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선에서 살아난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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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도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목표도 좌절과 방해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앤드류 매튜스-
기정시에 도착한 김지혁.
최한숙의 친구가 출마하려는 곳.
김지혁이 오자마자 최한숙은 거침없이 말한다.
“꼭 도와줬으면 좋겠어.”
“일단 들어보죠.”
김지혁은 캠프 합류의 여부를 떠나 최한숙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부탁하기 미안하지만.”
“편히 말씀해보세요.”
“지혁이 정도가 해야 답이 나올 것 같아.”
“예? 무슨 말씀이죠?”
열악한 상황이 짐작 가는 말투다.
불길한 느낌을 안고 김지혁이 묻는다.
“어떤 상황이길래 그러시죠?”
“우세지역이기는 한데 ‘나’ 번을 받았어.”
“나 번이요?”
“벌써 두 번째야. 지난 선거에는 낙선했어.”
중선거구제다.
한 군데서 여러 명을 뽑는다.
1명만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당선되는 선거구 형태다.
선거 전략가에겐 달갑지 않은 지역이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당끼리 경쟁해야 한다.
일례로 3등까지 당선되는 지역이 있다면.
같은 당에서는 후보를 2명을 출마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3명을 내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가, 나의 번호가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경선 자체가 굉장히 치열하다.
일부는 단수 공천을 하고 일부는 경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전체를 경선해서 고르게 가, 나를 주는 곳은 양반이다.
‘본선거’에서 ‘나’ 번의 낙선도 비일비재하다.
‘가’ 번은 당선권이지만 나머지는 애매모호하다.
지방선거는 투표율도 낮다.
게다가 후보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투표한다.
대다수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만을 보고 투표를 한다.
보통 적으면 5개 많으면 7개 이상의 선거가 동시에 진행된다.
그러니까 ‘나’ 번은 그야말로 지옥 불에 돛단배 하나 띄워준 격이라고나 할까?
지방선거의 공식 명칭은 이렇다.
‘전국동시지방선거’
‘동시’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유는 도지사, 시장, 교육감,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을 모두 한꺼번에 뽑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궐도 같이 치러진다.
최한숙의 친구가 어떤 상황인지 김지혁은 캐치했다.
“지역위원장이 밀어주는 분이 아니군요?”
“왜 그렇게 생각해?”
“뻔하지요.”
“왜?”
“혹시 동창이 여성이시죠?”
“응”
“가번은 남성 후보인가요?”
김지혁이 이렇게 묻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정당이 여성 가점제가 있다.
상대적으로 여성의원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최한숙이 대답한다.
“어떻게 알았어?”
“제대로 버림받은 분이네요. 하하.”
“···.”
“아니면 괜찮은 사람이거나.”
“좀 안타깝지.”
김지혁이 궁금해서 묻는다.
“설마? ‘나’ 번도 경선했어요?”
“어떻게 알았어?”
“하아···.”
김지혁은 머리가 띵했다. 바로 최한숙에게 묻는다.
“설마 남성 후보들이랑?”
“응”
“그것보다 거기서 이겼다는 건가요?”
“응. 정말 극적으로.”
“미쳤네요. 제가 들은 최악의 공천 스토리입니다.”
김지혁은 당황했다.
여성인데 두 번이나 ‘나’ 번을 받았다.
‘게다가 혼자서 여성 후보?’
‘얼마나 밉게 보였길래 최악 중의 최악의 공천과정을 겪었지?’
‘나’ 번을 경선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전체 경선을 해서 1위와 2위를 가와 나의 번호를 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가는 남성으로 주고 여성을 ‘나’ 번 경선에 밀어 넣는다?
이건 철저하게 당에서 버림받은 거다.
지역위원장에게 버림받았든가.
그런데 경선에서 이겼다?
그렇다면 당원의 지지를 받는다는 얘기다.
보통 전투력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
‘이걸 이겼다고?’
직원들한테 인기 있는 과장인데 사장이나 부장한테 미움받고 있다고나 할까?
이럴 때 이직이 정답 아닌가?
당적을 바꾸거나 무소속으로 나오거나 정치를 그만두지 않은 게 이상하다.
김지혁이 계속 몰아붙이듯이 묻다가 말이 없자 최한숙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한다.
“그동안 희망 고문만 당했어. 이번에는 ‘가’ 번 준다는.”
“미련한 분인가요? 하하.”
김지혁은 웃음밖에 안 나온다.
이런 후보는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최한숙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그만두라고 했는데 포기를 못 해.”
“한풀이도 있겠네요.”
“이번에는 어떻게든 당선시켜야겠어!”
“도우시면 되잖아요. 큰 힘이 될 텐데.”
최한숙이 답답해하며 말한다.
“안타깝게 우리도 상황이 안 좋아.”
“사현시 인정구요?”
“나는 인정구청장 후보를 돕기로 되어 있어.”
“그러셨구나.”
“그래서 지혁이한테 부탁하고 있잖아.”
김지혁은 당황스럽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기초의원 후보.
같은 당에서도 손 놓아버린 후보.
‘지옥에서 악귀들과 싸우는 욕망의 화신을 도우라는 것인가?’
그것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기초의원 선거 캠프.
사방에 적으로 둘러싸인 당선 가능성도 희박해 보이는 후보.
최한숙이 김지혁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한다.
“지는 선거도 열정적으로 돕잖아. 지혁이는”
“손 놓고 말하세요. 하하.”
“당선시키면 역사야. 지혁아.”
“저 역사 싫어합니다. 하하.”
“내 부탁 들어줄 거지?”
아무리 김지혁이라고 해도 해본 적도 없는 기초의원 선거.
‘마이크로단위 선거.’
짓밟혀가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선거다.
가장 아래에 있는 기초의원은 당이라는 명분으로 이놈 저놈에게 동원된다.
도지사 선거 운동할 때도 불려 다니는 사람들이 이 기초의원 후보들이다.
게다가 같은 식구끼리 표도 나눠서 경쟁해야 한다.
김지혁은 지는 선거는 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는 이유가 다르다.
‘패배의 고통이 이길 때의 기쁨보다 열 배는 힘들다.’
패배한 캠프만큼 참혹하고 처절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인간이 어디까지 최악으로 변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는 곳이 그곳이다.
후보는 또 어떤가?
패배하면 무참하게 더 짓밟힌다.
이것이 정치 업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지면 '위로'는커녕 안 좋은 소문과 험담이 더 난무한다.
다른 선거에서 아낌없이 김지혁을 최한숙은 도왔다.
보답은 해야 한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도울 수 없다.
그런데 김지혁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기사회생해서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그것도 압도적으로?
‘공천이 올바르지 않다.’ 는 것이 증명되는 사이다 상황이 생긴다.
게다가 ‘가’ 번도 당선이 된다면 당으로서 반길 일이 된다.
이 바닥에서는 나름대로 전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것은 지역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공천 커넥션.
‘일명 욕망의 스크럼’
이 스크럼을 철저하게 깨뜨리는 것이 된다.
김지혁은 의미가 있는 싸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힘들고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매번 싱거운 커피만 마실 수 없지 않은가?
김지혁은 뭔가 의미 있는 싸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김지혁이 표정이 바뀐다.
차가우면서 차분한 말투로 말한다.
“조건이 있습니다.”
“뭔데? 응? 말해봐.”
“두 가지입니다.”
김지혁이 물을 한잔 마신다.
“캠프는 제 스타일대로 합니다.”
“오케이. 원하던 바야.”
“조직 동원 선거 안 합니다.”
“자세히 말해봐.”
“향우회니, 협회니 이런데 끌려가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건 상의해봐야 할 것 같아.”
“그렇다면 안 하겠습니다.”
김지혁은 최한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잘라 말한다.
놀란 최한숙이 말한다.
“단박에 자르니. 응. 그렇게 할게.”
“공약은 상의하겠습니다.”
“그러면 좋지.”
“하지만 어이없는 선심성 공약은 반대합니다.”
“오케이. 그건 나도 반대야.”
그리고 김지혁이 묻는다.
“후보는 어떤 사람이죠?”
“피아를 구분을 잘 못 한다. 그게 가장 치명적이야.”
“오지랖과?”
“응. 쉽게 말해서 주변 사람들한테 이용을 많이 당해.”
김지혁은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최악의 경선 상황을 듣다 보니 후보에 대해서 이제야 물은 것이 후회된다.
불안감이 강하게 뇌리에 박힌다.
최한숙이 말을 잇는다.
“본인은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본인이 이용당하는 것 같아.”
“스킨십은 좋은데. 적을 구별 안 하고 좋다? 하하.”
“딱 맞아. 그런 타입.”
“전략적 대인관계가 안 되는군요.”
“응.”
‘열심히 다닌다고 뭐가 이루어질 것처럼 생각하는 유형인가?’
김지혁이 말한다.
“정치하면 안 되는 겉과 속이 같은 타입인 거 같은데.”
“지혁이는 금방 파악하는구나.”
“다 말씀하셨잖아요. 하하.”
김지혁은 지금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다.
깜깜한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최한숙이 말한다.
“오늘도 모임을 갔는데. 내가 말렸거든.”
“그랬군요.”
“나도 선거를 잘 아니까.”
“현장 전문가시죠.”
“그 의미 없는 모임 하는 사람들 어떤지 알잖아?”
“정말 꼴 보기 싫은데. 후보들은 죄다 부르잖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김지혁이 쉽게 말한다.
“병풍치기 당하면 본인만 힘든데.”
“병풍치기?”
“말하기도 귀찮아서 저는 그렇게 말해요. 하하.”
선거라는 광풍은 광인들을 만들어 낸다.
‘광인들에 휘둘려 미치지 않고 광인들을 물리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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