩍훌쩍 코를 울리고, 조금 더 잘 보려고 틈새에 얼굴을 들이미는데,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던 새의 머리가 갑자기 없어졌다.
"헉! 무슨 일이야!"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눈물이 쏙 들어간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달리던 새의 머리가 그냥 없어져 버렸어.
그리고 아직 건물 앞에 있던 새 한 마리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번엔 소리도 없이 그냥 팩 쓰러진다.
발꿈치를 들어 어떻게든 바닥을 내려다보자, 이미 쓰러진 새가 두 마리 더 있는 것이 보였다.
한 놈은 다리만 보이고, 다른 한 놈은 머리만 보이지만, 어쨌든 둘 다 죽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다.
주변에 고블린이나 들개 같은 건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밖의 모습을 살피다, 내 눈이 약간 먼 곳을 향했다.
멀리에서 걸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크다.'
멀지만 저 남자가 엄청 크다는 건 알겠다.
몸은 마른 편인 것 같은데 콩나물처럼 위로 쭉쭉 솟아 있다.
게다가 등 쪽으로 괴상하게 생긴 칼이 불쑥 나와 있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저렇게 긴 칼이 있을 리 없고, 뭔가에 매단 것 같다.
남자는 손에 줄 같은 걸 들었는데, 왜인지 모르지만 그걸 빙빙 돌리고 있었다.
'미친놈이다.'
직감이 소리쳤다.
허공에서 튀어나오는 새를 봤을 때랑 똑같은 직감이다.
아마 이번에도 맞을 거다.
살인, 강도, 쾌락 연쇄 살안마.
대강 그런 단어들이 머리를 지나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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