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폭주족
#013 폭주족
부앙 부앙 일부러 울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학교 운동장에 가득하다.
잠시 얼어붙은 것 같았던 사람들이 뒤늦게 비명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
마치 그늘 속에 모여있던 쥐새끼들이, 창고 문을 열어 환해지자 어둠을 향해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오, 오빠! 우리도 도망쳐야지!"
주희가 내 손을 잡는다.
잡아끌려고 했던 것 같지만, 나는 그 손을 꽉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기다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재빨리 사방을 훑었다.
오토바이는 곧바로 사람을 덮치지 않았다.
운동장 외곽을 따라 돌면서 요란하게 엔진음을 낼뿐이다.
그리고 두 대 정도의 오토바이가 운동장을 오가며 사람들을 쫓고 있었다.
폭주족이 오토바이를 탄 채 쇠 파이프를 휘두르자 한 명이 거기에 맞아 앞으로 엎어졌다.
오토바이는 쓰러진 사람을 그대로 밟고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부앙 부앙,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폭주족의 웃음이 터졌다.
처음에는 학교 문을 향해 달리던 사람들이 오토바이에 쫓겨 엉뚱한 방향으로 목적 없이 뛴다.
"...."
이전에 보았을 때 폭주족들은 고블린을 장난삼아 때리고 질질 끌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놀이의 대상이 이제 사람으로 바뀐 걸지도 모른다.
고블린은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어도 인간이 아니다.
몬스터, 짐승이다.
공포의 표정도, 비명도, 감정도, 인간만큼 다채롭지 않았다.
고블린을 가지고 노는 데 지루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더 다양하게 공포에 반응하는 인간으로 놀고 싶어진 거겠지.
'그리고 아마... 여자를 찾아온 걸 거야.'
폭주족이 뒤에 태우고 다니던 여자는 원래 다섯 명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한 명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젊은 여자는 죽이지 않는다.
저들이 이 자리에서 가지고 노는 건 남자뿐일 것이다.
김중배와 몇몇 남자들은 어느새 손에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아무 무기도 없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양 떼처럼 폭주족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남자 몇 명이 어디에선가 찾은 의자를 들고 후문을 향해 뛰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향해 의자를 휘두르지만, 외곽을 돌던 오토바이가 거기에 돌진했다.
나는 거기까지 본 뒤 몸을 돌렸다.
"주희야, 건물로 들어가서 아무도 없는 장소를 찾아. 거기에서 곧바로 공원 화장실로 귀환한 뒤에 나를 기다려."
"오빠! 오빠는?"
주희가 다급한 얼굴로 묻는다.
"네가 가면 곧바로 따라갈게."
외곽을 돌던 오토바이 한 대가 방향을 바꾸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 탄 폭주족은 나와 주희를 보고 있었다.
그가 부앙 부앙 엔진 소리를 높인다.
나는 그 폭주족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만일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아무 생각 말고 그냥 귀환 마법을 써. 사람들이 봐도 상관없으니까."
"오빠!"
주희가 내 손을 꽉 잡는다.
엔진소리를 높이던 오토바이가 드디어 나를 향해 출발하는 걸 보고, 나는 그녀의 손을 놓았다.
"자, 이제 뛰어. 뒤돌아보지 말고."
등을 누르자, 주희는 잠깐 멈칫했다가 달리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내 말은 아무리 번드르르한 거짓말이라도 믿고 따르던 아이다.
자, 나를 따르라.
그렇게 말하고 뛰면 주희는 응, 오빠, 라고 대답하며 열심히 짧은 다리로 나를 쫓아왔다.
나이 들어서도, 오랜만에 만나도, 그녀의 어린 시절에 물들어 있던 기억이 다리를 움직인 모양이다.
뭐, 지금은 나도 급하면 귀환을 사용할 거라고 믿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폭주족은 히죽 웃고, 내가 아닌 주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역시 이놈들은 이걸 놀이로 하고 있다.
폭주족이 쇠 파이프를 바닥에 댄 채 서서히 오토바이를 달린다.
놈의 쇠 파이프에는 굵은 못이 여러 개 박혀 있었다.
저런 것과 부딪치면 아무리 세심하게 만든 창이라도 내 것은 부러져 버릴 거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하지만 나는 부여 마법사다.
이 창은 강화를 거쳐 새롭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서서히 생명을 잃어가는 주희 아버지를 지켜보다 잠시 시간이 생길 때 나는 조금씩 손에 쥐고 있던 창에 마력을 흘렸다.
사람이 죽는 건 슬픈 일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그 사람의 마지막을 지키고 추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딸을 지켜달라는 것이 그의 마지막 부탁이었다.
그리고 그의 딸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하나라도 더 보강하는 게 내가 생각한 최고의 조의였다.
주희는 내가 다른 걸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본래 부여 마법은 그 물건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더욱 강화하는 마법이다.
그 때문에 부여 대상이 강철이나 무기라면 강화는 다른 성질을 가진 물건보다 쉽다.
원래 단단한 물건을 강화하는 것이니까.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조금씩 마력을 흘려 강화하자고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창은 원래 가진 강도보다 몇 배는 더 단단해졌다.
잠시 쉬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특별하게 된다.
저쪽 세계에 있을 때는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마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여기에서는 다르다.
이 세계에 있는 마법사는 오직 나 한 명.
평범한 물건으로 가득한 이곳에서 나는 유일하게 특별한 걸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을 가져.'
나는 놀이로 고블린을 죽이고, 사람을 그다음 장난감으로 삼는 저런 놈들보다 강할 수 있다.
나 자신은 약해도, 내가 만들어내는 물건은 특별한 거다.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
나는 주희의 옆을 나란히 달리다 오토바이가 근처로 오자 몸을 비틀었다.
주희는 내가 지시한 대로 여전히 뛰고 있다.
그녀의 앞에 다른 오토바이가 없는 걸 확인하면서, 나는 폭주족을 향해 창을 크게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창을 폭주족이 쇠 파이프로 쳐서 막는다.
폭주족의 얼굴이 깜짝 놀라 있었다.
내가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이려고 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역시.'
이 반응을 보면 폭주족이 사람을 덮친 건 처음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처음이 가장 어렵다.
자기도 모르게 몸이 망설여진다.
나도 도적단에서 처음 약탈조로 끌려 나갔을 때 그랬다.
모두가 사람을 죽이는데 나 혼자만 얼어붙어 난장판에 서 있었다.
두목이 나를 약탈조에서 뺀 건, 이놈은 사람을 죽일 수 없겠구나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입장에서는 살인보다 약탈과 여자를 강간하고 납치하는 쪽이 더 괴로웠지만.
어쨌든 폭주족은 아마 그런 경험을 이미 했기 때문에, 나의 첫 번째 공격이 어설플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적어도 망설임없이 먼저 창을 내리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멍청히 창을 가지고만 있다가 쇠 파이프에 맞아 줄 거라고 속으로 웃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쇠 파이프와 얽힌 창을 쭉 끌어당겼다.
파이프에서 삐죽 나와 내 창을 잡고 있던 못이 약한 쇳소리를 내며 베여 바닥에 떨어졌다.
폭주족이 흠칫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
도적단 본부에만 머무는 내근직 도적이라고 해도, 무기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사냥에는 내근조도 동원되었다.
그래서 나는 고블린 등 여러 종류의 몬스터를 죽인 경험이 있다.
두목이나 다른 도적처럼 힘으로 밀어붙여 창 한 번으로 죽이는 건 힘들어도, 제법 능숙하게 몰아붙여 사냥할 수 있었다.
사람을 죽이려고 한 것도 처음은 아니다.
도적단에서 수없이 맞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나를 때려눕히는 놈과 맞서 싸우고, 무기를 든 채 덤빈 적도 있다.
마음먹은 게 실제로 현실에 일어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 수백 명은 죽였을 것이다.
진짜로 죽었다 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진심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적이라고 판단한 자를 죽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아마 이 세상의 보통과는 멀리 떨어져 버린 걸 거다.
이 세상이 이제는 보통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렇다면 보통이 아닌 세상에 보통이 아닌 사람이니, 그것은 보통이 된 건가.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오토바이는 나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고 있었다.
그 너머로 주희의 모습이 보였다.
주희는 교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멀다.
이대로라면 누군가가 주희를 보고 달려올지 모른다.
나는 창을 곧추세워 두 손으로 잡았다.
폭주족은 내 주위를 돌며, 거칠게 엔진 소리를 냈다.
쇠 파이프로 땅을 긁는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면서, 그 사이로 폭주족의 목소리가 퍼졌다.
"헤에, 상당히 뼈 있는 놈이네. 마침 잘됐잖아. 요즘엔 도망치는 놈들 머리통 부수는 것도 슬슬 질렸고. 오늘은 정말 괜찮은 놈을 사냥했는걸. 네놈 앞에 도망친 년을 잡아다 놓고...."
나는 그가 말을 다 끝내기 전에, 오토바이를 향해 달렸다.
저쪽 세상에서 3년 두들겨 맞으며 살았던 기간은 지구의 30년을 농축한 것보다 더 밀도 있게 나를 단련해 주었다.
폭주족이 아무리 싸움에 능해도 도적단 놈들보다는 못하다.
지금의 내 눈에는 폭주족이 머리에서 목, 가슴, 다리를 비롯한 모든 곳을 무방비하게 내놓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아무리 거칠게 말하고 잔인함을 뽐내봤자, 저놈도 나도 똑같은 인간이다.
칼로 찌르면 네놈도 그냥 죽는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창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강화된 식칼이 몸통을 향했다.
서걱, 칼날이 뼈를 누르며 파고든다.
보통 칼이라면 뼈에 걸려서 한 번 멈췄겠지만, 강화한 창은 연골이라도 찌르는 것처럼 거침없이 들어갔다.
비명조차 내지 못한 폭주족의 몸에, 나는 창을 한 번 깊게 눌렀다 빼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가 넘어지고, 폭주족은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폭주족은 아직 죽지 않았다.
두목이 있었다면 어째서 한 번 더 찔러 생명을 끊지 않느냐고 노발대발했을 것이다.
사냥을 할 때는 아무리 약한 놈이라도 반드시 목숨이 끊어진 걸 확인한다.
안 그러면 죽은 줄 알았던 놈에게 반격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주희를 향해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오토바이를 세워 그 위에 올라탔다.
그대로 달린다.
주희를 향하던 폭주족이 나를 보았다.
네가 비키나, 내가 비키나.
마치 그런 승부 같다.
나도, 폭주족도 부딪칠 게 뻔한데 속도를 줄이거나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먼저 꺾인 건 폭주족이었다.
"우왓! 미친놈인가! 진짜 부딪치잖아."
폭주족이 당황해 급히 방향을 튼다.
그의 오토바이는 급격한 방향 전환을 견디지 못하고 미끄러지며 옆으로 쓰러졌다.
정말 맞부딪치게 되면 '귀환'을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저쪽이 피해준 덕분에 나는 무사했다.
폭주족이 벌떡 일어나는 걸 보면서 나는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렸다.
창을 든 채 달려가 그대로 머리에 밀어 넣는다.
창은 그의 눈을 뚫고 들어갔다.
창을 잡아빼자 허연 액체가 눈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주 조금 구토할 뻔하며, 나는 그의 손에서 야구 방망이를 빼냈다.
이 방망이에도 못이 삐죽삐죽 박혀 있다.
못대가리에는 피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기분은 찝찝하지만 강화하면 괜찮은 무기가 될 것이다.
그 사이 주희는 학교 건물 입구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안심하고 운동장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김중배는 수십 명의 남자와 힘을 합해 싸우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도 뭉쳐 대항하는 자들이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도망만 칠뿐이다.
오토바이가 장난하는 것처럼 그 뒤를 쫓았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땅에는 이미 붉은 피로 뒤덮인 시체가 여럿 있었다.
내가 처음 봤을 때 폭주족의 수는 스물 남짓 되었지만 지금은 더 늘어난 것 같다.
무기는커녕 방망이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대피소 사람들로는 막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대단한 마법사라든가 히어로였다면 이들을 위해 뭔가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기껏해야 이 세상에서 여자 한 명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에도 허덕이는 정말 보통 사람.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주희가 들어간 건물 입구로 향했다.
오토바이를 탄 채 건물의 복도를 지나며 교실을 확인했지만 주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공원 화장실로 귀환한 모양이다.
나는 오토바이를 멈추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귀환."
눈을 깜박이자, 나는 어두운 학교 건물이 아닌 공원의 화장실 앞에 있었다.
오토바이를 탄 채.
이렇게 큰 물건도 귀환에 포함되는지 조금 미심쩍었는데, 아무 무리 없이 가져온 모양이다.
귀환,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로 대단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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