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뒤집는 지렛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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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부재하고, 가난이 만연하고, 무지가 팽배하며, 어떤 한 사회 계층이 그 사회가 조직적 공모 속에서 억압, 약탈하고 존엄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사람도 재산도 안전치 않을 것이다.”
- Frederick Douglass -
강태현이 김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확실히 결심하신 거죠?”
“아직 더 지켜봐야지.”
아파트 단지 등나무 아래 송선자는 명함을 나누어주면서 인사하고 있다. 자세와 동선이 여전히 문제다. 일단 그대로 놔둔다.
강태현이 말한다.
“더요?”
“결심과 결행은 다르니까.”
“그렇네요. 수십만의 4년이 걸린 일이니.”
“긍정과 확신의 사이지.”
“너무 무리는 마세요!”
“그럼!”
본격적인 캠프 가동 시기가 오고 있다.
김지혁은 결론지어야 할 고민이 있다.
‘이 자원봉사를 왜 하는 것인지.’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어떤 이득이 따라올지.’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선거를 돕는다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는 의미 없는 수행 길을 떠난 무림 고수처럼 보이지만 선거는 마케팅 궁극의 곤륜산이다.
선거 캠프를 지휘해서 후보가 당선된다면 이권 따위 받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이득이 있다.
‘검증된 능력과 평판’
하수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위압적인 고수의 아우라.
마케팅의 아우라를 얻을 수 있는 선거.
김지혁은 이득의 방점을 여기에 두었다.
***
십여 년 전.
어느 날 김지혁의 선배가 선거 캠프 자봉을 요청했다.
딱히 거절한 명분이 없어 수락한 김지혁.
첫 느낌은 이랬다.
‘이따위로 벼슬을 얻었던 거야?’
너무 주먹구구식이었다.
시끌벅적한 반상회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려고 애쓰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김지혁은 고민했다.
‘선거와 회사가 뭐가 다르지?’
‘후보나 제품이나 마케팅은 같지 않을까?’
이런 고민으로 얻은 결론은 간명했다.
‘캠프는 회사처럼, 회사는 캠프처럼’
목표를 이루겠다는 절박함이 선거의 장점이라면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은 회사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김지혁은 1명의 캠프 자원으로서 돕는 것이 아닌 선거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한다.
몇 날 며칠을 생각한 끝에 명확한 목적의식이 생겼다.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을 당선시킨다면 스스로가 세상을 움직이는 지렛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김지혁은 결국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선거 캠프 일을 한다면 적어도 1, 2달은 일을 할 수 없다.
대안은 사업을 하거나 회사에 다닌다면 적어도 임원 정도는 되어야 시간을 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김지혁은 사업을 선택했다.
***
어느 날
집안 어른들과 모인 자리에 김지혁도 참석했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뉴스를 보고 정치인을 비난할 시간에 저 어른들은 왜 정치 참여를 안 할까?’
훈수만 두는 바둑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정치가 직업이 아니라면 권리 행사는 투표가 유일하다.
이 순간에 김지혁은 생각한다.
‘나은 후보를 당선시키면 나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비난할 시간에 선거 전략가가 돼서 캠프를 움직인다면 후보의 정책도 바꿀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래서 김지혁은 마음을 먹고 몇 년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결실을 이미 몇 번 경험했다.
실패도 성공도.
***
오후 일정을 막 시작하려는데 강태현이 전화를 했다.
“형. 이번에도 흔들어 보시려고요?”
“그건 힘들고 밑바닥이 어떤지 보고 싶네.”
강태현이 걱정스러운 듯 말한다.
“지방선거 기초의원 캠프면 바닥 중의 바닥인데.”
“거의 심해지.”
“형 스케일이랑 너무 달라서 걱정이네요.”
“헤더 역할만 했는데 로드도 해야 하니.”
김지혁은 송선자를 쳐다보며 전화하고 있다.
강태현이 말한다.
“너무 작아서 현장 많이 뛰셔야 할 텐데···.”
“현장에서 신랄하게 현실과 마주하겠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네가 필요하다! 하하.”
강태현이 한 발 빼듯 말한다.
“형은 추진력의 제왕이니 잘하실 거예요.”
“네가 밀어줘야 추진이 된다. 하하.”
김지혁은 너털웃음으로 화답한다.
강태현이 목소리를 깔고 말한다.
“송선자 후보랑 담판은 보셨어요?”
“했어. 오늘 좀 더 지켜보고···.”
강태현은 김지혁의 신중함에 늘 믿음이 갔다.
“최종 결론이 나시면 제게도 알려주세요.”
“그럼. 당연하지.”
김지혁은 돕겠다고 하고도 후보랑 마지막 담판을 짓는다. 결이 맞지 않으면 절대 도울 수 없다.
게다가 사욕을 위해 정치하는 사람을 위해 캠프를 돕지 않는다. 후보의 삶보다 유권자의 삶이 우선이어야 한다.
‘사욕보다 공욕이 우선된 정치인.’
그래야 김지혁은 진심으로 도울 수 있다고 늘 생각한다.
‘결과 격이 같지 않으면 돕지 않는다.’
결과 격이 같아야 하는 결정적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다. 선거 캠프의 성공은 오로지 후보의 당선이니까.
선거 캠프가 성공하려면 일류(一流)가 되어야 한다.
일류라는 말은 보통의 최고 레벨로 이해한다.
그런데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이해보면 ‘하나의 흐름’이다.
캠프가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단 하나의 목표’인 당선을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이 하나의 흐름이 대의명분을 가지고 세상을 위한 희망이 메시지여야 한다.
이 하나의 흐름을 올바르게 구성하고 실천하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선거 전략가의 몫이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정치 자영업자들 속에서 김지혁은 공상가가 아니라 실천가로 강력한 유권자의 지렛대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지렛대가 되어야 한다.’
더러움을 보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가 생기지 않게 방역을 하려는 것이다.
세상을 만들려면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을 대변하는 사람을 만들려는 것이다.
“정치가 삶이고 삶이 정치다.”
말랑말랑한 정치적 식견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혼탁한 정치인에게 패배를 안겨 줄 힘.
그 힘을 가진 ‘선거 전략가’로 김지혁은 진화했다.
그리고 견고한 능력으로 준비를 해왔다.
남다른 ‘선거전투력’을 이번에 발휘할 자신도 있다.
김지혁은 행동하는 실천적 정치 참여가 아니라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공허한 메아리로 세상을 움직이기에는 세상은 너무나도 견고하고 단단하다.
***
한편.
송선자는 명함을 주면서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김지혁은 통화를 다 끝내고 송선자에게 손짓한다. 이동하면서 휴식해야 하는 시간이다.
김지혁이 말한다.
“후보님. 근처 아시는 카페 있습니까?”
“요 앞에 있는 작은 곳 있어요.”
“거기 가서 조금 쉬시죠?”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네요. 호호.”
붙임성이 있지 않고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일은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다. 그런데 지치지도 않고 쉼 없이 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절박하거나 아니면 타고났거나.’
선거 운동을 잘한다고 해서 정치를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단, 선거 운동도 제대로 못 하면 정치도 못 하는 것은 확실하다.
송선자가 신기한 듯 말한다.
“여기 명함이 뭉텅이로 있네요?”
“어디요?”
광역의원의 명함이다.
‘1번. 명발대.’
송선자와 같은 당인 민진당의 명발대 후보다. 단수공천을 받은 광역의원 후보로 이름처럼 지역의 ‘빨대’로 유명하다.
정확히 말하면 지역 국회의원인 정경구에게 빨대를 꽂고 정치하는 전형적인 아첨꾼이다.
강진도 기정시 갑 사또인 정경구의 총애를 얼마나 받는지 그 흔한 경선 따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단수공천으로만 재선에 도전하고 있다.
땡볕에서 선거 운동을 안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집 근처 그늘에서만 깔짝하고 당의 행사만 간다.
우세지역이니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욕망만 채우는 전형적인 사또의 이방이다.
송선자가 묻는다.
“우리도 이렇게 놔둘까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홍보 효과 좋을 것 같아서···. 아닌가요?”
“···.”
김지혁은 말문이 막혔다.
‘선거법도 잘 모르는구나···.’
“정신 차리십시오.”
“예?”
“미친 겁니까?”
“예?”
김지혁이 소리치면서 말한다.
“이건 선거법 위반입니다.”
“···.”
“이것도 모르셨습니까?”
“죄송해요···.”
명함을 이렇게 비치하면 선거법 위반이다. 카페 주인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카페에서 불법 선거 운동을 한 혐의를 받을 수 있다.
김지혁은 핸드폰 위치 기능을 켜고 촬영을 시작한다. 카페 입구에서부터 걸어오면서 동영상으로 촬영한다.
그러자 송선자가 묻는다.
“신고하시려면 사진 찍어도 되지 않아요?”
“사진은 논란이 있을 수 있어서 영상으로 찍습니다.”
사진은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 최근에는 동영상이 가장 확실한 증거로 많이 사용된다.
“지금 신고하시게요?”
“아닙니다.”
“그럼요?”
“일단 묵히겠습니다.”
경고 조치만 받을 수가 있다.
다른 위반 사항과 묶지 않는다면.
확보부터 하고 판단은 나중에 해야 한다.
게다가 당에서도 미운털 박힌 송선자 후보가 같은 당 후보 신고했다고 하면 불 보듯 뻔하다. 미움만 더 받고 갈굼만 넘칠 것이다.
김지혁이 말한다.
“카페 사장님도 처벌받습니다. 그건 어쩌시려고?”
“아. 그렇네요.”
이 말을 듣고 카페 여사장이 달려온다.
- 작가의말
연재가 1주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연재 시간은 오전 11시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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